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35화 (36/84)

35.

“그래.”

은재는 선뜻 그의 핸드폰에 제 번호를 눌러줬다. 하준은 자신에게 격을 두지 않는 그녀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또 다른 결심을 했다.

너를 이제야 만났으니…

나는 이번엔 널 놓치지 않을 거야.

내게 기회를 줘.

은재야.

“수고해.”

“그래, 연락할게.”

손짓하는 그녀에게 인사하면서도 하준은 제자리에 붙박인 채로 응시했다. 돌아선 은재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사라졌다.

“응?”

그제야 하준은 VIP 병동으로 향한 엘리베이터임을 인식했다.

동시에 아버지 원 교수를 주치의로 둔 도성만 명예회장이 입원 중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왜?”

의문이 들었다.

도강윤과 이혼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설마, 재결합하려는 건…. 그래서 귀국했나?’

불길한 추정으로 가슴팍이 따끔하니 쓰렸다. 하준은 아랫입술을 질끈 맞물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기회는 있어. 이미 재혼한 것도 아니잖아.’

하준은 발길을 조급히 틀었다.

도강윤과 서은재의 관계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서둘렀다.

***

“할아버지는?”

호석과의 통화를 끝내고 할아버지 도성만의 병실로 강윤이 들어섰을 때는 은재 혼자였다.

은재는 간병인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았던 부분까지 꼼꼼하게 치우는 중이었다.

“주치의 교수님과 함께 치료실 가셨어. 매일 꾸준히 받으시던데, 어떤 치료인지 알아?”

“글쎄.”

그런 치료가 있었나?

강윤이 섣부른 대답은 하지 않고 에둘러대자, 은재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이상하게 말씀을 안 해주시던데…….”

아하.

이 또한 중환자 코스프레의 일종인 모양이다.

원 교수와 함께 갔다는 말인즉, 교수님 포섭은 끝난 듯하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그렇다기보단… 치료 내용을 알아봤자 네가 속상할 거잖아. 그래서 상세히 말씀 안 하시는 거겠지.”

은재는 정곡을 찔렀지만, 허술하게 넘어갈 강윤이 아니었다. 의연히 은재의 어깨를 잡아 소파로 이끌어다 앉혔다.

“모른 척해. 할아버지 심중은 더욱 안 좋으실 테니.”

“알았어.”

은재가 수긍했다.

“많이 나쁘신 거지?”

의심의 싹은 잘라냈지만, 은재의 수심은 깊어졌다.

“서은재.”

강윤은 못내 미안하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은재가 예뻤다.

“그러니까, 가시는 날까지 우리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할아버지는 분명히 오래오래 사실 거니.

우리도 오래오래.

“난 도강윤과 백 퍼센트 좋게 지낼 자신은 없어.”

“음?”

돌연 은재가 다소 냉담하게 반박했다. 어이없는 강윤의 표정을 읽으면서도 도도하게 눈꺼풀을 떴다.

“할아버지 앞에선 최대한의 노력은 하겠지만.”

“갑자기 왜 이러지?”

“뭐가?”

“우리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몇 번을…….”

“쉿.”

분한 나머지 강윤은 평소의 냉철함을 잊었다. 떠벌리듯 잠자리를 언급하며 항의하려는 그의 입술을 은재가 단호히 검지로 막았다.

“잤다고 해서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건 아니잖아. 난 아직 도강윤 안 믿어.”

“흠, 날 시험에 들게 하는군.”

강윤의 눈매가 실눈이 됐다.

이런 법이 있나.

째, 라고 아침에 유혹까지 했으면서.

“그러니까 도강윤 씨.”

언짢은 심기를 읽은 은재가 강윤의 턱을 당기며 입술을 도발적으로 늘렸다.

“나한테 잘해야 할 거예요.”

이 앙큼한 여자.

강윤은 서슴없이 제 코앞의 입술을 머금었다.

“음!”

기습적인 키스에 은재가 파닥거렸지만, 아예 그녀의 목덜미를 큰 손으로 감싸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들었다.

그리고 벌린 입술 틈새로 제 혀를 밀어 넣어, 자신을 애태울 작정인 은재의 혀를 낚아채어 빨아들였다.

마치 응징하듯이 거칠게.

‘미쳤나 봐, 병원에서.’

행위보단 장소가 문제였다.

기함한 은재는 그를 떼어내려 했지만, 어지간해선 물러나는 법 없는 남자는 약 올리는 것에 대해 항의하듯 다소 포악스러운 키스를 퍼부었다.

아예 먹어버릴 기세였다.

호흡마저 앗아갈 태세로 깊게 빨아들이며, 혀뿌리가 얼얼할 정도로 격렬히 취했다.

그 와중에 단단한 몸체가 체중을 가하는 통에 은재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무너졌다.

중력의 힘으로 가라앉는 은재의 몸을 강윤이 큰 손으로 받치며 결단코 떨어질 수 없다는 듯 상반신을 밀착했다.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하며 은재의 정신을 블랙홀에 빠져든 듯 멍하게 했다.

계속 부족하다는 듯 갈증에 허덕이는 키스를 받다가 저도 모르게 애타는 신음을 하고 말았다.

“음.”

순간, 강윤의 앙큼한 손이 옷 속으로 침범했다.

참았던 열망을 폭발하며 살살 희롱하는 그로 인해 은재는 함락될 위기였다.

“…음. 음.”

과도한 흥분이 덮쳤다.

본능적으로 목덜미를 뒤로 휘면서도 은재는 자신의 반응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녀의 솔직한 태세가 신호탄이 되어버린 듯 강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쑥.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아래로 사라졌다.

“앗.”

은재는 깜짝 놀랐다.

“아…… 안 돼… 도강윤.”

은재는 본능적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밀어내려 잡은 것이 분명한데….

어서 밀어내야 하는데…….

거침없는 열기는 불안하면서도 아릿한 쾌감이 온몸을 꿰뚫었다.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에 제게 집중되어, 전신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대범해졌다.

어젯밤처럼, 새벽녘처럼, 오늘 아침처럼 그를 원하고 있었다.

강윤 또한 제 신체를 접착제처럼 붙이며 자신만의 특출난 기술로 화려한 향연을 이어갔다.

그때.

“……두런두런.”

병동 복도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앗.”

소스라치게 질겁한 은재는 그의 어깨를 팡팡 때렸고, 기민한 남자는 삽시간에 은재의 매무시를 다듬고서 반동하듯 벌떡 일어났다.

쓱.

그가 상반신을 비틀며 제 입술을 닦고, 은재는 엉망인 매무시를 다듬으며, 다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정수기로 간 찰나.

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은재야,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아, 강윤이도 왔구나.”

“도 상무님도 계셨군요.”

도성만 회장이 앉은 휠체어를 밀며 원 교수가 들어섰다.

“오셨어요!”

얼른 차디찬 냉수 한 잔을 들이켠 은재는 지레 찔린 나머지 여느 때보다 과장되게 톤이 올라갔다.

‘티 나게 굴지 말자.’

울렁울렁한 심장을 추스르고, 서둘러 도성만 회장의 휠체어 손잡이를 넘겨받았는데, 다행히도 어르신들은 그녀의 이상 증후를 눈치채지 못했다.

“네.”

그 몫에는 강윤의 역할이 있었으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그는 터럭만큼도 흐트러짐 없이 원 교수와 정중히 악수했다.

좀 전까지 그녀의 품에서 야한 짓거릴 벌인 남자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체. 하여간 대단한 남자야.’

은재는 기막혔다.

***

‘아.’

흥분했다.

매사 철저하고 공사 구분이 명확했던 강윤은 적잖이 당황했다. 단순히 그녀를 혼내줄 요량으로 시작한 키스건만.

저도 모르게 과하게 몰입하여 병원이라는 장소를 망각하고 말았다.

만일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옷가지를 벗어버릴 정도로.

그만큼 은재의 입술과 혀는 맛있었고, 야들야들한 은재의 몸은 그를 정신없이 불태웠다.

“일정으로 바빠 삼현 VIP 발표회는 못 갔지만, 상생협력 프로젝트에 대해선 들었습니다. 아주 뜻깊은 프로젝트더군요.”

“의성대 측에서도 저희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시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원 교수와 업무적 대화를 주고받는 지금 이 시점까지도 뻐근한 하체의 기운이 누그러지지 않았으니….

‘큰일이군.’

강윤은 속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의 맑은 정기’라도 읊어야 할 판이었다.

“의성대에서 도움 줄 일이 있습니까?”

“열악한 환경의 재개발 지역이나 인프라가 형성되지 않아 고립되다시피 한 섬마을 등을 중점으로 상생 프로젝트를 추진할 겁니다. 의성대 측에서 의료봉사 등으로 참여해 주시면 어떨까요?”

“좋은 기회겠군요.”

“그렇죠? 제가 정식으로 제안서를 보낼 테니…….”

“일 얘기는 둘이 나가서 하고, 나는 은재와 쉬련다.”

이쯤에서 대화를 끝내고 은재를 낚아채어 펜트하우스로 데려가려던 강윤의 계획이 도성만의 참견으로 수포가 되었다.

“그래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제 방으로 가서 마저 얘길 나누시죠.”

“네.”

원 교수는 예의상 호의적인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생 프로젝트에 협력 의사를 밝혔다.

앞장서는 그의 뒤를 어쩔 수 없이 따르며 넌지시 은재를 일별했다.

‘피.’

얄미운 여자가 차양처럼 눈꺼풀을 내리깔며 콧방귀를 뀌었다.

‘두고 보자, 서은재.’

강윤이 전의를 불태우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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