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아… 도강윤.”
강윤은 은재를 뒤에서 단단히 끌어안았다.
끈끈하고 더운 열기가 그들에게 묻혔다. 땀방울인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증기인지 모를 물방울이 매끄러운 피부에 와 닿으며 몽글몽글 맺혔다.
투명하고 맑던 거울도 점차 희뿌옇게 물들었고, 흐르는 수연처럼 너울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은재야.”
아찔한 전율로 은재가 몸을 바르르 떨자 나름 참았던 거라는 듯, 더는 인내할 수 없다는 듯 도강윤이 은재의 등줄기에 붙였던 상반신을 들었다.
“알지?”
농염하고 허스키한 저음으로 그가 물었다. 정신이 혼미한 채라 은재는 가물가물하게 반문했다.
“음… 뭐?”
“내가 너를 미치도록 원하는 거.”
그의 입매가 희미하게 길어졌다.
“너만….”
치명적인 미소를 내리며 그가 그녀의 고개를 제게로 돌리더니 강렬하게 키스했다.
그리고 강한 손으로 은재를 거머쥐었다. 견고하게 고정된 채 은재는 그를 허락했다.
“……!”
다시금 하나.
특수한 남자는 여지없이 격렬했다.
입을 제대로 벌릴 수 없을 정도로 은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화력이라, 은재는 척추는 물론이거니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쾌락으로 미칠 지경이 되었다.
“도강윤!”
악다물었던 입술이 풀리며 그를 열렬히 찾았다. 그러자 도망가는 먹잇감을 쫓는 듯한 도강윤의 맹렬한 추격은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완전히 허옇게 뒤덮여 버린 거울처럼 은재 또한 포식자에게 사로잡혔다.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 같은 쾌감이었다.
그녀가 포식자에게 삼켜진 온몸을 경직하며 늘어지는 동안에도 사냥꾼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듯 극렬한 허기를 내뿜었다.
“멈추지 마.”
거침없는 질주 속에서 은재는 창피함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채 소리를 내었다.
“멈추지 않아.”
시야 너머 욕실 조명이 아른거렸다.
정교한 욕실 타일 모양도 허옇게 사라졌다.
시각마저 그에게 잠식된 듯.
“네가 원한다면.”
그리고 강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오롯이 은재를 독점했다는 소유욕으로 불타올랐다.
절실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환상 같은 교감이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오롯이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접착제로 붙여주길 바랄 정도로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여자.
내 여자.
서은재.
서은재.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그렇게 은재를 완벽히 지배했고 정복했다.
“무조건 네가.”
거친 호흡을 내뱉은 두 입술이 맞물렸다. 서로에게 갈망의 키스를 교환하며 그들은 빈틈없이 하나가 된 몸을 떼지 않았다.
가파르게 뛰는 은재의 심장과 크게 뛰는 그의 심장박동이 합체가 되어 누구의 심장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쪽.
은재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며 짤막하게 입맞춤한 강윤이 나른한 은재의 얼굴을 비틀며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기분이 묘해.”
은재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채 그의 감미로운 키스를 받아들였다.
“어떤데?”
샤워하기 위함이 아닌 다른 걸 하기 위해 샤워한 기분을 느끼며, 은재는 가물가물하게 닫히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떴다.
“나른해서 금방 곯아떨어질 것 같아.”
“아직 자면 안 돼.”
“몸을 닦을 힘도 없어.”
“내가 해줄게.”
다정한 남자가 스스럼없이 수건을 가져와 젖은 은재의 몸을 돌려세웠다.
“되게 낯설고 창피해.”
세심한 손길이 은재의 몸에 남은 물기를 꼼꼼하게 닦았다.
간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했다. 동동거리듯 발을 움직이면서도 은재의 잇새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줍어하는 서은재도 낯설어.”
“경험 부족이야.”
“익숙해질 때까진 내가 도맡아야겠네.”
그녀와 달리 부끄러움 따위 같잖은 남자의 손길이 한층 수줍어하는 은재의 은밀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은재는 파드득 떨며 얼른 목욕 가운을 찾았다.
그런데.
“앗!”
강윤이 은재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성큼성큼, 빠르게 직진한 그의 선택은 침대였다.
두 사람의 체중으로 매트리스가 움푹 꺼졌다.
매트리스에 몸체가 닿으며 은재는 이제 잘 수 있겠다며, 나른한 눈꺼풀을 닫으려 했다.
그때 강윤이 은재를 가득히 끌어안으며 입술을 덮쳤다.
짙은 여운이 감도는 가운데 달콤한 키스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다.
무슨 거꾸로 흘러가는 벤자민의 시간도 아니고.
시간이 역류한 듯 되살아가는 기운에 목구멍이 턱 조였고, 심장이 다시금 가쁘게 뛰었다.
“도강윤…?”
은재는 폴짝 뛰듯이 그의 입술에 붙어 있던 입술을 억지로 뗐다.
“왜 또?”
“여전히 도강윤이네?”
“응?”
천연덕스레 입매를 늘린 강윤이 은재를 느긋하게 얼렀다.
“음? 뭐야….”
둥그렇게 말린 몸뚱이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강윤의 단단한 이두박근이 도드라진 팔은 강직했다. 단단한 족쇄 같았다.
“으흠?”
“오빠라고 안 했다고 또 벌주려는 거야?”
“잘 아네?”
은재는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그의 몸을 밀어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사이 질투 대마왕 도강윤이 붙들었다.
“너무해!”
은재는 저절로 양팔로 그의 목덜미를 감으며 매달렸다. 빵빵한 기세에 눈꺼풀이 질끈 감겼다.
“나쁜 놈아.”
절로 원망이 나왔다.
“나 쉬고 싶단 말이야.”
“쉬어. 자도 돼.”
“이 와중에 어떻게 자? 벌주지 마.”
“벌보단.”
하소연하자 그의 입술에 잔혹하도록 근사한 미소가 맺혔다.
“해도 해도 부족해.”
그러면서 은재를 한쪽 팔로 단단히 감았다.
“은재야.”
숨소리 섞인 그의 부름이 아찔한 전율을 동반했다.
“네게 갈증이 너무 나.”
그와 별개로 이 와중에도 농염한 유혹 같은 소리를 해대는 강윤이 얄미웠다.
“씨.”
은재는 저항 심리로 그의 어깨를 이로 깨물었다.
그러든 말든 강윤은 지극히 편안하게 호흡하며,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했다.
번들거리는 땀과 야릇한 향이 진동하는 가운데, 공간엔 다시금 야한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끽끽.
매트리스마저 버거웠는지, 나사 빠진 듯한 묘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마저도 퇴폐적으로 그들의 청각을 자극했다.
은재는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이 불멸의 남자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확정을 지었다.
이 남자는 좀비가 분명하다고.
***
띠. 띠.
은재가 자신의 핸드폰에 받지 못한 전화가 숱했음을 인지한 것은 이슥한 새벽녘이 될 때까지 강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였다.
―작가님, 바비큐 파티 시작했는데 언제 오세요?
―작가 양반, 주인공이 빠지면 어쩐대요?
―언니! 밥 안 먹어? 피곤해서 잠든 거야?
배 책임이 첫 주자로 출발했고, 청년회장님, 정경이까지 돌아가면서 릴레이를 펼쳤다.
답장을 보내기도 난감한 시간이라, 은재는 짐짓 원망으로 눈초리로 흘겼다.
“바비큐 파티에 오라고 다들 성화였어.”
“정 비서도.”
씻고 나와서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던 강윤도 제 핸드폰을 확인했다.
은재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를 감상하듯 올려다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은 도강윤은 정말 치명적이다.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다행이야. 쫓아올 기세였군.”
거기다 살인적인 미소까지 던져주니, 그야말로 눈 호강이고.
“뭐라고 하는데?”
은재의 손짓에 강윤이 스스럼없이 핸드폰을 넘겼다.
―상무님, 어디세요?
―상무님, 시장하지 않으세요?
―상무님 안 오셔서 저도 밥 못 먹고 있는데요. 제가 모시러 갈까요?
―도저히 배고파서 안 되겠어요. 상무님 저 먼저 먹습니다.
“정 비서님 애가 닳았네.”
쿡쿡 웃던 은재는 그중 하나의 메시지를 검지로 짚었다.
“근데 왜 이런 질문을 해?”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컨디션 나빴어?”
내보인 메시지를 읽은 강윤이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숙였다.
“전혀.”
쪽.
태연하게 은재의 입술에 입맞춤했는데, 어딘지 회피하는 기색이었다. 달콤하게 스친 입술의 기운도 뜨거웠고.
“평소보다 좀 뜨거운 것 같기도?”
은재는 가운을 여미며 정좌로 앉았다. 그를 잡아끌어 침대 가에 앉혀놓고서 손등으로 이마를 짚으니, 따뜻함 이상의 열감이 감지되었다.
“미열 있는데?”
“그건.”
강윤은 어영부영 웃으며, 은재의 손을 잡아 손등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너 때문에 달아오른 거고.”
“날이 갈수록 능청이 진화해.”
“터득한 거지.”
간지러움에 키득거리며 손을 빼려 했지만, 강윤이 놓지 않았다. 은재의 손등에 이어 손바닥에도 다정한 입맞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