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오빠가 내게 잘못한 거잖아.”
상생 프로젝트를 기획한 상무님께서 의료봉사에 참여한 의사를 폭행한 사태라 은재는 일단 상황 종료하려 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오빠한테 내 의사는 분명히 밝혔어. 그러니까…….”
한데.
“서은재.”
강윤이 밀쳐 버리듯 하준의 목을 놓고서 엄한 눈초리를 돌렸다.
“응?”
“그만하고.”
다소 음침한 기운에 무심코 긴장하는데, 느닷없이 그가 은재의 손을 바락 쥐었다.
“따라와.”
그러더니 무작정 끌고 갔다.
“넌, 꺼져.”
더불어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하준에게는 경고 어린 손짓을 했다.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면, 각오해야 할 거야.”
독기 서린 눈빛이 살벌했다. 섬뜩한 기류에 하준이 주눅 든 채 버석버석한 입술을 축였다.
어정쩡하게 모래밭에 남은 하준을 두고, 강윤은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갑자기 어디 가?”
은재는 당황했다.
성큼성큼.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보폭 큰 걸음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은재는 신경질도 부리고 언성도 높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쥔 악력만 더하게 강해질 뿐 강윤은 앞만 보고 갔다.
‘나한테 화난 거야?’
근육이 슈트 재킷을 걸쳤음에도 화나서 실룩이는 등 근육이 투영되었다.
‘원하준하고의 관계를 의심하는구나. 바람피운다고 생각했나?’
그의 심리를 꿰뚫은 은재는 잠자코 그를 따랐고, 머지않아 집에 도착했다.
쾅!
격노에 찬 힘으로 대문이 닫히고, 마당에 들어서서야 강윤이 손을 놓았다.
“너….”
“오해야.”
은재는 서둘러 변명했다.
“희성이랑 조개 주우러 갔다가 이상하게 발단되었는데…….”
난감했다.
눈빛은 또 왜 저렇게 무시무시해?
“하준 오빠가 저렇게 나올 줄 몰랐어.”
“말하지 마.”
“정말로 오해할 만한데, 하준 오빠가 말도 안 되게 고백하면서 억지로 그런 거야.”
“그만 말하라고.”
“도강윤, 정말이야. 내가 하준 오빠랑 키스할 것 같아? 나는 하준 오빠 같은…….”
“왜!”
돌연, 강윤이 버럭했다.
흑막 같은 눈동자를 부라리며 씩씩거리며 슈트 재킷 단추를 휙 풀었다.
그러더니 한 손은 허리춤에 집고서 검지로 담장 너머 저 멀리 바닷가를 가리켰다.
“왜 원하준이 오빠야?”
“어?”
뭐지?
“왜! 나는 도강윤이고, 원하준은 오빠냐고!”
도강윤의 분노 어린 손가락질이 번갈아서 자신과 저 멀리 안 보이는 원하준을 가리켰다.
비로소 은재는 깨달았다.
‘화난 이유가 고작 이거였어?’
무언가, 굉장히, 하찮은 이유라서 말문이 막혔다. 긴장감도 한순간에 풀려서 좁게 줄어든 눈을 끔벅이며 입을 뗐다.
“내가 하준 오빠라고 해서…….”
“한 번만 더 그 새끼를 그렇게 불러. 혼날 줄 알아.”
하.
어떻게 혼내려고?
“오빠 소리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참 나.
지혁 씨한테 아는 오빠라고 소개할 때 더럽게 싫은 표정을 지었으면서.
“언제는 도강윤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며?”
“서은재가 원하준을 하준 오빠라고 다정히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지.”
“다정히 부른 적 없어.”
“허.”
비딱한 반항아처럼 입술 자락을 비튼 강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빠 소릴 자주 했나?”
그러곤 신랄하게 조롱했다.
“수많은 놈들한테 오빠 소릴 했나 보지?”
“하, 도강윤! 이러기야!”
“이것 봐. 난 또 도강윤이지.”
매사 빈틈없이 냉철한 남자가 사춘기 소년처럼 한껏 비딱해져 있어 은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치하게 왜 이래?”
“도강윤이라는 놈이 원래 유치해.”
“세 살배기도 이러지 않을 것 같아.”
“세 살인가 보지.”
“와.”
은재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언빌리버블.”
이런 언사를 쏟아내는 도강윤이라니. 단연코 이 남자한테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아니… 아, 기막혀서.”
왜 이렇게 유치찬란하게 구느냐고 따지려던 은재의 머릿속에 번뜩한 단어가 떠올랐다.
‘질투?’
설마, 질투하는 거야?
‘도강윤이? 저 양대 산맥을 아우를 정도로 대단한 남자가?’
붉으락푸르락하며 열불 나서 못 살겠다는 듯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근육이 비치는 복부를 들썩이는 강윤의 모습은 영락없이 질투였다.
기이한 분노의 원인을 깨닫자, 은재의 입꼬리가 저절로 실룩였다.
“도강…….”
이 분위기에서 또다시 ‘도강윤’이라고 불렀다간 목이 졸릴 듯해서 관뒀다.
대신 실룩이는 입술을 잡아채고서 그의 앞으로 서서히 접근했다.
“…….”
차츰차츰 좁혀지는 간격을 따라 도강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내려왔다. 모나게 치솟은 한쪽 눈썹도 심히 치명적인 남자였다.
은재는 삐딱한 눈썹에 손끝을 살짝 댔다. 그러곤 살살 부드럽게 쓸면서 입술을 씩 늘렸다.
“오빠.”
“……!”
도강윤의 널따란 가슴팍이 들썩, 했다.
“화내지 마.”
쿡, 웃음이 터질 뻔해서 꾹 누르며 ‘후’하고 뜨거운 숨결도 그의 입술에다 불었다.
“응? 강윤 오빠.”
일순 강윤의 입술이 덮쳤다. 큰 손으로 은재의 얼굴을 감싸고, 더한 말을 담기 전에 조그마한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의 혀가 깊숙하게 밀고 들어와 입천장을 훑으며 지나갔다. 그러고서 고갈되어 가는 물기를 채우듯 혀를 깊게 빨아들였다.
혀와 입술이 완전히 그에게 점령당했다.
격정적인 키스에 은재도 열렬히 호응하며 그의 셔츠 앞판에 손을 얹었다.
탄탄한 가슴팍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불끈불끈한 근육이 얇디얇은 셔츠를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은재의 손길을 인지한 그가 별안간 은재의 몸을 번쩍 들었다. 그대로 두툼한 담장에 앉히고서 격렬한 속도로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툭툭,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은재의 손을 붙잡아 제 가슴팍에 갖다 댔다.
손바닥 밑으로 단단하게 골이 진 근육이 온전히 느껴졌다. 도강윤의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농염한 예술 작품이었다.
은재는 대범하게 그의 딴딴한 가슴 근육을 어루만졌다.
“음.”
강윤이 낮게 신음했다.
그의 섹시한 숨소리가 더없이 좋아 은재의 손이 자신 있게 그를 만졌다.
그의 복근이 긴장으로 단단히 뭉쳤고 근육 가장자리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뜨거운 키스에 열중하며 그의 손도 은재의 티셔츠 속으로 침범했다.
그때.
[주민 여러분! 마을 상생센터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을 예정이오니…….]
우렁찬 청년회장의 목소리가 골목 저편의 스피커에서 울렸다.
휑하니 뚫려 있는 마당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둔 채 벌어진 셔츠로 드러난 그의 가슴을 애무하던 자신을 일깨운 은재는 화들짝 손과 입술을 뗐다.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자신도 그의 가슴을 매만진 주제에, 애먼 남자한테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보라 해. 내가 더 급하니까.”
강윤은 용납하지 않았다.
떨어진 입술을 도로 잡아채어 빨아대며 은재의 엉덩이를 번쩍 받쳐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반동으로 입술이 떨어질 때, 은재는 쿡쿡 웃었다.
“우리 바비큐 파티 안 가?”
“못 가.”
“기다릴 텐데.”
“딴 데 신경 쓰지 마.”
무엇보다 너와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듯 단호하게 읊조린 그가 안전하게 은재를 받치고 집 안으로 이동했다.
“나 씻어야 해. 땀 많이 흘렸어.”
그런 와중에 곧 죽어도 싫다는 소리는 안 하는 은재였다.
“같이 씻을까?”
강윤이 낮고 야한 음색으로 물었다. 은재의 입술에서 달뜬 웃음이 새었다.
“그건 좀 그런데….”
“뭐가 그래.”
쪽.
“자주 보는데.”
강윤이 그의 목덜미를 부여잡은 은재의 입을 맞췄고, 놓칠세라 맹렬히 빨아들였다.
쪽.
욕실에 내려지는 그 짧은 시간조차도 아까워 서로에게 몰입했다. 결단코 서로를 놓지 않았다.
“그래도 욕실은 왠지 더 야해.”
“더 야하게 해주길 바라는 거지?”
“누가.”
약하게 저항하는 은재의 티셔츠를 강윤이 단박에 벗겨내고, 고운 몸을 감춘 속옷의 버클을 풀어냈다. 그리고 흐늘거리는 천 쪼가리를 완전히 분리했다.
맨살이 드러난 여체는 날씬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우아한 선의 굴곡이 짐짓 그를 유혹하는 듯했다.
절제력 뛰어난 이성을 던져 버리고, 강윤은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벗어 던졌다. 피가 끓어오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로 젖어드는 두 사람의 몸이 마찰하듯이 부딪쳤다.
뽀송뽀송하고 풍성한 거품을 서로의 몸에 묻혔다. 쑥스러움과 달뜬 열기가 합쳐지며 연신 입술에서 희미한 웃음이 새었다.
“서은재는 부드러워.”
“쿡. 도강윤도.”
강윤이 매끄러운 은재의 몸을 어루만지며 근육질의 상반신을 밀착했다. 그러곤 은재의 입술을 재빨리 혀를 밀어 넣어 갈증을 해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