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41)

33화

마탑이 있는 하늘섬.

그곳은 대륙 각지의 마법사들이 오직 마법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 위해 모인, 마법사들의 상아탑이었다.

하늘섬에는 다양한 학파의 탑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마탑과 세상을 이어주는 곳도 있었다.

바로 <월간 마법>이라는 간행물 출판 탑이었다.

만년 낙제생인 조앤과는 전혀 연이 없을 곳이었다.

며칠 전, 하인들이 조앤의 원고를 몰래 투고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키리아의 허락을 받은 조앤이 계약 의사를 밝히자, 이동마법 스크롤이 답신에 동봉되어 왔다.

덕분에 조앤은 단숨에 출판 탑에 도착하게 되었다.

조앤이 응접실에 안절부절 앉아 있는데 <월간 마법>의 편집장이 들어왔다.

“아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사실은 이 원고를 반려하려고 했어요.”

편집장이 조앤의 소설 원고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느 날 마법 학교 신입생이 된 ‘아리키’라는 소녀가, 정식 입학을 위해 독초로 마법을 써서 마법 학교의 마물들을 부하로 삼는 이야기였다.

조앤은 키리아의 하녀이자 조수로서 그녀의 활약을 지켜봤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가씨의 활약을 두고두고 보고 싶어!’

그래서 자기만족용으로 공작성을 마법학교로 바꾸는 등 나름의 재미를 첨가했다.

그게 여기까지 온 거였다.

“독초 자체가 인식이 별로여서 인기가 없을 줄 알았거든요. 아리키가 쓰는 독초 마법들이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했고요. 마기 해독수 같은 거요.”

편집장이 넉살 좋은 얼굴로 설명했다.

“그런데 마탑의 원로께서 우연히 원고를 보시고는 재밌다고 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아리키가 사용한 마기 해독수에 관심을 보이셨어요.”

“어머, 그래요?”

“그런데 마기 해독수는 그냥 허구입니까? 묘사가 매우 디테일해서 처음에는 실제인 줄 알았는데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허구예요.”

그가 아쉽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실제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

“어쨌든, 원로님의 안목은 저보다 뛰어나니 작가님의 소설은 인기가 있을 겁니다. 독초 때문에 항의가 들어올까 하는 걱정도 필요 없습니다. 마탑이 쌓아온 학문적 신뢰도는 독초를 소재로 쓴 소설을 오히려 보호해줄 테니까요.”

“…….”

“만약 원로님의 안목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면… <월간 마법> 최초로 가상의 인물이 스타가 되겠군요.”

조앤은 합죽이를 고수했지만, 속으로는 두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아가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유명해진다니!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럼 우리 아가씨… 아리키를 잘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마탑이 발행하는 <월간 마법>.

북부뿐만이 아닌 제국을 넘어 대륙 전역에서 부동의 인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잡지였다.

또한 그 영향력으로 수많은 유명인사를 만들어낸 유서 깊은 잡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편집장과 계약을 체결한 조앤은 곧장 마탑의 은행을 찾아갔다.

“계좌를 하나 더 만들고 싶은데요.”

아가씨께 드릴 인세를 따로 모아놓을 계좌였다.

º º º

가울의 방 한쪽 구석에서 임프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날카롭게 흘겨보고 있었다.

“먼저 까셈.”

“알겠음.”

한 임프가 감췄던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 위에는 땅바닥에서 주운 게 분명한 비둘기 깃털이 있었다.

임프가 콧대를 세웠다.

“에헴. 1위님이 내가 모은 꽃들을 가져가는 대신 이걸 주셨음. 1위님한테 딱 하나뿐인 거라고 하셨으니까 내가 받은 게 최고임.”

다른 임프들이 눈을 흘겼다.

그들은 ‘누가누가 1위님께 더 이쁨받나’로 겨루는 중이었다.

옆에 있던 임프가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거임? 난 1위님의 마법 도구를 3시간 동안 청소하고 무려 이걸 받았음.”

임프가 소중하게 펼친 포장지 안에는 양념치킨 앞다리가 있었다.

“무려 치킨임!”

“헉.”

다른 임프들이 분하게 부르르 떨었다.

재물보다 먹는 게 장땡인 마물들이었다. 그런데 무려 치킨이라니!

전에는 닭다리 하나가 아니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던 녀석들이었지만, 지금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마지막 임프가 훗,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하급 마물임.”

“저도 하급이면서.”

“나는 1위님께 받은 게 아니라 드릴 걸 자랑할 생각임.”

마지막 임프가 거드름을 피우며 꺼낸 건 탁한 암녹색의 수정이었다.

자세히 보면 안쪽에 황금색 빛무리가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지만, 그냥 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슨 돌임? 무슨 기운 같은 게 느껴짐.”

“나도 뭔지 모름. 하지만 분명 보물임.”

임프가 녹색 수정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이것만 바치면… 1위님이 아끼는 부하는 내가 될 거임.”

“…내 거임!”

“으악!”

임프들이 수정을 차지하기 위해 우당탕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느라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진 걸 몰랐다.

꾸우우욱.

무거운 발이 임프의 머리통을 바닥에 대고 꾹 눌렀다.

임프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프흉! 아픔! 무거움! 누구임!”

“나다, 인마.”

“가, 가울 님!”

임프들이 후다닥 차렷자세를 하고는 몰래 쑥덕거렸다.

“성 밖으로 나가신 게 아니었음?”

“왜 아직도 계심?”

“…다 들린다, 이 땅콩들이 확.”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가울은 자신의 손등을 임프들 눈앞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맞을까봐 움찔하던 임프들이 손등의 표식을 발견하고는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랐다.

“와, 왕의 증표!”

“가울 님, 왕님께 인정받았음?”

“가울 남작님이라 불러 이 자식들아.”

“남작님!”

임프들이 가울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알랑거렸다.

흡족해진 가울은 쿠션에 기대고 앉아 한쪽 다리를 접었다.

“근데 너희들, 아까 뭐 때문에 싸웠냐? 이 몸이 판결해줄 테니까 만지작대던 거 가져와 봐.”

임프들이 비둘기 깃털과 닭다리뼈와 광석을 가울에게 내밀었다.

심드렁해하던 가울은 처음 보는 광석이 나타나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거 신기하네.”

광석을 잡고 찬찬히 들여다봤다.

마나가 느껴지는 걸 보니 인간들이 마법 사용을 위해 거래하는 마정석과 비슷했다.

그런데 진짜 마나가 맞나?

이 광석에 담긴 기운은 이상하게도 마나 같으면서도 짜증나는 신성력 같기도 하고, 친숙한 마기 같기도 했다.

‘정체가 뭐야?’

가울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시큰둥해졌다.

‘이게 뭐든 나랑 뭔 상관.’

그때, 키리아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치, 친구가 되고 싶어서 먼저 난리친 게 누군데 그래?」

「응? 아닌데.」

하. 가울은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생각해보면 키리아는 같은 마족도 일족도 아닌 인간이면서, 처음부터 동맹을 제안해왔다.

놀랍도록 편견이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려고 노력해줬다.

그래 놓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켈베로스의 황당한 추측이 진짜였을 줄이야.’

풀떼기가 정말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발뺌했겠지.

‘하. 어쩔 수 없지. 내가 너그럽게 친구가 되어주는 수밖에. 이 몸은 귀족이니까.’

가울의 입가가 미소로 씰룩거렸다.

“가울 님? 이제 돌려주셈….”

임프가 광석으로 슬며시 손을 뻗었다.

가울이 손을 위로 올려 홱 피했다.

“이건 내가 갖다줄게.”

“크흉? 그, 그건 내가 바칠 조공인데….”

“어. 넌 다른 거 구해.”

벌떡 일어난 가울이 곧장 키리아를 찾아가려다 우뚝 멈췄다.

“오, 그래. 환영식을 한다고 했으니 그때 주면 딱이잖아? 역시 이 몸은 천재.”

그러더니 휙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조공을 빼앗긴 임프가 빼앵 울음을 터뜨렸다.

º º º

칼케시아 제국의 황제 루드비히 3세는 선황들을 존경했다.

그들은 칼케시아를 제국으로 발전시켰고, 제국의 온전한 일인자로 군림하며 황권을 강화한 사람들이었다.

제국에 영광을 가져온 선황들.

자신 역시 그 반열에 이름을 올릴 것이었다.

북부에서 물러나지 않는 반인반마만 아니라면 말이다.

“마물병에 걸렸으면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을 것이지.”

루드비히가 중얼거렸다.

제논 폰 란페르세 공작은 제국의 자랑이었다.

젊은 공작인데다 역대 최연소 성기사단장, 심지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까지 오른 그는 모두의 선망과 존경을 받았다.

그 인기는 황제를 앞질렀고, 혹자는 제국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제국의 유일한 태양으로 군림했던 선황들에게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지.”

공작을 밀어낼 명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인마전쟁으로 란페르세 공작이 마물병에 걸렸다.

루드비히에겐 승전보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이제 역사에는 제국을 인마전쟁에서 구한 이가 란페르세 공작이 아닌 루드비히로 기록될 것이다.

더불어, 역대 그 어느 황제보다도 많은 칭송을 받으리라.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 뻔뻔한 란페르세 공작이 북부에 틀어박혀 당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쯧! 루드비히는 혀를 찼다.

“주제를 모르는 놈 같으니…. 마물병은 도대체 왜 잠잠한 것인가? 공작이 마물로 변하는 것 아니었나?”

루드비히가 맞은편을 향해 물었다.

“란페르세 공작이 칩거하는 건 마물병 때문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폐하.”

음험한 목소리가 황제의 비위를 살살 맞췄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공작가의 가신들 사이에서 분열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공작을 지지하는 충신들이 우세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는 중립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돌아서게 한다면 승리는 폐하의 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중립파를 돌아세울 수 있겠나?”

“공작의 회복을 기다리는 건 무의미하다는 증거를 던져주면 될 듯합니다, 폐하.”

“흠. 일리가 있군. 혹시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나?”

공작가를 섬기는 북부의 기수 가문들이 공작의 퇴위에 만장일치를 하면, 공작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

루드비히가 관심을 보이자 음험한 목소리가 바로 대답했다.

“북부에선 푸른달이 뜨면 마물들이 더 흉포해져서 피해가 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호, 그래?”

“예. 그게 공작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 생각엔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괜찮은 생각이군. 좋아, 전권을 줄 테니까 그렇게 진행해봐. 단, 꼬리를 잡힐 일은 없도록 하라.”

“예, 폐하.”

음험한 목소리는 그 대답을 끝으로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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