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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231화 (231/233)

231화. 황자의 최후

구슬이 깨지자마자 황자는 뒤로 돌아 도망쳤다. 봉인이 풀린 마수를 콘스탄틴이 잡는 동안 도망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 마수가 콘스탄틴에게 큰 해를 끼치거나 죽이기라도 한다면 더 좋은 것이고. 아마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이쪽으로 오는 거야!’

유감스럽게도 황자가 도망치는 방향이 사이나가 있는 쪽이었다.

결국 웨슬리 단장이 나서야 했다.

“뭐야, 이 새끼! 당장 안 비켜!?”

“비켜드릴 수 없습니다.”

“감히 누구 앞을 막는 게냐!”

“어차피 못 빠져나가십니다. 포기하시지요.”

웨슬리는 신호를 보내 기사단의 은신을 해제했다. 이미 은신이 의미가 없어진 시점이었다.

어둠 속에서 하나둘 인형이 존재를 드러냈다. 스으윽 드러나는 기사들의 수가 한둘이 아니다.

자신이 포위되었음을 알아챈 황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비키라고! 기사 나부랭이 주제에……!”

황자는 분기를 못 이기는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품에 손을 넣었다. 그 모습에 사이나는 자동적으로 몸이 긴장했다.

대체 구슬을 몇 개나 챙겨 온 거야!

발치에서 마수가 나타나면 사이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도망을 쳐야 하나, 어째야 하나. 그녀는 나무 뒤에서 황자 쪽을 훔쳐보며 고민하다가 멈칫했다.

황자가 품에서 꺼낸 것이 유리구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유리병 몇 개.

저건 또 뭘까. 황자가 이 상황에서 꺼낸 것을 보면 좋은 것은 아닐 것인데…….

“당장 비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황자는 마수와 싸우고 있는 콘스탄틴 쪽을 흘끔 돌아보더니 경고했다. 나름 초조한 기색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에 사이나가 마른침을 삼킬 무렵, 황자가 유리병 하나를 열더니 웨슬리 쪽으로 집어 던졌다.

웨슬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다가 제 뒤에 사이나가 숨어 있음을 깨닫고 검 면으로 후려쳐 멀리 떨구려 했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오더라도 좀 멀리서 나오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계산이 무색하게 유리병은 검 면에 닿자마자 퍼엉-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헉.”

유리병이 터진 자리에서, 뿌연 안개 같은 게 피어올라 웨슬리를 덮쳤다.

-독이다.

“도, 독……? 허억, 마님… 피하세요…….”

욜리와 웨슬리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독 안개가 몸집을 부풀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결국 사이나 근처까지 닿은 그것을 피해 그녀는 나무 뒤에서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님이라고?”

“사야!”

그때, 콘스탄틴마저 그녀를 향해 크게 호명했다.

이쪽의 움직임을 살피다 그녀가 있음을 알아챈 모양이다.

마수를 상대하는 와중이라 몸을 빼지 못하는 것일 뿐 당장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는 다급함과 조급함, 혹은 왜 그녀가 여기에 있냐는 물음이 모두 묻어 있는 한 마디였다.

결국 황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네, 네년이 살아 있었단 말이냐!?”

“…….”

사이나는 천천히 후드를 머리 뒤로 넘기며 황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웨슬리 쪽으로 손을 뻗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정화.”

화악-

투명한 빛무리가 잠시 주변을 감싸더니 검은 안개를 집어삼켰다.

중독 증세로 호흡을 할딱이며 검게 물들어가던 웨슬리의 숨결이 안정되며,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회복의 여파였다.

“단장을 모셔라.”

한 기사가 얼른 웨슬리 단장을 둘러업고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황자는 눈을 부릅뜨며 사라져버린 독 안개를 찾아 고개를 휘휘 저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보시다시피, 잘 살아 있네?”

사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빈정거리듯 대답했다.

“너, 너 감히 그 말투는 뭐지?”

“내 말투가 왜?”

“황족에게 감히 반말을 지껄이는가?!”

“여기 황족이 어디 있어?”

“이, 이……!”

황자가 부르르 떨었다.

사이나는 황자의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반말을 하며 그를 자극했다. 물론 그에게 존칭을 쓰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 얼굴에 구멍이 나면 아주 예쁘겠구나. 비참하게 죽여주마!”

황자는 핏발이 선 눈을 하고는 병 하나를 더 집어 던졌다.

아무래도 아까 독 안개가 사라진 것이 우연이라고 결론 내린 모양이다.

“정화.”

하지만 또다시 독안개가 사라지자, 황자의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해답이 생각났으나, 그게 맞는 답일 리가 없다는 그런 표정.

“서, 설마 네년이 새로운…….”

황자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말을 멈추고는 또 다른 병을 깠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죽어! 죽으라고!”

발악하듯 흩뿌려진 독액이 사방에 독 안개를 형성했다.

도무지 못 믿는 황자에게 실물 증거를 보이기 위해 사이나는 욜리를 소환했다.

펄럭거리는 욜리의 날갯짓에 독 안개가 황자 쪽으로 밀려갔다.

“으아악!”

그가 허겁지겁 몸을 피했다.

욜리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깔짝깔짝 날갯짓을 몇 번 더 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독 안개에 질겁하며 황자가 바닥을 굴렀다. 황자를 따라가는 독 안개의 궤적을 따라 아래의 풀들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에 황자가 더 기겁을 하며 바닥을 기듯 팔다리를 놀려 멀리 피했다.

“이리 질색하는 것을 어찌 그리 품에 소중히 안고 다녔을까?”

“다, 당장 치우지 못해! 황족을 위협하다니! 반역이다!”

저는 스스럼없이 던지면서 제겐 티끌이라도 닿을까 벌벌 떠는 꼴이라니.

사이나는 바닥을 여러 번 굴러 어느새 거지꼴이 된 황자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욜리.”

마수와 싸우는 콘스탄틴에게서 조급함이 선명하게 보였다.

제 걱정에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 이쯤에서 그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낫겠지.

사이나는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후려쳐.”

뻐억-!

날렵하게 날아간 욜리의 뒷발이 황자의 머리통을 휘갈겼다. 부웅, 뜬 몸을 이번엔 다른 뒷발이 후려쳤다.

“크헉!”

철푸덕,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볼품없이 나자빠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형이 아니라도 이런 머저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지.

욜리가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그간 신출귀몰하게 도망 다니던 것에 비하면 허망하기까지 한 마무리였다.

* * *

맥페이든 전역에 검은 기가 올라갔다.

선황의 서거가 공표되었기 때문이다.

크레이머 부부는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일찌감치 황도 페이즐로 이동했다.

황자는 자격도 없으면서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선황을 시해한 무도한 반역자라는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그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결말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결말은 달랐다.

크레이머령에서 잡힌 황자의 신변은 황실로 인도되지 않았다. 곧 황제가 될 매디얼과 콘스탄틴이 어떻게 합의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황자의 신변이 크레이머령을 벗어나지 못한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이 데려간 황자가 이후 어찌 되었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그저, 사이나가 정화를 했음에도 독 안개가 지나갔던 땅들은 풀들이 다 죽어버렸는데, 그 광경을 냉랭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훑던 콘스탄틴의 심기 불편한 얼굴로 보아 별로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것 같다고 추측할 뿐.

전에 얼핏 언급했던 그림자 감옥행을 당했을 수도 있고, 더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정도 할 사람이 있고, 안 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일주일간 국장이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꽃을 들고 와 선황을 추모했다. 그들은 황성에 들어갈 수 없기에 그 바깥에 꽃을 놓았는데, 성벽을 따라 놓인 꽃으로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이 꽤나 장관이었다.

선황의 치세는 무난했다. 특별히 잘한 것도, 특별히 못한 것도 없었던 평온한 시대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들을 잘못 키워낸 죄로 평탄치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점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났다.

그리고 새 시대가 열렸다.

국장이 끝나고 바로 매디얼 황태자의 황제위 즉위를 위한 대관식이 열렸다.

헌것은 가고 새것이 오는 시간.

새로운 황제. 새로운 시대.

매디얼은 새로이 황제의 관을 쓰며, 동시에 헤비아탄 경에게 반려의 관을 씌워 주었다.

그리고 아켈리온을 소환하는 것을 성공해 보이며 무사히 계승을 마쳤음을 선보였다.

명실상부, 정말 여황이 된 것이다.

주변국에서 축하 사절들이 찾아들었고, 각 가문에서 새롭게 충성 맹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또한 이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가 전역에서 열렸다. 국고가 크게 열렸고, 각 영지마다 영주의 창고에서도 많은 재물이 각출되었다.

귀족이고 평민이고 할 것 없이 즐거움에 차서 이를 기념하느라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 * *

대관식 이후 황도에는 커다란 행사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 등장한 맹약자의 공식적인 증명식이었다.

황제가 된 매디얼의 첫 공식 행사이기도 했다.

5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롭게 계약에 성공한 맹약자와 함께 새 치세를 열어가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로 보였기 때문에 매디얼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여겨지도록 부러 첫 행사를 이것으로 짠 이유도 있다면 있었다.

황성 앞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증명식을 공개 행사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큰 축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유례없는 행사를 보기 위해 황도민과 근교민은 당연하고 지방 소도시에서부터 올라온 자들까지 넘쳐났다. 여관마다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기왕 돈 들인 여행, 더 좋은 자리에서 증명식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자리 맡기에 나선 자들이 대다수라 행사까지는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시작하나 봐!”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기사들이 등장했다.

증명식이 치러질 광장의 단상을 기준으로 반경 얼마간을 통제하며 기사들이 인(人)의 장막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사들의 안내를 따라 기준선 바깥으로 이동해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광장 정리와 통로 확보가 끝나자 멀리서부터 마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광장 근처는 금세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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