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이런.’
그저 몸풀기에 불과했다니.
히말라야 정상에서 벼락 맞은 듯한 쾌감을 선사해 놓고서는.
삽시간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드레스가 무기력하게 제 몸에서 벗어났다. 더불어 완벽한 그의 몸을 가리던 바지도 사라졌다.
“잠, 잠시만.”
당황한 나머지 은재는 더듬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를 밀어내는 손의 힘은 약했다.
“왜?”
도강윤의 옅은 허스키와 뜨거운 숨결이 가진 도발적인 관능에 묘한 긴장감과 야릇한 달뜸이 존재했다.
“서은재.”
그러곤 강윤이 단단한 몸을 밀착했다. 한없이 부드럽고 딴딴한 살결이 닿자마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난 이제 못 멈춰.”
달콤한 위협.
“잠시도 아까워서.”
강렬한 눈동자에 항복하듯 은재는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금세 숨이 차오르고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전신의 감각이 오롯이 도강윤만 의식했다.
거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고 섬세했다. 신경세포 하나하나 바짝 곤두섰고, 몸속에 잔류하는 열기가 활활 타오르듯 꺼질 줄 몰랐다.
어느 틈에 은재도 목마름에 허덕였다.
그를 만지고 싶어졌고,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의 딴딴한 등줄기를 애무하듯 매만지다가, 못 견디도록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신호 주듯 그의 목덜미를 제게로 당겼다.
“도강윤.”
은재의 심장은 미칠 것 같은 갈망을 품고 있었다.
도강윤.
당신이라는 남자를 간절히 원해.
나도.
나 역시.
그녀의 절실한 손길에 그의 척추뼈가 딴딴하게 곤두섰다.
“…서은재.”
이제 초반일 뿐인데.
폭풍우가 쏟아진 듯한 기세에 은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팽팽하게 긴장하자, 강윤의 훗훗한 숨결이 달래듯 속삭였다.
“쉬.”
은재는 강윤의 다정한 손길에 따라 숨이 찬찬히 골라졌다.
“숨 쉬어.”
은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거역할 수 없는 감각으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의 호흡을 따랐다.
“……쉬.”
“천천히 할게.”
강윤의 숨결은 달짝지근하고 다정했다.
그는 노력하고 있었다.
은재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극한의 절제력으로 인내하고 있었고, 일그러진 표정과 힘겨운 탄식도 새듯이 나왔다.
“……!”
부부생활 중에 강윤과의 경험은 다섯 차례밖에 없었던 은재였다.
그 또한 절차적인 과정에 불과했다.
교감은커녕 그를 익히기도 전에 다소 억지스럽고 강압적인 맺음이었다.
은재는 그에게 함락되지 않으려 악착같이 버텼고, 강윤 또한 시험 치르듯 끝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밤은 두 사람에게 있어 온전한 첫 밤이었다.
그 바람에 도강윤이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봉인 해제된 도강윤은 극도로 위험했다.
본인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충격적으로 맹렬했다.
대체!
어떻게 참았던 거야!
하는 불만이 절로 토해질 만큼 예상치 못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그때.
“은재야.”
그가 불렀다.
그날의 꿈결처럼.
“서은재.”
애타게, 간절하게 부르며 그녀를 찾았다.
“은재야.”
은재는 굳게 감았던 눈꺼풀을 열었다. 자신과 결속력을 다진 남자의 눈동자는 말할 수 없이 섹시하게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도강윤…….”
그녀의 손끝이 땀으로 흠씬 젖은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도강윤의 입술이 그녀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바락 그러쥐어 자신의 목덜미 뒤로 넘기고,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힘을 가했다.
이윽고.
하나.
우린 이제야 하나.
“은재야.”
도강윤의 입술이 격한 숨을 토해내는 은재의 입술을 삼키듯 머금었다.
비로소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둘만이 공존하듯이,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채움.
이 채움의 지배자는 도강윤이었다.
은재의 모든 것을 차지할 양 격하게 포위했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완벽히 소유했다.
싫지 않았다.
싫을 수 없음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야릇한 감각.
두통이나 신체적 통증과는 또 다른 감각.
“…….”
기도에도, 폐에도 격한 산소가 들어찼다. 그의 땀방울조차 흥분을 가중했다.
어째서.
이럴 수가 있을까.
죽을 것처럼, 끔찍한 상흔만 남았던 과거.
하루하루가 고통 같았던 지난날.
그 기억이 모조리 조각된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도강윤이라는 남자를 거부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도강윤을…….’
원하니 말이다.
은재는 생명줄처럼 그에게 매달렸다.
뼛속의 신경세포까지 자극하는 그만이 제 세상의 전부 같았다.
제소리조차 부끄럽지 않았다.
이 적나라함조차 우리가 하나라는, 우리가 함께라는 결속 같았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궈질 만큼.
그리고…….
그리고…….
격정적인 열감이 휘몰아쳤다.
불기둥처럼 뜨거운 전율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비로소 이 남자한테 자신을 모두 드러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마침내.
은재는 그에게 자신을 모조리 맡겼다.
그 또한 같이 느꼈다.
“은재야.”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서은재.”
도강윤의 얼굴이 은재의 어깨에 묻혔다.
제 몸보다 더없이 뜨거운 몸덩이를 느끼며, 한동안 호흡조차 할 수 없었던 막혔던 숨통을 찬찬히 열며, 은재는 기진맥진한 눈꺼풀을 닫았다.
자신을 다정히 안아주는 그에게 취하며, 밀물처럼 몰려오는 졸음으로 빠져들려고 했다.
그런데……
도강윤의 입술이 어깻죽지에 입맞췄다. 이어 야금야금 물 듯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귓불에 쪽쪽 입술을 대더니 뜨거운 치아로 부드럽게 깨물었다.
잠들려는 그녀를 깨우려는 듯한 자극.
“으흠?”
은재는 마냥 귀찮아 눈썹을 찡그리며 한쪽 눈만 떴다. 가물가물한 시야 너머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띤 입술이 있었다.
“픽.”
그리고……
“응?”
방전하기 직전의 배터리를 충전하듯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닌데. 아직 멀었는데.”
이해할 수 없어 끔벅거리는 은재의 아랫입술에 도강윤이 기분 좋게 키스했다.
그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혓바닥을 밀어 넣으며, 지치지 않는 체력을 자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힘겨웠지.”
볼멘소리를 내는 은재에게 강윤은 능청스레 대꾸했다.
“한풀이라도 하려고?”
“한이 많이 쌓였어. 본의 아니게 수절하느라.”
“허… 수절…….”
은재는 새삼 지각했다.
자신이 컴컴한 동굴에서 움트고 있던 호랑이를 깨웠음을.
“……!”
일시적인 휴식으로 충전을 끝낸 폭주 기관차처럼 그의 몸체가 레일을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대륙을 횡단이라도 할 기세로 맹렬하게.
‘아, 미쳤나 봐. 밤샐 것 같아.’
두 사람의 진정한 첫날 밤은.
그 누구도 엿볼 수 없는, 오죽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밤은.
은재의 불길한 예견처럼 밤새 끝날 줄 몰랐다.
***
“새근새근.”
깊게 잠든 은재의 입에서 고른 숨소리가 새었다. 그윽한 안광으로 들여다보던 강윤의 눈매가 얄따랗게 휘었다.
“픽.”
네 번째 접촉 도중 혼절하다시피 잠들어 버린 은재였다. 한 차례조차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날이 새어갈 때쯤이었다.
‘해도 해도 너무했나?’
굉장히, 무척, 엄청나게 아쉬웠지만, 제 불씨를 억지로 식힌 강윤은 그대로 잠들 수 없었다.
제 곁에 누워서 곱게 잠든 그녀를 바라보느라 동트는 줄도 몰랐다.
꿈만 같아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서은재가 제 눈앞에서 사라질까 불안해서.
“음…….”
아니라고 말해주듯 은재가 뒤척거렸다. 온몸이 저릿하다는 듯 오만상을 쓰면서.
‘귀여워.’
강윤의 입술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마자 양심 없는 하체가 불량하게 달아올랐다.
띠― 띠―
어디선가 알림음이 울렸다.
강윤은 덤덤히 침실 바닥을 살폈다. 마구잡이로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이 지난밤의 극렬했던 사태를 증명하고 있었다.
“흠.”
그는 일단 불량한 녀석을 빡빡한 속옷으로 가둬놓고, 그것들 틈에서 핸드폰을 찾아냈다.
―상무님, 러닝 중이시죠?
강윤의 아침 일상은 매일 오전 6시 러닝이었다. 그의 패턴을 익히 잘 아는 호석으로부터 메시지였다.
오늘은 아마 다른 운동을 할 듯한데…….
―회장님께서 삼현가로 호출하셨습니다. 조식을 함께하자 하시니, 아침 7시에 모시러 가도 될까요?
질끈.
‘밤이 기셨군.’
어제의 이벤트에 타격이 크신 모양이다.
달궈진 자갈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최선의 방어를 해야 한다.
강윤은 외출 준비에 서둘렀다. 깔끔한 셔츠에 슈트 재킷을 걸치며 침실로 돌아갔다.
“쌕쌕.”
은재는 여전히 숙면 중이었다.
빙그레, 입술을 늘린 강윤은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
“음…….”
보드라운 감촉에 은재의 눈꺼풀이 열렸다. 가물가물한 시야와 그윽한 눈동자가 마주 봤다.
“…몇 시야?”
“더 자.”
다정한 음색에 은재의 입술이 히쭉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강윤의 재킷 깃을 쓸었다.
“어디 가?”
“혼나러.”
“으흠.”
못마땅한 은재의 미간이 바짝 모였다. 두 줄의 주름에 강윤은 다시 쪽, 부드럽게 입맞춤했다.
“픽.”
설핏 웃은 은재의 팔이 높게 올라왔다. 스스럼없이 그의 목덜미를 감으며 제게로 내렸다.
“……?”
의아했지만, 강윤은 그녀의 힘에 따랐다. 제 얼굴이 가까이 내려온 그의 입술에 은재가 서서히 입술을 대었다.
유혹적인 숨소리를 흩뿌리며.
“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