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절히 널 원해-19화 (20/84)

19.

“때깔이 여전히 고운데?”

“나야 항상 고왔지?”

“얄미워.”

찡긋거리는 민서와 챙 하고 술잔을 부딪쳤다.

“또 나갈 거야?”

“당분간은 계획 없어.”

목포로 갈 겁니다.

“또 나한테까지 소식 끊기만 해! 뒈질 줄 알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은재는 그녀의 소주잔에 제 잔을 부딪치며 약속했다.

심통이 풀린 민서가 활짝 웃으며 종업원에게 빈 소주병을 흔들었다.

***

강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도형호의 술책인지, 방대한 업무가 갑작스레 넘어와서였다. 그 바람에 고대하던 첫 데이트도 못 했다.

“후.”

탁한 한숨이 뱉으며 핸들을 꺾었다. 세단이 펜트하우스 정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도롯가에 멈춘 택시에서 비틀비틀 내리는 여자를 포착했다.

“서은재?”

반사적으로 그는 세단을 갓길에 멈췄다. 주저 없이 튀어나가 검은 봉투를 든 채 아슬아슬하게 걷는 여자의 팔뚝을 붙잡았다.

“술 마셨어?”

“어? 도강윤이네.”

발긋한 뺨을 올린 은재가 게슴츠레 올려다봤다. 일순 그녀의 눈매에 반달이 떠올랐다.

“안녕, 도강윤.”

두근.

흰 치아가 보이도록 환히 웃는 입술을 보자마자 강윤의 심장이 저릿하게 뛰었다. 취했음을 알면서도, 제게 웃어주는 서은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 안녕. 서은재.”

열아홉 살의 그때처럼.

“무정한 애인이네. 나 바람맞히더니, 혼자 놀고 왔나 보네?”

“픽.”

취한 은재의 볼멘소리에 강윤은 입매를 늘렸다. 심드렁하게 반응하더니, 내심 기대했던 건가?

“술을 얼마나 마셨어?”

“쪼끔.”

“쪼끔이 아닌 것 같은데.”

“어! 술통을 들이부었어.”

너덧 짝은 부은 모양이다.

후― 하고 입술로 진한 술 냄새를 풍기더니, 은재가 까르르 웃어대며 비틀거렸다.

“앗.”

“어서 들어가자.”

헛발을 내딛는 은재를 강윤은 안전하게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취한 은재는 보물처럼 쥐고 있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절대 놓지 않았다.

“오다 뭘 캐왔어?”

“어! 산삼 같은 맥주!”

“픽.”

강윤은 웃었다.

매번 꼿꼿하게 굴던 은재의 다른 모습이 색다르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여웠다.

“도강윤, 나랑 2차 하자.”

거실 소파에 털썩 앉은 은재가 주섬주섬 캔맥주를 꺼내더니, 강윤의 손에다 꾸역꾸역 쥐여주었다.

“데이트는 못 해줘도, 맥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앙금이 많이 남았군.

“마셔!”

“…….”

강윤은 침묵한 채 맥주를 끔벅끔벅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은재가 발긋한 얼굴을 들이밀며 귀엽게 시비를 걸었다.

“무슨 맥주를 사약 보듯 봐? 같잖아서 나랑 마시기 싫어?”

“그럴 리가.”

목울대를 꿀떡, 넘긴 그는 알코올을 자신의 위장에다 밀어 넣었다.

“건배!”

캔에서 입술을 떼자마자, 은재가 히죽 웃으며 퍽! 소리가 나도록 자신의 캔맥주를 부딪쳤다.

***

“뭐냐. 장난하냐?”

해롱해롱한 와중에도 은재는 황당했다.

믿기지 않아 게슴츠레한 눈을 손등으로 비비기까지 했다. 그러나 강윤은 확실히 캔맥주를 고이 든 채 잠들었다.

“진짜, 정신을 잃은 거야?”

감긴 눈꺼풀 앞에다 손날을 휘적거리다, 그의 맥주를 빼앗았다. 찰랑― 캔 속에 그득한 액체의 출렁임이 여실히 감지됐다.

“하, 몇 모금이나 마셨다고.”

실소하며 슬쩍 밀쳤으나 도강윤은 꿈쩍하지 않았다. 소파 등받이에다 어여쁘게 기대어 잘 뿐.

“도강윤이 술을 이렇게 못 마셨어? 그런데 왜 마셨지?”

이해 안 되는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천하의 도강윤을 소파에다 버려두고 2층으로 올라가기엔 양심에 걸렸다.

“날 괴롭히려고 마신 거네.”

은재는 자신보다 두 배는 큰 남자를 가까스로 들쳐 멨다.

“이 남자 왜 이리 무거워.”

질질 끌어 그의 침실로 향했다. 작은 몸뚱이를 짓누르는 체중으로 위장이 눌려, 복도 중간에서 토할 뻔도 했다.

“웩.”

털썩―

“아, 어지러워.”

어렵사리 그를 침대에다 던져 놓고, 지친 나머지 은재도 쓰러질 듯 드러누웠다.

“알코올 쓰레기, 도강윤…….”

취한 데다 애먼 체력까지 낭비한 바람에 눈앞이 핑핑 돌았다. 천근 같은 눈꺼풀이 서서히 감겼다.

***

가물가물.

잠결에 은재는 눈꺼풀을 들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린 공간을 멍하니 끔벅거리다가,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도강윤이네.”

현실과 꿈을 분간 못 한 채 웅얼거렸다.

그 순간.

도강윤의 고개가 내려왔다. 보드라운 입술 자락이 은재의 입술을 머금었다.

쪽.

“……!”

약간 놀랐으나 은재는 순순히 입술을 벌렸다.

범접할 수 없는 추진력을 가진 도강윤답게 그는 키스에도 주저는 없었다.

입속으로 노련하게 침범한 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렵하게 은재의 혀를 가져갔다. 그러면서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큰 손으로 그녀의 턱을 감쌌다.

세밀하게 파고드는 키스를 한껏 받아들이는 그녀를 내면의 이성은 타박했다.

‘미친 것아. 넌 욕구불만이 확실해. 또 이런 꿈을 꾸다니…….’

하지만 그의 키스는 미치도록 짜릿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꿈 아닌가.

“하.”

짙은 키스를 이어가며 강윤의 상반신이 들렸다. 그의 리드 따라 부드럽게 드러누우며, 은재는 본능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감아 안았다.

쪽.

아랫입술을 보드랍게 빨던 강윤의 입술이 턱선을 따라 올라왔다. 잇따라 귓속으로 뜨거운 혀끝이 들어왔다.

“…서은재.”

“읍.”

불타는 듯한 달뜬 숨결과 함께 울리는 허스키한 저음.

유혹적인 부름은 단연코 경험한 적 없는 전율을 동반했다. 귓속을 타고 발끝까지 퍼지는 짜릿함에 은재는 몸서리쳤다.

큰 손이 머리카락 속으로 헤집고 들어오며, 그의 입술이 은재의 귀에 키스했다.

뜨거운 숨결이 귓속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맴돌았고, 동시에 멈춤 없는 손길은 은재의 몸을 불덩이처럼 달궜다.

손길의 스침만으로도 은재의 턱이 뒤로 젖혀졌다.

“아.”

짓궂은 입술이 귓불의 물렁뼈를 깨물었다. 은재가 약한 소리를 내자, 옅게 웃은 입술이 차츰차츰 하행을 시작했다.

화인을 찍듯 목덜미를 내리눌렀고, 빗장뼈의 라인에 꼼꼼히 입을 맞추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견딜 수 없는 자극에 은재의 온몸이 비틀렸다. 간절한 몸부림처럼 그의 어깻죽지를 움켜쥐며 제 쪽으로 당겼다.

‘미쳤네, 서은재.’

원했다.

설령 꿈일지라도, 그를 원하고 있었다.

은재의 강한 몸짓에 담긴 의미를 읽은 강윤이 서슴없이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꿈이라서야…….’

그리고 그에게 점령당했다.

꿈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현실에서의 방어기제가 빗장을 풀린 듯 은재는 저항하지 않았다. 집요한 그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한낱 꿈에 불과해서…….’

은재는 그가 선사하는 관능적인 감각으로 인해 정신을 놓을 판이었다.

“아…….”

숨소리처럼 신음을 숨길 수 없었다. 현기증 같은 어지러움이 동반했다.

그 또한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입고 있던 셔츠를 찢듯이 벗어버렸다.

군살이라곤 하나 없는 완벽한 몸체가 드러났다.

촘촘한 근육이 다져진 가슴팍과 단단한 복부로 이어진 몸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하아.”

떨어졌던 입술은 잠시라도 아쉽다는 듯 곧장 돌아왔다. 얕은 숨으로 헐떡이는 은재의 입술을 격렬히 삼켜 버렸다.

‘도강윤…….’

그가 사람 홀릴 정도로 키스를 잘해서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도, 은재는 그를 놓지 않았다.

열성적인 키스를 받으며 옹골진 등마루를 끌어안았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울뚝 튀어나온 날갯죽지조차 미치도록 섹시했다. 자신의 손길이 지날 때마다 꿈틀거리는 근육의 요동마저 흥분을 가중했다.

“하. 도강윤.”

달뜬 숨소리를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그 부름에 응답하듯 도강윤의 애무가 짙어졌다. 굴곡진 몸의 능선을 타고 넘는 손놀림이 더없이 퇴폐적이면서 선정적이었지만, 전신의 신경 감각을 모조리 일깨우는 데 선수였다.

그의 손길이, 입술이 머금은 자리는 온통 발긋한 열꽃이 남았고, 데인 듯한 열상이 잔류했다.

은재는 점차 자신의 몸뚱이가 익을 대로 익어서 터질 것 같았으며, 화끈화끈 달궈진 열기로 허벅지 안쪽까지 저릿했다.

“아…….”

“하.”

치명적인 그로 인해 자신이 얼음처럼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잠시 두렵기도 했다.

어느덧.

두 몸을 감고 있던 옷자락들이 성가신 허물이라도 되는 양 벗겨졌다.

뛰어난 명품 같은 도강윤의 몸은 물론 얇은 원단에 감춰 있던 은재의 늘씬하고 볼륨 넘치는 몸매가 드러났고, 어스름한 암흑 속에서도 투명할 정도로 말간 피부는 빛났다.

이어 강윤이 상반신을 숙였다.

가녀린 여체와 단단한 근육이 밀착하면서, 동시에 성급한 입술이 포악할 정도로 거세게 은재의 입술을 삼켰다.

갖고 싶다는 열망이 여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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