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수다쟁이의 드문 순기능
“이게… 무엇이오?”
“얼마 전 발견한 것인데-”
-어! 나 이거 아는데!
황태자에게 혹시 이런 것을 아느냐고 물으려던 차, 갑자기 칼리고가 치고 나왔다.
-봉인구다! 봉인구!
“…뭐?”
“……내게 하는 말이오, 공작?”
순간 칼리고에게 되묻고 만 탓에 콘스탄틴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아, 갑자기 수호령이 말을 걸어서 말입니다.”
“아하, 그런 것이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차기 맹약자가 될 사람인지라 충분히 상황을 이해했다.
“그럼 그것은?”
황태자가 콘스탄틴의 손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
-봉인구라니까? 봉인구! 마수를 봉인하는…….
콘스탄틴이 갑자기 손아귀를 불끈 쥐는 바람에 유리 조각들이 부딪히며 까드득 소리를 냈다.
“…뭐?”
제어할 새도 없이 일그러진 미간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반문이 터져 나왔다.
봉인구? 마수 봉인구란 말인가?
순간 새어 나온 기세가 방 안을 잠식하며 주변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공작?”
급작스러운 기세에 헤비아탄 경이 긴장하며 앞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콘스탄틴은 황태자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녀의 허락을 받은 뒤 옆방으로 향했다. 칼리고와 좀 더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모레프를 황녀의 곁에 두고 오는 것은 잊지 않았다.
“…봉인구라고? 그럼 구슬이 깨지면 어떻게 되지?”
-봉인했던 마수가 도로 나와!
“무슨 봉인구가 그따위지?”
-지금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개국 초기 때만 해도 흔했다!
칼리고는 이때다 싶게 엄청난 정보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언제더라. 지금은 몰락해서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마수 봉인을 잘하는 가문이 여럿 있었지. 특히 특출난 몇몇 가문이 있었는데, 그림으로 봉인하는 가문이랑, 보석에 봉인하는 가문, 특수 처리한 수정구에 봉인을 하는 가문 등이 있었지.
특히 한번 봉인하면 그것으로 끝인 다른 봉인 도구들과 달리 봉인구는 그게 깨지면 다시 마수가 풀려난다는 특성 때문에 특이했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봉인 자체로만 쓰이다가 나중에는 악용이 되기 시작하면서……
중얼중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명을 듣는 것은 매우 짜증이 나고 머리 아픈 일이었으나, 괜히 태클을 걸었다가 필요한 정보를 토해내기는커녕 난리 법석을 떨어댈까 봐 콘스탄틴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얼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완전히 사라진 가문이라 더 이상 생산도 안 하는데 봉인구들은 매 세대마다 이렇게 한 번씩 꼭 나타나서 속을 썩인단 말야? 어떤 의미로는 꾸준하기까지 해. 하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황실 쪽에 몰래 보관된 봉인구만 해도 그 수가 상당했었으니까-
“…뭐? 황실?!”
콘스탄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래, 주인아. 여태까지 출몰한 봉인구의 출처를 보면 황실이 제일 많았단 말이다.
이 불길한 예감은 설마…….
“…….”
크레이머령에서 갑작스레 솟아났던 마수.
흔적으로 남았던 유리 조각들.
황실이 출처인 봉인구.
그리고… 사라진 황자.
“…사야!”
그녀가 위험했다.
* * *
어떻게 황성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거의 횡설수설하다시피 상황을 설명하고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 워프게이트를 탔다.
그림자를 타고 달리면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헹! 주인아, 네가 날 매일 괄시하고, 매일 재워놓고, 신경도 안 쓰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아는 것도 많은 나에게 물어봤으면! 벌써 알아도 진즉 알았을 텐데!
칼리고의 짜증 나는 남의 탓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다 주인, 네 탓이다!
머릿속에 온통 사이나를 향한 걱정뿐이었다.
“…각하?”
콘스탄틴은 크림성에 도착하자마자 사이나의 행방을 물었다.
“사야! 그녀는 어디 있지?!”
“마님께서는 외출 중이십니다.”
전염병 걸린 마을의 실태를 조사하러 외출했음을 나디아가 보고했다.
“왜 내게 미리 알리지 않았지?!”
“…곧 돌아오실 텐데 번거롭게 방해 말라는 마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하….”
“왜… 그러시는지요. 혹시 마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최소 경비 인원만 빼고 모두 출정한다. 기사단에 알리도록!”
콘스탄틴은 설명할 시간도 없다는 듯 명령했다. 나디아는 반문 없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움직였다.
-끼하핫! 주인아! 토벌이냐? 죽이러 가냐?!
그는 기사들이 다 모이는 것을 다 기다리지도 못하고 먼저 출발했다.
마음이 다급하여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동속도가 다르기도 한 데다, 먼저 출발한다고 그가 위험할 일도 별로 없기에 그는 최선의 속도로 내달렸다.
삼엄한 속도로 마을에 도착하자 그의 기운을 느낀 기사들이 이미 마을 어귀에 나와 있었다.
마찬가지로 콘스탄틴은 바로 사이나의 행방을 물었고, 그들은 대강의 상황을 설명하며 사이나가 상류로 갔음을 알려왔다.
‘고작 기사 하나를 데리고…….’
왜 그녀가 단출하게 상류를 가야 했는지 이해가 되기는 하나, 짜증과 불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 부인, 이미 죽은 거 아니냐? 냄새나 불쾌하지 변변한 능력도 없어 보이던데~ 주인아, 너는 나를 만나 얼마나 다행이냐. 이 몸이 얼마나 유용하냔 말이지~
“닥쳐라, 이 새끼야…!”
“…예?!”
급작스럽게 피어오르는 살기에 기사들이 긴장하여 몸을 수그렸다. 자신들이 무얼 잘못한 것인지 방금 전의 행동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무얼 잘못했는지 결국 알 수 없었다.
콘스탄틴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뒤, 뒤를 따라야 하나?”
“일부만 남고 그래야 할 듯하다.”
기사들이 얼른 짐을 추리며 그를 따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순식간에 산에 올랐다. 뒤로 기사들이 따르든 말든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디 있지, 그대……?’
그는 기감을 넓게 펼치며 산을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기운이 느껴졌다.
인기척? 아니 마수인가? 아, 이건 수호령의 기운이다.
‘사이나인가?’
-으에에엑! 기분 나쁜 냄새!
아니, 칼리고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가 분명하다.
그는 더 빠르게 속도를 높이며 움직였다.
“사야!”
보인다!
은회색 늑대의 몸체 위로 인영 둘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거뭇한 마수의 형체가 쫓아오는 것도.
-마수다! 마수! 이히힉! 죽이자!
욜리가 지척이었다. 콘스탄틴은 모레프를 해제하는 동시에 바닥으로 내려서며 사이나를 향해 달렸다.
“-콘스탄틴?!”
그녀 쪽에서도 그런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이름을 부르며 반색했다.
“콘스탄틴!”
울음을 터트리듯 그의 이름을 재차 부르며 사이나가 그의 품 안에 안겨 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간의 고생을 알 것같이 떨림이 묻어있었다.
“-괜찮, 습니까?”
“응, 응. 괜찮아요…. 근데 마수가…….”
뒤를 흘끔거린 품 안의 여체가 여전히 무섭다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콘스탄틴 혼자서요? 아래 기사들이 올라오면 함께하는 게…….”
“고작 한 마리. 나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대는…….”
조금만 늦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찔한 상황을 떠올리자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다.
콘스탄틴은 그녀의 살아있음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는 듯 그녀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닿은 볼의 체온이 넘어오며 칼리고의 목소리가 또다시 멀어졌다.
“…쉬고 있어요.”
속삭이듯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지만, 사이나에게는 단호하면서도 신뢰감 있게 들렸다.
“하지만…….”
극한 긴장감이 풀리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스르륵 무너지는 그녀의 몸을 받치며 그가 재차 속삭였다.
“이제 안전합니다.”
그대를 해칠 것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안심해도 된다고. 그렇게.
그 신뢰감 때문일까.
사이나는 마치 여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왔던 것처럼, 안도감이 들자마자 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추욱 처지는 몸을 받아들며, 콘스탄틴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각하.”
“경.”
“제가 부족하여… 마님께서 위험에 처하셨습니다.”
“사이나를 지근에서 보필할 만한 기사가 크림성에 없는 것이 어찌 자네만의 잘못이겠나.”
콘스탄틴은 품 안의 사이나를 루퍼트에게 내밀며 덧붙였다.
“네 주인을 잘 모시고 내려가도록 해라.”
검은 마수가 이제 거의 지척이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예.”
“내려가자마자 의사를 부르도록 하고, 기사단을 올려보내.”
“알겠습니다.”
“빨리 가.”
콘스탄틴이 묵검을 꺼내 들며 자세를 취했다. 등 뒤로 그들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면을 응시하며 콘스탄틴은 마수의 정체를 파악했다.
검은빛 피부를 가진 마수는 역시나 이 지역이 주요 출몰지역이 아닌 종류의 것이었다.
대마수 훈련을 갓 받기 시작한 루퍼트가 상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황자의 짓.
‘하필 이 영지를 택해서 넘어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맹약자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워프게이트를 탄 것 같은 속도로 북동령에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봉인구 같은 고대 물품이 황실에 있었다면 다른 고대 물품도 충분히 있을 법했다.
그렇다면 그중에 이동을 돕는 물품도 한두 개쯤 있었겠지.
그게 가장 이치에 맞았다.
어느새 검은 마수가 지척이었다.
마수는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며 음산한 울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그 입을 쩌억 벌리며 달려들었다.
스걱!
콘스탄틴은 달려드는 마수의 뒤편으로 날렵하게 돌아가며 묵검을 휘둘렀다.
루퍼트가 마수를 막아서던 때와 소리부터가 달랐다.
이는 콘스탄틴이 이 마수의 피부 중에 가장 약한 지점이 종아리 아래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검의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검날 위로 칼리고의 힘을 덧씌워 쓰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걱! 스그극!
치고 빠지는 방식을 반복하며 콘스탄틴은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그었다.
크르라악!
통증으로 인해 화가 난 마수가 손톱을 더 바짝 세우며 날뛰었으나, 마수 잡는 데에만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보낸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일대 다수도 아니고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쯤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다만, 사이나를 괴롭게 한 마수인지라 그로서도 쉽게 죽이지 않고 있는 것뿐.
-크하하하항! 죽어어어!
신나서 날뛰는 것은 칼리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