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뻐근한 몸도 불평불만이 그득했지만, 은재는 말해주지 않으면 목을 졸라 버리겠다는 듯 그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왜 젖었는데?”
“정신 차리려고 생수를 부었어.”
“스스로?”
“가물가물한 정신을 깨워야 임현서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한쪽 눈을 찡긋하는 표정이 얄미울 정도로 섹시했다. 은재는 이끌리듯 그의 뺨을 제게로 당겨서 쪽 입을 맞췄다.
“내가 구조해 줄 걸 그랬네.”
“괜찮아.”
그가 씩, 묘한 미소를 머금더니 부드럽게 은재의 허벅지를 잡았다.
“지금 구해주면 돼.”
그러더니 불쑥 당겨서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 휘청하는 은재의 허리를 탄탄히 감으며, 동시에 얼굴을 묻었다.
“어맛!”
놀라서 탄성을 질렀지만, 은재는 더는 삼천포로 빠지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몇 분도 안 되어, 그녀 자신도 갈증에 목말라 갖고 싶다는 듯 그의 슈트 재킷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요구를 읽은 강윤이 귀찮은 슈트 재킷을 벗고, 자신의 셔츠도 가뿐히 벗어 던졌다.
서른한 살 남자의 농익은 몸은 야성적인 색기마저 흘렀다.
근육이 과하지 않은, 탄탄한 상반신이 시야를 희롱했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다부진 어깨, 촘촘한 음영이 드리워진 가슴팍, 호흡할 때마다 여릿하게 들썩이는 초콜릿 복부.
은재는 홀리듯 그의 아름다운 몸을 손끝으로 훑었다. 그녀의 손길이 지나칠 때마다 강윤의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팽팽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면서 그의 입술은 은재의 몸을 탐했다.
영역 표시하듯 그가 핥으며 지나간 살갗에는 붉은 흔적이 남았다. 자근자근 물어대는 그의 입술은 흥분 어린 열기를 퍼트렸다.
“……이렇게 구해주면 돼?”
“그럼.
은재는 이 세상에 그가 전부라는 듯 강윤을 품었으며, 강윤은 자신은 오롯이 은재의 것이라는 듯 은재를 안았다.
“너만이 날 구할 수 있어.”
남녀가 이룰 수 있는 사랑의 몸짓은 고결했다.
신체의 구석구석에 잠재되어 있던 세포들이 들끓었으며, 팽창하는 풍선처럼 심장도 격렬히 뛰었다.
설렘과 떨림.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
강윤과 은재의 손이 서로를 의지하듯 깍지를 꼈다.
매듭짓듯이 손가락과 손가락을 얽고서, 오롯이 서로의 체온을 합체했다.
강윤은 자신을 제어하지 않았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잘못으로 서로에게 등 돌렸던 시간이 억울했다는 듯이 무섭도록 질주했다.
격하다시피한 감정의 해소는 그들을 에워싼 공기도, 서로 맞닿은 체온도, 서로에게 맞물린 숨결도 뜨겁게 달궜다.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서로에게 몰입하고 서로를 느끼는 이 온전한 결속이 전부일 뿐.
“서은재.”
“…응.”
“우리 둘 사이에 협상할 게 있어.”
이 와중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뭐?”
“앞으론 먼저 묻는 거야.”
“아…….”
“정황 파악 없이 오해하지 않기. 알았어?”
아니!
이런 협상은 비즈니스룸에서나 해야지요!
스위트룸의 소파에서, 그것도 이런 상태로 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타결할 거지?”
반발하고 싶었지만, 강윤의 표정은 한없이 진중했다.
만약 협상을 타결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한 결의마저 내보였다.
“……!”
그걸 증명하듯이 강윤이 몸짓으로 열렬한 의사를 밝혔다.
버겁지만, 좋기도 했기에.
이까짓 결정쯤이야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억울했다.
모름지기 협상 타결은 함부로 하면 안 되기에.
“안 할 거야?”
강윤이 종용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은재가 버티자,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돌연.
“……!”
그가 전력의 힘을 과시했다.
소파가 들썩일 만큼.
헤라클래스도 아니건만.
“알았어…….”
강윤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은재는 가까스로 웅얼거렸다. 그를 붙든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신체의 감각만 뚜렷했다.
“뭐라고?”
나쁜 남자.
들었으면서!
“알았다고! 할게!”
성질 난 은재가 꽥 소리를 지르자, 그의 입술에 충만한 미소가 번졌다.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라, 은재는 모났던 심기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얄미워.”
그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불퉁거렸다.
쪽.
그리고 그의 입술에 입 맞췄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입맞춤이 기폭제가 된 양 강윤이 폭주했다.
“……뭐야.”
굶주린 짐승이나 진배없었다.
“타결했잖아.”
“그것과 별개로 좋으니까, 멈출 의향은 없어.”
“나쁜…….”
놈.
다시금 불만이 나왔다.
대체 왜 ‘적당히’를 모르냐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지는 짜릿한 쾌감에 은재는 흐느끼듯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마침내 은재는 경련했다.
“…….”
은재의 입에서 무언의 소리가 뻐끔거렸다.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격렬한 감각을 초래하는 남자는 지나치게 해로웠다.
뼛속이 시릴 지경이었다.
‘아, 어질어질해.’
은재는 뒤로 축 늘어졌다.
뇌의 모든 회로가 하얗게 탈색된 것 같아서 꼼짝할 수 없었다.
불쌍한 소파 또한 한숨 돌렸다. 고급 원단마저 너덜너덜해진 기분을 맛봤으리라.
그런데……
이 빌어먹을 남자!
강윤은 정지하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그녀를 들어 올리며, 자못 도발적인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리고……
“도강윤!”
은재는 격렬하게 성질을 냈다.
나른했던 눈이 번쩍 떠졌고, 소파가 들썩 반동했다. 미끌미끌한 그의 어깨를 그러쥐었으나, 맥없는 손바닥이 주르륵 풀렸다.
“싫어?”
열기에 들뜬 강윤의 질문에 은재는 두 눈을 꽉 감은 채 도리질했다.
“…아니.”
이 와중에 싫다는 소리는 안 나오지.
참 나.
“픽.”
옅게 웃은 강윤이 은재의 팔을 들어 자신의 목덜미에 두르도록 도움을 줬다.
자신을 지탱하라는 의미였다.
그의 뜻에 따라 은재는 불안정한 몸을 그에게 맡겼고, 강윤은 단단한 지지대 역할에 충실했다.
뜨겁고 버거워서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솟았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래도 은재는 입술을 꽉 깨물고서 참아냈다.
심해를 가르는 다이버처럼 그녀의 몸속에서 유려한 몸짓으로 턴 하며 아름답게 유영하는 남자의 몸놀림에 홀린 것처럼 빠져들었다.
‘아, 좋아.’
어떻게 이런 느낌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걸 좋아하다니.’
어느 틈에 야한 느낌의 탄성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은재는 그의 목을 굳게 안았다.
두 사람의 팀워크는 대단했다.
합이 잘 맞는 팀은 최상위 성적을 자아내었으며, 충만감과 성취감이 뒤따랐다.
“아프면 말해.”
“응?”
그가 주의 주듯 읊조렸다. 의아해서 갸웃하는 찰나.
강력한 힘에 은재는 그를 억세게 붙들었다.
은재의 발끝이 나약한 조류의 날갯짓처럼 파닥거렸다.
괜히 주의 준 게 아니었다.
왜…
이 남자는 지치지 않는지.
출중한 비주얼과 영민한 두뇌, 더불어 월등한 재력에다 절륜하기까지. 이런 건 반칙 아닌가.
강윤의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린 땀이 은재의 목덜미로 투둑투둑, 떨어졌다. 땀으로 뒤범벅된 그의 몸은 지독히 퇴폐적이며 관능적이었다.
“은재야.”
그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첫 시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재시작에 은재는 또다시 까무룩 기절할 판이었다.
소파는 대체 무슨 죄야.
뒷다리가 부러지면 어쩌나.
기막혀서 혀를 내두르는 은재와 비슷한 심정으로 소파 또한 진저리를 쳐댔다.
“서은재.”
열대야 같은 도강윤이었다.
은재는 자신이 연약한 여자라는 사실을 새삼 체감하며, 자신을 휘감은 뜨거운 태양 같은 남자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끝날 기미 없는 그들에게 스위트룸의 은은한 조명도 숨죽인 채 집중했다.
컴컴한 통창도 소파에서 부둥켜안은 채 오롯이 서로에게 몰입한 그들의 모습을 비췄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이 밤이 언제 끝날지 모를 듯한 숨 막히는 결합이었다.
***
쪽.
강윤은 침대에 지푸라기처럼 널브러진 은재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엎드려 있는 그녀가 유혹적이라 그대로 침범하고 싶었지만, 벌써 소파에서 두 차례, 침대에서 또 한 차례 나가떨어진 그녀인지라 엄청난 욕설을 들을 듯해서 참았다.
그녀를 간절히 원하는 제 몸은 아쉽다고 불끈불끈 성화지만.
일단, 시간은 많으니까.
“졸려?”
그런데도 미련을 못 버리고 그녀의 귓불에도 입맞춤하며 은근슬쩍 물었다.
“안 졸리면 어쩌려고?”
“어쩔까?”
의심의 눈초리로 흘기는 그녀에게 미묘한 미소를 그렸으나 은재는 그마저도 힘겹다는 듯 턱을 제 팔뚝에다 붙였다.
“기운 없어. 배고파.”
“배고파? 저녁 안 먹었어?”
“어, 누가 스카이라운지로 오라기에 저녁 사주는 줄 알고….”
“내 죄가 크네.”
강윤은 반성하며 이제야 은재의 곁에서 떨어졌다.
“나가자. 늦었지만, 맛있는 거 사줄게.”
“씻을 힘도 없어.”
“내가 씻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