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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널 원해-73화 (73/84)

73.

“무서웠어.”

은재는 힘겨웠지만, 팔을 들었다. 마음을 읽은 강윤이 그녀의 손을 잡고 제 뺨에 대었다.

“도강윤이 내게서 멀어질까 봐.”

“나도.”

매끄러운 살결과 서로의 체온을 맞댄 두 사람은 깊게 안도했다.

강윤의 눈동자가 검은 바다처럼 일렁였다. 애틋함이 스며든 안광이 촉촉하게 젖었다.

“은재야.”

“응.”

“깨어나 줘서, 고마워.”

그리고 손바닥에 입술을 대었다.

솜털처럼 보드라운 숨결은 기분이 좋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를 오래오래 보고 싶었지만, 마취가 덜 깼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졸려.”

“좀 더 자.”

“어디 가지 마….”

“아무 데도 안 가.”

믿음직스러운 남자의 대답은 은재의 불안을 불식시켰다.

“서은재 곁에만 있을 거야.”

은재가 좋아하는 그의 허스키한 저음이 아스라이 멀어졌다.

그래도.

아까와 달리 의식은 덮치는 어둠은 달콤했다.

***

은재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심신이 한층 가벼워진 상태였다. 회진을 온 담당 주치의와도 편안히 대면을 할 수 있었다. 그럴 동안에도 강윤은 강직하게 은재의 곁을 지켰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네, 고생하세요.”

돌아서는 주치의를 병실 문 앞까지 배웅하는 강윤을 은재는 누운 채 물끄러미 응시했다.

매사 깔끔했던 그의 턱엔 수염이 돋아나 있었고, 반듯하게 빚어 넘겼던 머리는 흐트러진 채 이마를 덮고 있었다.

자기 관리는커녕 거울조차 볼 여력이 없었던 거다.

“오빠.”

은재는 손짓했다.

그녀의 귀여운 호칭에 강윤의 눈매가 반달로 휘었다.

“이리 앉아.”

고분고분하게 보조 의자에 앉은 그의 턱을 은재는 쓰다듬었다. 손끝이 까슬까슬한 수염에서 벗어나지 않자, 강윤이 픽 웃었다.

“보기 흉해?”

“아니, 수염 난 도강윤도 섹시해.”

“그래? 길러야겠군.”

“도형호 회장님께서 격노하실 듯.”

은재의 말을 동의한 강윤이 옅게 웃었다. 은재는 손길을 올려 그의 뺨을 매만졌다.

“안색이 안 좋아. 나 걱정하느라 조금도 못 쉬었지?”

“나는 괜찮아.”

“많이 놀랐지?”

“아니.”

고개를 가로저은 강윤이 제 얼굴에 머문 은재의 손을 잡아서 내렸다.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듯 굳세게 쥐고서, 애틋하게 내려다봤다.

“많이… 무서웠어.”

그리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은재 너를 잃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

잔혹했던 순간을 복기하는 강윤의 안광이 세찬 파문이 일었다.

은재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눈앞에서 도강윤이 다치는 건 참을 수 없는 공포였다. 본능적으로 그를 보호했지만, 반대 입장인 강윤으로서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행동 하지 마. 알았어?”

“응.”

장담할 수 없지만, 은재는 대답했다.

설사 같은 일이 반복되더라도, 서슴없이 그를 위해 나설 것이다.

“그래도 고마워. 날 구해줘서.”

“나는 미안한 게 더 많은데….”

은재는 무엇보다 서정탁 씨의 딸인 것이 미안했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도강윤이라는 남자가 겪지 않아도 될 위해였다.

“많이 미안해?”

“응.”

“그러면 보상을 해줘야지.”

“어떤 보상을 받고 싶은데?”

“평생 내게서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

“이 상황에 내 발목을 잡겠다고?”

“약속이나 해.”

“하여간, 타고난 기회주의자야.”

강력하게 종용하는 남자를 은재는 흘겨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거야?”

“으흠?”

쿡쿡거리며 더욱 격하게 끄덕이자, 강윤의 잇새에서도 웃음소리가 새었다.

그리고 그가 상체를 숙였다.

쪽.

은재의 이마에 고이 입을 맞추었다.

찬기 서린 입술이 닿으니 뜨끈한 이마가 시원했다.

은재는 자연스레 감겼던 눈꺼풀을 열며, 검지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픽.”

옅게 웃은 강윤이 이번엔 은재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달콤하고 촉촉한 입맞춤을 받으니, 수술 부위의 통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욕심으로 그의 입에 혀를 넣으려는데…….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강윤이 반동하듯 상체를 일으켰고, 은재는 재빨리 입술을 달싹였다.

“은재가 깨어났다고!”

밀회의 방해꾼은 도성만 회장과 민경애 여사였다.

은재가 깨어난 사이 옷은 갈아입었지만, 종일 식사를 못 한 강윤이었다. 오롯이 아들 걱정인 민경애 여사는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 왔다.

“아이고, 은재야.”

“할아버지…… 심려 끼쳐서 죄송해요.”

도성만 회장은 은재의 손을 굳세게 잡고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처럼 훌쩍이는 그로 인해 은재도 눈시울을 붉혔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다고……. 그저 이렇게 살아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잊어라.”

은재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말을 미리 간파한 도성만 회장이 단호하게 당부했다.

“나쁜 일은 모조리 잊어버려라. 앞으론 내가 널 보호해 줄 테니까.”

“할아버지….”

“싹 다 해결될 거야. 이 할아버지 믿지?”

“네.”

“은재 네가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야. 고마워, 은재야.”

죄송한 마음이 한가득하였던 은재였다. 자신을 되레 다독이는 할아버지의 위로에 은재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이탈했다.

“울긴 왜 울어.”

그의 온화한 손길이 은재의 뜨거운 눈물을 닦아줬다. 잠자코 지켜보던 강윤이 손수건을 건넸다. 은재가 눈물을 훔치는 동안, 도성만은 손주를 올려다봤다.

“원 교수는 다녀갔어?”

“네, 수술 경과가 좋아서 회복은 순조로울 거라고 했습니다.”

“원 교수가 애써주셨는데, 감사 인사를 하러 가야겠구나.”

도성만 회장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강윤의 팔뚝을 툭 쳤다.

“너도 가자.”

“저는 아까 인사를….”

“앞장서.”

윙크하듯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할아버지의 태세가 의뭉스러웠다. 설핏 미간을 찡그린 강윤이 마지못해 움직였다.

“다녀올게.”

“응.”

사랑스러운 눈짓과 인사를 잊지 않는 그에게 은재는 눈웃음을 보냈다.

잠시 후.

본의 아니게 병실에 은재와 민경애 여사만이 남았고, 서먹한 정적이 공간을 채웠다.

“흠.”

뒤편에서 고요하게 서 있던 민경애 여사가 약하게 헛기침했다.

폭풍 전야 같은 분위기라 은재는 긴장했다.

“…어지럽지는 않니?”

“네.”

다시금 침묵.

더할 나위 없이 어색했다.

“출혈이 심하면 보통 빈혈이 오던데….”

“저는 괜찮아요.”

“수술한 데 통증은 어떠니?”

“심하진 않아요.”

분명히 무언의 사려가 담긴 질문이건만.

숨 막힐 듯한 거북함으로 은재는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평온해 보이긴 하구나. 수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 같지 않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은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은재야.”

민경애 여사가 불렀다.

노상 부르던 ‘서은재’라는 딱딱한 이름 세 글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목소리도 온화했다.

“미안해.”

그리고, 뜻밖의 사과.

묘하게도, 민경애 여사의 입을 통한 사과는 짜릿한 전율을 동반했다.

***

민경애는 전시회장에서 인터뷰 중 무심코 시선을 돌렸을 때, 칼을 든 서정탁을 포착했고, 표적이 아들임도 인지했었다.

‘헉!’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다.

‘강, 강윤아.’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멍청하게 입술만 벙긋거릴 때, 찰나로 튀어나와 강윤의 몸을 감싸고 보호한 것은 서은재였다.

퍼뜩.

정신이 들고 보니, 은재는 강윤의 품에서 붉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강윤은 절규하고 있었다.

“강윤아!”

그제야 민경애는 달려갔다.

잔혹한 사건 현장에서 아들을 구하고 혼절한 은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은, 은재야….”

민경애는 아득했다.

조금만, 조금만 늦었더라도, 이 모습이 제 아들이었을 거란 연상에….

아들이 아님을 안도하면서, 그런 안도를 하는 자신이 끔찍했다.

“못내 미안했어.”

민경애는 참회하듯이 고백했다.

“넌 생사의 기로에 있는데, 나는 그저 아들의 안위만 생각하고……. 어른답지 못해서 미안하다.”

“…….”

“그리고.”

수혈을 받았다지만, 은재의 혈색은 파리했다. 민경애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추슬렀다.

“고맙다.”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강윤일 살려줘서.”

아들을 살려준 은인이었으니.

“넌 강윤이뿐만 아니라, 나도 살린 거야. 그래서 더 고마워.”

미워했던 마음도, 원망했던 감정도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이 애잔한 아이가 살아나서, 돌볼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했다.

***

―점심은?

―오늘도 과식 중. 큰일이야, 병원에 있는 동안 살쪘어!

―좋네.

“어허!”

강윤의 대답에 삐죽하며 답장을 보내려는데, 엄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밥 먹는 데 자꾸 딴짓할 거야?”

“아, 할아버지. 저 진짜 배불러요. 그만 먹고 싶어요.”

“오냐, 마지막 한 숟갈.”

은재의 투정에도 도성만 회장의 젓가락은 기어이 밥 위에 고기를 얹었다. 불가피한 강요에 은재는 수저의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아이고, 잘 먹네.”

“음, 음.”

흐뭇해하는 그에게 호응의 끄덕임을 하며, 은재는 서둘러 도시락 뚜껑들을 닫았다.

“내버려 둬.”

“제가 치울게요.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도성만 회장이 손사래 쳤지만, 꿋꿋하게 일어나 식사 흔적을 치웠다. 더부룩한 위장이 버거워 움직임이 둔했다.

‘호강도 정도가 있지.’

은재는 내심 투덜거렸다.

매번 점심 식사는 민경애 여사님의 특별지시로 안 비서님이 배달해 왔는데, 수라상도 이보다는 소박할지도 모를 만찬의 도시락이었다.

그 도시락은 도성만 회장과 나눠 먹었는데, 강압적인 양을 흡입해야 했고, 덕분에 며칠 사이 얼굴이 빤지르르해진 은재였다.

이것이야말로 과한 애정의 나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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