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하필, 여기서, 이런 일이?
“특별히 찾으시는 점이나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을까요?”
“뭔가 수상한 물품이나 잔해가 남은 것이 없는지 살펴봐.”
“예.”
“아니, 특별히 수상하지 않더라도 자잘한 것까지 다 보고하도록 해. 바닥에 남은 얼룩이나 쓰레기, 발자국 등 그 무엇이라도 말이다. 판단은 내가 하겠다.”
“알겠습니다!”
부단장을 비롯해 기사 몇 명이 그의 명을 따라 흩어졌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마다 탐색을 하며 이윽고 마수가 최초로 발견되었던 곳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그간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기도 했고, 첫 출몰 지점이기도 하여 콘스탄틴은 더 상세하게 주변을 살펴보라고 명해둔 상태였다.
얼마 뒤, 부단장이 찾아왔다.
“보고된 곳보다 앞선 것으로 예상되는 출몰 지점을 발견한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주민들의 증언과 다른 곳이더군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주민의 증언과 최초 출몰 지점은 다를 수 있었다. 증언이야 자신이 처음으로 본 시점을 말하는 것임으로.
“가지.”
콘스탄틴은 부단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 건물의 뒷벽 골목, 외진 곳이라 사위가 어두웠다. 일부러 안력을 돋우며 살피지 않았더라면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것 같은 후미진 곳이었다.
확실히 마수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목격자가 없을 만했다.
‘확실히… 흔적이 있군.’
마수가 이곳에서 밖으로 나간 흔적이 있었다. 여기까지 이어지는 흔적이 없어서 그렇지.
‘도대체가 어떤 식으로 최초 발생한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콘스탄틴은 찜찜함에 주변을 훑다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무릎을 세워 앉으며 바닥을 살피자 작고 날카로운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몇 개의 조각을 집어 손바닥 위에 올리고는 자세히 관찰했다.
‘유리?’
어느 면은 둥글고 어느 면은 날카롭게 깨져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지만 수호령의 힘이 느껴졌다.
익숙한 기운은 아니라서 확신하긴 힘들긴 했으나, 약간이나마 분명 거슬리기는 했다.
‘대체 뭐가 깨진 거지?’
뭔지는 몰라도 단순한 유리의 잔해는 아닌 듯했다. 잔여 기운으로 보아,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과 연관이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어떤 식’이 정말 어떤 식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그렇지.
‘…일반적인 마수의 출몰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군.’
허접한 결론이지만, 지금으로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기도 했다.
‘자연 발생적인 출몰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색유리가… 마수를 유인하는 고대 도구 같은 걸까?
고대 물품 중에는 그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많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태 그가 접하거나 목격한 바가 없다 보니 선뜻 결론을 내리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하필, 이 시기에, 제 영지에서, 이런 수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황자?’
당연히 제일 먼저 의심 가는 것은 이쪽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황자는 맹약자가 아니다. 수호령이 없으니 워프 게이트를 탈 수도 없고, 사령까지 회수된 마당에 직접 디오스를 탈 수도 없었다.
수호령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절대 일주일 만에 동북령에 도착할 수 없다.
게다가 황자가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에 성공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흔적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니 범인은 황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만 도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럽게 찝찝하지만…….
‘하아, 골치 아프군.’
자신이 이리 무능하게 느껴질 줄이야…….
전처럼 제 한 몸 추스르고 사는 거라면 이런 상황이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이제 그에겐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다.
사이나의 안위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죄다 찜찜하고, 거슬리고, 부족해 보였다.
‘빌어먹을. 혹시 모르니 황태자와 다른 공작들에게도 문의해 보아야겠어.’
콘스탄틴은 유리 조각들을 주워서 작은 주머니에 담아 품에 잘 갈무리하고 일어섰다.
외부인을 더 조심하고 경계에 힘쓰는 것 외에는 더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당장은 별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 * *
영내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자들의 신원을 검사하고, 근 한 달간 중앙령을 방문했던 모든 자들을 추적했다.
기존 중앙령 거주자의 전방위 인구조사가 다시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를 본 기억이 있는 자들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후드를 벗지 않아 얼굴을 보지 못한 손님이 있었다는 여관 주인의 증언에 따라 숙박객을 조사하기도 했다. 그중 이미 사라진 자들이 있어 추적했더니 대부분 밀수꾼이나 다른 영지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이었다.
커다란 짐마차나 짐을 몰래 들여온 자들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크림성 밖에서 안까지 땅굴을 이용해 마수를 들여왔을지도 모른다는 가설 또한 밝혀내지 못했다.
크림성 자체가 암석 지반 위에 세워진 데다, 후원이 있기는 해도 이쪽 땅은 조경용 식물이나 심을 수 있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땅인지라, 토지 자체가 사실 그리 깊지 않으니 땅굴을 팠다면 바로 티가 났을 것이다.
때문에 다시 확인해 봐도 땅굴을 계속 이어지게 파며 들어올 경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만 나왔다.
그렇게 전말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콘스탄틴이 황도에 가야 할 날짜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매디얼의 호위 때문이다.
제 아비도 죽인 황자가 여동생이라고 못 죽일까.
그런 이유로 4대 공작은 돌아가며 호위를 서기로 했다.
지금은 회수한 상태라고 해도 길리언 황자는 한때 사령의 대여자였던 데다, 황성의 비밀 통로를 얼마나 더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 일반 기사들만으로는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은 워프 게이트를 타러 가기 전 사이나에게 인사를 하러 들른 참이었다.
“정말 같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사이나가 거절했다.
“여기 수습할 게 아직 남았잖아요.”
마수 피해 처리가 완전히 안 끝난 데다 전말도 다 안 밝혀져서 불안해하고 있는데, 영주와 영주 부인이 둘 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황자가 있는 황도 쪽이 더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잖아요?”
안전문제도 그렇고, 황도에 가 봤자 할 일도 없었다. 황도 분위기가 그러니 친우들이랑 놀기도 뭐 하고, 그가 번을 서는 동안 그저 저택에 있어야 하는 게 다일 텐데, 그럴 바엔 여기서 할 일을 하는 게 더 나았다.
“그래도…….”
그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덧붙였다.
“그대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전 괜찮아요. 기사단이 여기에 다 몰려 있는데 불안할 게 뭐가 있어요. 욜리도 있고.”
게다가 다리엘과 나디아가 있지 않은가. 그녀들이 빈틈없이 사이나를 챙기는 데다가, 요즘엔 오두막을 떠나 성으로 들어온 유모까지 합세해서 사이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려고 해대는 통에 외로울 새도 없었다.
“누구 하나 대동하고 다니라고 해도 안 들으시는 게 누군데…….”
오히려 호위도 없이 왔다 갔다 해서 사이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콘스탄틴이었다.
“제겐 오히려 짐입니다.”
같이 다닌다고 딱히 더 안전하지도 않은 데다, 워프 게이트를 탈 때마다 사내새끼 몸의 어딘가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질색이라 콘스탄틴은 단칼에 거절했다.
사이나도 더 권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해도 황자가 물리적으로는 콘스탄틴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독살 정도면 모를까.
“알았어요. 대신 황성에서 뭐 드실 땐, ‘이거’ 잊지 마세요.”
사이나는 요 며칠 골을 싸매면서 결국 완성한 작업물을 그에게 내밀었다.
유리의 특기인 ‘독 감지’ 능력을 보석에 속성으로 집어넣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서 액세서리로 세공까지는 못 했어요.”
사이나가 내민 보석 알을 보는 콘스탄틴의 표정이 묘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먹거나 마실 것에 보석을 접촉했을 때 색이 변하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절대 먹지 마세요.”
매디얼은 몰라도 황후는 믿을 수 없다.
황태자가 아직 황궁을 다 장악한 것은 아니기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녀가 내미는 보석 알을 받음과 동시에 콘스탄틴은 내밀던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가세요, 이제.”
“…….”
더 늦으면 깜깜해져 버릴 것 같아 사이나가 재촉했다.
“여전히…….”
그가 한숨처럼 덧붙였다.
“나만 안달복달하는 것 같습니다.”
“…네?”
“그대는 내가 아니어도 잘 지내는데 말입니다.”
“어차피 황도에 제가 같이 가도… 함께 계셔주실 순 없잖아요.”
“애석하게도, 그렇지요.”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이나의 볼을 감싸왔다.
사이나는 자연스럽게 그 손바닥에 제 왼쪽 얼굴을 묻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새초롬한 자태에 어쩐지 콘스탄틴은 목이 메어 침음을 삼켰다.
“얼른… 황자가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발밑에 두고 사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공작씩이나 되는 분들이 언제까지 호위 기사 노릇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물론 그 호위 대상이 곧 황제가 될 황태자라고는 해도, 거대 영지의 영주이자 맹약자가 할 일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끝나면…….”
느릿하게 사이나의 볼을 엄지로 쓸며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네….”
“둘만 있도록 합시다.”
“네에…….”
그가 그녀의 눈두덩에 도장처럼 입술을 꾸욱 찍고는 떨어졌다.
손길과 태도에 아쉬움이 진득이 묻어났다.
유독 아쉽고 불안한 기색을 남기고는 콘스탄틴이 황도로 떠났다.
“…갔어.”
말은 얼른 가라고 했지만, 사실은 사이나도 허전했다.
어차피 낮에는 서로 볼일을 보느라 떨어져 있는데도, 같은 성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이렇게 다른 걸까.
어쩐지 그가 굉장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모레면 올 텐데 왜 이리 유난이야?
유리가 그 작태에 짜증을 냈다.
“…네가 뭘 알겠니. 결혼도 안 해본 녀석이.”
사이나는 괜히 툴툴거렸다.
-하, 결혼? 저 작자가 결혼한 아내한테 얼마나 냉정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시끄러. 엘리자베스 얘긴 하지도 마.”
둘이 부부였던 시절의 얘긴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형식적인 부부였다고 해도 말이다.
-내 참, 진짜….
중얼중얼, 커플이 어쩌고 유리가 뭐라고 자꾸 꿍얼거렸으나 사이나는 무시했다.
-얼른 일이나 하러 가시지?
“…….”
이 말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일이 터진 것은 다음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