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45화 (46/84)

45.

“싫어!”

폴짝.

스스럼없이 그녀의 몸을 안아 들려는데 강윤의 행동에 은재는 전기 충격기 맞은 개구리처럼 벌떡 일어났다.

기력 없어서 흐느적거리더니만, 여느 때보다 기만하고 날렵하게 시트로 자신의 몸을 돌돌 말고서 도주했다.

“혼자 씻을 거야. 따라오기만 해!”

그러곤 욕실 앞에서 엄포를 놓더니 냉정하게 문을 쾅! 닫고 잠금쇠까지 단단히 눌렀다.

‘귀엽잖아.’

강윤은 너무나 귀여운 서은재의 모습에 헐크처럼 저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불끈거렸다.

“픽.”

가까스로 억누르는 그의 입매에 행복한 웃음이 맺혔다.

***

은재와 강윤은 본인들이 소파와 침대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은 호텔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야 자각했다.

“자정이 넘었는데?”

“벌써?”

늦은 시각이라 호텔 라운지건 룸서비스건 운영시간이 모두 끝나 버렸다.

“아.”

“왜? 어디 아파?”

은재는 갑자기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아랫배를 감쌌다. 화들짝 놀란 강윤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불안하게 내려다봤다.

‘흥.’

본인이 심하긴 했나 보지?

“막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니까 극심하게 허기 져.”

“허.”

은재의 엄살에 어이없는 강윤이 실소했다.

“가자.”

그러곤 망설임 없이 프런트로 이동하여 체크아웃하고서, 그녀를 자신의 세단에 태웠다.

세상이 잠든 시각이라 도시는 적막한 고요에 묻혀 있었다.

“어디 가려고?”

“서은재를 굶길 수야 없지.”

“이 시간에 하는 데가 있을까?”

“어디든 휘황한 곳이 있으면 들어가자.”

강윤의 가뿐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로 저편에 휘황한 네온사인이 포착되었고, 주저라는 걸 모르는 대범한 남자로 인해 그들이 진입한 곳은 클럽이었다.

“나 클럽은 처음인데.”

“…….”

당황한 은재와 달리 강윤은 한껏 여유로운 태세로 깍듯한 MD가 안내해 준 2층 VIP 라운지로 이동했다. 그 때문에 은재의 심기는 뾰족해졌다.

이 남자가 어디서건 당당한 건, 익숙해서일까?

태생적으로 자신감이 넘쳐서일까?

“클럽에 자주 다녔나 봐?”

“응?”

강렬한 비트의 클럽 음악 때문에 들리지 않는지 눈썹을 으쓱한 강윤이 은재의 옆으로 오더니, 스스럼없이 그녀의 귓가에다 입술을 붙였다.

“뭐라고?”

사람들이 많은 와중에 밀착 강도가 높아 은재는 긴장했는데, 흥에 취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클럽 많이 왔냐고.”

“…흠.”

콧잔등에 주름을 만든 강윤이 속닥이듯 귓가에다 실토했다.

“나도 처음이야.”

씩, 늘어나는 반달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하.”

낯선 세계에서조차 독보적인 포스와 압도적인 비주얼의 도강윤이라, 은재는 말문이 막혀 코웃음만 흘렀다.

얼마 후, 그들의 테이블에는 화려한 데코를 자랑하는 음식들이 깔렸다. 술은 클럽과 어울리지 않는 와인과 함께.

“이렇게나 많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많이 먹어. 맛있는 건 죄다 가져오라고 했어. 서은재 배고프면 안 되지.”

“이걸 다 먹었다간 내일 아침엔 탱글탱글 굴러다닐 거야.”

“걱정하지 마. 밤새 운동하며 소화하면 돼.”

“응?”

무슨 운동?

의아해서 되물으려는 찰나, 강윤의 눈썹이 천연덕스레 들썩였다.

“…허!”

이 남자!

체력 보충을 해놓고 괴롭히려고!

발끈한 성질이 올라와 매섭게 노려보자, 그가 능청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은재의 입에다 치즈 카나페를 넣어주었다.

“먹어.”

“앙.”

배고픈 은재는 날름 받아먹었다.

“아, 나 진짜 배고팠구나.”

자신의 본능에 우스웠지만, 은재는 도강윤의 흐뭇한 눈빛을 받는 게 기분 좋았다. 젊은 열기를 발산하는 1층을 관망하며 열심히 허기진 배를 채웠다.

“유학 시절에 임현서랑 만난 적 없어?”

달콤하고 쌉싸름한 와인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꺼냈다. 도돌이표처럼 처음으로 되돌아온 화제에 강윤이 미간을 모았다.

“아직도 의심해?”

“의혹은 싹을 잘라야지.”

“그래, 마음껏 물어봐.”

“임현서는 과연 뇌 구조가 어떻기에 둘이 살았다는 얘길 함부로 지어내나 싶어.”

와인글라스를 내려놓고 그를 똑바로 보려 은재는 허리를 비틀었다.

“둘이 웬만한 집 자제들도 아니니, 굉장히 파격적인 스캔들로 퍼질 수도 있잖아. 그걸 원했던 걸까?”

“어느 정도는. 그리고 네가 섣불리 말을 옮기지 않을 걸 알았을 거야.”

“허언증처럼 제 소망을 현실로 믿은 건지도 몰라. 미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의 접점으로.”

“그런 접점은 있을 수 없어.”

강윤이 반박했다.

“임현서와 유학 시기도 차이가 있었고.”

핸드폰으로 북아메리카 지도를 검색하더니, 은재에게 확대해서 내 보였다. 그리고 검지로 북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를 가리키며 부연했다.

“내가 다녔던 예일대는 코네티컷주. 그리고…….”

그의 손끝이 평행을 이루는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현서는 여기, 캘리포니아주에서 유학했어. 비행 직항 시간만으로도 대략 7~8시간쯤?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가늠돼?”

“견우와 직녀만큼 머네.”

가본 적 없지만, 부산을 왕복으로 다녀야겠구나 싶어서 은재는 깔끔하게 납득했다.

“또 의심스러운 거 있어?”

“다음에 물을게.”

“있다는 거야?”

“당장은 없지만, 조만간 있을 것 같아.”

다정한 남자는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싶은 듯했지만, 은재는 도도하게 굴었다.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앞으로도 딱히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흠.”

찡긋.

못마땅한 강윤이 이맛살을 구겼다.

불쑥, 고개를 숙인 그가 은재의 콧방울을 살짝 깨물었다.

날카로운 치아에 닿자마자, 아프진 않았으나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아파.”

깜짝 놀란 은재는 엄살을 피웠다.

의연히 눈꺼풀을 내리깐 강윤이 야릇한 미소를 장착했다. 그러곤 은재의 뒷덜미를 큰 손으로 감싸더니, 콧잔등에 있던 입술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차디차면서 촉촉한 입술이 은재의 입술을 달콤하게 덮쳤다. 살포시 가해진 압력으로 은재는 자연스레 입술을 벌리며, 제 입안으로 파고드는 따스한 온기를 받아들였다.

다이내믹한 열정이 생생한 공간에서, 숨소리마저 삼켜 버릴 순간을 두 사람은 공유했다. 서로의 숨결을 흡입하며 관능적인 교감을 나누며 키스를 주고받았다.

은재의 입안을 보드랍게 취하던 강윤의 입술이 서서히 떨어졌다. 허스키하게 쉬어버린 저음으로 그가 유혹하듯 속삭였다.

“소화하러 갈까?”

“…쿡.”

은재는 숨소리처럼 웃으며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끄덕.

***

민경애는 그녀의 귀를 즐겁게 하는 클래식을 들으며, 화창한 오전의 햇살이 투영하는 온실에서 화초를 다듬었다.

“여사님, 사모님들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알았어.”

온실로 들어선 안 비서가 정중히 말했다. 민경애는 자신의 매무시를 다듬고서 오찬이 준비된 정원으로 나갔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새삼, 돌아가면서 하는 모임인걸.”

성미로부터 화사한 백합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민경애는 우아한 미소를 머금었다. 뒤편에 있던 영은이 한지로 정성스레 포장된 액자를 내밀었다.

“나도 준비했어. 선물이야.”

“어머, 어떤 작품이니?”

미술품 애호가인 민경애는 뜻밖의 선물에 화색이 돌았다. 영은이 도도하게 턱을 올리며 붉은 입매를 늘렸다.

“풀어봐.”

“궁금해라.”

뒤편에서 대기하던 안 비서가 속히 곁으로 와서 액자를 들며 보조했다.

포장을 벗겨낸 민경애는 멋진 구도와 조화를 이루는 색감의 사진에 미소를 지었다.

“사진이네? 작가가…….”

사진의 하단을 확인한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었다.

필기체 사인의 영문은 ‘mido’였다.

“내 특별히 로마 출판사로 주문 제작해서 항공편으로 받았어. 엄연히 시어머니인데, 며느리 작품 하나 정도는 소장해야지.”

“며느리라니….”

간사스러운 생색에 민경애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둘이 재결합한다면서? 공식 석상에서 연인 선포한 후에 업계에도 소문이 파다해. 그런데다 얘…….”

영은이 영문 모르는 성미의 옆구리를 호응하라는 듯 쿡 찌르더니,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리며 호호호 웃었다.

“며칠 전에 둘이 우리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었다더라?”

“뭐?”

민경애는 경악했지만, 철저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안 비서에게 눈짓했다. 안 비서가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너희 호텔 매뉴얼엔 이용고객에 관한 비밀엄수 조항도 없나 보다.”

“그게 아니라….”

민경애의 쌀쌀맞은 일침에 영은이 비밀 얘기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종훈이가 제 아버지한테 졸라서 호텔 스위트룸 하나를 제 것 삼지 않았니. 근데 갑자기 집으로 왔더라고. 도강윤 상무가 급히 룸을 찾아서 제 룸을 내줬다나?”

“도 상무가 왜?”

“왜겠니? 호텔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 너희 며느리도 왔대. 그러고 나서 스위트룸으로 갔으면 뻔하지 않니?”

서른한 살이나 먹은 놈이 입단속은 못 하고, 제 엄마한테 구구절절 잘도 지껄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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