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세상에. 마족이 룸서비스를 해주다니.
키리아는 가울의 마음이 변할세라 까불던 걸 멈추고 얌전히 한쪽에서 지켜봤다.
가울이 협탁 위 먼지를 검지로 쓸자 경악할 만한 두께의 먼지가 묻어나왔다.
질색한 그가 얼른 손을 털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하, 젠장.”
그는 투덜거리며 다른 두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가울의 직속 부하이자 지옥의 삼두견이라 불리는 마물, 켈베로스가 검은 화염과 함께 나타났다.
키리아는 본능적으로 흠칫했다.
저 마물은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마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힘을 가진 위험도 S급의 마물이었다.
“가울 님! 부르셨습니까? 이 인간을 죽일까요?”
머리가 셋인 켈베로스는 나타나자마자 키리아를 향해 섬뜩한 이빨을 드러냈다. 송곳니 사이로 뱀의 혀 같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런 켈베로스에게 가울이 걸레를 툭 던졌다.
“청소하자.”
“…설마 이 인간의 방을 말입니까?”
“불만이냐?”
“…존명.”
가울이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창밖으로 내보내고, 켈베로스가 앞발로 걸레질을 시작했다.
슥삭슥삭.
켈베로스는 키리아를 노려보며, 동시에 입 밖으로 불꽃을 그르렁거리면서도 성실히 걸레질을 했다.
청소 상태는 평균 이하였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나았다. 아무래도 앞발의 한계가 있나 보다.
“그래서, 왕께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청소를 마친 후 가울이 물었다.
“아, 공작님이 아쉬워하는 두 가지 말이지?”
운을 뗀 키리아는 속으로 신중히 말을 골랐다.
공작의 오른팔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적절히 자극해야 했다.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네가 명령도 듣다 마는 거라고 하셨어.”
“뭐? 웃기지 마!”
가울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왕의 이름에 대고 맹세하는데, 나보다 왕의 명령을 잘 따르는 놈은 없어! 그 신관 자식보다도 내가 더 충성스럽다고!”
“으르릉!”
켈베로스까지 덩달아 흥분했다.
움찔한 키리아는 얼른 흥분을 가라앉히려 뒷말을 이었다.
“응응,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공작님은 다르게 느끼시는 것 같던데. 아직 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아냐?”
“그, 그건….”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정곡을 찔린 듯했다.
잠시 지켜보던 키리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어쩔 수 없겠지. 공작님은 인간이고 너는 마족이잖아. 그러니까 신뢰를 얻는 건 정말 어렵지. 널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서는 힘들겠다.”
순간 가울이 입을 반쯤 벌린 채 굳어버렸다.
처음의 적개심 대신, 당황스러워하는 붉은 눈이 키리아를 향했다.
바로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공작님의 신뢰를 얻고 싶지 않아?”
가울의 꼬리가 느낌표처럼 빳빳해졌다. 왠지 머리의 뿔도 쫑긋 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와 동맹을 맺자.”
“무슨 헛소리를!”
“나랑 손을 잡으면 공작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소리야.”
설마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가울이 놀란 눈으로 키리아를 쳐다봤다.
“나는 여기서 평화롭게 일하고, 너는 공작님의 신뢰를 얻고. 상부상조. 어때?”
“…….”
솔깃해하던 가울의 표정이 어느 순간 와락 구겨졌다.
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안개처럼 넘실거렸다. 방 안의 가구들까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들썩였다.
‘대체 뭐야!?’
숨 막히는 마기에 키리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멈췄다.
그 순간, 가울이 키리아를 검지로 가리켰다.
“인간, 넌 서열 최하위야.”
얌전히 앉아 대기하고 있던 켈베로스의 눈이 번쩍 빛났다.
가울이 키리아를 짓누르듯 내려봤다.
“동맹이라고? 풀떼기나 다루는 너랑?”
키리아의 제안은 분명 유혹적이었다.
다만, 마족들은 부상을 당하면 자연 회복을 하거나 더 강한 자의 마기를 받아서 회복한다.
풀떼기로 치료하는 건 생소한 데다 나약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풀떼기를 다루는 키리아 와의 동맹은 가울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우습게 보였다는 생각에 가울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감히 헬하운드 일족의 전사인 날 우습게 보다니. 어디 한 번 잘해봐. 너 스스로 나가게 해줄 테니까.”
으르렁대듯 키리아를 노려본 가울이 켈베로스와 함께 떠났다.
그제야 마기가 사라지고 진동하던 가구들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키리아는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방으로 보내기 전에 공작이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마물이나 마족과 평화적으로 지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맹.
하지만 방금 결렬됐다.
그렇담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서열 정리입니다.’
º º º
“이번 호 매출은 어때?”
“메데이아 님 효과가 진짜 있긴 있었네요. 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졌어요….”
제국 수도에 있는 리치골드 출판사의 <무덤에서 요람까지> 편집부.
편집장은 직원의 말에 뒷목을 잡으며 어구구 앓는 소리를 냈다.
‘개인 사정으로 칼럼 연재를 잠정 중단합니다.’
메데이아로부터 간단명료한 통보가 도착하자, 그녀의 얼굴은 물론이고 집주소조차 모르는 편집장은 하는 수 없이 칼럼 휴재 소식을 전하며 금월호 잡지를 발간했다.
반응은 양 갈래로 나뉘었다.
메데이아를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기던 독자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반면, 매출도 조용히 하락해버렸다.
그래서 편집부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았다.
거기다 편집장의 걱정거리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분명 올 텐데, 늦네….
아니나 다를까. 직원 하나가 달려왔다.
“편집장님, 엄청난 장문의 편지가 왔어요!”
“맞춰볼게. 숲지기지?”
“네.”
그럼 그렇지.
편지를 받은 편집장은 꿀꺽 침을 삼켰다.
손안에 잡히는 이 두둑한 두께….
‘아아, 명절 잔소리보다 무섭다!’
메데이아에게 안 좋은 평이 달릴 때마다 장문의 편지를 보내 그녀를 옹호하거나 편집부의 태도를 가차 없이 질타하는 ‘숲지기’.
무시할 수도 없었다.
메데이아의 연구를 지원하겠다며 거액의 후원금을 보내는데다, 그 사실을 비밀로 하는 대가로 출판사에도 꾸준히 후원을 하는 분이었으니까.
메데이아가 구하기 난감해하는 희귀 약재들을 편집부에서 보내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편집장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봉투를 열었다.
“뜨헉!”
안에는 무려 100장이 넘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내용은 역시나 ‘도대체 메데이아 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는 것이었다.
“모른다고 하면, 사실대로 말하라며 200장을 보내겠지….”
편집장은 신입시절 시말서를 쓸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상사의 고생을 은근히 고소해하던 직원이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런데 메데이아 님은 왜 연재를 중단하신 걸까요? 혹시 독초 연구를 그만두시려는 걸까요?”
“……!”
직원의 말에 편집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능성이 있잖아요? 독초의 독을 제거하고 먹는 방법을 소개했을 때 ‘너나 처먹어라’는 독자들의 편지가 엄청 왔었죠. 보는 저도 충격이었는데 당사자는 오죽하셨겠어요.”
같은 약제사들도 메데이아의 연구를 시간낭비로 봤다.
멀쩡한 약초를 연구하는 게 훨씬 빠르고 쉬운 길인데 왜 미련한 고집을 부리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그 충격으로 다 포기하고 편하게 살기로 결정하셨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잘됐네요. 악!”
편집장이 돌돌 만 신문지로 직원의 머리를 찰지게 때렸다.
“뭐가 잘 돼! 가서 일이나 해!”
다른 직원들도 얻어맞은 직원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사실 메데이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간판스타였다.
독자들의 어그로를 끌어 매출을 올려주는 어그로 스타.
이 잡지가 제국의 대표 잡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메데이아의 공이 컸다.
하지만 출판사는 은근히 그녀를 대우하는 척하면서 실제론 홀대했다.
그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우하는 것보다 욕먹는 작가를 생색내듯 챙겨주는 쪽이 훨씬 편하니까.
‘그런데, 늘 1위였던 우리 잡지의 매출 순위가 처음으로 추락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베스트셀러 작가 대우하면서 붙잡고 있는 건데!
열 오른 숨을 씩씩 내뿜던 편집장이 직원들을 향해 신문지를 까딱였다.
“다들 메데이아 님 소식 놓치지 않게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라고. 어디 계시는지만 알면 당장 가서 모셔올 테니까!”
평소 메데이아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젠 메데이아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편집장이었다.
º º º
[아버지께. 백작님께.
저는 북부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이곳에서 빚을 갚을 방법을 꼭 알아내서, 손해를 메꿔 드리도록 할게요.]
여기까지 쓴 키리아는 잠시 망설이다 몇 마디 덧붙였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배운 건 약학만이 아니니까요. 백작님의 어깨너머로 저도 여러 가지를 배웠…]
“어휴.”
아버지라고 해야 해, 백작님이라고 해야 해?
“직접 말할 때는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고민하다가 백작님이라 쓴 부분을 펜으로 까맣게 지워버렸다.
그냥 백작님께는 편지를 생략할까?
리안에게 보낼 편지는 이미 써 두었으니까.
시험 첫날인 어제, 키리아는 자신이 지낼 방을 공들여 정리하면서 바짝 긴장했다.
가울과의 회담(?)이 안 좋게 끝나는 바람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런데 의외로 평화롭게 지나갔고,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 리안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근데 백작님은 영 어색하단 말이야.”
키리아는 편지를 가방에 넣다가, 가방 안에 잠들어 있는 파랑새를 발견했다.
“아, 맞다….”
예전에 숲지기가 보낸 마도 전서구였다.
답장을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미루다 보니 아직까지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이번엔 답장할 차롄데.
게다가 지금쯤 칼럼 연재 중단 소식을 봤을 테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어쩌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고.
“…할 수 없지.”
짧게나마 답장을 쓰려고 다시 펜을 들 때였다.
드르륵.
난데없이 마룻바닥을 긁는 소음이 들려왔다.
“어?”
뒤를 돌아본 키리아는 뜻밖의 광경에 그만 굳어버렸다.
머리가 셋 달린 도베르만이 자신의 침대를 방 밖으로 빼내고 있는 게 아닌가.
어제 가울의 명령으로 키리아의 방을 청소했던 켈베로스였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조공을 가져가는 거다.”
“무슨 소리야?”
녀석이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며 위엄을 보였다.
“인간, 넌 서열 최하위다. 최하위는 조공을 바쳐야 한다. 높은 서열한테.”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 가울이 서열 어쩌고 했었지.
“그래도 난 동의한 적 없는데? 너희가 멋대로 정한 거잖아. 침대 돌려놔.”
“크르르르…….”
“……!”
키리아가 거부하자 켈베로스가 곧바로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몸에서 검은 마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키리아가 긴장한 순간.
화르륵!
켈베로스가 입에서 검은 불꽃을 맹렬하게 토했다.
“꺄악!”
화들짝 놀란 키리아는 산불에 쫓기는 다람쥐처럼 문을 향해 뛰어갔지만, 불길에 막혀버렸다.
결국 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검은 사냥개가 불길을 뚫고 키리아를 향해 거리를 천천히 좁혀오고 있었다.
“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