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치만 거긴 마물의 땅인데…. 밤마다 마물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나.”
“응?”
“파랑새가 또 왔어.”
“윽.”
창밖을 가리키며 신기해하는 동생과 달리 키리아는 뭐라도 씹은 얼굴이었다.
마지못해 창문을 열자 푸른 깃털의 새가 방 안을 포르르 한 바퀴 선회하더니 키리아의 팔에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꾸륵꾸륵 목을 꿀렁이더니, 두툼한 편지봉투를 퉤 뱉었다.
“아하핫.”
리안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편지를 집었다.
편지에는 새의 위액이나 침 같은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새는 계약한 상대가 어디에 있든지 편지를 전달해주는 마도구였다.
매우 비싸서 소유한 귀족들도 드물었다.
“메데이아 님에게… 숲지기 드림. 또 이 사람이네.”
리안이 편지봉투 겉면을 읽으며 키리아에게 건네주었다.
“쉿. 리안, 그 이름은 비밀이라고 했지?”
키리아가 입술에 검지를 대자 리안도 아차 하더니 검지를 댔다.
편지봉투를 넘겨받은 키리아는 봉투를 열자마자 질색했다.
“으악, 이번엔 6장이나 썼어….”
2주에 한 번씩 보내오는 편지는 평균 5장이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많은데 왜 이 사람까지!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키리아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첫머리부터 어김없는 단정한 글씨체였다.
[메데이아 님께.
(전략)…혹시 밤잠을 설치신 적이 있으십니까?
낮에 있었던 안 좋은 기억이나, 앞일에 대한 불안, 혹은 밤중에 들려오는 불쾌한 동물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말입니다. 사슴이나 토끼 같은.
제가 관리하는 숲의 동물들은 남부보다 더 흉포해서, 밤의 운치를 전부 깨버리고는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후략)….]
“…….”
사슴과 토끼가 얼마나 불쾌하고 흉포하다는 건지 감도 못 잡겠다.
‘이번엔 답장 안 해야지.’
편지 두 통을 받으면 답장 한 통.
이게 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런데 키리아가 성가셔 죽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편지를 읽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 숲지기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그래?”
“이 사람은 말이지….”
다 읽은 편지를 접으며 키리아는 적당한 말을 골랐다.
관심이 필요하다는 듯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을 뭐라고 하더라.
그렇지.
“관종…이랄까?”
“관종?”
“응.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으려고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이 사람이 누나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거야?”
“99.9퍼센트.”
“…….”
갑자기 리안이 숲지기의 편지를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찢어버리자, 누나.”
“왜?”
“누나를 귀찮게 하니까.”
“아냐, 그건 싫어. 그래도 내 팬의 편지인데.”
숲지기는 메데이아의 1호 팬이었다.
지금이야 귀찮은 존재지만, 힘들 때 그가 보낸 편지 덕분에 얼마나 기운을 얻었는지 모른다.
독초 전문가 메데이아.
키리아는 독초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자신의 실력을 숨겼다.
대신 부캐 메데이아로 마음껏 활동했다.
동생을 돕고 싶다는 말에 말없이 일체의 학비와 연구비를 지원해 준 백작님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독초 연구하는 걸 들켰다면 난 지금쯤 불행한 어린 신부거나 수녀가 됐을 거야.’
그만큼 독초를 연구하는 여자는 환영받는 신붓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제국에서 독초는 안 좋은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독초도 약이 될 수 있어!’
리안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키리아는 메데이아라는 이름으로 독초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칼럼 형식으로 꾸준히 올렸다.
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잡지에 말이다.
그러면 다음 호에 실리는 ‘독자의 생각’ 코너나 출판사를 통해 도착한 편지에서 엄청난 험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리아의 전생 용어로는 악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데이아라는 부캐를 내세운 덕분에 정신적인 충격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잡지사에서는 ‘덕분에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별대우를 해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러던 중 한 통의 정중한 편지가 키리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3장 분량의 그 편지는, 메데이아의 연구가 얼마나 가치 있으며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말미에는 이런 추신도 있었다.
[당신을 이해하기도 전에 비난부터 하는 이들에게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의 연구는 엄청난 가치가 있어요.
부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끝까지 당신의 편이 되겠습니다.
당신을 존경하는 숲지기 드림]
다른 말보다 마지막에 덧붙인 두 문장을 보고 키리아는 저도 모르게 훌쩍였다.
자신도 몰랐던,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키리아는 정성 들여 답장을 했고, 거기에 또 답장이 왔다.
편지 교류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도 한두 번이다.
편지도 자주 보내면서 보낼 때마다 5장은 기본이니, ‘연구, 밥, 화장실, 연구’가 하루의 반복인 키리아에게는 답장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더 이상 쓸 말이 없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3장을 채워서 답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절로 용건만 간단히 하는 상당히 쿨한 메데이아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숲지기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짧게라도 답장을 해주면 무척 고마워했다.
‘어지간히 친구가 없나 봐….’
그렇게 암묵적인 규칙이 생기고 교류는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응?”
“숲지기라는 사람, 예전부터 남부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럼 북부에 사는 거야?”
“음… 아마도?”
북부.
마물 공작이 지배하는 땅.
신체 일부가 마물로 타락했으나, 어떤 약도 신관도 그의 신체를 되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유독 북부에 들끓는 마물들과 더불어 그의 이름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상한 걸 많이 알고 있구나.”
“무슨 소리야?”
리안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풀을 보여주었다.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던데?”
“어?”
검은 꽃잎에 보라색 반점이 찍힌 작은 꽃이었다.
편지를 다시 보니, 앞장을 꽉 채우는 바람에 뒷장으로 밀린 추신이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꽃입니다. 화려한 모양새가 독초 같기에, 혹시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여 동봉해 보냅니다. 보존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시들지 않았을 겁니다.]
꽃 한 송이에 보존 마법을?
‘숲지기라는 직업이 벌이가 그렇게 좋은가?’
그럴 리가. 숲지기가 취미인 귀족이거나 졸부겠지.
리안이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슨 꽃이야?”
“으으음, 그게….”
인정하기 싫었지만….
“처음 보는 거야.”
메데이아의 자존심에 조금 금이 갔다.
누나 입에서 그런 말을 처음 듣는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에. 북부에는 신기한 게 많나보네.”
‘북부….’
키리아는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계의 입구가 닫힌 뒤로, 북부에는 마물들과 함께 새로운 식물들도 나타났다고 들었다.
대부분이 독초여서 쓸모는 없다고.
‘역시 독초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북부로 가야 해. 하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리안의 상태가 악화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키리아도 마물이 무서웠다.
검이나 마법을 쓸 줄 아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북부에 가기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리안 때문이었다.
메두사 병은 잠잠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석화가 빠르게 진행되고는 했다.
자신이 없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게다가 지금은 백작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금전거래에 있어서만큼은 치사할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니, 이번엔 정말 1골드까지 받아낼 작정인 것 같았다.
‘좋은 수가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무심코 꽃의 향기를 맡는 순간.
풀썩.
키리아는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º º º
키리아는 꿈을 꿨다.
꿈속의 자신은 결국 자작 부인이 되어 있었다.
리안을 방문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위해 북부를 방문한 사이에 나온 것이었다.
척박했던 북부에서 값비싼 자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을 했더니 리안이 침대에 앉아 가냘프게 웃었다. 석화는 어느새 심장 부근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나도 북부에 가보고 싶었는데. 기사가 되어서….”
“갈 수 있을 거야. 다음에 갈 때는 같이 가자고 해볼게. 그러니까 약 먹자. 새로 만들어 본 거야.”
키리아가 가방에서 약을 꺼내서 다리 리안을 바라보는 순간,
“꺄악! 리안!”
리안의 얼굴이 딱딱한 돌로 변해있었다.
석화가 심장을 멈추게 하자, 온몸 전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로 변해버린 것이다.
“안 돼, 안 돼!”
키리아는 두 팔을 허우적대며 울부짖었다.
“리안! 제발! 안 돼!”
º º º
“누나!”
“으허어엉, 리안!”
“누나! 키리아 누나!”
헉.
리안의 목소리에 키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리안의 품에 안겨 있는 게 아닌가.
“누나. 갑자기 쓰러지더니 막 울었어. 무슨 일이야?”
“아니… 어, 아무것도….”
키리아는 얼른 눈물을 닦으며 동생을 안심시켰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 짧은 꿈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예지몽이든 뭐든, 꿈에서 본 광경은 키리아가 절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손 안의 꽃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능하면 피하려 했지만, 마침내 결심이 섰다.
º º º
벌컥!
백작의 집무실을 누군가가 당당하게 열어젖혔다.
쳐들어온 이는 키리아였다.
“결정했어요.”
“음?”
두꺼비 자작에게 혼인 편지를 쓰고 있던 백작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래, 말해 보거라.”
“4억 골드 갚겠습니다.”
“…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백작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또 시간을 벌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재고의 여지가 없다.”
“1년 주세요.”
“…방금 한 말 못 들었느냐?”
어이없어하는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키리아는 백작이 앉아 있는 책상을 두 손으로 내려쳤다.
쾅!
갑작스러운 박력에 백작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
기분 탓인지 키리아의 표정도 평소와 다르게 좀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저한테 계획이 있어요. 1년 주시면 4억 골드 이상 벌어다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