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침묵 같은 초야였다.
그녀는 그저 절차대로 누워 있는 장작개비 같았고, 강윤이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앞섶을 헤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움직였다.
작은 손이 굵직한 손목을 잡았다.
“나 처음이야.”
서은재의 눈동자는 나뭇결을 닮았다.
그 눈에 얼핏 두려운 기색이 비쳐들었다.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여느 때의 서늘한 눈빛으로 곧 바뀌었으나.
“그래서? 달콤한 키스라도 해줘?”
“싫어.”
다소 얄궂은 물음의 답은 강경한 거부였다.
은재는 강윤의 동작을 제어하던 손을 물리며 도발적으로 턱을 당겼다.
“어차피 치러야 할 과정이잖아. 조속히 끝내라고.”
“조속히?”
픽, 비소가 나왔다.
“글쎄.”
강윤은 거칠게 블라우스 앞섶을 잡아챘다.
투두둑, 무기력한 블라우스 단추가 튕겨 나갔고, 꽃잎처럼 스르륵 벌어지는 옷깃을 강윤의 손이 뜯듯이 잡아 내렸다.
어슴푸레한 빛을 머금은 매끄러운 여체는 세상 그 어떠한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관능적이면서 아름다웠다.
눈부시도록.
손대기 아까울 만큼.
“……애무하지 마.”
뽀얀 살결과 고귀한 몸에 홀린 나머지 잠시 멈칫한 걸 은재는 오해했다.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려는 시도일 거라고. 그조차 께름칙하다는 듯.
“아플 텐데?”
“상관없어.”
사뭇 냉랭히 묻자, 그녀는 숫제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세상만사 체념한 듯 ‘네 멋대로 하라’고 기력을 늘어뜨리며 눈꺼풀을 닫았다.
“우리 관계 자체가 고통이니까.”
질끈.
의지 없는 태세는 외려 분노를 돋웠다.
스물두 살의 그녀와 정략결혼이 결정된 이래 늘 이런 식이었다. 파렴치한 보듯 그를 대했다.
“원한다면, 기꺼이.”
거추장스러운 나머지 옷도 찢다시피 벗겨냈다.
가냘픈 맨몸을 가린 속옷만이 남자, 은재의 어깻죽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강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은재의 옷자락을 냉정히 잡아챘다. 은재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리다가, 자존심 지키듯 주먹을 바락 움켜쥐었다.
“…….”
그 고집스러운 행동은 오기를 조성했다.
강윤은 찢듯이 제 옷도 한꺼번에 벗었다.
성인 남녀의 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온전히 마주한 순간, 엄습하는 긴장감이 지독히 선정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녀를 온전히 눈동자에 담아내는 것 또한 흥분을 부추겼다.
만지지 않았다.
대신 원하는 대로.
“……!”
강윤은 밀어붙였다. 그 바람에 은재는 아연실색했다.
그제야 동물적 방어기제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
“…….”
강윤 또한 어금니를 바르르 갈았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부부로서의 첫 경험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각이 휘몰아쳤다.
심히 모순적이었다.
격렬한 통증과 대비되는 전율이 벼락 맞은 듯 눈을 떴다.
고통 속의 쾌감이었다. 그렇기에 제 몸은 더없이 맹렬한 침범을 원했다.
“도강윤!”
원망하듯 부르며, 그녀의 주먹이 딴딴한 이두박근을 퍽! 퍽! 후려쳤다.
자신의 몸뚱이를 가격하는 주먹을 억세게 움켜쥐고 묶듯이 위로 올렸다.
“네가 바란 거잖아.”
거친 숨소리 섞인,
“기대해.”
나직한 경고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거니까.”
흡사 야수의 그르렁거림 같았다.
“놔…!”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삼켰다.
파르르 떠는 혀를 제 혀로 잡아채어 먹어치우듯 빨아들였다.
뜨거운 혀로 얼어버린 듯한 혀와 입술을 녹이듯 구석구석 탐했다.
타액과 타액이 섞이고, 뜨거운 숨결이 하나의 입속에서 유영했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팽창하며 가파르게 박동했다.
“……!”
은재는 또다시 굳었다.
사로잡혔던 입술을 억지스레 떼어내려 하며 힘겨운 도리질을 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어깻죽지에 아린 생채기를 냈다. 수그러들지 않는 거부였다.
‘빌어먹을.’
도리어 화가 났다.
은재에게서 풍기는 청아하고 야릇한 향에 혼미할 정도로 정신이 매료될 것 같았기에.
그녀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과 그녀를 아프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교차했기에.
하지만 강윤은 멈출 기세도, 멈출 의지도 없었다.
참을 수 없이 갈증이 났다.
‘빌어먹을.’
은재의 두 눈동자에 가득 눈물방울이 맺히고, 혼절하다시피 잠들 때까지도.
그야말로 생생한 날것의 욕망에만 사로잡힌 채.
‘빌어먹을’을 심장으로 읊조리며, 발정 난 짐승처럼 그녈 밤새도록 품었다. 애정으로 비롯된 행각이 아닌 오롯이 후계자 잉태를 위한 교합 행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물네 살 그에게도 첫 경험이었던, 그들의 첫날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