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69화 (69/84)

69.

“아….”

삼현의 대소사를 담당하는 최 변호사였다.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는 분이라 은재는 갈등하지 않았다.

“할래.”

은재는 아버지 서정탁과의 거리 두기가 가능하다는 희망만으로도 심리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우려되는 점은 있어.”

“뭔데?”

“미도 작가가 유명해진 만큼 공론화를 피할 수 없을 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그 창피를 당하고도 이러는 걸 보면, 아빠는 타격받지 않겠지만…. 그런데…….”

은재는 두려웠다.

“아빠가 앙심을 품을 거야.”

이력이 화려한 서정탁과 맞선다는 뜻은, 열기가 지글지글 끓는 불구덩이를 맨발로 디디는 것과 같다. 그는 집요하게 악랄하게 발목을 삼킬 것이다.

“삼현 측에 불리한 루머를 유포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 있어.”

“최 변호사님과 의논할 테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마. 알았어?”

“응.”

강윤의 단호함이 믿음직스러웠다. 은재는 20년 묵은 체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라서 한결 평온한 숨을 내쉬었다.

“서은재.”

강윤이 나직하게 말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

그의 손이 은재의 뒤통수를 가만히 끌어당겨 자신의 품으로 지그시 눌렀다.

“앞으론 이러지 마.”

강윤의 말은 나무라는 투로 굉장히 엄격했지만, 되레 온몸의 긴장감이 빠져나갔다.

은재는 따뜻하고 강인한 품에 자신을 맡겼다.

모든 신경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쏠렸다.

“네가 그렇게 가버려서, 내가 많이 아팠어. 심장이 타버릴 것 같았어.”

안다.

그가 얼마나 아팠는지.

“서은재가 내 곁에 없다는 건, 어떤 불행보다도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불행이었어.”

그의 고백처럼 두근거리는 심장박동도 애처로웠다.

“날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줘.”

절절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은재의 심장도 아릿했다.

“응?”

아무 말도 못 하자, 강윤이 채근하듯이 읊조렸다.

“…응.”

은재는 어렵사리 대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

“그럼 됐어.”

떨어지는 강윤의 얼굴에도 평화가 깃들었다.

“서은재가 말 잘 들으니, 좋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가 착한 아이 칭찬하듯 은재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깊은 눈동자엔 과욕이 없었다.

은재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고, 오직 제 사랑만을 전하고 있었다.

감사한다.

도강윤이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음에, 이 세상 모든 것에게 감사한다.

“도강윤.”

은재는 양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당겼다. 자연스레 그녀의 힘에 이끌린 남자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해.”

실룩.

강윤의 목울대가 동요했다.

촉촉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든 그가 그윽하게 내려다봤다. 제 귀를 의심하는 눈초리라, 오히려 간절한 마음이 솟구쳤다.

“사랑해, 강윤 오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이 순간이 영원 같다. 전율하는 이 감정을 막을 수 없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아니.”

거친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격해진 감정을 절제하느라 그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쉬어버렸다.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그러나 행동은 절제하지 않았다.

은재의 머리카락 사이로 양손을 밀어 넣으며 강하게 끌어당겼다.

“하, 은재야.”

그도 떨고 있었다.

“사랑해.”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낮게 신음하며 은재의 입술을 삼키듯 앗아갔다.

그리고 힘겹게 내리눌렀던 열정과 갈증이 폭발하듯이 뜨겁고 깊게 키스했다.

‘아.’

그와 키스하는 지금.

은재는 다시 한번 확고하게 깨달았다.

이 남자가 미치도록 그리웠음을.

이 남자를 지독히 사랑함을.

‘사랑해.’

은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의 키스에 열렬히 호응했다.

심장의 뜨거운 고백 같은 열기를 감지한 듯 그의 손이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은재의 등허리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음.”

은제는 낮게 신음하며, 이젠 그를 놓지 않겠다는 듯 그의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강윤이 키스를 멈추며, 뜨겁게 달궈진 눈동자로 은재를 들여다봤다. 제 속에서 불타오르는 화력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대로 번쩍 은재를 안아 올리더니 집 안으로 성큼성큼 이동했다. 은재도 서슴없이 양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그의 안전한 힘을 받으며, 침대에 눕혀졌을 땐 더할 나위 없는 뜨거움이 북받쳤고, 그의 주저 없는 손길로 옷가지가 벗겨지고, 그가 거칠게 제 옷을 던져 버렸을 땐 솟구치는 열망을 참을 수 없었다.

“은재야.”

“아, 도강윤.”

은재는 그의 입술을 열성적으로 찾았고, 그는 은재의 입안으로 혀를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절박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키스를 애태우도록 뜨겁게 퍼부으며, 그간 잃었던 감정을 공유했다.

이어 그의 뜨겁고 절실한 입술이 은재의 몸에 잔잔한 파도처럼 인장을 찍어줄 때마다 온몸의 감각이 물결쳤다.

“하.”

감질나게 혹은 감미로운 그의 입술이 지날 때마다 달콤한 고문 같았다.

“앗. 음.”

은재가 쾌감 같은 전율로 움찔거릴 때마다 은재의 보드라운 살갗에 붙은 강윤의 입술에 미소가 만개했다.

행복이 충만한 미소였다.

그 미소엔 은재의 심장에 설렘 가득한 꽃을 피웠다. 그를 기쁘게 하는 행위에 더없이 솔직하게 반응하고 더없이 사랑스럽게 호응했다.

어루만지는 듯한 키스가 어느새 굶주린 키스로 돌변했다.

“은재야.”

그러면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은재를 휘어 감았다.

“네가 그리웠어.”

그리고 서로의 맨살이 맞물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은재는 비명 같은 신음성을 내며 그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불끈거리는 근육과 힘을 생생하게 느끼며, 은재 또한 그에 대한 그리움이 헤아릴 수 없이 깊었음을 다시금 되새겼다.

“미치도록.”

굶주림에 시달린 것처럼 그는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열정과 힘을 쏟아냈고, 굶주림 같은 사랑의 동작에 몰입했다. 망설이지도, 숨기지도 않았고, 자신의 온 감정을 완연히 드러낸 채 은재를 뜨겁게 안았다.

서로의 가빠진 숨결이 섞여, 서로의 신경 감각을 일깨웠다. 폐 속과 심장에 가득 채워지는 열기에 취해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사랑했다.

하염없이 사랑하는 그를 원했다.

침묵만이 감돌던 은재의 공간에 오직 사랑하는 연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언어로 꽉 채워졌다.

“사랑해.”

“사랑해, 은재야.”

각각 떨어졌던 서로가 오직 하나가 되었다. 돌아서고 외면했던 심장이 이제야 서로를 알아보고 같은 궤도에 올랐다.

함께 원했고, 함께 호흡했다.

사무친 외로움으로 보냈던 며칠이 아득한 꿈처럼 멀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불태우며, 이젠 오지 않을 밤을 떠나보냈고 앞으로 이어갈 뜨거운 밤을 맞이했다.

사랑해.

사랑해.

오직 너만을.

간절히.

***

우르르, 쾅쾅!

밤바다의 숙면을 방해하는 우레가 하늘을 갈랐다. 지면이 부르르 진동하는 강력한 소음에 강윤은 화들짝 깨어났다.

“은재야.”

잠결에도 우레에 두려워하던 은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동반사로 그녀를 찾다가, 제 품에 평온히 잠들어 있음을 인식했다.

“후.”

안도는 잠시뿐이었다.

은재가 또다시 어머니 죽음을 상기하며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르르, 쾅쾅!

번쩍, 두 번째 천둥은 지붕을 직격으로 때렸다. 그 소음에 은재가 괴로운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음…….”

“쉬.”

강윤은 아기 달래듯 숨소리를 내며, 은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은재의 가냘픈 어깨가 파들 떨렸다.

그는 아예 그녀의 어깨 밑으로 팔뚝을 집어넣고, 다른 팔로 등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지난 일이야.”

등마루를 토닥토닥 어르다가, 은재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하…….”

깊숙이 눌려 있던 숨소리를 흩뿌리며 은재는 눈을 떴다. 흐릿한 망막을 들여다보며 강윤은 침착하고 다정하게 불렀다.

“은재야.”

“…….”

은재는 멍하니 눈꺼풀을 끔벅였다.

갈색의 동공엔 강윤의 얼굴이 비쳤지만, 그녀의 의식 너머엔 다른 영상이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

두려움과 고통이 얽혀 있는 영상.

“내가 있잖아.”

강윤은 끈기 있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어린아이 대하듯 나긋하게 달래며 그녀의 초점에 자신을 뒀다.

“내가 지켜줄게.”

“……강윤.”

서서히 은재의 입술이 늘어났다. 금세 또렷해진 동공엔 오직 강윤만이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

“평생.”

강윤의 대답엔 주저 없었고, 명료했다.

은재의 입매에 행복이 스며들었다. 안정적인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위로 올라왔다.

쪽.

그녀의 애정 가득한 입맞춤에 강윤의 입술도 해사하게 길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