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83화 (83/84)

외전 6.

“아, 은재야.”

강윤은 와락 은재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자신의 품 안에 바스러지게 그녀를 안고서 격한 감동을 전했다.

“정말 고마워.”

“내가 뭘. 열심히 한 건 자기면서…….”

짐짓 새침하게 응수한 은재가 쿡쿡거리면서, 강윤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고서 자신도 그를 안았다.

“나도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은재야.”

“도강윤, 나도 사랑해.”

그의 가슴팍이 불끈불끈 뛰었다. 가쁘게 뛰는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은재의 뱃속 아기에게도 전해졌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해.”

은재는 행복감에 젖으며 눈을 감았다.

더없이 넓고 따뜻한 그의 가슴팍에 포근히 안겼다.

***

따뜻한 봄볕이 엄마의 손결처럼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살랑살랑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온화한 바람에 눈꺼풀도 노곤하게 감겼다.

은재는 읽던 책을 가슴에 엎어놓고서 눈을 감았다. 볼록한 배가 마치 물방울을 튕기듯 뽀글뽀글한 느낌으로 움직였다.

이 녀석.

지금은 못 놀아.

엄마가 너무 졸려.

은재는 입술을 빙그르르 늘리며 배에다 손바닥을 대었다. 잠의 무게는 견디지 못하면서도, 달래듯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보듬었다.

그리고 서서히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한편.

주방에서는.

“앗! 또.”

세모나고 예쁘게 솟았던 토끼 귀 한쪽이 잘려 나갔다. 성공 직전에 실수하여, 토끼 한 마리를 잃은 강윤은 아쉬움에 몸서리쳤다.

“하.”

그러곤 사방에 널브러진 토끼 사체(?)를 내려다봤다.

귀 한쪽이 없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몸이 반으로 쪼개지고, 양쪽 귀가 찢어지고… 이리도 잔혹할 수가 없다.

동영상 속 유튜버는 뚝딱뚝딱 잘도 만드는데….

이거야 원.

웬만한 프로젝트보다 어렵다.

“두 마리라도 성공했으니.”

강윤은 동영상을 정지했다. 그리고 완성작인 토끼 모양 사과 두 개를 은재가 좋아하는 귀여운 접시에 담았다.

“응?”

하지만 야외 테라스 베드에서 태교책을 읽던 은재는 그사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평화로운 주말의 오수에 취한 아내를 바라보는 강윤의 입매가 길게 휘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가만가만 다가가서 접시는 테이블에 놓고서, 그녀의 가슴에 놓인 책도 옮겼다.

그리고 아내를 조심히 안아 올렸다.

잠결에 남편의 안정적인 기운을 감지한 은재가 자연스레 목에다 팔을 감으며 안겼다.

빙그레한 미소를 머금은 강윤은 침실로 이동했다. 푹신한 침대에 아내를 내려놓는데, 은재가 팔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주며 그를 끌어당겼다.

“깼어?”

“…같이 자.”

웅얼웅얼한 말소리에 그는 피식 웃었다.

“그래.”

아내의 명령이라면 당연지사 들어야 한다.

그러니 잠이 오지 않더라도, 무조건 같이 자야 하는 법.

강윤은 은재의 옆에 누워 머리를 제 팔뚝에 베게 하고서 자신의 넓은 품으로 꼭 끌어안았다.

은재의 등이 잘 맞는 퍼즐 조각처럼 그의 가슴팍에 완벽히 밀착되었다. 그러자 그는 더더욱 빈틈없이 자신의 신체를 그녀에게 맞췄다.

“은재야.”

“…음.”

“많이 졸려?”

슬금슬금, 나쁜 손이 은재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계속 잘 거야?”

“…계속 자면?”

“자야지.”

크고 다정한 손으로 아기를 품은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입술론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근데….”

이어 따뜻한 입술이 목덜미를 머금었다. 쪽쪽,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는 그에게 아주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나는 별로 안 졸려.”

그의 나직한 음성에 애원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하여간.’

침대에 눕기만 하면 야한 짐승 본능이 깨어나는 남자다.

특히 임신이 안정기에 들어선 후부턴 몸이 달아 안쓰러울 정도다.

“응?”

“잘 거야.”

은재는 다소 냉정하게 거부했다.

자신의 애원이 먹히지 않자, 손길이 방황했다.

‘쿡.’

은재는 웃음이 나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진즉 잠에서 깼지만, 얄궂은 마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알았어, 자자.”

실룩이는 은재의 입술을 눈치채지 못한 강윤이 체념했다. 그녀의 몸을 다정히 끌어안으며, 두 눈을 감았다.

이번엔 은재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반응에 은재의 잇새에서 웃음소리가 새었다.

“픽.”

“너무 좋아하는데?”

“당연히 좋지.”

강윤은 자신의 몸을 타는 손놀림에 한껏 기분이 상승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갈증으로 은재가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강윤이 은재의 입술을 머금으며 목마름을 해소했다.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으며, 애정 가득한 키스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임신하여 배가 산등성이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여자의 몸은 그 어느 여체보다 고귀하고 경이로웠다.

그들의 교감은 서서히, 다정하게 이뤄졌다. 임신하고 안정기에 들어선 후로 그는 늘 최선의 노력으로 아이도 은재도 다치지 않는 선을 지켰다.

아내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솜사탕 다루듯 부드러웠고, 항상 아기를 품은 배를 정성스럽고 사랑스럽게 보듬었다.

섬세한 애무가 은재는 짜릿하게 좋았다.

그의 사랑하는 방식은 언제나 최상의 배려를 해주었고, 행복감을 만끽하게 해줬다.

“하.”

“아프진 않아?”

“응. 이 느낌이 너무 좋아. 더 부드럽게 해줘.”

동시에 야릇한 쾌감을 선사하여 은재의 입속에서 자연스러운 신음이 흘렀다. 강윤의 따스한 체온이 자잘한 세포들조차 달뜨게 했다.

은재는 팔을 올려, 제 목덜미에 파고드는 그의 머리를 감았다. 은재의 아랫배를 지탱하듯 큰 손으로 감싼 강윤이 그녀를 잔잔히 이끌었다.

“도강윤.”

“사랑해.”

강윤과 은재의 주말 오후는 여느 날처럼 뜨거웠다.

“사랑해, 나의 아내.”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고 서로에게 향한 사랑을 숨김없이 나누며,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서은재.”

***

“야! 너무 가증스러운 미소 아니냐?”

“닥쳐라. 순결한 신부한테.”

보통의 신부대기실과 달리 조금은 험악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사람은 유일하게 신랑뿐이었다.

“제부!”

“예?”

“어쩌다 김민서랑 평생을 언약하신대요? 혹시 약점 잡히셨어요?”

“민서가 덮친 거죠?”

“제부, 혹시 임신하셨어요? 깔깔깔.”

“아, 아니에요.”

아!

우리 불쌍한 김민서 신랑님.

“야! 누가 네 제부야! 형부라고 불러.”

“생일은 내가 너보다 한 달 더 빠르거든. 얼굴은 네가 10년은 늙어 보이긴 한다만.”

“이세라, 너 오늘 작정했지? 어!”

“당연하지. 오늘 같은 날을 내가 학수고대했지.”

고결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민서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성질대로 달려들지 못하는 신부에게 한껏 신난 세라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민서의 결혼식이었다.

비혼주의자라며, 맞선남과의 밀고 당기기를 한참을 하더니, 그의 열렬한 구애에 결국 두 손 들고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민서였다.

그러곤 어젯밤까지도 은재에게 전화하여,

“나 잘하는 짓일까?”

라고 하던 민서건만.

오늘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였다.

“은재야! 이세라 데리고 가! 내가 식장에서 개싸움 하게 생겼어!”

“덤벼, 덤벼.”

거친 언사와 달리 우락부락하게 인상 한 번 쓰지 않았고, 입술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은재야! 쟤 좀 꺼지라고 해!”

“얘들아, 언행에 신중하길 바란다. 나 태교 중이다.”

은재는 만삭인 배를 안정적으로 감싸고서 자못 고고하게 표명했다.

일순 신부대기실에서 왁자지껄한 친구들의 관심이 그녀의 배로 몰려왔다.

“아! 맞다. 우리 고귀한 도강윤 2세가 있었지.”

“우리 도강윤 주니어, 우리 이모들이 몹시도 사랑한단다.”

“얜 또 얼마나 잘생겼을 거야? 초음파 사진부터 빛이 나던데.”

“우리 아드님, 곱게 태어나 주세요.”

친구들의 눈치는 빤했다.

도강윤 똑 닮은 도강윤 주니어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은재는 짐짓 거들먹거리는 기세로 입을 열었다.

“누가 아들이래?”

“백 퍼센트 아들이지. 도성만 회장님께서 태몽으로 용꿈 꾸셨다며?”

“음… 태몽은 그랬지. 근데 용이라고 다 아들은 아닌가 봐.”

33주 차인 어제 병원 진료 중에 드디어 아기의 성별을 알게 된 은재였다.

주치의가 어여쁜 드레스를 준비하라는 거로 보아, 확실히 딸이었다.

강윤은 자신이 원하던 딸이자,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아기 아빠가 된 이래, 호르몬 변화가 있는지 울보가 된 도강윤이었다.

“그럼 딸이야?”

“응. 예쁜 딸이래.”

“아…….”

“너 닮으면 예쁘겠다.”

“뭐, 도강윤 닮아도 예쁘겠지.”

돌연 실망 어린 기색으로 바뀐 친구들이 관심도가 극심하게 시들해졌다.

확연히 다른 태세가 얄미워서 친구들을 흘겨보는데, 뜻밖의 사람이 신부대기실로 들어섰다.

“안녕.”

“어머! 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가자, 나가.’

새로운 등장인물이 거북하거나 불편한 친구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켰다.

“결혼 축하해, 김민서.”

신부인 민서에게 다가와 차분한 인사를 건네는 이는 임현서였다.

“어, 일단은 고마워요.”

어리둥절한 민서가 화답은 하고서 은재를 쳐다봤다. 만삭인 은재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여유롭게 물었다.

“뉴욕에서 언제 왔어요?”

“며칠 됐어.”

“언니가 제 결혼식에 올 줄이야. 해외토픽감이에요.”

“머리끄덩이 잡은 사이끼리 왜 이래. 경사인 만큼 미운 정으로라도 축하해 줘야지.”

민서가 혼잣말처럼 구시렁대자, 현서가 너스레를 떨었다. 매번 예민하게 굴던 그녀와 사뭇 달랐다. 표정도 한결 평온해져 있었다.

“부조도 했어요?”

“내 수준만큼.”

“이야, 기대해도 되겠네.”

“당연하지. 신혼살림에 보태 써.”

현서가 도도하게 턱을 곧추세우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찰랑 넘겼다.

대체 얼마만큼의 거액을 넣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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