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24화 (25/84)

24.

민경애의 손찌검을 예상했던 은재였다.

자신의 위신을 지켜야 할 아들이 없고, 둘만의 공간이 형성되면 빈번하던 일이었기에.

먼젓번 접견실에서의 대면으로 CCTV의 존재를 알았고, 부러 민경애를 유인했던 것이다.

“너…….”

비로소 CCTV를 알아챈 민경애가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벌건 풍선 같았다.

“입막음하려면, 바쁘시겠어요.”

“네가 날 놀리는구나.”

“설마요. 제 주제에.”

“서은재…….”

“전 이만.”

은재는 의연히 묵례하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테이블의 사진 한 장을 주워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은재.”

접견실에서 막 나올 때였다. 하필 병동 복도를 지나치던 강윤과 맞닥뜨린 것이.

“아, 왔어?”

은재는 비스듬히 얼굴을 감추었다. VIP 병동의 접견실이기에 방음이 철저하여 내부의 분란은 모를 그였다.

“접견실에서 왜 나와?”

“뭐 좀 보느라고.”

의아해하는 그에게 에둘러대고, 은재는 빠르게 엘리베이터로 가려 했다.

“할아버지 뵙고 있어. 나는 1층 좀 다녀올게.”

“잠깐.”

덥석, 강윤이 그녀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잇따라 다른 손끝이 은재의 턱을 스스럼없이 돌렸다.

“맞은 거야?”

그의 체온이 얇은 살결에 닿았다.

은재는 저도 모르게 경직했다. 불이라도 덴 양 머리통을 뒤로 빼며 남자의 손길을 피했다.

“하.”

강윤이 핏발 선 관자놀이를 실룩이며 접견실로 들어가려 했다.

“도강윤.”

은재는 급히 가로막았다.

“내가 한 거야.”

“비켜.”

“내가 충분히 했어.”

“처음이 아니구나?”

아…….

결사적인 방어에 강윤이 눈치챘다.

“바드득.”

동시에, 마치 성난 짐승처럼 어금니 가는 소리가 울렸다. 눈빛엔 살기마저 있었다.

탁!

그는 곧 접견실로 돌진했다. 잇따라 딸깍, 잠금쇠 소리도 들렸다.

***

[예, 사모님.]

은재가 접견실에서 나간 후, 민경애는 지하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안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동까지 그녀를 대동하지 않음을 통한하며.

“안 비서, 병원 보안관리팀에 가서…….”

정말 창피하게.

[듣고 있습니다, 사모님.]

말을 끝맺지 않은 채 침묵이 돌아오자, 안 비서가 차분히 종용했다.

아랫입술을 씹던 민경애는 한숨을 내쉬었다.

“VIP 병동 제1 접견실 CCTV 삭제 요청해. 내가 접견실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접견실에서 서은재를 만나신 겁니까?]

“어. 서둘러.”

[알겠습니다.]

안 비서는 으레 그래 왔던 것처럼 가타부타 토 달지 않았다. 곤란한 사태도 깔끔하게 수습할 것이다.

“아, 골치야.”

그래도 민경애가 두통이 일었다.

마냥 하찮았던 서은재가 먼젓번부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니.

‘얘가 무슨 보험이 들었기에 이래? 설마하니 우리 도 상무를…….’

그때였다.

탁!

별안간 사나운 소리와 함께 접견실 문이 열리며 거뭇한 장신이 들어섰다.

“헉….”

“어머니.”

상대는 강윤이었다.

포악할 정도로 거세게 문을 열고, 닫은 그가 ‘딸깍’ 문의 잠근 버튼마저 눌렀다. 민경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 상무, 문을 왜 잠급니까?”

“은재를 때리셨습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날아왔다.

살벌한 아우라에 민경애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그러나 그녀는 고고한 태세를 갖췄다.

“무슨 소리입니까?”

“얼마나.”

강윤의 목울대가 실룩했다.

“언제부터, 그 여자를 때리셨습니까?”

“도 상무, 오해예요. 그 아이가 어떤 말을 꾸몄는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절제하던 아들의 분노가 폭주 직전이었다. 당황한 민경애는 얼른 인정했다.

“실수였어요.”

“실수요?”

“도 상무가 이리 흥분할 일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 실수한 걸 가지고…….”

이어 차디찬 눈초리를 회피하며, 뻔뻔히 부인했다. 강윤의 입술에 냉기가 담겼다.

“어쩌다 한 번이요? 어머니, 폭력은 실수일 수 없습니다. 용납해서도 안 되고.”

“도 상무, 그 아이 때문에 날 훈계하는 겁니까?”

냉랭한 질책에 민경애는 울컥했다. 되레 언성을 높이며 벌떡 일어나는데….

쾅!

“다시는!”

강윤이 테이블에다 손바닥을 내려쳤다.

격분 어린 소음과 함께 발생한 파동이 원목 테이블을 통해 민경애의 허벅지까지 전해졌다.

“절대로, 은재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지금, 나한테 경고하는 거예요?”

“경고라니요. 감히 어머니께 아들인 제가 어찌…….”

무심코 위축되었지만, 민경애는 서늘히 따졌다. 강윤이 자조하듯 피식 웃더니, 불쑥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민경애는 어깨를 움츠렸다.

“이것만 명심하십시오.”

강윤의 저음이 늪 바닥의 울림처럼 깔렸다.

“제가 이젠, 어리지 않습니다.”

경고였고,

“절 광폭한 아들로 만들지 마세요.”

위협이었다.

어린 신부를 보호하지 못했던 어린 신랑이, 세간을 휘어잡을 만한 힘을 가진 남자로 컸다는 경고.

더불어, 서은재를 건드렸다간 미쳐 날뛰겠다는 위협.

“가보겠습니다.”

“도, 도 상무…….”

무정한 아들이 나간 후, 민경애는 무릎이 풀렸다. 털썩, 의자에 주저앉는 그녀의 낯빛이 창백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노골적으로 은재의 편에 선 아들의 태도 변화는 참을 수 없었다. 분노보단 배신감이었다.

“서은재….”

원망의 대상자를 향한.

“네가 화근이야.”

***

은재는 병원 산책로에 있었다. 환자에게도, 병원 관계자에게도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 벤치를 찾아서였다.

“괜히 일이 커진 기분인데…….”

CCTV로 민경애를 협박할 의도는 없었다. 그저 그녀가 제 추악한 모습을 깨닫고, 조금이나마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을 뿐인데.

“도강윤이 변수일 줄이야.”

아들 집착 대마왕 민경애가 그 아들에게 자신의 민낯을 내보였으니, 원망의 화살은 고스란히 은재 자신에게 향할 터.

“어후, 상상만 해도 소름 돋아.”

은재는 오소소 떨었다. 그러다 모나게 한쪽 입술 자락을 올렸다.

“해보라지. 무서울 것도 없지 뭐.”

말만 당찰 뿐, 실상은 불안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여를 민경애의 핍박으로부터 견뎠다.

부모님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자신만 참으면 성공해 보겠다고 발악하는 아버지와 딸 걱정 남편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편안해질 테니까.

이젠…

아무도 없지만.

“그때보다 더하겠지? 난 이제 보호자도 없잖아.”

앞날이 까마득해서 한숨이 나오는데, 불현듯 강윤의 술회가 떠올랐다.

“내가 그 녀석의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어.”

도강윤이란 남자는 그 누구보다 강단 있는 보호자겠지. 그녀에게도 책임질 수 없었을 뿐, 무책임하진 않았으니.

“부럽네, 정 비서님.”

은연중 혼잣말할 때였다.

징―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에 ‘도강윤 ♥♥’가 떠올랐다.

“앗.”

끔찍한 하트하트에 화들짝 놀랐다.

―도강윤 ♥♥

수정하는 걸 깜빡 잊은 자신을 질책하며, 속히 교태부리는 도강윤 하트하트를 거절했다.

―어디야?

이어 문자가 왔지만, 어김없이 읽고 씹었다.

어찌 되었든, 도강윤은 민경애의 소중한 아들이기에 현재로선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난 이걸 왜 가져왔을까?”

은재는 훔친 사진을 꺼냈다.

공원에서 포착된 사진이었다.

도강윤의 손을 막 잡은 순간인데, 마주 보는 얼굴들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가 웃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우린 서로를 보며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임을…….

‘이렇게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은재는 웃는 도강윤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만일, 삼현이라는 상위 폴더와 ㈜정진이라는 하위 폴더에 속하지 않았다면……

우린 어땠을까.

둘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

***

어머니 민경애에게 엄포를 놓은 후, 강윤은 곧장 병원 보안관리팀으로 갔다.

예측대로 안 비서가 CCTV 녹화본을 회수 중이었고, 그는 가차 없이 가로챘다.

“이건 제가 접수하죠.”

“도 상무님…….”

“어머님껜 처리했다고 말씀드리세요. 비서님을 곤경에 빠트릴 수야 없죠.”

USB를 뺏긴 안 비서는 난처한 표정이 역력했다. 강윤은 서느런 안심을 시켰다.

“다만.”

“음?”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묵과해서는 안 될 겁니다.”

정중한 위압을 받은 안 비서의 목덜미에 힘줄이 돋아났다.

“아시겠죠?”

“…네, 상무님.”

바들거리는 그녀를 두고, 강윤은 은재를 찾아 나섰다.

‘서은재.’

지독히 차가웠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은재야.’

애타서 안절부절못하는, 한 남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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