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41)

성기사단장이었던 그의 변화를 사람들은 타락이라며 손가락질했다.

타락으로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마물들 때문이었다.

마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낙오된 마물들이, 공작이 있는 성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북부는 마물의 땅이 되고, 성기사단장은 마물들이 따르는 타락한 자로 불리게 되었다.

상인이 손을 휘휘 저으며 경고했다.

“제아무리 전쟁영웅이면 뭐해. 북부 전체가 마물들이 판치는 땅으로 변해버렸는데. 아가씨도 조심해요. 특히 숲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마물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요즘 마물들이 사람을 납치해간다고 하더라고.”

“헉.”

“겨우 돌아온 사람들은 절대 숲에 들어가지 말라며 아주 치를 떱디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다들 더 먼 마을로 떠나버려요.”

“…그럼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그럼요. 그날 이후로 안 보였다니까.”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망할 마물들!

공작령의 노다지로 득을 보려면 성에 식객으로라도 붙어 있어야 했고, 그러려면 공작을 만나야 했다.

‘리안아. 누나를 도와줘.’

동생의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며 키리아는 속으로 기합을 넣었다.

“화염구슬 열 개 주세요!”

“60골드요.”

“…생각해보니 필요 없어요.”

용병을 고용하느라 지출이 꽤 컸다.

키리아는 마을 어귀로 갔다.

앞서 고용한 용병들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º º º

“맙, 소, 사.”

키리아는 제 양 뺨을 감싸며 한 음절씩 감탄했다.

“세상에, 여기도 독초, 저기도 독초, 사방이 모두 독초라니!”

이곳은 북부 마물 공작의 성이 있다는 검은 숲의 초입.

처음 집을 나섰을 때의 패기가 사라진 키리아는 시시각각 말라가고 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장거리 여행의 피로와 마물의 땅에 오고야 말았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앞에 있는 수많은 독초를 발견하는 순간, 가뭄 속의 단비를 만난 꽃처럼 확 살아났다.

“북부에 널리고 널린 게 독초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남부에서는 돈을 주고 사야 했던 독초가 여기선 발에 채일 정도였다.

독초에 얽힌 미신이나 징크스도 북부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서 웬만한 잡초는 독초였으니까.

잡초에 일일이 불길한 의미를 부여해봤자 말하는 사람만 피곤해질 뿐이다.

실제로, 키리아가 고용한 북부의 용병들도 독초 채집에 정신이 없는 키리아를 전혀 꺼림칙하게 보지 않았다.

그저 남부에서 와서 별걸 다 수집하는 신기한 아가씨 정도로 보고 있었다.

“아가씨, 출발 안 할 거요?”

“아차, 미안해요. 이제 가요!”

처음 보는 풀을 잔뜩 채집한 키리아는 일행 곁으로 쪼르르 돌아왔다.

빵빵해진 키리아의 가방을 희한하게 쳐다보던 비쩍 마른 마법사 용병이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 마물 공작의 성에는 뭐 하러 가세요? 공작이 마물로 타락했다는 소식 못 들었어요?”

“아, 그건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왜…?”

키리아는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고 가방 속에서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마을 벽에 너덜거리던 걸 챙겨둔 거였다.

“이걸 봐서요.”

[공작성에서 주치의를 모십니다

약제사라면 남녀 누구나 가능한 일. 높은 급여. 배우면서 일하실 분.

신의 이름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보장합니다.]

“허….”

용병들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이런 수상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공고문 하나를 믿고 간다고?

“저기 아가씨….”

비쩍 마른 마법사 용병이 입을 떼자 칼잡이 용병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괜히 끼어들어서 돈줄 놓치지 마라. 그런 눈빛이었다.

결국 비쩍 마른 마법사 용병이 입을 다물자 칼잡이 용병이 대신 말했다.

“커흠. 어쨌든 우리 계약은 숲의 중간까지만 호위하는 거니까 말이오. 도착하면 바로 돌아갈 거요.”

“네, 알아요.”

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방긋 웃었다.

‘그래서 원작의 상황을 역이용해 보려고요.’

키리아도 이 공고문만 믿고 가는 건 아니었다.

북부에서도 특히 위험지역인 이 숲을 혼자서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상인이 말했듯이, 검은숲에 들어가면 마물들이 침입자 납치에 나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키리아는 원작의 설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물들이 공작을 위해 마나가 풍부한 인간을 채가고 있는 거구나.’

키리아가 일부러 마법사가 끼어 있는 용병과 계약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일반인보다 마법사가 훨씬 마나가 풍부할 테니까.

그리고 용병들은 동료가 납치당하면 끝까지 쫓아가 구해주기로 약속되어 있다.

‘그 김에 나도 같이 가는 거지.’

물론 마법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납치된 자들은 모두 안전하니까.

원작에서 그들의 행방을 묻는 릴리의 질문에 마물 공작이 직접 대답해주었다.

엑스트라 급이긴 해도 괜히 서브 남주가 아닌 거지. 이유 없는 살생 같은 건 하지 않아.

‘그나저나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좁은 길을 지나 넓게 트인 공간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끼우우—!

드디어 키리아가 기다리던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날렵한 드래곤처럼 생긴, 덩치가 황소의 두 배는 됨직한 마물이었다.

“와이번이다!”

용병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었다.

비쩍 마른 마법사도 일행의 뒤에서 스태프를 세웠다.

용병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던 와이번이 하강하며 마법사를 향해 갈고리 같은 발을 뻗었다.

낚아채려는 게 분명했다.

‘역시!’

멀찍이 떨어져 있던 키리아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마법사가 안전할 거라고 믿고 있긴 해도 와이번을 실제로 보니 괜히 긴장이 됐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마법사를 꼭 구해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끼우—?

갑자기 콧구멍을 벌름거린 와이번이 키리아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키리아의 빵빵한 가방이었다.

그러더니….

휘잉!

순식간에 마법사 대신 키리아를 낚아챘다.

“…에엑!?”

당황한 키리아는 공중에서 버둥댔다.

“살려줘요!”

하지만 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멀어졌다. 용병들의 모습이 금세 보이지 않았다.

키리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난 마법사도 아닌데 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던 키리아는 차츰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와이번을 보고 잔뜩 긴장했던 순간보다 지금이 오히려 덜 무서웠다.

게다가.

“안 걸어도 되니까 무척 편하네….”

모양새는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KTX 이상이 아닌가.

안 그래도 방구석에서 연구만 하느라 체력이 쓰레기인 키리아는 금세 이 편리함에 적응했다.

하지만 곧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윽, 잠깐만, 아파.”

제 옆구리를 본 키리아는 헉 소리를 냈다.

“피투성이잖아!?”

원인은 와이번의 발톱이었다.

잘못 낚아 채였는지 와이번의 발톱이 옆구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러다 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과다출혈로 큰일 나겠어!’

제 상태를 깨닫고 나니 어쩐지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당장 내려야 해. 야, 내려줘. 정지!”

그러나 와이번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 어떡하지?’

발밑은 숲의 우듬지가 보일 정도로 까마득했다.

섣불리 떨어졌다간 이번 생도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어!’

병약 미소년 동생을 두고, 북부에 있을 미지의 노다지를 두고 죽는 건 너무 손해잖아.

그렇다고 무작정 행동할 수는 없고….

‘안전하게 착륙할 방법을 찾아야해.’

옆구리 통증으로 인상을 구긴 채 주변을 살펴보던 키리아는 와이번의 발에서 뜻밖의 자상을 발견했다.

“용병이 상처를 냈었나 보네?”

작지만 예리하게 베였는지 비늘과 가죽의 갈라진 틈으로 붉은 속살이 보였다.

그 상처를 보자마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키리아는 재빨리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독초 꾸러미를 뒤졌다.

“분명 챙겨왔는데. 아, 여깄다.”

근육 통증을 유발하는 둘리트 꽃잎과 저림 성분이 있는 넘피스 풀.

이 두 독초는 그다지 치명적인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함께 사용하면 마비 증세를 일으킨다.

오래 무릎을 꿇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다리가 찌릿해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듯이 말이다.

서서히 저림과 마비가 올라오면, 와이번도 쉬기 위해 착륙할 게 틀림없다.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의 효과라서 마물에게 얼마나 통할지 미지수긴 한데.’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약초용 절구를 쓸 수 없으니 대신 입안에 독초를 넣고 씹었다.

곧 입안이 얼얼하고 감각이 둔해졌지만 끝까지 질겅질겅 씹었다.

그렇게 잘 뭉개진 독초를 손에 뱉은 후 와이번의 상처에 꾹꾹 쑤셔 넣었다.

“이거나 머거!”

혀가 마비되어 발음이 이상하게 나왔다. 입술까지 부은 느낌이었다.

‘설마 소용없지는 않겠지?’

키리아는 초조하게 약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슬슬 불안해질 때쯤이었다.

…끼우욱?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와이번이 비틀거렸다. 움직임도 확연히 둔해졌다.

키리아는 승리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됴아! (좋아!)”

예상대로 와이번이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끼욱! 끼우우우우!

어라. 효과가 지나치게 좋은데?

아래로 내려오던 와이번이 갑자기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댔다. 제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당연히 발로 잡고 있던 키리아에게도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끼우!

와이번이 몸을 뒤집음과 동시에 키리아는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키리아의 비명이 허공에 긴 꼬리를 남겼다.

귓가로 바람이 무섭게 지나갔고, 눈 아래로 고성의 지붕과 앞마당이 보였다.

공작성에 죽어서 도착할 판이었다.

“사려져어어!(살려줘!)”

키리아가 공포에 질려 눈을 꽉 감는 순간이었다.

솨아아—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키리아를 부드럽게 감쌌다.

“…어?”

보이지 않는 바람의 막이 키리아를 두둥실 띄우더니 추락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지면에서 한 뼘 높이까지 내려왔을 때, 바람의 막이 비눗방울처럼 퐁 터졌다.

“아얏.”

키리아는 쿵, 엉덩방아를 찧었다.

옆에는 키리아보다 먼저 추락한 와이번이 낑낑 신음하고 있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혹시 마법…?”

누가 도와줬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공작성의 웅장한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성의 이층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키리아가 쳐다보자 그 인영이 휙 커튼을 쳐버렸다.

“혹시 저 사람이 날 구해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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