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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141)

42화

최고 미남이라느니, 국보급에 인간문화재라느니, 그걸 설마 다 들은 거야?

‘아, 쪽팔려!’

키리아는 얼굴이 홧홧하게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음, 그, 그게 그냥 장난이에요. 그저 공작님이 잘 생기셨다는 단순한 뜻이고요.”

“다시.”

“네?”

제논이 한 걸음 성큼 가까워졌다.

“다시 한번 말해주십시오.”

“뭘요…?”

“내 외모에 대해서.”

그 얘길 또 하라고?!

키리아는 미남을 좋아했다. 미남의 얼굴을 보면 눈의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렇다고 당사자 앞에서 그걸 대놓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제논은 물러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째선지 그는 집요하게 굴고 있었다.

‘게다가 저 헤어스타일은 반칙이지!’

머리칼을 정돈해 반듯한 이마를 드러낸 모습은 지금 당장 황실 연회에 참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미쳤다. 아무리 대충 살고 있다고 해도 귀족은 귀족이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키리아의 총명한 눈이 흐려졌다.

결국 홀린 듯이 외쳤다.

“고, 공작님의 미모는 세계 최고. 세계 제일. 국보급에다 인간문화재예요! 만세!”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됐는데. 어쨌든 알겠습니다.”

키리아는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아 씨…. 쪽팔려….’

제논이 웃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가울은 이제 보내도 되겠군요.”

“네? 가울은 제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요….”

“내가 대신 하겠습니다. 게다가….”

별안간 제논이 몸을 조금 숙였다.

선을 넘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게 되는 미묘한 거리.

키리아의 눈이 놀란 고양이처럼 동그래졌다.

제논이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낮게 속삭였다.

“이렇게 하면, 그대가 더 기운을 차리지 않겠습니까?”

그의 붉은 눈이 호기심과 약간의 장난기를 담고 있었다.

눈꼬리가 가늘어진 걸 보아,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칭찬 좀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장난을 치다니!’

그런데도 저 얼굴에 짜릿함을 느끼는 내가 밉다.

키리아는 제논의 두 눈을 손으로 샥 가렸다.

“어허. 조심 좀 하세요!”

“뭘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요. 미인은 항상 정숙해야 한다는 무슨무슨 법이 있다고요.”

“처음 듣는데요.”

“아무튼 있어요!”

횡설수설한 키리아는 간신히 제논에게서 한 걸음 훌쩍 물러났다.

만유인력이라도 작용하는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는데, 꼭 최면에서 깬 기분이었다.

‘요즘 은근히 장난이 느신 거 같은데….’

늘 무관심하고 냉담하던 제논의 얼굴에 느른한 만족감이 떠올라 있었다.

제논이 쿠키 접시를 키리아의 책상에 내려놓고 가울에게 시선을 옮겼다.

“줄곧 키리아를 옆에서 도왔다 들었다.”

“네? 앗, 예! 맞습니다, 왕!”

제논과 키리아를 멍하니 보고 있던 가울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왕께선 쭉정이한테만 장난을 치시는 줄 알았는데….’

로하넨에게 농을 걸 때보다 더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영 적응되지 않는 가울이었다.

“내가 있을 테니 넌 물러가도록 해.”

“네, 그럼….”

알을 돌봐주던 보모가 퇴근해버리자 키리아는 당혹스러웠다.

“가울이 있어야 하는데요. 알을 누군가 돌봐줘야 해서요.”

“내가 봐주겠습니다.”

“공작님이요…?”

맡겨 보라는 듯 제논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키리아는 조심스러웠다.

“이 알은 변이 독감에 걸려 있어요. 공작님께 옮기라도 하면 제가 면목 없어져요.”

“잊었습니까? 난 이미 마물에게 반쯤 물든 몸이라는 걸. 오히려 그대가 알과 가까이 있는 게 큰일 아닙니까.”

“변이 독감을 연구할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빨리 치료제를 만드는 수밖에.”

“그러니 내가 돕겠단 겁니다. 그대가 주치의라고 해서 모든 걸 떠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당연한 의무를 읊는 듯 담담한 어조였다.

“…그런 말을 환자한테 듣는 건 처음이네요.”

키리아는 갑자기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연구를 해도 늘 혼자 했고 욕을 먹어도 혼자 먹었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말이 어쩐지 낯설었다.

시선을 방황하던 키리아가 괜스레 궁시렁거렸다.

“…그렇게 주치의 생각을 하신다면 마물병에도 손대게 해 주시지 그러세요.”

“그건 예외죠.”

“치. 왜 그렇게 마물병에 손대는 걸 싫어하세요?”

설마, 하는 태도로 키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마물병도 생명이라면서 공생하겠다는 건 아니시죠?”

“그럴 리가.”

제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키리아. 약제사가 중요시하는 윤리는 무엇입니까?”

“그거야… 생명 존중이죠.”

“그래서 허락할 수 없다는 겁니다.”

“네?”

“나를 치료하면 그대는 내 주치의가 된 걸 후회할 테니까.”

키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푸른달과 관련된 거예요?”

“…그보다 라데츠의 독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예상대로 제논은 화제를 돌려버렸다.

더 추궁해도 답이 없을 것을 알기에 키리아도 순순히 물러났다.

“알 덕분에 변이 독감 연구는 조금씩 풀리고 있어요. 다음주까지는 결과가 나올 거 같고요.”

한스의 혈액과 마물의 알, 그리고 생명석 덕분에 연구의 실마리가 잡혔다.

방해 없이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면 공작님, 말씀하신 대로 알을 잘 부탁드려요.”

키리아는 알을 제논에게 건넸다.

삑…!

낯선 사람의 손이 닿자 알은 경계하며 소리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리를 내다 말고 조용해졌다.

“우와, 웬일이지? 가울이 있을 때도 이 정돈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뜻밖의 일은 또 일어났다.

제논이 알을 욕조에 담그자, 알이 제논의 팔에 달라붙으려 들었다.

뭐지?

의아하게 보던 키리아가 물었다.

“공작님, 혹시 손에 뭔가 들고 계세요?”

“이것 말입니까?”

제논이 소매를 걷어 검은 손을 펼쳤다.

손안에는 키리아가 조앤을 통해 전달했던 생명석이 있었다.

알이 다가갔던 건 생명석이었던 것이다.

“이게 왜?”

의아하게 물으며 키리아는 알이 삐삐거리는 반응에 따라 생명석을 욕조에 담가 보았다.

그러자 생명석은 희미한 빛을 냈고, 알은 한결 편안한 분위기가 됐다.

욕조에 풀어 놓은 독초 우린 물이 알에게 더욱 잘 흡수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키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명석을 약재로 쓸 수 있는 건 공작님의 특이체질뿐인 줄 알았는데….’

마물에게도 효과가 있구나?

하긴 모든 힘의 근원인 에테르를 품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약의 흡수를 돕는 생명석의 약재 효능은 아무래도 종족을 불문하고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변이 독감에 재감염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같은 약으로 포로나에 걸린 마물들까지 싹 치료해버리면 되니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키리아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는 듯 알이 삐삣 작게 울었지만 이미 들리지 않았다.

“키리아?”

“…….”

놀란 제논이 그녀를 불렀지만, 키리아는 입속으로 실험 내용을 읊으며 어느새 몰두하고 있었다.

제논은 그녀를 재차 부르는 대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몽실몽실한 머리는 대충 틀어 올리고 옷에는 온갖 시약과 풀물이 들어 지저분했다.

항상 우아하고 깔끔한 제논의 상상 속 메데이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왜일까.

제논은 처음 메데이아의 칼럼을 접했을 때처럼 키리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º º º

분석과 연구, 시행착오를 거듭한 지 2주가 지난 끝에….

“…됐다!”

키리아는 드디어 변이 독감 치료제를 완성했다.

효과도 입증됐다.

완성된 약을 푼 욕조에 알을 담그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알의 병증이 빠르게 사라졌다.

“사람이 직접 복용하면 효과가 더 빠를 거예요. 거의 포션급으로요! 역시 전 천재예요!”

알을 같이 지켜보고 있던 제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군요. 그대의 자찬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럼 서둘러 라데츠에 약을….”

“저도 그러고 싶은데, 문제가 있어요.”

키리아가 손바닥을 폈다.

손톱보다 작은 생명석 조각이었다.

키리아가 연구하던 것도, 제논에게 임시방편으로 준 것도 전부 쓰고 이것만 남았다.

“마을 전체에 쓰기에는 보시다시피 생명석이 부족해요.”

“그대는 그걸 어디서 구했습니까?”

“가울이 줬어요. 물론 어디서 났는지는 진즉에 물어봤죠.”

키리아가 물었을 때, 가울은 생명석을 갖고 있었던 임프를 즉시 불러냈다.

1위님이 자신의 선물을 알아주셨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임프가 말했다.

「그거 마을에서 주웠음!」

「라데츠 말이지? 정확히 어디?」

「까먹었음!」

“결국 별 도움이 안 됐죠.”

키리아는 가방을 챙겼다.

“그래도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줄 약은 만들어뒀어요. 그거라도 마을에 전해주고 올게요.”

키리아가 막 밖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실례합니다, 주군.”

굳은 표정의 로하넨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포이즌 리저드들이 라데츠를 습격했습니다.”

제논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피해 상황은?”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습격해온 마물들의 수가 많지 않았거든요.”

“많지 않았다고?”

“네. 녀석들은 경고를 하기 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알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알이라.”

제논이 탁자 위에 있는 알을 힐끗 봤다.

“그렇다면 저건 포이즌 리저드 킹의 새끼가 틀림없군.”

“네.”

우두머리의 짝이 죽고 알까지 사라지자, 포이즌 리저드들은 마을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키리아의 환영식 때 알의 경계음을 들은 후 그들은 알을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알이 발견되지 않자 인간들이 숨겨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간단하네요!”

키리아가 밝게 말했다.

“알을 돌려주면 되잖아요? 제가 병도 치료했으니까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르고요.”

키리아, 제논, 로하넨 세 사람의 시선이 작은 욕조 안에 있는 알로 향했다.

로하넨이 근심과 안도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마을의 피해는 있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의 피해는 없겠어요. 알은 제가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1위님!”

“1위님아!”

임프들이었다.

키리아에게 선물을 인정받고 직접 부름을 받았다는 임프의 자랑에, 질투한 다른 녀석들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이었다.

녀석들이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짐은 제 몸집보다도 컸다.

“1위님, 이거 제 선물… 으힉.”

앞서 오던 녀석이 급히 뛰어오다 넘어졌다.

그 다음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뒤따르던 임프가 넘어진 녀석에 걸려 크게 넘어졌다.

그 바람에 녀석이 들고 있던 짐보따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고, 알이 있는 욕조를 정확하게 때려 맞추고 말았다.

알은 욕조와 함께 탁자 뒤로 떨어졌다.

챙그랑!

까득.

욕조가 돌바닥과 부딪히는 금속성과 함께 들린 껍질 깨지는 소리.

“서, 설마.”

키리아는 제발 상상하는 상황이 아니길 빌며 알을 천천히 집어들었다.

“…맙소사.”

알은 한눈에 봐도 ‘끝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선명히 금이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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