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강윤 상무다.”
북적이는 연회장 뒤편으로 나오는 그에게 이목이 쏠렸다.
“저 남자랑 딱 하룻밤만 보냈으면.”
“택도 없다. 꿈도 꾸지 마라.”
온갖 치장을 한 여자들은 둘 중 하나였다.
홀린 듯 그를 좇거나 그의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하거나.
“천하의 도강윤은 몸뿐만 아니라 뇌도 섹시해서 웬만해선 상대 안 돼.”
“맞아. 우리가 홀라당 벗고 필라테스를 해도 눈길 한 번 안 줄걸.”
삼현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로 피지컬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도강윤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몸이나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흑막처럼 검은 눈동자는 내리깔릴 때마다 숨 막힐 정도로 뇌쇄적이었는데, 오늘은 검은 슈트까지 장착했으니…….
“품위 없게 홀라당이 뭐야. 아, 근데 작정하고 덤비고 싶을 정도로 치명적이긴 하다.”
그녀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됐다. 물론 일절 무관심한 강윤이지만.
“도강윤 상무님.”
연회장을 두리번거리던 호텔 매니저가 강윤에게 다가왔다. 꾸벅 인사한 그녀가 메모지를 건넸다.
강윤은 의아해하며 메모의 첫 줄을 읽었다.
―전남 목포시…….
낯선 주소를 무심히 읽던 강윤의 동공이 흔들렸다.
―……서은재
쿵.
빗장 풀린 문처럼 심장도 덜컥했다.
그는 돌아서는 매니저의 팔을 붙잡았다. 놀란 그녀가 당황했다.
“이게 뭡니까?”
“상무님께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누가?”
“프런트로 전화가 와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어요. 남성분 목소리긴 했는데, 존함은 미처 묻질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남성?
“이사님. 왜 그러십니까?”
심상치 않은 기미를 알아챈 호석이 곁으로 왔다. 강윤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에게 메모를 넘겼다.
“이걸 어디서……?”
메모를 읽은 호석 역시 기함했다.
강윤은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가야겠어.”
냉담한 표정과 달리 음색은 허스키하게 갈라졌다. 심장도 가파르게 뛰었고, 가슴팍으로 아릿한 통증이 일었다.
“확실한 정보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거기 있을 거야.”
수족처럼 보좌하는 호석은 불필요한 이동을 저지했지만, 그는 확언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장난질이기엔.”
강윤은 메모의 글자를 찍었다.
“목포잖아.”
6년 전 핀란드행 국제선에 올랐고, 4년 동안 일주하듯 유럽을 돌아다녔던 여자의 거주지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 뜬금없음에 신빙성을 얻는다.
“제보자의 정체부터 파악하겠습니다. 행여라도 상무님 신변을 위협하는 함정이라면…….”
“차는 어디 있지?”
호석의 염려는 단호히 가로막았다.
남성의 정체든, 그의 의도든, 더불어 강윤이 서은재를 찾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현재로선 중요하지 않다.
답은 무조건 서은재다.
“모시겠습니다.”
“혼자 가겠어.”
“도강윤! 넌 왜 계속 따로 있냐? 박재민 옆이 네 지정석인데.”
그때, 신화호텔 VVIP 초청 행사 주최자이면서 신화호텔 기획이사인 채종훈이 접근했다.
성가신 놈을 무시하며 손가락을 까닥했다. 호식이 어쩔 수 없이 차 키를 건넸다.
“간다.”
“야! 인마! 도강윤!”
강윤은 성큼성큼 입구로 향했다.
압도적인 자태에 모세의 길처럼 통로가 열렸다. 그의 뒤를 채종훈이 부랴부랴 쫓아왔다.
“갑자기 어딜 가는데?”
강윤은 느긋이 친구를 밀어냈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고 친구의 귓가에 은밀히 읊조렸다.
“아내 데리러.”
픽.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
턱.
선착장에 페리호가 정박했다.
부둣가로 나오며 강윤은 치밀하게 사위를 훑었다.
소박한 섬마을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된 강윤이 겉도는 화면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섬이라니.’
목포인 것도 믿기지 않는데, 주소가 가리키는 지점은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로 한 시간가량인 섬마을이었다.
‘왜 네가 이런 엉뚱한 곳에…….’
징―
―상무님. 잘 도착하셨습니까?
때마침 호석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모의 정보대로 서은재 씨는 1년 넘게 그 섬에서 머문 듯합니다.
입국한 지 1년이 넘었다는 말인가?
이래서 그간의 행적이 끊겼던 거다.
치 떨며 떠났을 한국이기에 단연코 국내는 제외했건만.
―김민서라는 가명으로 지내고요.
‘김민서?’
이름을 곱씹을 때였다.
“민서야!”
또렷한 이름이 들린 것이.
운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