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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40/141)

40화

“끄응.”

똥머리를 한 채 키리아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재 동시에 진행하는 연구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제논을 위한 만능약재의 대체재 개발 연구.

다른 하나는 마기 해독수의 상용화 연구.

마지막 하나는 포로나 치료제 연구다.

그런데 세 가지 다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만능약재의 대체재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했으니 그렇다 쳐도, 마기 해독수와 포로나 치료제는 결과가 잡힐 듯 말 듯 지지부진했다.

뭔가 알맞은 연결고리, 혹은 힌트만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키리아 주변에는 그녀가 며칠 동안 뒤져본 약재와 독초 도감 서적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렇게 빙빙 맴돈 적은 처음이었다. 머리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다.

“1위님, 1위님.”

그때 임프들이 쪼르르 달려왔다.

“술 마시러 안 가심?”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해가 뜰 때 책상에 앉았는데 고개를 드니 저녁이었다.

오늘은 공작성 식구들이 준비한 환영식이 열리는 날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빠져선 안 된다.

“가자.”

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임프들이 환호했다.

“얏후!”

“치킨 치킨!”

“맥주! 맥주!”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도토리 같은 녀석들이 순진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º º º

“키리아 양을 위하여!”

“위하여!”

챙—

술잔이 부딪치며 맥주가 찰랑 넘쳐흘렀다.

키리아는 맥주잔을 두 손으로 잡고 꿀꺽꿀꺽 단숨에 마셨다.

“푸흐!”

“우와, 아가씨, 정말 잘 드세요!”

조앤이 꺅꺅 감탄하며 다시 술잔을 채워줬다.

하늘에는 신비로운 빛을 흩뿌리는 푸른 달.

그 아래에는 어느새 정이 든 공작성 사람들과 마물들.

그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로하넨. 공작님은요?”

키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아! 주군은 푸른달이 뜨는 밤에는 방에만 계십니다.”

“아, 그렇다 그랬죠.”

키리아는 머쓱해져서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제논은 날이 저물기 시작할 무렵부터 방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성의 하인들 또한 사람이고 마물이고 가릴 것 없이 공작의 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전부터 엄하게 지켜온 불문율이었다.

그때 앨마가 키리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걱정마시우. 도련님께는 따로 잘 챙겨드릴 거니까. 이미 환영식이 늦어졌는데, 더 이상 늦어지게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도 도련님이세요.”

“맞습니다, 키리아 양. 주군께서 대신 축하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제야 키리아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앨마와 로하넨, 조앤과 하인들이 키리아에게 요란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그 후에야 다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환영식이라는 개념이 부족한 마물들은 이미 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포상이 아니어도 치킨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드문 날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했기에 키리아도 마물들에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엥? 가울이 왜 쭈뼛쭈뼛거리지?’

뭔가를 뒤에 숨긴 채 키리아를 곁눈질하던 가울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했다.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자 오기라도 생긴 듯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키리아 옆에서 치킨을 뜯던 임프를 덜렁 들어 뒤로 던져버리고는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

“어이.”

그가 등받이에 팔을 걸친 삐딱한 자세로 물었다.

“요즘 그, 괜찮냐?”

“뭐가?”

“성에서 지내는 거 문제없냐고.”

“응.”

“조공은 제대로 받고 있어?”

“조앤이 관리하고 있는데. 조공의 질이 좋아진다면서 흐뭇해하더라구.”

“그래? 흥. 잘 됐네. 난 별로 관심 없지만.”

가울이 흐뭇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키리아가 그런 가울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왔어? 할 일 없구나 너.”

“뭐, 뭐?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성 안 청소?”

“그것도 중요하고!”

대답과 함께 가울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식사중인 마물들을 엄지로 까딱 가리켰다.

“지금도 내가 마물들을 통제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

키리아는 마물들을 쳐다봤다.

“내 고기임! 퉤퉤퉤!”

“피룻?! 피루루!”

“끼우우!”

임프와 하피, 와이번까지 가세한 난투극을 보다가 다시 가울에게 고개를 돌렸다.

“평소처럼 바보 같은데.”

“푸른달이 뜨면 녀석들은 더 기운이 넘쳐서 난리를 친다고. 내가 누르고 있어서 얌전한 거야.”

“어, 정말?”

그러고 보니 밤이면 숲에서 들려오던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오늘은 비교적 잠잠한 것 같았다.

“내 환영회 때문에 통제한 거야?”

“누, 누가 너를 위해서래? 오늘은 나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거든?”

“오오.”

키리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 신경 써준 거구나? 의리 있네?”

“의리는 무슨. 우리가 저, 절친한 친구도 아니고.”

투덜대는 가울의 한쪽 입꼬리가 자꾸만 위로 씰룩였다.

그런 가울을 키리아가 빤히 쳐다보자, 가울이 얼굴을 붉히며 괜히 큰소리를 쳤다.

“아 됐고! 이거나 가져가!”

가울이 조끼에서 뭔가를 꺼냈다.

탁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건 어두운 녹색 수정이었다.

키리아가 그걸 눈앞에 들어 자세히 살펴봤다.

오래된 이끼가 낀 듯한 수정 안쪽에 희뿌연 황금색 빛무리가 보였다.

“신기하다…. 이게 뭔데?”

“몰라.”

“엥?”

“마정석 같기도 한데 아닌 거 같은 이상한 돌이야. 마나인지 마기인지, 아니면 신성력인지 아무튼 뭔가 비슷한 게 느껴지는데 정체를 모르겠다고.”

“…너도 모르는 걸 선물로 주는 거야?”

가울이 흥,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희귀한 거잖냐. 선물은 특별하고 희귀한 것일수록 좋지.”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대충 납득하던 키리아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 세 가지 기운과 비슷하지만, 세 가지 기운이 아닌 것?’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의 힘이 있다.

마법의 힘 마나, 마족의 힘 마기, 그리고 신의 힘인 신성력이 그것이다.

그 세 가지 힘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생명력인 ‘에테르’에서 파생된 갈래들이다.

그러니까 에테르는 세 가지 힘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가울의 말이 맞다면 이 녹색 수정에 담긴 건 틀림없는 에테르야.’

그리고 원작 속, 에테르를 담고 있는 유일한 물질은….

‘생명석!’

다른 말로 녹수정.

바로 키리아가 찾던 북부의 노다지였다.

‘대박. 이게 이렇게 굴러 들어오다니!’

생명석은 세 가지 힘의 근원인 에테르가 담겨 있는 만큼, 어떤 힘으로도 변환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마정석이 될 수도, 마기를 품을 수도, 신성력을 품을 수도 있다.

한정적인 마법만 담고 있는 아티펙트 시장에 대변혁을 맞이할 물건.

노다지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걸 약재로 사용하면 공작님한테도 약효가 잘 듣게 할 수 있겠어.’

세 가지 기운이 복잡하게 얽힌 공작님의 몸도 에테르라면 잘 받아들일 터였다.

마물병 치료 연구의 큰 진전이었다.

지저분한 이끼 같은 걸 보면 독성에 오염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키리아에겐 마기 해독수가 있으니 문제 없었다.

‘노다지와 내가 찾던 약재를 한 방에 해결했어!’

너무 흥분한 탓인지 뜨거운 콧김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가울이 키리아와 약간 거리를 벌렸다.

“풀떼기 너… 지금 좀 고릴라 같아.”

그때였다.

삐익—

숲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높은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저쪽에서 들렸지 말입니다.”

푸른달은 다른 날보다 위험하니, 조금이라도 수상한 건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가보자!”

앨마가 먼저 뛰어나가자 하인들이 뒤따랐다.

덩달아 나서려는 키리아를 가울이 붙잡았다.

“야, 네가 가서 뭐하려고?”

“내가 유일한 약제사인데 가봐야지. 다칠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좀 궁금하기도 하고.”

“하여간 궁금한 것도 많아.”

투덜거린 가울이 별안간 키리아를 휙 들어 올리더니 제 등에 업었다.

“꽉 잡아.”

“갑자기 이게 무슨… 끄악!”

키리아가 따지기도 전에 가울이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날리더니 금세 엘마와 하인들을 추월해버렸다.

굉장한데, 이 슈퍼카!

키리아는 내심 감탄하며 떨어지지 않게 가울의 목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근데 방금 소리 낸 사람, 혹시 마물에게 당한 걸까? 네가 통제하고 있다며.”

“내 말을 듣는 건 성에 있는 녀석들뿐이야. 그 외의 놈들은 왕의 명령을 잘 듣지 않아. 왕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올 때, 공작성 가까이 올수록 마물들이 좀 더 얌전하다고 느꼈는데?”

“흥, 놈들도 왕이 강한 건 본능적으로 느낄 테니까.”

그러니까 마물들은 제논의 힘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을 뿐, 왕으로 받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공작님이 인간이라서 그렇구나.”

그때, 다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아주 가까웠다.

키리아가 가울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저쪽이야!”

저만치 앞쪽에, 성이 난 자이언트 맨티스가 누군가를 향해 낫 같은 앞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울이 키리아를 던지듯 내려놓고 그쪽으로 달려 나갔다.

“하!”

뒤이어 앞쪽으로 휘두른 가울의 손톱이 검은 형상이 되어 그대로 자이언트 맨티스의 앞발과 목을 조각냈다.

키에에―엑!

쿵. 육중한 사마귀의 몸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가울이 우쭐해하며 키리아에게 돌아왔다.

“봤냐? 내가 이 정도야! 엉? 뭐해?”

키리아는 마물에게 당할 뻔한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가울.”

키리아가 허리를 세우더니 가울을 향해 몸을 빙글 돌렸다. 황당함과 난감함이 섞인 표정이었다.

“이거 뭐야?”

키리아가 가리킨 건 사람이 아니었다.

도마뱀 가죽 같은 독특한 껍질의, 아기 얼굴만 한 알이었다.

“엉? 이건…!”

“뭔지 알아?”

“포이즌 리저드의 알이야.”

알의 정체를 듣고 키리아는 깜짝 놀랐다.

마을에서 난동을 피운 마물도 포이즌 리저드였는데?

혹시 그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가울이 알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색이 좀 이상한데. 보통 포이즌 리저드의 알은 거무죽죽한 회색인데 이건 희잖아? …설마?”

포이즌 리저드는 드래곤의 피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마물이다.

그 때문인지 태생적인 급을 벗어나는 개체가 태어나기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아마 드래곤과 닮았다던가?

어차피 마족도 아니고 마물의 일일 뿐이라 가울은 관심이 없었다.

확실한 건 변종 개체는 흰색이라는 것뿐이었다.

키리아가 말을 멈춘 가울에게 물었다.

“설마 뭐?”

“아냐.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가울이 알을 한 손에 들어 올리고는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잘 됐어. 포이즌 리저드 알이 얼마나 맛있는데. 이거 깨서 프라이 해 먹자.”

“어?! 아니…, 먹는 건 좀.”

그때였다.

삐―!

위급상황을 알리듯 알 속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나더니, 바닥에 있던 알이 불쑥 튀어올라 가울의 턱을 가격했다.

“커헉!”

가죽을 닮은 껍질 덕분인지, 바닥으로 떨어진 알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통 탄력 있게 뛰며 키리아의 발치로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마, 만져도 되나.”

키리아는 알을 조심조심,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겉보기와 달리 알은 만져도 따갑지 않았다. 제법 온순하기까지 했다.

가울이 얼얼한 턱을 문지르며 씩씩댔다.

“야, 그거 내놔. 중급 마물 주제에 감히 이 몸의 턱을 갈겨?”

“…가울. 혹시 마물도 마기에 오염이 돼?”

“뭐?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얘도 포로나에 걸린 거네.”

“포로나가 뭔데?”

키리아는 보랏빛 얼룩이 있는 알 표면을 가울에게 보여주었다.

“마을에 변이 독감이 돌고 있는데, 그 환자와 같은 증상이야. 설마 마물도 걸릴 수 있는 병인지는 몰랐어. 이건 중요한 단서야.”

키리아가 알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얘는 이제 내 환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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