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70화 (70/84)

70.

강윤은 멀어지려는 그녀의 입술이 가지 못하도록 뒤통수를 큰 손으로 누르며, 입술을 포개며 힘줬다. 자연스레 벌어지는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며 깊게 키스했다.

은재도 강윤의 팔뚝 안쪽으로 팔을 넣으며 그의 등마루를 쓸었다. 강윤의 상체가 들리고 은재의 등이 눕혀졌다.

서로의 몸을 안고 매만지며 깊고 깊은 키스를 주고받았다.

우르르, 쾅쾅!

고통의 기억을 깨우던 도화선이었던 소음이 집 안을 점령했지만, 은재의 머릿속엔 온통 한 남자만 차지했다.

“강윤.”

자신의 의식을 송두리째 사로잡는 남자.

“도강윤.”

자신을 단단히 지켜주는 남자.

오직 도강윤이 있기에.

“사랑해.”

***

강윤은 아침이 밝자마자, 서정탁의 마수가 닿지 않을 곳이라는 판단 아래 은재는 섬마을에 두고 홀로 상경했다.

“강윤입니다.”

그리고 곧장 삼현가에 들렀다.

강윤이 호출 없이 토요일에 방문한 적도, 부모님 모두를 회의실에 모신 적도 없었다.

도형호는 몇 마디 듣기도 전에 사안의 심각성을 간파했다.

“…뜬금없이 서정탁이 나타나진 않았겠지. 뭘 청탁하더냐?”

“돈이요.”

“양심도 없는 인간이 또……!”

“낱낱이 말해보아라.”

도형호가 손짓으로 분노하는 민경애를 자중시킨 후, 차분히 종용했다. 강윤은 서정탁의 요구와 그가 가진 패를 낱낱이 밝혔다.

“…그 인간이 기어이 우리를 수렁에 빠트리는구나.”

민경애는 창백하다 못해 파리해졌다.

부들부들 떠는 진저리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도형호 또한 적잖이 충격받은 기색이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서정탁이 얼마를 요구하더냐?”

“현금 5억이요.”

“이 추잡한……!”

“줄 수 없습니다.”

경악한 민경애가 벌떡 일어났지만, 강윤은 단호하게 부언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서은재 명의로 현금 5억을 기부할 겁니다.”

“서은재라니! 대체 왜……!”

“당신껜 단 1원도 줄 수 없다는 통고죠. 서정탁 씨가 제 의지를 알아차릴 겁니다.”

“그랬다간 그 인간이…….”

민경애는 돈을 주고라도 입막음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강윤은 터럭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도형호가 입을 열었다.

“서정탁이 그 일을 알게 된 경위는? 제삼자도 있는 거 아니냐?”

“아직은 없습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

“저와 백지연 씨의 대화를 엿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니까요.”

“도 상무! 최근에 다시 백지연을 만났습니까?”

“예.”

“세상에나. 그래도 친모라고 정이 통하는 겁니까?”

민경애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강윤은 그녀의 심경을 이해하기에 침착하게 설명했다.

“우연히 패션쇼장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나눌 대화가 뭐가 있다고……!”

“어째서, 서정탁한테 꼬투리 잡힐 만한 대화를 주고받은 거냐?”

“중요한 건, 백지연 씨와 저의 관계가 아닙니다.”

민경애는 흥분하고 도형호는 질책했지만, 그들의 아들인 강윤은 냉정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저지른 부정이시죠.”

“내가 무슨 부정을 저질렀다고? 난 널 내 아들로 키운 죄밖에 없어!”

줄기차게 경어체를 쓰던 민경애의 이성이 무너졌다. 흥분한 어머니에게 강윤은 직설적으로 반문했다.

“백지연 씨와 거래하셨잖습니까?”

“뭐?”

“전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아들이었죠. 백지연 씨는 임신 사실을 안 후 유산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 아기를 산 건 어머니시고요.”

“…그 여자가 네게 그 사실까지 털어놨니?”

“본인을 찾아온 아들에 대한 심적 부담감 때문이었겠죠.”

강윤이 열일곱 살 때의 대면에서 들었던 말들이었다. 그러면서 백지연은 제 아들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나는 널 낳은 기억 자체가 없다고.

“그 못된 것이….”

민경애가 울분의 탄식을 뱉었다.

“어디서 그런 돼먹지 못한 여자와…….”

그 원망의 화살은 당연지사 남편에게 돌아갔다. 도형호의 안색도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기에 일언반구도 못 했다.

“제가 두 분께 말씀드린 것은….”

강윤은 첨예한 공기를 평정했다.

“빠른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침묵하며 집중하자, 올곧게 논점을 이어갔다.

“서정탁 씨는 이 비밀을 조만간 언론에 유포할 겁니다.”

“맞는 말이다.”

도형호가 인정했다.

“서정탁은 원체 사악한 인간이라, 벌써 언론사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겠지.”

“그전에 아버지가 수습하세요.”

“내가 결자해지할 일이지. 어떻게 하면 될까?”

“약점을 드러내십시오.”

“……!”

“혼외자인 저에 대해 고백하셔야 합니다.”

“안 된다!”

강윤의 냉철한 대안에 도형호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도드라졌고, 민경애는 외마디 비명처럼 내질렀다.

“하셔야 합니다.”

“…….”

도형호는 눈꺼풀을 닫았다.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니?”

민경애의 눈동자엔 물기가 서렸다.

“어머니께서는 백지연 씨 입단속을 시키세요. 서정탁 씨는 어머니와 그분의 거래는 파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네 아버지의 일이 세간에 알려지면…….”

오직 아들을 위해서 30년을 살아온 그녀였다. 자신의 모정이 물거품처럼 흩어질 거란 공포와 서러움이 북받쳤다.

“난 네 엄마인데……. 내 인생이 모조리 부정당하겠구나.”

“어머니께서는 인터뷰를 진행하십시오.”

“인터뷰?”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하고 혼외자인 저를 사랑으로 보듬었다는 내용을 세간에 알려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니. 모멸을 당할 텐데…….”

“어머니.”

강윤은 절망하는 민경애의 손등에 제 손을 덮었다.

“존경 어린 시선을 받으실 겁니다. 그릇된 부분만 감출 뿐이지, 다른 건 모두 진실이잖아요.”

아들의 접촉은 처음이었다.

어머니의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아들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저의 하나뿐인 어머니이신 건 변함없을 겁니다.”

강윤은 그녀의 모정을 모르지 않았다.

과도한 모정으로 인한 집착이 심했지만, 친모가 아니라는 불안감이 작용해서였다. 한편으론 딱한 모정이기도 했다.

“감사해요, 어머니. 절 태어나게 해주시고 이렇게 키워주셔서.”

“강윤아…… 흑.”

민경애는 손으로 제 얼굴을 덮고서 흐느꼈다.

늘 무뚝뚝하고 냉정한 아들의 본심이 감격스러웠다.

그간의 시름이 눈 녹듯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

―미도 작가로 알려진 서은재 씨, 의성대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사업’에 현금 5억 기부

“네놈이 나한테 덤비는구나.”

노숙자 쉼터에서 신문을 보던 서정탁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곧 죽어도 나한테 줄 돈은 없다 이거지?”

분한 걸음새로 쉼터를 나간 그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J일보로 향해, 빌딩 출입구에서 ‘길래기’ 기자를 찾았지만, 경비원에게 내쫓겼다.

그리고 두어 시간을 끈질기게 배회한 끝에 퇴근하는 길 기자와 대면했다.

“길 기자! 나 서정탁이야!”

“어? 서 대표님?”

“우리 오랜만이지?”

예전부터 서정탁의 포섭으로 여론몰이를 도왔던 길 기자였다. 그 덕분에 삼현과 사돈도 맺을 수 있었고, 길 기자도 특종을 거머쥐며 상부상조했다.

“내가 큰 건을 물어왔어.”

비열한 미소를 건 서정탁은 길 기자 앞에 당당히 섰다.

***

“이 두 사람이 모자(母子) 관계라고요?”

길 기자는 사진을 전달하기 전까진 뚱했다. 그러다 사진 속 도강윤과 백지연의 모습에 그제야 흥미를 느꼈다.

“그렇대도.”

서정탁은 득의양양했다.

설렁탕을 푹푹 퍼먹는 수저질도 자신감이 넘쳤다.

“내 여태껏 설명했는데 건성으로 듣더니…….”

“확실해요?”

“이 사람아, 내가 누군가? 삼현의 사돈 아닌가?”

“아, 제가 잠시 잊었네요.”

“사람을 면전에다 두고 괄시하지 말게나.”

“어쨌건, 대박이네요.”

길 기자의 탐욕스러운 안광이 번뜩였다.

“세상 점잖으신 도형호 회장님이 그런 실수를 하셨다니.”

“내가 옛정으로 길 기자한테만 넘기는 특종이라는 점 명심해.”

“예, 예. 뭐, 더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수육 하나 시켜봐. 한동안 고기 맛을 못 봐서 그런지 밥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질 않아.”

“아무렴요. 고기를 드셔야죠. 아줌마! 수육 소(小)자 하나!”

치사한 놈.

기껏 특종을 넘겼더니 고작 소(小)라니.

“중(中)…….”

서정탁이 주문 사항을 정정하려는 찰나, 길 기자의 핸드폰에서 소란스러운 벨 소리가 울렸다. 양해의 손짓을 한 그가 전화를 받았다.

“뭐? 진짜?”

발신자의 말을 듣는 그의 눈살이 묘하게 구겨졌다.

“상대는?”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아하, 일단 알았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한 길 기자가 ‘참 나’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서 대표…… 에이, 이젠 대표님도 아니고……. 이봐요, 서정탁 씨.”

“길 기자, 갑자기 왜 이래?”

“옛정이요? 앞으로 제게 연락하지 마시고, 식사는 하고 가세요.”

길 기자가 대놓고 빈정거리더니, 만 원 한 장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곤 주방에다 냅다 소리쳤다.

“수육 취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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