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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널 원해-47화 (48/84)

47.

어릴 때부터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단련된 강윤이었다. 그의 스승은 국가대표였으며, 강윤은 고등학교 시절 이미 웬만한 유단자보다 실력이 월등했다.

그로 인해 산만 한 덩치의 놈도 그에게 꼼짝없이 굴복했다.

“휘! 대단하십니다.”

능란한 기술에 인규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고, 뒤편에서 벌벌 떨던 호석의 눈도 휘둥그레 커졌다.

“와, 상무님!”

대치 구도가 우위에 서자 인규와 호석은 한껏 여유로운 자세를 갖췄다.

“아! 시발. 왜 남의 사무소에 와서 깽판을 치는데!”

반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껄떡이는 발악했다.

“현역도 아닌 주제에 형님으로 대우해 주니까 누굴 꼴로 보는 거야!”

“그 팔 풀어라. 안 그러면 쑤셔 버린다.”

나머지 깍두기도 살벌하게 허리춤의 칼을 꺼내 휘두르려 했다. 살상 무기의 등장에 인규는 양 손바닥을 들었다.

“워워. 진정들 하시고.”

“이 팀장님.”

소파 등받이에 엎드린 채 고통스럽게 파닥거리는 놈에게 강한 위력을 가하며, 강윤은 무미건조하게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러죠, 우리 상무님께서 워낙 바쁘신 몸이니까… 말론 안 되겠죠?”

“가뿐히 몸으로 합시다.”

강윤과 인규의 의연한 합의가 황당한지 껄떡이가 격한 헛숨을 쉬었다.

“허. 우리 앞에서 노네? 시발, 죽여 버려!”

“예, 형님!”

인내심이 바닥이 난 놈이 책상을 타 넘어왔고, 깍두기가 명령대로 칼을 휘저었다.

강윤은 전투 본능이 깨어난 투사처럼 이 상황을 즐겼다. 제게로 곧장 향한 깍두기의 칼을 제 손으로 옭아맸던 덩치로 방패 삼았다.

“헉!”

“앗.”

하마터면 같은 편끼리 결딴날 뻔했다.

깍두기와 덩치가 주춤하는 사이, 강윤의 다리가 공중을 뛰어올랐다.

허점이 내보인 깍두기의 목덜미를 강력히 차버리고,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무릎을 가격했다. 그리고 쓰러진 녀석의 팔뚝을 무자비하게 꺾었다.

“억!”

연속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깍두기가 고통에 찬 신음을 뱉었다.

“악.”

“으헉.”

좁은 공간이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인규의 삼단봉은 껄떡이의 머리통, 어깻죽지 등을 사정없이 두들겼고, 호석 또한 강윤의 뒤로 접근하는 덩치의 머리를 향해 힘껏 도자기 화분을 던졌다.

와장창!

화분을 정통으로 맞은 덩치가 풀썩 고꾸라졌다. 그리고 무대의 피날레처럼 깨진 화분의 검은 흙이 꽃가루처럼 사방으로 휘날렸다.

***

‘다한다 심부름센터’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세 명의 직원들은 쌍코피를 흘리고, 시퍼런 멍이 든 채로 석고대죄하듯 소파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들의 뒤에서 호석이 대걸레 자루를 들고서 기개를 세웠다.

“자, 이제부터 우리 허심탄회하게 애길 나눠볼까?”

“예, 형님. 편히 말씀하십시오.”

한숨 돌린 인규가 말하자, 껄떡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인규는 사진 몇 장을 테이블에다 던지듯 놓았다.

“이분 알지?”

인규의 검지가 제일 위의 사진을 짚었다.

“너희 처지에선 VIP 고객일 텐데.”

사진 속 임현서를 일별한 껄떡이가 허허허, 어색한 웃음소리를 흩뿌렸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인가? 얼굴이 도무지 낯서네요?”

“이 와중에 모른 척하기 있냐?”

“진짜 몰라요.”

“한 대 더 맞아야 기억이 나겠다. 상무님.”

“네.”

인규가 자신의 어깨 너머를 곁눈질했고, 반듯하게 매무시로 갖췄던 강윤이 점잖게 슈트 재킷 단추를 풀었다.

“알아요! 확실히 압니다!”

호되게 당했던 깍두기의 이마 핏줄이 발끈했다. 퀭한 껄떡이가 ‘어휴’ 하며 체념의 한숨을 쉬더니 이실직고했다.

“예, 저희 고객님 맞아요.”

“이 고객님께서 살인을 청부했어?”

“아뇨. 가볍게 교통사고로 경상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본인도 겁은 나서겠죠.”

“먼젓번 병원에서 실패했잖아?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인 거야?”

인규가 냉랭한 강윤을 턱짓하며 엄포를 놨다.

“방금 경험해서 알겠지만, 우리 고객님 성격이 상당히 급하시니까 후딱 불어라.”

“그게…….”

강윤을 훔쳐보는 껄떡이의 이마에도 송골송골한 땀방울이 맺혔다.

“대상한테 경호원이 붙어버려서 접근 자체가 쉽질 않았어요. 그래서 진행 못 하고 고심 중이었는데… 이리들 오셔서…….”

“오? 그러셨습니까?”

껄떡이의 구시렁을 들은 인규가 감격 어린 눈초리를 던졌다. 강윤은 무덤덤하게 인정했다.

“네. 만일의 위험을 대비해서.”

병원에서의 일 이후 은재도 모르게 경호원을 고용한 강윤이었다. 자신이 24시간 보호해 줄 수 없으므로 최선책이었다.

“지각력도 뛰어나신 상무님이셔.”

엄지를 치켜세운 인규가 껄떡이한테 물었다.

“착수금 얼마 받았어?”

“…3천만 원.”

“고객님이 작성한 의뢰계약서 가져와. 사본 말고 원본.”

“그런 거 없는데….”

“뒤져서 나오면, 너 오늘 눈에 흙 들어간다.”

“대령할게요.”

우물쭈물하던 껄떡이 기어이 정수리를 한 대 맞고서야 의뢰계약서를 가져왔다.

임현서는 ‘다한다 심부름센터’에 착수금으로 현금 3천만 원을 지급했으며, 성공보수로 현금 5천만 원을 약속했다.

의뢰계약서엔 그 내용이 명백히 기재되어 있었으며, 뒷장에는 임현서의 주민등록증이 복사되어 있었다.

“착실하네.”

신분증을 톡톡 건드린 인규가 의뢰계약서를 넘겼다. 세밀히 내용을 살핀 후, 강윤은 검지로 녀석들이 앉은 소파 자리와 평행을 이루는 컴퓨터 모니터를 지목했다.

“이 팀장님, 저거 회수하십시오.”

“네?”

인규는 그의 검지를 좇다가 뒤늦게 붉은빛이 들어온 캠 카메라를 발견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늘어났다.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

***

[도강윤, 요즘 날 자주 찾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채종훈이 느글느글한 음색으로 까불었다. 주차를 끝낸 강윤은 안전벨트를 풀며 물었다.

“채종훈, 스카이라운지 귀빈석에 CCTV 설치되어 있어?”

[당연히 있지. 왜?]

“알겠다. 수고.”

[도강윤! 아이, 새……!]

다짜고짜 묻고 무정히 끊으려는 그에게 채종훈이 귀청 나갈 정도로 빽빽거렸지만, 통화가 종료되어 더는 들리지 않았다.

탁.

강윤은 조수석의 파일 바인더를 집어 들고, 영화제작사인 ‘건우엔터테인먼트’로 진입했다.

그를 알아본 비서는 기꺼이 대표이사실로 안내했다.

“대표님, 삼현그룹 도강윤 상무님 오셨습니다.”

“어? 왔어?”

어지간히 잘못한 모양이다. 현서는 강윤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파리한 안색으로 머뭇댔다.

“차 드릴까요?”

“사양합니다.”

“김 비서님, 나가셔도 돼요.”

“네, 말씀 나누십시오.”

현서의 억지 미소를 받은 비서가 물러나고, 강윤은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앞으로 저벅저벅 직진했다.

“갑자기 무슨 용건이야?”

현서가 경직된 몸을 일으키며 그녀답게 뻔뻔하게 굴었다.

“취한 널 챙긴 내 호의를 무시하더니.”

“호의라.”

픽, 강윤은 비소했다.

“네 기준의 같잖은 호의는 언급할 필요도 없고, 내 기준의 호의는 오늘부로 끝이야.”

강윤은 현서의 책상에 심부름센터에서 입수한 의뢰계약서와 캠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담아온 핸드폰을 차분히 내려놓았다.

“이게 뭔데?”

영문 모르는 현서의 시선이 내리깔리자마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살인을 원하십니까?]

[끔찍한 소릴 하시네. 살인도 자주 하나 봐요?]

“헉.”

심부름센터에서 의뢰인에 대한 이차적 협박·갈취용으로 몰래 찍어놓은 녹화본이었다.

현서는 청부폭력을 지시하는 시점의 제 얼굴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에 경악했다.

“꺼!”

그녀가 파들거리며 팔을 뻗었지만, 강윤은 기민하게 핸드폰을 회수했다.

[그럴 리가요. 저희로서도 상당히 애먹는 작업인지라…. 저희는 그저 고객님의 기준에 최대한 맞춰 드립니다. 어느 정도의 선이신지….]

[경상에서 중상 사이 정도가 적당하겠어요.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서 못 쓰게 한다거나.]

“제발 꺼….”

“진정해. 벌써 흥분하면 안 되지.”

그리고 느긋하게 달래며 현서의 초점에 화면을 맞췄다.

[장애는 추가금이 붙는데….]

[돈을 왜 말하지? 내가 그까짓 푼돈 아쉬워할 사람으로 보여요?]

“그만해, 그만하라고!”

“시시하게 왜 이러지?”

“강윤아…….”

“유감인데? 이 정도의 엄청난 짓거릴 벌이는 임현서라면 훨씬 더 대범해야 하지 않나?”

“제발, 틀지 마… 틀지 말아줘!”

비릿한 조롱을 받으면서도 현서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서 발악했다.

강윤은 영상을 정지하고, 냉혹하게 직시했다.

“눈 떠.”

“싫어. 안 볼 거야.”

“떠야 할 거야. 난 네 다리가 아닌 네 목을 부러뜨릴 것 같거든.”

그의 안광에 섬뜩한 기류가 스멀거렸다.

거역할 수 없는 살기였다.

“…하.”

서슬 퍼런 위협에 두려운 나머지 현서가 파들파들 떨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를 올리면서 파리처럼 양손을 붙였다.

“강윤아… 살려줘.”

“그 입도 다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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