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가지 마?”
“응.”
은재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놓았다. 그러면서 농염하게 속삭였다.
“째.”
“째?”
“응.”
다른 손은 대담하게 재킷 속으로 쓱 들어왔다. 얇디얇은 셔츠로 감춰진 그의 탄탄한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쓸며 제 혀를 쓱 넣었다.
“쿡.”
강윤의 잇새에서 웃음이 흘렀다.
그는 그녀의 달콤한 키스를 받으며, 느긋하게 슈트 재킷을 벗었다. 경건하다시피 한 우아한 동작으로 은재의 위를 덮으며, 바삐 핸드폰 메시지도 보냈다.
―못 가. 오지 마.
그렇게 강윤은 아버지의 호출을 쨌다.
***
‘맙소사.’
살결에 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다.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치던 은재는 거울 속의 제 모습에 질겁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가운을 열어 제 몸을 들여다봤다.
드러나는 목덜미와 빗장뼈 부위를 제외하고 곳곳에 붉은 인장이 찍혀 있어 뜨거웠던 관계를 여실히 내보였다.
‘이 교묘한 남자.’
키스 마크마저도 치밀하게 해놓다니….
“음.”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은재는 실눈으로 저와 대치했다.
자신이 요부가 된 양 더없이 선정적이며 퇴폐적으로 보였다.
안색도 여느 때와 달랐다. 창백하기만 했던 뺨엔 복숭앗빛으로 생기가 넘쳤고, 입술은 짙은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좋았으면서 내숭은.”
은재는 얄미운 자신을 흘겨보며 가운을 제대로 여몄다.
새삼 부끄러우면서도, 달라진 자신이 싫지 않았다. 달뜬 미소도 연신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쓱―
욕실 문을 나서는데, 길쭉한 그림자가 기다렸다는 듯 은재의 앞을 가로막았다.
“언제 일어났어?”
은재와 강윤 사이에 존재했던 거리는 밤사이 심히 좁혀져 있었다. 싸늘하던 공기는 소실되고, 아늑한 따스함이 감돌았다.
“좀 전에.”
무던히 대답하면서도 은재는 자동반사적으로 긴장했다.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으므로―씻을 때조차 얼마나 버거웠는지―그를 받아들이긴 무리가 있었다.
“잘 잤어?”
공연한 설레발일 뿐, 강윤의 전신은 멀끔한 슈트로 감싸져 있었다.
옷을 벗은 그는 황홀했지만, 슈트 차림의 그는 형용할 수 없이 근사했다.
“응.”
은재의 대답을 즐기듯 입매를 늘린 그가 그윽한 눈빛을 내리며, 부드러운 손길로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음미하듯 촉촉한 기운을 쓸며, 더러 가시지 않은 섹시함을 내뿜었다.
“나는 안 물어봐?”
“훗. 잘 잤어?”
“응. 더할 나위 없이 잘.”
비스듬히 기울어진 입술이 부드럽게 포개어졌다. 다디단 입술이 붉은 윗입술을 머금다가, 부드럽게 혀를 밀어 넣으며 다정한 키스를 했다.
쪽.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떼어지며 나는 소리가 소름 돋도록 달콤했다.
“다녀올게.”
강윤이 키스를 끝내며 다정한 미소를 흩뿌렸다.
스륵, 멀어지는 입술을 느끼며 은재는 속닥이듯 물었다.
“…기어이 가려고?”
“왜?”
피식, 나직한 웃음을 흘린 그가 반문했다. 짓궂은 손길이 스륵 가운의 목깃을 매만졌다.
“또 째?”
“아니.”
은재는 단박에 그의 가슴팍을 밀쳤다. 다소 격한 힘으로 강윤이 주춤 물러났다.
“평생 쨀 순 없잖아.”
“불현듯 그러고 싶어지는데?”
“더는 진동도 못 견디겠고.”
질척거리는 남자에게 무정히 도리질했다. 동시에 징― 징― 그의 핸드폰이 부들거렸다.
뜨거운 아침을 줄곧 방해하던 진동음.
대략 서른 번째 진동음이었다.
“그것 봐.”
은재의 투덜거림에 강윤이 능청스레 핸드폰을 줴흔들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밀었다.
[상무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됩니까!]
“내려가.”
드디어 상무님과의 연결이 이뤄진 호석의 절절한 응석이 넘어왔지만, 강윤은 짧게 끊어내고 아쉽다는 듯 은재의 뺨을 쓰다듬었다.
“나 기다릴 거야?”
“할아버지 병원에 다녀오려고.”
“언제쯤?”
“두세 시쯤?”
“알았어. 병원으로 갈게.”
“어서 가.”
은재는 성가신 물건 치워내듯 손날을 휘적거렸다. 그녀의 손날을 휙 잡아서 제게 올려, 손바닥에 키스했다. 그러고서 강윤은 나직하게 웃으며 발끝을 비틀었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즈음, 강윤은 잊었던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참, 김민서가 미도 작가의 정체를 퍼트리거나 하진 않았겠지?”
“그럴 리 없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은재가 두둔했다.
“걔가 양아치 같긴 해도 섣부르진 않아. 내 사정을 다 아는데.”
“박재민과는 친분 있는 사이인가?”
“알음알음 정도? 2년 선배인 데다 박재민은 늘 임현서와 짝꿍처럼 다녔잖아. 내심 싫어할지도 몰라. 왜 그런데?”
“별일 아니야.”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강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응수하고 펜트하우스에서 떠났다.
***
“도 상무, 아침 식사를 하자는데, 정오가 다 되어서 옵니까?”
삼현가로 들어선 아들에게 어머니 민경애의 질책이 먼저 왔다. 낯빛이 좋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받은 충격의 여파였다.
“바빴어요.”
“아무렴. 그 황당한 이벤트를 벌이느라 바빴겠지요.”
무심한 아들의 대답에 민경애가 원망스레 힐난했다.
“도 상무가 우릴 이렇게 골탕 먹일 줄이야. 서은재, 그 앙큼한 것에 홀려서….”
“제가 한 겁니다.”
“이 와중에 서은재 편을 듭니까!”
“들어가 보겠습니다.”
흥분하여 고함을 내지르는 민경애에게 강윤은 냉담히 돌아섰다.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흔들림 없이 회의실로 향했다.
탁!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도형호 회장이 서류 바인더를 던지듯 내려놨다.
“상생 프로젝트에 참여할 작가 목록이다. 이 중 적합한 작가를 추려서 진행해라.”
“참여 작가는 정해져 있는데요? 더불어 미도 작가는 상생 프로젝트의 주체입니다.”
“어디서 그따위 듣도 보도 못한 작가를 주체로 내세워!”
강단 서린 강윤의 반격에 도형호의 낯에 노기가 번졌다.
“즉시 교체하거라.”
“회장님.”
강윤은 단연코 물러섬이 없었다.
“서은재 작가는 상생협력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작가이며, 많은 팬을 확보한 글로벌 작가입니다.”
강경하게 대답하며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의 날렵한 손끝이 미도 작가의 팬들이 남긴 기록을 쭉 내렸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했다.
“미도 작가의 참여는 삼현으로선 행운입니다.”
무심결에 강윤의 손끝을 좇던 도형호의 안광이 흔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폭발적인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의 발표로 팬들은 벌써 기대심에 들떠 있습니다. 하여, 프로젝트는 물론 삼현의 기업 이미지에 많은 이점이 될 겁니다.”
“이점? 네가 기업의 이점을 거론하는 거냐?”
하지만 도형호는 자존심을 지켰다.
“그런 거창한 퍼포먼스를 벌인 속셈이 고작 연애질이면서?”
“로맨스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뭐?”
“어제의 로맨스 퍼포먼스는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왔습니다. 화제성은 곧 마케팅이고, 성과와 직결되겠죠.”
강윤의 손끝이 SNS에서 포털 뉴스로 넘어갔다.
많은 사회·경제 기사들 사이에서 삼현 상생협력 프로젝트의 관련 기사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강윤 이사 재결합?’이라는 태그와 함께.
“앞엣것에 눈멀지 말고 널리 보세요, 회장님. 무엇이 득(得)이 되겠습니까?”
움찔.
자신의 훈계를 그대로 되돌려받은 아버지의 관자놀이에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으로 임할 테니 괘념치 마십시오.”
단호한 아들의 언사에 도형호는 한결 차분해졌다.
“그래.”
태생적으로 냉정한 그는 금세 절제력을 발현하며 고압적인 눈빛을 들었다.
“연애든, 같잖은 로맨스든, 네 마음껏 놀아.”
“…….”
“건우건설과의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될 테니.”
굴복하지 않음에 대한 위압.
“너의 프로젝트처럼.”
강윤은 빈틈없는 아버지의 안광을 비껴내며 무성의하게 까닥였다.
“그러세요.”
실룩.
“나가 보겠습니다.”
사춘기에도 하지 않았던 아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도형호의 미간이 주름 잡힐 정도로 구겨졌다. 그러나 강윤은 올곧은 자세를 갖춘 채 반듯한 묵례도 하고서 회의실에서 나갔다.
***
“상무님.”
삼현가 야외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단에 오르자마자, 운전석의 호석이 짐짓 은밀히 불렀다.
“왜?”
무지근한 피로가 쌓인 강윤은 목을 조인 넥타이를 풀며 무심히 넘겨다봤다.
“호텔 프런트로 메모를 보낸 자의 핸드폰이 대포폰인 건 찾았는데요.”
“대포폰까지 사용했다고?”
“알아보니, 요즘은 대포폰은 구하기가 누워서 떡 먹기라네요. 그것보단 중요한 걸 찾았는데….”
“뭔데?”
“발신 기지국이 신화호텔이었습니다.”
“신화호텔? 그럼 그때 채종훈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던 이 중 한 명이겠군.”
“예.”
강윤의 명확한 추론에 대답한 호석의 안색이 다소 심각한 태세로 굳었다.
“CCTV는?”
“기지국 주변으로 CCTV를 확보하려 노력 중인데, 쉽지 않아요. 웬만한 장소가 아니라서 보안팀에서 꿈쩍도 안 하네요.”
“호텔로 출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