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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마음에 스며드는 사랑 (27/72)

27. 마음에 스며드는 사랑

“다 왔네.”

이나를 품에 안은 채 재혁이 말했다.

그의 말끝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이나가 대답하기도 전에 케이블카가 탑승장에 도착했다.

먼저 내린 재혁이 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나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그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게 깍지 낀 손끝으로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오고 갔다.

몸만 나누자는 그와의 약속은 기억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렸을 때도, 여수의 야경을 보며 계단을 내려갈 때도, 공원을 거닐 때도 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몸까지 섞은 사이였지만, 손을 잡고 공원을 걷는 이 순간 심장은 더욱더 세차게 뛰고 있었다.

설렘 때문에 생긴 어색함에 이나는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다.

공원을 반쯤 돌았을 때, 재혁이 이나의 손을 당겨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도 안 봐서, 나 좀 보라고.”

왠지 부끄러워 대답 없이 가려 하니 재혁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가지 말고, 대답.”

“알았어요.”

이나가 대답하자, 재혁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었다.

“좋다.”

‘좋다’라는 별거 아닌 말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다시 공원을 걸어가며, 이나는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원을 돌고 또 돌다 보니 어느덧 공원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리가 조금 아팠다.

“내려갈까?”

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혁의 반말도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 이나는 도무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설렘에 마음이 몽글거리다가도 불안한 감정이 불쑥 치고 올라왔다.

그녀의 불안을 느꼈던 것일까?

재혁이 손을 내밀었다.

“손.”

이나가 손을 내밀자, 재혁이 이나의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의 손을 통해 느껴졌다.

“뭘 그렇게 불안해해?”

“안 그랬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너무 불안해하지 마.”

이나는 재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과 날렵한 턱선 아래로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완벽한 남자였다.

이나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 정말 이 남자의 몸만 가지고 싶은 걸까?’

고민 끝에 이나가 대답했다.

“네.”

***

“오늘은 방 두 개를 잡았어. 투룸이 아니고.”

열쇠를 내미는 재혁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물씬 묻어났다.

“잘자.”

“대표님도요.”

이나가 열쇠를 받자 재혁이 한 발 다가왔다.

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발 물러났다.

재혁은 멈추지 않고 이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간다.”

재혁은 느린 발걸음으로 멀어졌다.

문 앞에선 재혁은 아쉬운 듯 이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이나가 자신을 보고 있자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문을 열었다.

재혁의 객실의 어둠 속으로 한 발을 내디딜 때, 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부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냥, 불러봤어요. 그냥.”

그 말에 재혁이 성큼 이나에게 다가와 키스했다.

이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빙글 돌아 복도 벽에 기대섰다.

그는 이나와 이마를 맞댄 채로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난 오늘 너의 마음까지 가질 거야.”

이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두 사람은 빨려 들어가듯 이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나는 이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그를 탐했다.

흰 셔츠의 단추 사이로 재혁의 가슴 근육이 꿈틀거리자, 이나가 그의 가슴팍을 핥았다.

“아!”

머릿속을 태우는 것 같은 강렬한 쾌락의 스파크에 재혁은 몸을 떨었다.

그를 벽에 몰아붙이고 자리에 앉아 허리띠와 바지를 풀었다.

꿈틀거리는 그의 신체가 이나를 원하고 있었다.

재혁이 이나를 번쩍 안아 침대로 향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기자, 창문으로 스며들어 온 달빛이 그녀의 나신을 비추었다.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 재혁은 숨을 죽였다.

희다 못해 투명한 그녀의 속살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괴롭혀 달라고, 비틀고 물어 달라고 그를 유혹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노골적이었는지, 열정에 달아올랐던 이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몸을 가렸다.

“너무 그렇게 보지는 마세요.”

그는 손끝으로 섬세하게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

“탐스러워.”

“….”

재혁은 조심스레 이나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느껴지는 그의 숨결에 이나는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표님…!”

이나가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 대신 그의 몸을 그녀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깊숙하게 들어오는 그의 침범에 이나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아!”

밀려오는 통증과 쾌락에 그녀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졌다.

“…사랑해요.”

“다시 말해 봐.”

“사랑해요.”

“다시!”

“재혁 씨, 사랑해요.”

모든 것이 울컥하며 쏟아졌다.

그녀를 향한 욕망도, 애타던 마음도 모두 그녀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사랑한다는 이나의 고백에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재혁이 옆으로 움직이려 하자, 이나가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어요.”

와락 끌어안는 이나의 손길에 재혁은 다정히 물었다.

“무겁지 않아?”

“괜찮아. 조금만 더.”

이나를 자신의 아래에 두고 체온을 느끼는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육체만 나누었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이 밀려왔다.

마음이 통한 상태에서 나누는 육체의 교감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그를 인도했다.

재혁은 이나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내쉬는 작은 숨이 재혁의 가슴을 가만가만 간지럽혔다.

재혁의 몸에 다시 변화가 일었다.

사랑을 나누던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기에 이나는 그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편안하게 누워 있던 이나가 당황한 듯 움찔했다.

뜨거운 것이 다시 그녀의 안에 들어오자, 이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등을 움켜쥐었다.

그가 감당할 수 없이 깊게 들어오자 그녀가 애타게 말했다.

“아…파요.”

이미 격렬한 사랑을 나눈 후라, 가만히 있어도 시큰한 아픔이 느껴지는 상태였다.

“천천히 할게.”

그는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나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움직였다.

사랑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느지막하게 일어나 룸서비스로 브런치를 먹었다.

“여기 앉아.”

재혁은 비어 있는 이나의 잔에 커피를 따라 주었다.

이나는 마치 연인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 주는 재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재혁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니요.”

“왜 그렇게 빤히 봐?”

“잘생겨서요.”

의외의 대답에 재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런 거라면 많이 봐.”

“네.”

이나는 재혁이 모든 준비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커피를 따른 재혁은 이나의 앞에 놓인 접시에 오믈렛과 크루아상 그리고 베이컨 몇 조각을 놓아 주었다.

“먹자.”

재혁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하자, 이나가 진지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대표님.”

이나의 달라진 말투를 눈치챈 재혁은 음식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심각한 얘기는 밥 먹고 하자고.”

“….”

이나는 어쩔 수 없이 포크를 집어 들었다.

이나의 말 때문인지, 조금 어색한 가운데 식사가 끝났다.

재혁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깊은 한숨을 쉬고는 말을 꺼냈다.

“어제 내 말에 대답하려는 건가?”

이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재혁은 실눈을 뜨고 이나를 바라보았다.

환한 대낮에 앉아 있으니 어젯밤 일들이 이미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재혁이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대답은?”

“좋아요.”

간결한 이나의 대답에 재혁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대신, 기간을 두고 만나고 싶어요.”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나는 재혁이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인상을 살짝 구기며 이나를 보던 재혁이 입을 열었다.

“계약 연애를 하자는 건가?”

“네. 제가 대표님 비서로 있는 1년 동안만 만났으면 해요.”

“….”

“내가 거절하면?”

“그러면, 전 대표님을 만날 수 없어요.”

“이유는?”

“더 깊은 관계는 원하지 않으니까요.”

재혁의 머릿속에 ‘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렇군.”

재혁이 간결하게 대답했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턱을 괴고 생각하던 재혁이 이나에게 말했다.

“나도 결혼 같은 걸 생각한 적은 없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지금 이나 말을 듣고 생각해 봤어. 결혼이라는 말에 대해서 말이야. 만약,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

“고백…하는 거예요?”

“아니, 만약 1년 후에 재계약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결혼이라고.”

“….”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표정이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팀장님이라서가 아니라, 전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 없어요.”

“찬이 때문에?”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찬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렇군.”

“불편하시면 그냥 없던 일로 해요.”

“아니, 그렇게 하자.”

“….”

“1년이나 만나 주겠다는데 못 할 거 없지.”

“….”

“그럼 오늘부터 1일인가?”

이나는 기쁨과 착잡함이 마구 뒤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럼, 이제 사랑한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겠네?”

“….”

“사랑해.”

“….”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 이나는 마음 내킬 때 말해. 진심일 때만.”

“알았어요.”

재혁은 그녀를 재촉하는 대신 기분 좋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이라도 하고 오자.”

재혁이 옷을 챙기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나는 입에서 맴돌던 말을 애써 삼켰다.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인 줄, 사랑을 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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