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완결)
은재뿐만 아니라 강윤도 급했다.
장기간의 가뭄이었던 그들이었다.
꽤 오랫동안 서로에게 경계를 두고 인내했기에 서로의 체온이 닿자마자, 물밀듯이 감동이 덮쳤다.
그 감격을 잃고 싶지 않다는 듯 강윤은 움직이지 않은 채 은재를 바스러지게 안았다.
“하.”
“아, 은재야.”
그리고 그간의 그리움을 탄식처럼 표출하며 그녀를 불렀다.
“응.”
강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은재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더없이 두 사람은 함께이고 싶었고, 더없이 서로가 소중한 두 사람이었다.
강윤과 은재는 누구라 할 것이 없이 서로를 깊게 안았으며, 단단히 그러쥐었다.
“네가 너무 간절해.”
강윤의 입술이 은재의 관자놀이에 머물렀다.
“네가 사라질까 무서울 정도로.”
허스키하게 갈라진 숨소리를 쏟아내며 그는 절절하게 고백했다.
“아무 데도 가지 마.”
“음…… 안 가.”
은재는 다짐했다.
오직 자신뿐이 모르는 한 남자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서 대답했다.
“맹세코?”
“맹세코.”
강윤은 정확하게 확인했다. 은재는 그의 목덜미에 매달린 채 거듭 끄덕였다.
그의 입술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자신을 그녀에게 모조리 내비치고 싶다는 듯 움직였다.
“하.”
함께.
같이.
했다.
오직 두 사람만의 밀어를 나눴다.
그는 은재를 거친 환희의 나락으로 이끌었다.
열성적인 그가 일깨워지는 쾌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전신의 오감이 몸부림을 쳐댔다.
“아, 도강윤.”
흥분으로 열이 올랐고, 자연스럽게 야릇한 교성이 새었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자신의 생애에 이토록 온몸을 다하여 사랑한 순간이 있었던가.
“사랑해.”
이토록 솔직하게 열의를 다한 적이 있었다.
“사랑해, 도강윤.”
“서은재.”
강윤 또한 호응하듯 폭주했다.
“내가 더 사랑해.”
어떻게 이 남자 없는 삶을 살 작정을 했을까.
이젠, 이 남자 없인 살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이 남자뿐이다.
맹렬한 기세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은재는 가까스로 감각을 일깨우며, 그의 풍성한 머리카락 속에다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신호에 따라 강윤이 턱을 당기며, 달뜬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 부탁이 있어.”
“말해.”
“아기 갖고 싶어.”
훅, 하고 강윤이 들숨을 들이마셨다.
“우리 아기.”
은재의 갈망에 강윤의 흑막 같은 눈동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래, 다시는 잃지 말자.”
강윤이 토하듯 읊조리더니, 은재의 뒤통수를 감싸며 짙은 키스를 퍼부었다.
약속의 키스.
약속의 결합.
두 사람은 온전히 서로를 품으며 함께할 미래를 꿈꿨다.
한결같은 열망이었고, 멈추지 않을 사랑이었다.
무엇 하나 허튼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정성스럽고 소중했다.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은 희열도, 숨을 고를 새 없는 격렬함도 오직 두 사람이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최상의 순간이 찾아왔다.
은재는 휘몰아치는 감동으로 두 눈을 꼭 감고 말았다. 강윤도 그녀의 심장에 제 심장을 맞대며 터질 듯이 뛰어대는 박동을 전했다.
그는 뜨거웠다.
신경세포까지 움찔거릴 정도로 뜨거워서, 몸속의 혈액마저 불타 버릴 것 같았다.
그를 온전히 흡수하며, 은재는 입술로 그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가시지 않은 열기에 보태어, 서로의 뜨거운 체온이 식지 않도록 꼭 끌어안았다.
오래도록.
“음…….”
가만히 숨을 고르던 강윤이 은재의 관자놀이와 목덜미를 입술로 입맞춤했다.
“훗.”
은재는 그의 자잘한 입맞춤이 한없이 좋았다.
빙그레 웃는 그녀에게 꼼꼼히 키스한 강윤은 땀과 땀이 섞인 몸을 떼지 않은 채 침대에 모로 누웠다.
충만한 기분은 곧 나른함으로 이어졌다. 은재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몽롱한 눈꺼풀을 닫았다.
반면 강윤은 생생했다. 은재의 등에 가슴팍을 붙인 채 매끄러운 몸을 보듬으며, 그가 농염한 입술을 귓불에다 붙였다.
“한 번 더 할까?”
“응?”
매번 신기한 노릇이다.
엄청 기세로 쏟아부었으면서 바로 다음이 가능한가? 남자는 다 이러나?
“하루빨리 아기를 만나려면.”
무겁게 내려앉는 눈을 뜨지 못하자, 그가 은재의 배꼽 주위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달랬다.
“자나 깨나 시도를 해야지.”
아.
못 말리는 남자.
은재는 샐쭉하게 흘겨보았다.
“응?”
강윤이 아양 떨 듯 눈썹을 들썩이며, 어젯밤 병실에서의 은밀한 자세처럼 골반의 굴곡에다 자신을 붙였다.
“하.”
은재는 기막혀서 실소했다.
그녀의 옅은 웃음소리를 강윤이 잘못 받아들였다.
“앗!”
화들짝 놀란 은재는 잠이 확 달아났다.
“허락한 적 없어!”
“이미 늦었어.”
파들거리며 저항하자, 강윤이 미간을 바락 모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선 은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허리를 와락 붙잡았다.
이 욕심 많은 남자.
그렇게 해놨으면서 욕구가 얼마나 극렬한지.
왜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듯 다시 시작하냐고!
마치 처음처럼.
‘아.’
은재는 일시적으로 후회했다.
‘내 죄야, 내가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줬으니.’
바깥세상은 아직 훤한 오후였다.
해가 저물지 않은 도시는 저마다 일상의 시간표를 바쁘게 채우고 있을 것이다.
은재와 강윤 또한 바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직 둘만이 나눌 수 있는 밀어는 지극히 감미로웠다.
***
은재는 구청을 나서며 거듭 혼인신고 접수증을 들여다봤다.
첫 번째 혼인신고는 강윤이 혼자 했었는데, 둘이 함께 신고를 마치니, 새삼스러운 감정이 용솟음쳤다.
“왜 자꾸 봐?”
“대략 일주일이면 우린 다시 법적으로도 부부가 되네?”
“응.”
“기분이 묘해.”
“도로 유부녀 되어서 서운해?”
“아니, 그건 좋아.”
“그럼, 어느 점이 묘해?”
강윤이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은근한 기대감을 품은 눈빛을 내리깔았다. 훤히 내보이는 남자의 속내에 은재는 입술을 말아 올렸다.
“도강윤의 아내라는 점이.”
“합격.”
강윤이 능청스레 찡긋하며 손을 내밀었다.
은재는 싱그레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따스한 체온의 스미는 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말고, 은재는 우뚝 멈췄다.
“참.”
핸드폰 카메라로 혼인신고 접수증을 찍었다. 이어 사진을 첨부한 메시지를 전송했다.
―할아버지, 혼인신고 마쳤어요.
―고맙다, 은재야. 우리 강윤이 잘 부탁한다.
―네.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 답장은 은재의 심장에 온화함을 불어넣었다. 밀착하듯이 붙은 강윤도 메시지를 읽고는 산뜻하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인증사진 보내랬어?”
“아까 전화하셔서 혼인 신고하면 보고하라고 하셨어. 언제 말씀드렸어?”
“너 퇴원하기 전에. 무척 기뻐하셨어. 백 년은 너끈히 사실 듯하대.”
“그러셨으면 좋겠다.”
제법 쌀쌀한 기운을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강윤이 팔을 크게 움직여, 은재의 등을 아늑하게 끌어안았다. 다정다감한 남자로 인해 은재의 눈매가 반달로 휘었다.
“근데, 도형호 회장님과 민경애 여사님께서 어떻게 증인 사인을 하셨어?”
“거북해?”
“아니, 놀라울 따름.”
“아버지께서 본인의 권한을 되찾고 싶어 하셨어. 할아버지는 좀 서운해하셨지만.”
“할아버지는 그러셨겠네. 우리가 합치는 데 큰 공을 세우셨잖아. 중환자 연기까지 하시면서. 어쩜 연기를 그리 잘하시는지.”
“왠지 말에 가시가 있네?”
“두 남자가 작당하고 날 속였으니까. 아주 사기꾼들이야.”
샐쭉하게 삐죽이자, 강윤이 머쓱한지 헛기침을 하며 은재를 바락 옭아맸다.
“덕분에 서은재를 잡았잖아.”
“피.”
돌이켜보면, 속인 일에 고마워해야 한다.
그들의 계략이 없었다면, 심장 깊숙이 감춰뒀던 미련을 감히 꺼내지조차 못했을 테니.
“내 거로 만들었고.”
강윤의 보드라운 입술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은재는 부러 심술궂은 표정을 짓다가 까치발로 섰다. 그대로 쪽, 그의 입술에 짤막하게 입 맞췄다.
“고마워.”
발꿈치를 내리며 말했다.
“날 끝까지 놓지 않아 줘서.”
“절대 놓을 수 없는 서은재지.”
그의 매끄러운 뺨도 손바닥으로 누르며, 그윽한 망막을 들여다봤다. 흑막 같은 동공엔 오롯이 은재만이 비쳐 있었다.
강윤이 은재의 허리를 당겨서 보드랍게 키스했다. 짧고 달콤한 키스를 끝내고, 그가 세단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갈까?”
“응.”
은재는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조수석에 오르고, 운전석으로 돌아온 남자한테 애틋한 시선을 뒀다.
도강윤.
그거 모르지?
이제는 내가 더 도강윤을 원한다는 걸.
아주 간절히.
‘훗.’
은재는 속마음을 입에 담진 않았다.
그랬다간, 목적지인 강원도로 가기도 전에 인근 호텔에 들르자고 성화일 테니 말이다.
이 지칠 줄 모르는 남자와 한평생을 약속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응?”
운전을 시작하며, 시선을 느낀 강윤이 넘겨다봤다.
은재는 말없이 눈웃음을 보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젠 놓지 않을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