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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널 원해-26화 (27/84)

26.

“진하게 해볼까?”

치명적인 그의 도발에 자극된 나머지 은재는 하마터면 입술을 벌려 그의 손끝을 핥을 뻔했다.

그의 살결을 맛보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이겨내면서도, 그의 접촉이 거북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자신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도강윤… 혹시….”

우리, 그 취한 밤에 잤어?

“응?”

“돌았어? 그만 놓아줄래?”

무심코 물으려다가, 은재는 어금니를 바르르 갈았다.

행여 잤다고 대답이라도 돌아오면 어쩌려고?

‘와우, 굉장한걸! 우리가 드디어 잤네!’

하고 감탄사라도 연발할 건가?

‘어이없어, 서은재.’

내심 자신에게 몹쓸 욕설을 퍼붓고서, 턱을 곧추세우며 뾰족하게 그를 쏘아봤다.

“놓고 싶지 않다면?”

“아주 당당하네? 언제부터 이렇게 염치없었어?”

“최근 들어서?”

“나 놀리는 재미가 붙으셨나 봐.”

“무척. 의외로 내 적성에 맞아.”

“안 어울려.”

은재는 몰인정하게 그의 가슴팍을 탁! 밀어냈다.

징― 징―

감감무소식인 상무님 때문에 속 타는 호석의 전화도 와서 강윤이 마지못해 떨어졌다.

“갈게, 집에서 봐.”

“응.”

“날 원하면 언제든 말하고.”

슬쩍 내리깐 눈빛과 미소는 놀라울 정도로 야했다.

저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지 철저히 깨우친 거다.

그의 말대로 적성에 맞고.

냉정한 그도 섹시했지만, 대놓고 선정적인 소리를 지껄이는 도강윤은 관능적인 퇴폐미를 장착했다고 해야 할까?

“꺼지세요.”

은재는 시치미를 떼며 심드렁히 고갯짓했지만, 내면엔 화기를 머금은 양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점차 자신의 의식이 도강윤한테 흡수되는 것 같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부르셨어요?”

강윤은 은재의 방패막이로써 불화살 막을 각오를 다지며 회장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10월 첫째 주로 정했다.”

아버지 도형호가 다짜고짜 말했다.

“네?”

“건우건설 임현서와 너의 결혼식 날짜.”

“허! 저도 모르는 결혼을, 제가 하는군요.”

강윤은 황당할 지경이라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도형호는 한술 더 떴다.

“이 주 토요일에 상견례가 예정되어 있으니 시간 비워두고.”

“제가 아직도 어린애로 보이세요?”

강윤은 신랄하게 반박했다.

“서른한 살이나 먹은 아들의 결혼에 왜 이렇게 목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내려놓으실 때도 되지 않았어요?”

“네가 철이 덜 들었구나.”

도형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건우건설의 사위가 되면 훗날 삼현그룹 경영에 많은 이점이 될 거다.”

도리어 아들의 어깨를 톡톡 두들기며 훈계했다.

“앞엣것에 눈멀지 말고 널리 보아라. 무엇이 득(得)이 될지.”

***

“왔어?”

퇴근 후, 펜트하우스로 들어선 강윤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서은재를 보며, 스치듯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만약.

‘내 모든 걸 버린다면…….’

너와 함께할 수 있을까?

“응.”

아니다.

실행 불가한 도망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현명하며 혁신적인.

“서은재.”

“응?”

“우리, 공식적인 연인 하자.”

“무슨 소리야?”

“만인 앞에서 연인임을 밝히자는 거지.”

은재는 황당했다. 더욱이 사무적이기까지 한 도강윤의 표정에 긴가민가했다.

“이왕이면 성대한 파티로. 채종훈한테 맡기면 신나서 구성할 거야.”

“취했어?”

“지극히 멀쩡해.”

“안 멀쩡해 보여.”

“이거.”

미심쩍어하는 그녀에게 강윤이 다가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조작하여 환히 켜진 채 건넸고, 은재는 시큰둥하니 들여다봤다.

“어?”

“미도, 네 작품이지?”

“어떻게 알았어?”

화면을 가득 채운 건 SNS 업로드 화면에 노출된 은재의 포토에세이였다.

은재는 엄청난 업로드 수보다 도강윤이 이 책자를 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 사진 본 적 없잖아? 혹시 유럽에서의 날 미행했던 거야?”

“그럴 리가.”

“아, 이제야 정 비서님 말이 이해되네.”

도강윤이 단박에 부정했으나 은재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나 때문에 유럽의 웬만한 땅은 죄 밟았다고 하더니…….”

콩 심은 데 콩 나지 않는가. 그 부모에 그 자식이겠지.

“정 비서님을 나한테 붙였었던 거야?”

“하하.”

돌연 강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귀엽다는 듯 은재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서은재 추리력이 대단한걸?”

“치워.”

은재는 노려보며 탁, 쳐냈다. 강윤이 손을 내리며 여전히 웃음기 담긴 음색으로 말했다.

“정 비서가 서은재 때문에 유럽을 돌긴 했지. 수행비서가 되기 전, 녀석의 첫 번째 미션이 ‘서은재 찾기’였거든.”

“뭐?”

이 또한 믿기지 않았다.

“픽.”

간절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듯 하게 일렁이는 강윤의 눈동자도.

“내가 서은재를 찾느라 허비한 세월이 몇 년인지….”

“…….”

“우리가 유럽에서 재회했다면, 조금 더 드라마틱했을까?”

“…너무 클리셰지.”

그 때문에 은재의 심장도 일렁였다.

온전히 혼자라고 쓸쓸히 지냈던 과거에 도강윤이 자신을 애타게 찾았다는 사실은 그 속에 잠식되었던 감정을 일깨웠다.

“그러네.”

강윤도 마찬가지였다.

은재와 강윤은 서로에게 시선을 붙박아둔 채 그때의 외면했던 감정을 마주했다.

‘우리 참, 미련하다.’

“커피 마셔야겠어.”

강윤으로부터 전해오는 감정이 해일 같았다. 은재는 휩쓸리는 제 감정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등 돌렸다.

“마실래?”

“그래.”

무던한 강윤의 대꾸를 들으며, 은재는 주방으로 갔다. 심장이 여전히 파도를 타고 있었다. 울렁울렁, 진정되지 않았다.

***

“커피.”

“고마워.”

향긋한 아메리카노로 은재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거실 통창과 이어진 야외 테라스로 나간 두 사람은 인공 잔디밭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이젠 말해줘. 내 작품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섬의 네 암실에서 사진을 보고.”

“그 짧은 순간에 알아챘다고?”

“아주 관심 있게 봤거든.”

능청 떠는 그를 실눈으로 흘기니, 강윤이 설핏 웃으며 실토했다.

“실은, 로마 거리의 노숙자 사진이 얼핏 본 듯하더라고.”

관광도시의 이면이 담긴 사진이었다.

석양이 물드는 화려한 로마 거리의 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드러누워서 담배 피우던 노숙자.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표정이 근사했던.

“책에 실린 사진인데… 내 책을 소장했었어?”

“아니.”

“그럼?”

“작년쯤 정 비서가 프로필 이미지로 등록했던 사진이었어. 그걸 토대로 검색하니 수많은 인플루언서가 올린 책이 나오더군.”

“그걸 기억해?”

“내가 워낙.”

강윤이 ‘기억력이 좋다’는 뜻으로 오만하게 관자놀이를 두들겼다.

인정하는 바라, 은재는 잠자코 넘겼다.

“정 비서님은 어떻게 프로필에 등록한 거지? 난 줄 알았나?”

“그럴 리는 없고…. SNS에서 유명했으니, 녀석은 단순히 유행을 따른 걸 거야.”

“아하.”

작은 단서로 연결고리를 찾다니… 하여간 대단한 남자다.

“근데, 공식적인 연인과 내 사진이 무슨 상관이야?”

“자, 이제 본론.”

강윤이 비틀게 앉으며 은재를 강단 어린 눈빛으로 직시했다.

“내가 삼현의 윗분들이 널 함부로 건들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어떻게?”

그의 윗분들이란, 최고층을 차지한 도형호 회장과 민경애 여사를 지칭했다.

“네게 제안을 할게.”

“제안?”

“나는 현재 삼현그룹의 고지식한 경영과 차별화된 전략을 기획 중이야. 가장 먼저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도입할 거고, 그에 적합한 이미지가 필요해.”

“…….”

“그런데 절묘한 타이밍에 너의 사진을 봤고, 미도 작가의 유명세에 숟가락을 얹고 싶어졌지.”

“내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거야?”

“응.”

“왜?”

“프로젝트 슬로건이 ‘상생’이거든.”

“아.”

은재는 본능처럼 이 작업에 끌렸다.

‘상생’은 그녀가 추구하는, 그녀의 사진에 담겨온 이야기기도 했다.

“하지만 삼현그룹 윗분들의 반대가 극심할 텐데?”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도 작가의 공식 데뷔는 어때?”

“데뷔?”

“상생협력 프로젝트 발표회를 열까 해. VIP들을 초청해서.”

VIP들이라…….

“그 행사에서 서은재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도 작가임을 밝히며 공식 데뷔하는 거지. 그리고….”

그의 강렬한 눈길이 내려왔다.

“내 연인임을 선언하면…….”

부러 말을 끝맺지 않으며.

“윗분들이 함부로 탄압할 수 없겠지.”

은재는 그의 뒷말을 이었다.

입안의 꿀처럼 솔깃한 제안이라 절로 미소가 배어 나왔다.

“미도 작가님, 어떠십니까?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거절하기엔 너무 달콤하네요?”

정중한 강윤의 손이 은재에게 열렸고, 은재는 그의 손바닥에 제 손을 덮었다.

씩.

작은 손을 감아쥐는 강윤의 입매가 초승달처럼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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