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75화 (75/84)

75.

은재는 자신의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관능적으로 실룩이는 남자의 뺨에 입술을 붙이고, 그의 턱으로, 그의 섹시한 목선을 따라 키스하며 잇자국을 냈다.

강윤이 못 견디겠다는 거친 신음을 토하며, 목을 잡았던 손을 놓고, 은재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그녀의 앙큼한 도발을 막았다.

은재를 침대에 드러눕힌 그가 환자복을 확 들쳤다. 그러고서 뜨거운 입술로 단박에 점령했다.

어쩜.

이 남자는 매 순간 이렇게 열정적인지.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하.”

은재는 탄식 같은 신음성을 터트리며 몸체를 뒤틀었다.

끼익―

철제 침대가 다소 격한 움직임에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동시에 병동 복도를 거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

“흠!”

강윤의 입술이 멈췄고, 뒤틀던 은재의 몸짓이 정지했다.

현실을 망각하고, 오롯이 서로를 원하고, 서로를 탐하던 두 사람이 그제야 병원임을 자각했다.

‘간호사 들어오면 어떡해?’

‘쉿.’

어스름한 기류 속에서 강윤과 은재는 눈을 마주 보며 숨죽였다.

강윤은 기밀하고 조용히 은재의 환자복을 내렸고, 행여 병실의 문이 열릴 것을 대비하여, 자신이 뛰어내릴 위치와 취할 자세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그들의 병실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졌다.

곧 VIP 병동에 고요가 찾아들었다.

“…….”

강윤과 은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낯부끄러움과 묘한 달뜸을 교환했다.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꿈틀.

심히 마땅찮은 장소에 대한 불만으로 강윤의 미간이 모였다. 잔뜩 인상을 쓴 그가 자세를 바꿔 누웠다. 은재의 뒷등을 제 가슴팍으로 깊숙하게 끌어당겨 안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냥 이러고 자자.”

“응.”

“병원은 공공장소야.”

“응.”

아쉬운 강윤이 주입하듯 읊조렸고, 아쉬운 은재는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했다.

어두운 병실 안.

병실 침대는 성인 남녀가 눕기엔 턱없이 작았고, 닿은 몸체로 전해지는 그의 따스한 체온과 그의 향긋한 체취는 야릇한 열기를 조성했다.

은재는 오롯이 그를 의식하는 감각에 그와 밀착하는 틈새를 좁히도록 자신의 몸을 웅크렸다.

“음.”

뒷덜미 너머에서 강윤의 탄식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외려 그의 반응은 은재의 장난기를 도발했다.

일부러 ‘당신과 합체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제 몸으로 대범하게 표현했다.

“하, 가만히 있어.”

자신을 자극하는 그녀의 장난기에 강윤은 동물처럼 낮게 그르렁거렸다.

“어허.”

화난 듯 허스키하게 갈라진 음성엔 짙은 갈망이 담겨 있었다.

미치게 만들어볼까.

심술이 일었다.

“도강윤.”

얄궂은 몸놀림을 하며, 장난스럽게 웅얼거렸다.

“살짝?”

“응?”

“살짝은? 응?”

그녀는 채근하듯 비비적거렸다.

환자복의 얇은 옷감을 통해서도 서로의 체온이 뜨끈뜨끈하게 전해졌다.

“날 죽일 셈이야?”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강윤으로선 은재의 도발은 시련이나 다름없었다.

“쿡쿡.”

“혼나려고.”

강윤이 은재의 콧잔등을 꼬집듯 잡았다. 그러고선 그녀의 뺨을 비틀며 상체를 들었다. 강윤의 입술이 귓불 너머로 넘어왔다.

그의 입술이 은재의 입을 덮었다.

아랫입술을 다정히 빨다가 입속의 혀를 가져가며 애정 어린 키스를 하며, 은재 안에서 꿈틀대는 허기를 달랬다.

달콤한 키스를 끝낸 그가 이두박근이 도드라진 팔뚝으로 은재의 허리를 깊숙이 안으며, 제 품에 가득히 담았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나도.”

등으로 그의 온기가 전해졌다.

은재는 자신의 체온과 맞닿은 그를 느끼며, 빙그레 입매를 늘렸다. 눈꺼풀이 부드럽게 감겼다.

***

입원해 있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가을이 떠날 채비를 했고, 겨울이 문턱을 넘어오고 있었다.

“가자.”

강윤은 퇴원 수속을 끝낸 후, 은재에게 겉옷을 꼼꼼히 입히고서 한 무더기의 짐을 모조리 들고 VIP 병동을 나섰다.

“나도 줘.”

“넘어지지 않게 앞이나 잘 보고 걸어.”

장기 입원으로 인해 짐이 상당했는데, 은재는 작은 쇼핑백 하나 들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마치 엄호하듯이 곁을 지켰다.

“아예 애 취급이야.”

“노약자 우대.”

“쿡쿡. 캐리어라도 줘.”

“하나도 안 무겁다니까.”

아옹다옹하는 사이, VIP 병동 엘리베이터는 1층 로비에 도착했는데, 로비에서 서성거리던 이가 어색한 손짓을 했다.

“은재야.”

“하준 오…….”

오빠, 라는 호칭을 쓰려다가 은재는 힐끗 강윤을 곁눈질했다.

질투의 화신 같은 남자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된통 당할 테니―심지어 학수고대하던 퇴원 첫날이고!―고갯짓으로 때웠다.

아니나 다를까.

“왜?”

강윤은 적개심을 드러내며 가로막고 섰다. 죄 많은 하준이 쭈뼛쭈뼛 주눅 들었다.

“은재야,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뭐 때문에?”

“강윤 오빠, 잠시만.”

강윤은 총알 장전한 기관총 같았다. 허튼짓했다간 쏘아버릴 기세라, 은재는 얼른 나서서 중재했다.

“…….”

질투심 극심한 남자의 눈매가 새침하게 가늘어졌다.

“금방 올게.”

달래듯 등허리를 다정히 보듬고서, 은재는 로비의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하준이 잠자코 따라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얘기 들었어. 수술한 데는 완전히 회복한 거야?”

“응. 오늘 퇴원해. 그러고 보니 장기 입원해 있는 동안 오빠를 한 번도 못 봤네?”

“나는 너 봤어.”

“아, 피해 다녔구나?”

“…응.”

흠칫.

고개를 끄덕이던 하준이 살벌한 기운을 감지했다. 오소소 떤 그가 불안스레 두리번거렸다.

카페테리아의 화단 넘어 강윤이 팔짱을 낀 채 고압적인 기류를 이쪽으로 쏘고 있었다.

‘저 남자의 소유욕을 어쩌면 좋을까.’

은재는 설레설레 도리질하고서, 하준과의 대화를 끝내려 서둘렀다.

“날 피해 다녔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재?”

“네가 오늘 퇴원한다기에……. 오늘마저 놓치면 후회할 것 같더라.”

하준이 결심한 듯 심호흡하고서 말했다.

“먼젓번 일은 사과할게.”

“어떤 일? 내게 성추행했던 일?”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그 순간 오기처럼 화가 나서….”

“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지.”

“은재야…….”

은재의 조롱에 하준이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진짜 너 좋아했어. 네가 내 첫사랑이었고…….”

“원하준 씨.”

은재는 그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테이블에 팔뚝을 올렸다. 그러곤 서느런 눈빛을 스르륵 그의 면전으로 들이밀었다.

“한때는 내가 원하준 씨 첫사랑이었겠지. 원하준 씨가 쉽사리 넘보기 어려웠던 서은재. 그렇지?”

“꿀꺽.”

“그런데 이젠 쉬워 보였지? 서은재는 이혼녀니까.”

정곡이 찔린 하준의 콧잔등이 실룩였다.

“원하준 씨.”

은재는 우스운 상대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철 좀 들어.”

냉소적으로 일침을 가하자, 하준은 수치스러운 듯 고개를 떨궜다.

은재는 카페테리아에서 나가서, 듬직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남자에게 다정히 팔짱을 꼈다.

“가자.”

“저 새끼가 뭐래?”

그녀의 이끌림대로 정문으로 향하며 강윤이 험악하게 하준을 일별했다.

“내가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한 대 때려줘?”

“저번에 때려준 거로 충분해.”

“두 대 때렸어야 했는데…….”

영 시원찮다는 듯 강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답지 않은 치졸함에 은재는 웃음이 터졌다.

“하하.”

“왜 웃어? 진심인데.”

오롯이 은재 한정으로 유치해지는 남자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은재는 슬쩍 발꿈치를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음?”

기습적인 입맞춤에 강윤의 눈썹이 들썩였다.

은재는 싱그레, 웃으며 다시금 발꿈치를 들었다. 그의 귓속에다가 숨결처럼 말했다.

“사랑해.”

달콤한 고백을 듣는 강윤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사람들 오가는 병원 주차장을 휘둘러본 강윤이 발끈 은재의 손을 거머쥐었다.

“당장 집에 가자.”

그러고선 서둘렀다.

“뭐야.”

은재는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들르고 싶은 데가 있어.”

은재는 귀소본능에 허덕이는 강윤의 질주를 제어했다. 세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며 운전석을 봤다.

“데려다줄 수 있어?”

시동을 걸려던 강윤이 넘겨다봤다.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 같은 눈빛으로 턱짓했다.

“어디든.”

***

서정탁은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고, 형사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은재는 보안창 너머로 등장하는 그를 차분히 지켜봤다.

“은, 은재야.”

반면, 서정탁은 제 손으로 찔렀던 딸을 귀신 보듯 벌벌 떨었다.

“아, 아빠가…….”

“꼭 그러셔야 했어요?”

경멸도, 혐오도 일지 않았다. 은재의 마음이 그저 공허한 들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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