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은재야!”
강윤은 응급 처치를 하면서도 처절하게 불렀다. 그녀의 의식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정신 잃지 마.”
은재의 피는 뜨거웠다.
“은재야, 은재야!”
부들부들 떠는 강윤의 손바닥에 와 닿는 은재의 붉은 피는 용암처럼 강윤의 심장을 달궜다.
***
강윤은 망부석처럼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다. 어스름한 복도를 급히 걸어온 호석이 가방에서 깨끗한 셔츠를 꺼냈다.
“상무님, 웃옷이라도 갈아입으세요.”
“…….”
“수술 끝나실 때까지 이러고 계실 거예요?”
호석은 꼼짝하지 않는 강윤을 채근했다.
“작은 사모님이 깨셨다가 상무님 모습에 놀라시면 어쩌려고.”
꿈틀.
넋 나갔던 강윤이 ‘작은 사모님’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그래?”
퀭하니 제 모습을 살폈다.
브라운 계열 체크무늬 슈트는 물론 셔츠까지 은재의 피로 얼룩덜룩했다. 은재의 자상을 지혈했던 손은 아예 물든 것처럼 검붉었고.
‘너의 피….’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상무님.”
“그래, 씻고 올게.”
강윤은 재킷을 벗어 건네고, 새 셔츠를 들고서 는적는적 화장실로 갔다.
쏴―
수도꼭지로 흐르는 물에 피를 씻어 내리다가, 문득 거울 속 제 뺨에 묻은 은재의 피를 발견했다.
“은재야.”
강윤의 손끝이 뺨을 더듬었다.
젖은 손길에 닿은 은재의 피가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아.”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강윤은 죽을 것 같은 통증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궈졌지만, 세면대를 움켜쥔 채 간신히 버텼다.
쏴―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심장도 통곡하고 있었다.
“후.”
몇 분 후에야 강윤은 힘겹게 진정했다. 차디찬 물로 뜨거운 눈가를 씻어내고, 거친 세수로 그녀의 피를 흘려보냈다.
“강윤아.”
셔츠를 갈아입고, 수술실 대기석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도성만 회장과 민경애 여사가 도착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다리가 풀린 듯 비척비척 다가온 도성만 회장이 강윤의 피 묻은 바지를 발견했다.
“은재가 이리 피를 흘린 게야?”
“…네.”
“이 일을 어째……. 우리 은재…….”
“할아버지.”
“회장님!”
도성만 회장이 휘청했다. 쓰러지려는 그를 강윤은 재빠르게 붙잡아서 의자에 앉혔다. 등받이에 기댄 그가 괴로운 숨소리를 냈다.
“서정탁 그 양반이 결국 사달을 냈구먼. 이 죄를 어떻게 갚으려고…….”
“갚긴요. 죽어도 못 갚을 죄예요.”
민경애 여사는 울분을 토했다. 그러곤 수숫대처럼 망연히 서 있는 아들을 올려다봤다.
“좀 앉아라.”
“네.”
강윤은 기계적으로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기운을 잃은 와중에 도성만 회장이 손주의 마음을 달랬다.
“오는 길에 원 교수님 뵙고 왔다. 의성대 최고의 외과의가 집도 중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더라.”
“네.”
강윤은 무기력했다. 무릎 위에 올린 두 손만 초점 없이 주시했다.
머릿속엔 온통 은재 생각뿐이었다.
‘은재야.’
은재는 출혈이 심했다.
응급차로 실려 오는 동안 응급 처치를 했지만, 상당한 양의 피를 쏟아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긴급 수혈도 했고, 수술 직전에 집도의도 장기 손상보단 과다 출혈인 점이 위급하다고 했다.
‘제발…….’
강윤의 손가락이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렸다. 아랫입술을 악다무는데, 따뜻한 손이 그의 손을 덮었다.
“…….”
“은재는 무사할 거야.”
도성만 회장이 강경하게 단언했다.
“신이 허망하게 데려가지 않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집도의가 나왔다.
“교수님!”
도성만 회장이 먼저 일어났고, 강윤은 긴장한 채로 섰다.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출혈이 심해 예상보다 수술 시간이 길어졌지만, 다행히 천공이 크지 않았고, 환자분께서도 잘 버텨주신 덕분에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상무님!”
의사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강윤의 무릎이 탁 풀렸다. 비틀거리는 그를 호석이 부축했다.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감사해요.”
도성만 회장도, 민경애도 눈물을 글썽였다.
“교수님.”
강윤은 호석의 손을 물리고 정자세로 섰다. 그러곤 깊숙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비로소 온전하게 호흡했다. 애써 억제했던 눈물도 뜨겁게 흘렀다.
고맙다.
‘고마워, 은재야.’
***
도형호는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된 서정탁과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로비에는 연락받고 도착한 최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정탁은 모든 혐의는 인정한 상태입니다.”
“강윤일 해치려던 건 맞나?”
“네. 상무님께 원한을 품고, 직접 칼을 구매하여 계획적으로 접근한 겁니다.”
“은재가 아니었으면 강윤이 목숨을 잃었겠군.”
“…예.”
최 변호사의 확답에 도형호의 목울대가 실룩했다.
오는 길에 뉴스 보도 영상을 확인했던 그였다.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이었지만, 끔찍하고 잔혹한 현장을 생생히 체감했다.
“서정탁은 어디 있나?”
“경찰서장님께 양해를 구하여 현재 취조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지.”
“회장님, 유념하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속히 움직이려는 도형호를 붙잡고, 최 변호사가 나직하게 부언했다.
“서정탁의 정신이 아무래도 온전치 못합니다.”
“술수 아닌가?”
“자신의 손으로 딸을 찔렀다는 사실에 강한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출소하고, 거리 생활을 했던 영향도 있고요.”
“애초에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었어. 정신이 똑바른 인간이었으면 이토록 추잡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겠지.”
신랄하게 비난한 도형호가 로비를 가로질렀다. 최 변호사가 서둘러 앞장서며 안내를 했다.
취조실에서는 얼빠진 서정탁이 수갑을 찬 채 앉아 있었고, 도형호는 담당 형사에게 부탁하여 홀로 들어갔다.
“회, 회장님.”
“날 알아보는 걸 보니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군.”
“죄송합니다, 회장님.”
“닥쳐!”
매사 위엄을 갖추던 도형호의 입에서 험악한 언사가 나왔다. 화들짝 놀라는 서정탁을 마주하는 도형호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내 아들을 죽일 셈이었나?”
“아, 아닙니다. 위협만 주려고 갔는데, 충동적으로…….”
“위협? 한데, 그리 정확하게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나?”
“그럴 마음은….”
“서정탁.”
도형호는 고압적으로 그의 변명을 잘랐다.
“예, 예, 회장님.”
“아들을 죽이려던 사람을 아비는 과연 어떻게 처리하고 싶을까?”
냉소적인 말에 서정탁의 입술이 버석버석 갈라졌다.
“능지처참해도 시원찮을 것 같은데.”
취조실 안을 채운 핏빛 같은 살기가 서걱거렸다. 서정탁은 파리해진 낯으로 수갑 찬 손을 들어 싹싹 빌었다.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서정탁.”
“예, 회장님.”
“감옥에 가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할 거야.”
“……꿀꺽.”
“난 네놈의 모든 죄목을 끌어와 법정 최고형을 선사해 줄 거지만, 그래도 감옥이 네놈의 신상에 고마운 일일 거야.”
“…예.”
“그리고.”
도형호는 나직이 숨을 골랐다.
“오늘부로 내 아들은 물론 서은재 또한 네놈 기억에서 지워야 할 거야.”
제 딸이 언급되자, 서정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형호는 심장 파먹는 독수리처럼 살벌하게 그를 직시하더니, 느긋하게 일어났다.
끼익―
시멘트 바닥과 마찰한 의자 다리의 첨예한 소음이 살갗을 할퀴듯 울렸다.
책상을 한 바퀴 돌아온 도형호가 서정탁의 어깨를 툭 잡았다. 흠칫, 경직한 서정탁의 귓가에 지그시 입술을 댔다.
그리고 취조실 유리 너머의 형사들이 듣지 못하도록, CCTV에 녹음되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안 그러면, 그 폐쇄적인 감옥이 네 무덤이 될 테니.”
“……헉.”
서정탁은 생존의 위협을 실감했다.
수축한 동공을 내리깔며 자신의 손목을 채운 수갑을 응시했다.
취조실에 죽음과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도형호가 돌아섰다. 태연자약하게 문으로 걸어간 그가 손잡이를 잡다 말고 넘겨다봤다.
“서정탁.”
“……예.”
“훗날 출소하거든, 휴지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말게.”
서정탁의 입술이 얼어붙었다.
폐의 산소마저 갉아먹는 공포로 숨도 쉬지 못한 채 부들거리는 양손을 맞잡았다.
모든 것을 잃은 그가 의지할 것이라곤 제 손뿐이었다.
***
은재의 의식은 까맣고 까만 망망대해에 인질로 사로잡혀 있었다. 삭막한 물결을 둥둥 떠다니고 있을 때, 바닷길을 밝히는 등대의 빛이 비쳐들었다.
‘은재야.’
다정한 빛은 서서히 뚜렷해졌으며, 하얀 필터가 낀 시야를 훤히 밝혔다.
“은재야.”
그리고 현실에서의 도강윤이 보였다.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랑하는 남자.
“…도강윤.”
깨어난 은재는 아련히 그를 불렀다.
강윤이 그윽하게 들여다보며, 큰 손으로 섬세하게 은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응, 나 여기 있어.”
그의 나긋한 음성과 따스한 체온을 느끼자마자, 은재의 입매가 길어졌다.
“멀리 안 갔네?”
“쭉 가까이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