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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불어나는 소문 (1) (14/72)

14. 불어나는 소문 (1)

다음 날 아침, 새벽 사이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싶어 휴대 전화를 집어 든 이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8시. 여독 때문에 너무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그녀는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후, 재빠르게 집을 나와 지하철로 향했다.

그녀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출근 시간 5분 전이었다.

지각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나는 박 과장에게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과장님.”

이나를 본 박 과장은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랐다.

“어… 이나 씨, 잘 갔다 왔어?”

“네,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 별일 없었고?”

묘한 뉘앙스에 이나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박 과장은 수습하려는 듯 손을 저었다.

“아, 혹시 강 팀장님이 힘들게 하지 않았나 물어본 거야.”

“네, 별일 없이 잘해 주셨습니다.”

“그… 그래. 가 봐.”

“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아…. 이나씨 오랜만이에요.”

다른 직원들 역시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자신을 껄끄러워하는 느낌이랄까?

출장을 갔다 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이나가 업무를 준비할 때, 본부장인 현준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박 과장을 비롯한 많은 직원이 달려 나가 현준을 맞았다.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아, 박 과장님, 오랜만이네요. 사무실은 잘 돌아갑니까?”

“물론입니다. 하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팀장님 좀 보러. 강 팀장님 안에 계시나?”

“물론입니다. 들어가 보시죠.”

현준은 직원들을 뒤로하고 재혁의 방으로 향했다.

똑- 똑-

“들어…,”

재혁이 대답도 하기 전에 현준이 팀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현준을 본 순간 재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준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재혁에게 다가갔다.

“강 팀장님~ 블라디보스톡 소식 들었습니다~ 한 건 하셨다면서요!”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성과가 회사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노크를 했으면 대답을 듣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재혁이 인상을 구기며 말하자, 현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뭘 까탈스럽게 굴어요, 또.”

“까탈?”

“이러지 맙시다, 형. 그래도 내가 상사인데, 대접까지는 아니어도 하극상은 쫌 그렇잖아?”

재혁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시선을 서류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왜 왔어?”

“형, 이번 건 혼자 입 싹 닦을 거 아니지?”

무언가 요구하는 듯한 말이었다.

재혁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현준을 다시 노려보았다.

“에이, 그렇게 보지 마시고~ 어차피 형네 팀이 우리 부서 아래에 있는 거니까. 할아버지한테 성과 좀,”

“나가.”

“그냥 날로 먹겠다는 건 아니고, 들어 봐.”

재혁은 더 이상의 헛소리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현준을 노려보았다.

재혁의 눈빛에 현준은 갑자기 짜증을 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강 팀장님. 혼자 잘났다고 이 회사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강현준.”

“지금 형 썬라이즈 혼자 먹으려고 일 벌이는 거잖아! 아니야?”

“본부장 달더니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적당히 하지. 이렇게 관심 끄는 거 역겹거든? 할아버지가 오냐오냐한다고 호텔 오너 될 수 있을 거 같아?”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히자 강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가 계속될 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정이나가 누구야!! 정이나 나와!!”

이나를 부르는 날카로운 외침에 재혁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그는 거만하게 앉아 있는 현준을 두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입구 쪽에 한 30대 여자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그녀를 경비 직원들이 있는 힘을 다해 막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재혁이 나오자 사무실 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이나를 힐끔 보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들어와서 이나 씨 찾으며 난리를 치네요.”

이나 역시 영문을 몰라 여자에게 다가 섰다.

“정이나 나와!! 정이나!!”

“제가 정이나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이나가 다가서자, 여자는 갑자기 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 잘 만났다! 어디 유부남을 꼬셔?! 내가 니들 이혼하고 새살림 차리는 꼴 볼 줄 알어?!! 절대 이혼 안 해 줘!!! 절대!!”

놀란 직원들이 뒤늦게 그녀를 막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나의 머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한참을 쥐어뜯긴 후에야 여자가 이나에게서 떨어졌다.

이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이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자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시길래 저에게 이러시는 거죠?!”

여자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내가 누구냐고?! 나, 김일수 와이프다!”

“김일수가 누군데요?!”

“헛! 어이가 없어! 네 아들 유치원 선생!”

“!!”

유치원 선생이라는 말에 이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말하는 김일수는 김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이나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자, 여자는 기세가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혼해 달라고?! 웃기지 마! 이 xxx아! 내가 니들 맘대로 이혼해 줄 줄 알어?! 평생 불륜녀 딱지 달고 살게 해 줄 거야! 절대 잘되는 꼴 못 봐!!”

“오해예요. 저는 그분과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오해?! 그런 년이 같이 제주도 여행까지 갔다 왔냐?!”

여자는 소리치며 제주도 티켓을 이나의 얼굴에 던졌다.

“새살림 차린 것도 내가 모를 줄 알아?! 이삿짐까지 옮겨 준 거 다 아는데, 어디서 헛소리야!”

“저는 김 선생님과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이나가 다시 한번 이를 꽉 깨물고 대답하자, 여자는 화가 나서 이나를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이게 끝까지!!” 

덥석-

어느새 다가온 재혁이 여자의 손을 잡아챘다.

“그만하시죠.”

“이건 또 뭐야!!”

여자는 반대 손을 휘둘러 재혁의 뺨을 후려쳤다.

짝-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지자, 사무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재혁은 뺨을 맞았음에도 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를 노려보며 주위에 말했다.

“경찰 불러.”

여자는 더 이상 해 봐야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손을 휙- 뿌리치고는 이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두고 봐.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이나에게 쏘아붙인 여자는 휙 돌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나갔지만 사무실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그 한복판에 이나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박 과장은 모여든 사람들을 흩으며 말했다.

“자, 자, 일합시다, 일~”

사람들은 이나를 한 번씩 훔쳐보며 자리로 흩어졌다.

그때, 현준이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며 재혁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사무실 꼴 한번 좋네~”

이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술을 꾹 깨물고 서 있다가 재혁을 지나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재혁은 안타까운 눈으로 이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회사 꼴 개판이네.”

현준은 손에 묻은 물을 탁탁 털고 가볍게 옷매무새 매만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으로 괜히 시간만 버렸다는 생각에 짜증이 올라온 상태였다.

화장실을 나온 현준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지영을 비롯한 몇 명의 여직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대화에 열중하느라 현준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정이나 정말 대박이라니까. 강 팀장도 모자라서 유부남까지 건드리잖아.”

“강 팀장님은 확실한 거야?”

“내가 말했지? 시험지 0점이었는데 블라디보스톡 데려간 거, 그리고 재무팀에 물어보니까 방도 하나만 잡았다 그러더라고, 4박 5일 동안 한 방에서 둘이 뭐 했겠어?”

지영이 신나서 떠들어 댈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거 정말인가?”

“정말이지 그럼… 헉! 본부장님!”

무심코 대답하며 돌아본 지영은 현준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현준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들려 줄 수 있나?”

***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이나는 억울함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울면 정말로 잘못한 것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아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억겁의 시간을 지낸 것 같은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이나는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나가는 걸음마다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에 왔던 부재중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이나 씨. 와이프 때문에 곤란하셨다는 말 들었습니다. 찾아뵙고 사죄를 구하고 싶습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이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답장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찾아온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답장을 보냈다.

[절대 찾아오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가까워질수록 김 선생님이 와 있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 선생님이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이나 씨!”

이나는 그를 무시하며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김 선생은 이나를 따라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나 씨, 정말 미안합니다. 피해 끼칠 생각은 없었는데, 와이프가 막무가내로 나오는 바람에.”

그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듣자, 이나는 솟아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 멈춰선 이나가 김선생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대체?”

“이나 씨… 좋아합니다.”

“누가 좋아해 달라고 했나요? 왜 마음대로 사람 좋아해 놓고 이런 식으로 피해를 주는 거죠?”

“미안해요. 제가 와이프는 꼭,”

“필요 없습니다. 제발 부탁이니까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주세요.”

이나는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이나가 몇 발자국 걸어갈 때, 차갑게 돌변해 버린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정이나 씨!”

그는 이나의 팔을 휙- 낚아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이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목숨 걸고 좋아한다고! 난 내 인생 걸었어. 직장이고 와이프고 다 버릴 만큼 당신을 좋아해. 이런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놔요! 뭐 하는 짓이에요?!”

이나가 빠져나가려 해보았지만 덩치가 곰 같은 김 선생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나 씨도 찬이 있잖아요. 그럼 나 결혼한 거랑 쌤쌤인 거 아니에요? 이나 씨, 나 좀 봐 봐요. 정말 진심으로 이나 씨만 사랑해요, 나는. 이나 씨!”

그가 덥써 이나를 껴안으며 말했다.

“사랑해! 정이나!! 사랑해!!”

“놔! 제발!”

그때, 두 사람의 옆으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안에서 악마의 표정을 한 재혁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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