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46화 (47/84)

46.

“염려 말아. 다른 덴 얘기 안 했어. 우리끼리니까 말한 거지.”

“식사 내오네. 그만들 앉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성미가 손날을 휘적거리며 정원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메이드들이 다가와 테이블에 정갈한 음식을 세팅했다.

징―

민경애는 부글부글 끓는 심기를 억누르며, 진동으로 부르르 떠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안 비서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었다.

―여사님, 상무님께서 여자와 동행하여 신화호텔 스위트룸을 사용하신 게 맞습니다.

―여자는 서은재고?

―네.

―서은재는 여전히 펜트하우스에 머물러?

―가사도우미의 보고에 따르면, 서은재는 2층에서 머문다고는 하는데….

한때 몸을 섞었던 남녀가 한집에 머무는데 사달이 안 날 리가 없지.

―어떻게 할까요?

―서정탁이나 찾아.

―알겠습니다.

민경애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이미 서은재 그 여우한테 홀린 강윤이었다. 먼젓번에도 제게 덤비던 아들이 아닌가.

단연코 반항 한번 한 적 없던 소중한 아들이었는데…….

‘속상해서 정말…….’

제게 눈을 부라리며 위협하던 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민경애는 심장이 저릿했다.

친구들 앞이었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상생 프로젝트 반응이 엄청 좋더라.”

“삼현이 그간 공익적인 사업은 배제했으니 더더욱 반기는 거지. 도 상무가 삼현의 미래를 올바르게 이끌 거라고 다들 긍정적으로 평가해.”

“회장님께서 훈수를 잘 둔 모양이야.”

“회장님이 훈수 둘 여유가 어디 있니? 우리 도 상무야 어릴 때부터 워낙 뭐든 잘해서 우리 부부는 관여하지 않아.”

민경애는 울렁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친구들의 극찬에 내숭 떨었다.

두 번 다시 그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으니.

아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과정을 겪든 서은재만 내쫓으면 될 일.

“그러면 경애 너는 그 며느리랑 재결합하겠다고 하면 선뜻 허락할 거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별수 있니? 어차피 아들의 삶은 제 것이고.”

“와, 넌 정말 대단하다.”

“경애야 예전에도 그랬잖아. 도 상무 같은 아들을 어떻게 하청기업 딸이랑 결혼시키니? 나 같으면 초장에 그 결혼 파투 냈어.”

“그만들 하고. 맛있게 먹기나 해. 영은이 너도.”

민경애는 시커먼 속내를 감추며 여느 때처럼 우아한 가면을 썼다. 입술이 길게 휘는 미소가 정원수의 나뭇잎처럼 싱그러웠다.

***

“…네, 목포 시장님께서 상생 프로젝트에 흔쾌히 협의하셨습니다. 삼현은 섬을 안전한 환경으로 재정비하고, 의료봉사 활동하는 의료진들께 최선의 편의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자네가 애썼군.]

“일정엔 맞춰주실 수 있습니까?”

[지원자들이 상당수라 염려 말게. 좋은 일에 보탬이 되어야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강윤은 의성대 원 교수와의 통화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는 호석을 올려다봤다. 호석이 결재 끝난 바인더를 챙겨 들며 말했다.

“상무님, 오토바이 운전자 찾았는데요, 그 사람 심부름센터 직원이었습니다.”

“그래?”

“예, 이거.”

호석이 책상에 올려놓은 사진엔 검지로 허름한 건물에서 나오는 남자가 담겨 있었다. 강윤이 포착했던 왼팔의 용 문신이 동일했다.

“이 심부름센터가 어디야? 가보지.”

“상무님께서 직접이요? 위험하세요.”

“일단, 가자.”

강윤은 거침없이 슈트 재킷을 걸치며 상무실에서 나갔다. 호석은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강단을 꺾을 순 없었다.

***

“상무님, 허락받을 일이 있는데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눈치 보던 호석이 입을 열었다.

“제가 혼자 조사하기 버거워서 강력계 경찰 출신의 사설 업체를 고용했습니다. 사실 오토바이 운전자도 그분이 찾아줬습니다.”

“어쩐지 빠르다 했다.”

“아무래도 사모님께 일어난 일이 께름칙해서요. 행여 사모님 신변이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사모님 안전이 무조건 우선 아닙니까?”

강윤의 핀잔에 호석이 열렬히 호소했다.

“사설이 길고.”

“예, 암튼 제가 그분도 불렀습니다.”

“어디 계셔?”

“저기. 진즉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허름한 세차장과 머지않아 무너질 것 같은 폐건물의 앞마당에 세단이 정차했다.

호석이 가리킨 방향에 과연 시동이 걸릴까 싶은 낡아빠진 지프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강윤은 망설임 없이 세단에서 내렸다.

“상무님!”

기함한 호석이 외치며 부랴부랴 따라 내렸고, 지프의 운전자도 모습을 드러냈다.

“저분 맞나?”

“예.”

지프의 운전자를 턱짓하자 호석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대답을 듣기 무섭게 강윤은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이동했다.

두 남자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흙먼지가 날리는 앞마당에서 대립하듯 마주 섰다.

“제 비서가 고용했다고요.”

“예, 아주 훤칠하십니다. 도강윤 상무님 맞으시죠?”

“네.”

“반갑습니다. 명(名) 탐정사무소, 이인규입니다.”

이인규는 곱슬곱슬한 머리에 통통한 체형으로 능글능글한 태도의 소유자였다.

강력계 경찰 같은 이미지가 전혀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울 정도로 부리부리했다.

“명탐정이신가 봅니다?”

명함에 새겨진 상호를 읽은 강윤은 탐탁지 않았다. 스스로 뻗대는 지칭이 못내 미심쩍었고.

“심히 허세죠?”

이인규가 쑥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직원이 제 허락 없이 뽑은 명함인데, 돈 들었으니 새로 찍을 수도 없고, 허허.”

“탐정님으로 불러드려야 합니까?”

“업무 보안상 이 팀장으로 불립니다.”

“네.”

선한 눈웃음에도 냉철한 강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격이 좁혀지지 않자, 인규가 실없던 웃음기를 지웠다.

“각설하고, 본론을 말씀드리죠.”

그의 손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전달되었다.

“제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강윤의 눈썹이 실룩했다.

“삼현그룹 회장님 사모님이시죠? 상무님의 어머니이신 민경애 여사님.”

사진 속 인물은 오토바이 운전자와 동일 시각에 주차장에 있는 민경애 여사였다.

“상무님은 여사님께서 오토바이 운전자와 모종의 거래를 한 후, 서은재 사모님을 위협했을 거란 의혹으로 조사를 맡기신 거죠?”

“그렇습니다.”

강윤은 인정했다.

“예, 어머니를 배제할 수 없는 정황이죠. 누가 봐도 그렇습니다.”

“맞습니까?”

“틀리셨습니다.”

인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다음 장을 건넸다.

“주인공은 이분이죠.”

블랙박스 영상의 사본이었다.

바로 이곳, 심부름센터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이어 다음 장은 볼일을 끝나고 나오는 사람의 정면이었다.

“…….”

강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등장인물을 들여다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화사한 화장으로 자신을 뽐낸 사람은 임현서였다.

“임현서. 건우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시죠? 도강윤 상무님과는 친구이신?”

“네.”

은재를 해하려던 사람이 현서였다니…….

자신의 안일한 대응이 잘못되었음을 강윤은 자각하며, 절절히 후회했다.

진작 처리했어야…….

“이곳은 정식 사업자가 아닌 불법 사업장입니다. 막말로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나쁜 짓도 가능하죠.”

“청부살인을 말씀하는 겁니까?”

“예.”

만약 미리 파악하지 않았다면….

섬뜩한 사념으로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힐끗, 칠이 벗겨진 심부름센터 간판을 올려다보며 인규가 말했다.

“단순히 심부름센터를 방문했다는 점으로, 청부를 의뢰했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그것이 폭력이든, 살인이든 말이죠.”

이인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무엇이든 물증이 있어야겠죠?”

“그렇겠죠.”

“일단,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원하던 바입니다.”

강윤은 고민 없이 고갯짓했다.

“저희가 들어가도 돼요? 칼 들고, 도끼 들고, 막 그런 놈들 있는데 아니에요?”

겁 많은 호석이 질겁했지만, 강윤과 인규는 노상 들락거리는 곳처럼 태연하게 건물로 진입했다.

“혹, 들이받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음껏 하십시오.”

대범한 강윤의 응수에 인규가 눈썹을 들썩하며, ‘다한다 심부름센터’의 철문을 노크 없이 벌컥 열었다.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불륜 현장 잡아드립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벽면의 현수막이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탁한 담배 냄새가 그득한 공간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칙칙한 소파에서 카드를 하던 두 명이 습관적인 인사를 했고, 한 명은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귀를 파대다가 넌지시 넘겨봤다.

“인규 형님?”

“껄떡아. 오랜만이지?”

이인규가 스스럼없이 인사하자, 껄떡이라 불린 남자가 커다란 중역 의자에서 심드렁하니 일어났고, 소파의 두 명도 으스스한 기운으로 일어섰다.

일면식 있는 분위기라 강윤은 상황 파악을 위해 잠자코 대기했다.

“불법 사무소를 야무지게 꾸며놨네. 제법 때깔이 난다.”

“형님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형사 일 그만두고 개인 사업한다던데?”

“내가 두루두루 다녀. 왜? 뒷구멍으로 하도 구린 짓거리를 해서 찔려?”

“용건이나 밝혀요. 남의 업장 와서 괜한 시비 걸지 말고.”

껄떡인 눈알을 부라렸지만, 인규는 여유롭게 어슬렁거렸다. 슬슬 소파로 이동한 그가 바짝 경계하는 놈 중 한 놈의 팔뚝을 움켜쥐어 토시를 확 내렸다.

푸르고 붉은 용 문양이 온전히 드러났다.

“시발, 남의 몸을 왜 함부로 건드려!”

팔뚝의 용이 꿈틀거리더니,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인규를 밀쳐냈다. 그러곤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일순 강윤이 움직였다.

놈의 팔목을 잡아채어 뒤로 꺾으며, 소파 등받이에다 밀어붙여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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