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느긋하고도 깊숙한 키스로 은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를 마음껏 받아들였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두 사람의 거품을 씻어내는 동안 짙은 키스를 나눴다.
쏴―
허공을 가르고 떨어지는 물줄기로 인해 아지랑이처럼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좁은 공간을 꽉 채웠다.
두 사람의 호흡은 더없이 짙었다.
서서히 떨어진 강윤의 입술이 아래로 이동했다. 그녀의 목덜미부터 음미하듯 핥으며 느긋한 손길로 은재의 몸을 건드렸다.
“…….”
섬세한 닿음으로 신경 감각이 일렁였다. 은재가 옅게 심호흡할 때마다 욕실 유리 부스에 흰 김이 서렸다.
“어!”
강윤의 손끝이 이동했다. 은재는 움찔하며 몸을 비틀었다.
강윤의 다른 손이 은재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입술은 은재가 자신의 것임을 표식하듯 진한 사인을 새겼고, 그의 입술이 머무는 자리엔 붉은 자취가 남았다.
도강윤의 입술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델 듯이 뜨거웠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이상으로.
“…도강윤.”
“오빠라 불러.”
허스키하게 읊조리며, 보드라운 살결이 이루는 라인을 베어 물었다.
“오빠 소리가 그렇게 좋아?”
“미치게 좋아.”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두 다리로 간신히 버티며 온수보다 뜨거운 도강윤을 견디는 일은 힘겨운 사투였다.
“솔직히 말해봐.”
욕망으로 꿈틀대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한 채, 은재는 헐떡이며 자존심처럼 입을 열었다.
“질투했지?”
부드럽게 미끄러지던 입술이 들렸다. 은재는 쉰 목소리로 물으며 달뜬 눈동자를 떴다.
“픽.”
길게 늘어나는 입술이 몽롱한 시야를 사로잡았다.
농염한 미소를 그린 강윤의 입술이 올라왔다. 이글이글한 화기를 머금은 듯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은재의 입술 표면에서 맴돌았다.
“당연한 거 아니야.”
화끈한 숨결이 입속으로 불어 넣어졌다.
“나 아닌 다른 놈은, 절대 안 돼.”
이어 뜨거운 혀가 입속을 휘저었다.
은재는 그의 혀에 딸려가던 혀를 고집스레 빼었다.
“뭘? 키스? 아니면, 오빠 소리?”
“서은재, 너.”
강윤이 단호하게 읊조리며 포박하듯이 은재의 뒤통수를 감아쥐었다.
“네 모든 것.”
그러곤 맹렬히 키스했다. 손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으로 별빛을 휘감은 밤하늘처럼 은재를 차지했다.
부옇게 부서지는 별 무리처럼 은재는 점차 그에게 흡수되어 갔다.
강윤의 촘촘한 근육이 들썩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타는 심정이 일었다.
저절로 은재의 손도 그를 찾았다.
“은재야.”
적극적인 그녀의 손놀림에 강윤의 입에서도 부드러운 신음이 흘렀다. 이어 갈라진 저음이 퇴폐적으로 울렸다.
“넌 매번 날 미치게 만들어.”
흑막 같은 동공에 인영처럼 은재가 담겼고, 은재의 나뭇결 같은 눈동자엔 바람처럼 강윤이 흔들렸다.
씩.
매혹적인 미소를 건, 강윤은 마치 처음처럼 목덜미부터 다정한 입맞춤을 시작했다.
그의 숨결이 목덜미부터 어깻죽지까지 뜨겁게 달구자 은재는 눈을 감았다.
“…….”
그의 입술을 음미하는 순간이었다.
‘도강윤도 마찬가지야.’
뜨거운 숨결과 저릿한 감각으로 움찔거리는 그녀의 결을 따라 강윤의 입술이 천천히 내려갔다. 델 듯한 숨이 살갗에 번지자, 은재의 몸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매번, 매 순간 날 사로잡아.’
그의 보드라운 입술과 혀끝이 핥고 지나간 자리마다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의 입술은 부드럽게 따뜻했지만, 은밀한 탐욕을 품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도강윤한테 영원히 묻히고 싶어.’
살에 닿는 그의 체온은 불타는 화염처럼 뜨거웠다.
“내가 정말 도강윤의 여자야?”
“늘.”
서서히 그녀의 몸을 타고 내려가며 키스하던 남자의 입에서 망설임 없는 대답이 들렸다.
“언제나.”
그의 확신 어린 대답에 옅게 웃던 은재는 그의 어깨를 잡고서 일으켰다.
그러고서 새침하게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꼬집었다.
“이 입으로 거짓말하면, 혼나.”
“……!”
“도강윤도 벌 받을 줄 알아.”
매섭게 엄포를 놓자, 강윤의 미간이 바락 모였다.
다소 못마땅한 기색이 다분했지만, 입술이 잡힌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은 믿어줄게.”
흡족한 은재는 빙그르르 입술을 늘리며 손가락을 뗐다. 강윤의 실눈이 내려왔다.
“…어떻게 벌줄 건데?”
“왜 벌을 기대하는 눈치지?”
“나의 체벌 수위라면, 환영하는 바지.”
“정말 못 말려.”
그의 능청에 쿡, 웃어버린 은재는 발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강윤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더하게 뜨거운 숨을 불어넣으며 깊숙하게 키스했다.
그녀의 향기를 한껏 취했다.
은재 역시 그의 어깨를 바락 안고서, 빈틈없이 밀착하며, 그와 깊고 진한 키스를 나눴다.
뜨거운 수증기처럼 홧홧한 열기가 되살아났다. 그 열기에 스며들듯이 빠져들었다.
***
은재에게선 다디단 꽃잎 향이 풍겼다.
질투로 이성이 마비되었던 것처럼 지독히 자극적이었고, 흐트러짐 없던 강윤의 여유마저 빼앗아 조바심을 심어주었다.
그녀의 몸을 샅샅이 삼키고픈 갈증이 점차 거세어졌다. 속절없이 강해지는 욕구가 도리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은재를 다치게 할까, 두려워지는 자신을 제어하려 애쓰며, 강윤은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그녀의 몸을 탐했다.
“서은재.”
“응.”
“네게서 늘 좋은 향이 나.”
“어떤?”
“달고 단 향.”
제 귀에 속삭이는 강윤의 말이 더하게 달았다. 은재는 행복감에 심취하며 그에게 잠식되는 감각을 내버려 뒀다.
“도강윤도 그래.”
“그래?”
“응. 달콤해.”
그녀의 솔직한 응수가 무척 흡족한 듯 강윤이 웃었다.
“더 달콤하게 해줄게.”
그러더니 열렬한 몸짓을 시작했다.
아찔한 전율이 되살아나며, 은재는 진저리치듯 몸을 부들거렸다.
의지할 곳이 없는 손바닥이 그들처럼 뜨겁게 달궈진 유리 부스만 더듬었다.
강윤은 집념에 휘어 잡힌 것처럼 그녀의 열기에 화력을 더하도록 세밀한 탐색에 몰두했다.
“그만!”
결국 은재는 화내듯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 죽을 것 같아!”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은재는 파들거리며 한 발짝 물러나며 그에게서 등 돌렸다. 유리 부스가 애처로운 은재의 앞길을 막았다.
“나갈 거야.”
“어딜.”
본능적으로 자신이 처한 위험에서 방어하는 그녀의 허리를 그러쥐면서 강윤은 옅게 웃었다. 벌게진 채 은재는 신경질을 부렸다.
“웃지 마! 왜 웃어?”
“서은재답지 않게 부끄러워해서.”
“놀리는 거야?”
“아니.”
한 손으론 은재의 허리를 감으며, 다른 손으론 은재의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며 그가 입술을 기울였다.
“귀여워서.”
등줄기로 부드럽게 밀착하는 몸처럼 입술도 부드럽게 빨았다.
갑자기 그가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은재는 뼈마디까지 들쑤셔지는 것 같았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전율이 은재의 전신으로 퍼졌지만, 입안은 완전히 그에게 점령당한 상태라 신음마저 그가 삼켜 버렸다.
“숨 막혀!”
폐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 은재가 먼저 입술을 뗐다. 모자란 산소를 악착같이 흡입하며, 유리 부스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숨 쉬게는 해줘야지.”
“미안. 알았어.”
은재의 볼멘소리에 강윤이 사과하며, 한 손으로 은재의 손을 잡아챘다.
뜨겁게 달궈진 손바닥이 은재의 손등을 덮으며 깍지를 끼었다.
은재는 유리 부스가 깨지는 게 아닐까, 엉뚱한 걱정도 했다.
짙은 쾌감.
그가 선사하는 쾌감으로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형용할 수 없는 열감으로 얼굴의 피부마저 확확 달궈졌다.
“…….”
공기마저 가쁜 숨소리를 냈다. 타일로 사면이 감싸진 공간에 메아리처럼 왕왕 울려 더한 자극을 형성했다.
“도강윤!”
“은재야.”
그들을 찾아온 누군가의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설사 누군가 그들을 찾아 다녀갔다 해도 오롯이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있는 두 사람으로선 모를 일이었다.
저절로 달뜬 호흡을 터트리며, 은재는 미약하게나마 그가 자신의 유일한 목숨줄인 양 샤워 유리 부스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자신이 저 깊고 음습한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왈칵.
은재는 강윤이 자신에게 선사하는 이 뜨거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의 꿈같기도 했다.
다시금 깨닫는다.
자신은 도강윤이 그리웠다는 사실을.
이 미치도록 매혹적인 남자를 단 한시도 잊지 않았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