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63화 (63/84)

63.

“행여 이 소식을 접한다면, 서정탁은 예전과 같이 저희에게 기생하려 들 겁니다. 가진 걸 싹 다 잃었으니 거머리처럼 달라붙겠죠.”

도성만은 아들의 주장에 반박하지 못했다.

일말의 양보도 허용치 않은 아들이 혹할 만한 설득이 뭐가 있을까, 고심했다.

“저희가 왜 그런 리스크를 떠안아야 합니까?”

그렇지!

도성만은 아들의 언사로 힌트를 얻었다.

“안목이 이리도 없어서야.”

짐짓 나무라는 투로 구시렁거리며, 서재 책상에서 신문들을 몽땅 가져왔다.

“너는 실리가 우선이지 않으냐? 한데 왜 시류를 파악하지 못하느냐?”

보도 내용이 잘 보이도록 일일이 펼쳐서, 깔끔하게 나열해 놓았다.

“네 말대로 리스크가 도사리는 건 맞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의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텐데, 이 극대한 이익을 버릴 셈이냐?”

도성만은 기사를 가리켰다.

“미도 작가의 인기는 가히 태풍급이다. 작가의 시선이 워낙 탁월하니, 이 인기는 쉽사리 식지 않을 테지.”

사회˙경제면은 상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도 작가 관련 기사로 전면을 채웠고, 심지어 영문자 신문에도 긍정적인 호응도가 높았다.

“이 정도면 우리가 극진한 대우로 모셔야 할 작가 아니냐?”

잇따라 그는 힐끗, 민경애를 일별했다.

“에미도 보아라. 네가 중매 시장에서 엮으려는 여느 집안 여식보다 월등히 뛰어나지? 그 누구냐, 건우건설의 임현서는 명함도 못 내밀어.”

“…어제자 신문입니까?”

“맞다. 함 보련?”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식을 잘 아는 부모였다. 도성만의 짐작대로, 정형적인 경영인 도형호는 실리가 우선이었다.

“요 며칠 바빠서 제가 살펴보지 못했는데, 서은재가 제 몫을 톡톡히 했군요.”

신문을 읽으면서도, 그의 두뇌는 목하 회전 중이었다.

“톡톡히 정도냐. 이거야 원, 미도 작가의 인기에 삼현이 얹혀가는 꼴이지. 허허.”

“맞네요. 강윤이 미도 작가를 주체로 내세운 까닭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자의 의견이 통했다.

분위기가 기이하게 변하자, 민경애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아들의 인생을 실리로 결정하면 안 되죠. 저는 강윤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에미가 말 한번 잘했다.”

도성만이 덥석 물었다.

“상생팀 직원이 찍은 사진이란다.”

그리고 감춰뒀던 사진 한 장을 기세등등하게 내보였다.

“이게 SNS로 퍼져서 아주 난리란다. 세간의 관심은 두 사람 로맨스에 온통 쏠려 있고…….”

싱그러운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강윤과 은재가 담겨 있었다.

“봐라.”

그의 검지가 사진 속 강윤을 짚었다.

“더없이 예쁘지?”

오직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모습이 한없이 즐거워 보였는데, 특히 강윤은 은재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흰 강윤이가 이렇게 웃는 거 본 적 있느냐?”

강윤의 눈동자엔 사랑이 가득했고, 입술은 사랑으로 들떠 있었다.

“난 처음 보는데.”

“…….”

민경애는 말없이 사진을 집어 들었다.

서른한 살의 아들을 키우는 동안 단연코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고, 웃음이었다.

아기 때조차 제게 보인 적 없는 미소건만.

그래서 무뚝뚝한 제 아비를 닮아, 태생적으로 감정이 메마른 아들인 줄로만 알았건만.

이토록 행복하게 웃을 때도 있다니….

“정말….”

민경애가 한탄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격이네요.”

그러곤 배신감으로 치를 떨더니, 사진을 내던지고 쌩하니 돌아섰다.

쾅!

시아버지가 계시든 말든, 삼현의 회장님이 있든 말든, 심지어 삼현가의 우아한 사모님이 쿵쾅쿵쾅! 무지막지한 발소리를 내며 멀리 가버렸다.

“에미는 아무래도 질투다. 서른 넘은 아들을 아직도 품에서 못 놓은 게야.”

쯧쯧, 혀를 찬 도성만은 능구렁이 같은 눈초리로 아들의 낌새를 관찰했다.

도형호는 아들의 로맨스 따윈 흥미 없었다.

집중해서 검색창에다 ‘미도 작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

오전 결제를 마치고 바인더를 덮는데, 관자놀이에 지끈 편두통이 일었다. 강윤은 자동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서랍을 열었다.

‘없군.’

어제 호석이 건넨 약은 미처 챙겨 먹지 못했고, 상비약도 없었다. 두통이 가시지 않아, 인터폰을 누르려다가 관뒀다.

‘할 수 없지.’

강윤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들겼다.

―잘 잤어?

출근하기 전 강윤이 보낸 메시지에 은재는 아직도 응답하지 않았다.

괜스레 초조했다.

‘왜지?’

강윤은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만뒀다.

행여 김민서와 밤새도록 수다를 떠느라 여태 잘 수도 있지 않은가.

‘일어나면 답하겠지.’

불안감을 떨치고 오후 일정을 확인하는데, 노크 소리에 이어 호석이 상무실로 들어섰다.

“상무님.”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린 그가 속닥거리듯 중얼거렸다.

“회장님 오셨습니다.”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하게 슈트 재킷의 단추를 채우는 찰나, 도형호 회장이 나타났다.

“바쁘냐?”

근엄한 자태만으로도 아우라가 대단하여 상무실 공기마저 한순간에 휘어잡았다.

“오전 일과는 마쳐서 한가합니다.”

“상생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된다지?”

“네.”

“다음 일정은?”

“강원도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많은 배움을 얻어, 더 진취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미도 작가도 참여하지?”

“프로젝트 주체인데 당연하죠.”

“고마운 일이군.”

응?

대외적인 인사인가?

“전시회도 한다며? 작품도 판매하느냐?”

“네. 미도 작가의 재능기부로 무료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고, 작품 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벌써 작품 판매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요.”

“한 작품…….”

오만상 쓰듯 미간에 주름을 잔뜩 모은 도형호 회장의 입안에 불분명한 말소리가 굴러다녔다.

“^&*()_???”

“네?”

매사 명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아버지답지 않은 태도에 강윤은 무뚝뚝하게 반문했다.

“감기 걸리셨습니까?”

“흠.”

도형호 회장의 볼살이 실룩였다. 눈꺼풀을 차양처럼 내리깐 그가 크게 헛기침하더니, 사뭇 거만스레 읊조렸다.

“한 작품을 내 명의로 구매하도록 해라. 가장 비싼 값에.”

의외의 지시다.

“극비로요?”

“대대적으로 홍보해도 상관없다.”

“왜죠?”

“그리고 말이다.”

강윤은 아버지의 의도를 의심했다. 도형호 회장은 질문엔 답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상무실에서 나가다 말고, 그가 넌지시 어깨 너머로 아들을 보며 이번엔 또렷하게 부언했다.

“서은재와 재결합하거라.”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이라, 강윤은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도형호 회장은 벙한 아들을 일별하고 느긋하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버지!”

뒤늦게 번쩍 정신이 든 강윤은 쫓아 나갔다. 그리고 비서실장의 보좌를 받으며 복도를 나아가는 도형호의 앞길을 막고 섰다.

“무슨 저의십니까?”

“재결합하라는데 저의는 무슨. 네가 바라던 바 아니더냐.”

“은재한테 어떤 작당을 부리시려고요?”

“버릇없이, 아버지한테 작당이라니.”

매사 고고하던 부자(父子)가 별안간 복도에서 첨예하게 충돌했다.

희한한 광경에 비서실 직원들이 빠끔히 내다봤고, 회장님의 수행비서인 비서실장도 당혹스러워서 쩔쩔맸다.

“회, 회장님.”

강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체면이고 뭐고, 은재보다 중요한 사안은 없었다.

“은재를 건드리신다면, 저는 아버지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한테 경고라도 하는 게냐?”

“각오를 다지는 겁니다.”

“허허.”

눈을 부라리는 아들과의 대립에 도형호 회장은 실소했다. 서은재의 일이라면 화염에라도 뛰어들 듯한 아들이 영락없이 불나방 같았다.

“도강윤.”

“네.”

“네가 내게 조언하지 않았느냐.”

“……네?”

“나는 득만 따지는 사람이니, 그 득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노련히 응수한 도형호가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덧붙였다.

“시기적으로 재결합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음.”

강윤은 깨달았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미도 작가를 삼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기업적인 홍보 효과는 물론 브랜드 평판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철저한 경영인의 잇속이 훤히 내보였지만, 자신으로선 이득인 결과이니 행여 아버지의 심기를 언짢게 하지 않도록 헛웃음이 샌 입을 꾹 다물었다.

“네! 서두르겠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보는 눈만 없다면 폴짝 뛸 기세였다. 아들의 색다른 모습에 도형호는 격하게 실소했다. 다소 공허한 웃음소리가 복도에 왕왕 울렸다.

‘저런 놈이 내 아들이었다니!’

어이없었다.

***

오후 4시.

민서의 차를 빌린 은재는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선회할 때였다.

“헉.”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인근에서 어슬렁대는 노숙자를 발견해서였다.

“아빠…….”

은재는 주차장 근처에 차를 정차하고 백미러로 서정탁의 동태를 주시했다.

주민 신고가 있었는지, 경비원이 나와 노숙자인 그를 내쫓았지만, 서정탁은 멀리 가지 않은 채 집요하게 배회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하이에나였다.

동물 사체라도 구하려고 어슬렁거리는.

‘어김없이 저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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