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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222화 (222/233)

222화. 의외의 유능함

북탑 역시 어차피 사람을 가두는 용도이기에, 황후는 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햇살이 좀 들고 공기가 눅눅하지 않은 지상에 머무르게 하는 것일 뿐.

본래 황족으로 태어나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던 황자다. 감금만으로도 엄청난 굴욕이니, 어미 된 자로서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북탑에서, 황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황제의 서거는 여전히 비밀에 부쳐졌다.

사인도 그렇거니와 시해의 범인이 사라진 까닭이다.

그 범인이 황자이고, 현재 도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말도 못 할 소란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우선 숨기기로 했다.

그간 황실 기사단과 4대 공작가의 기사단이 비밀리에 황자를 다각도로 추적했다.

그러나 하늘로 솟은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도무지 소득이 없었다.

공모자도 없는 것 같은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간 황자를 우습게 보았던 자들이, 이토록 철저한 도피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을 정도였다.

* * *

황도의 크레이머 타운하우스.

“잘되어 갑니까?”

사이나는 서재에서 거울 문자와 대칭 구조에 관한 아를어 문법을 정리하던 중에 콘스탄틴의 방문을 받았다.

기존 아를어 해석을 하는 데에 있어 뼈대 문법 구조를 갈아치울 만큼 대단한 발견인지라 학계에 알릴 생각이었다. 그러기엔 남들이 알아볼 수 있게 문서화할 필요성이 있어 체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상급 석학들도 경악할 논문이었으나, 사이나는 그저 학계에 알릴 필요가 있는 정리본이라고 생각하며 매진하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콘스탄틴은 벌써 일주일이 넘게 황자의 수색 작업에 동원되어 애를 쓰고 있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아직도 못 찾았어요?”

“아무래도 황도 바깥으로 나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밖으로 이어진 흔적이 전혀 없어요.”

“그럼 황도 내에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도 흔적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나는 새삼 놀라웠다.

“정말… 의외네요.”

사실 황자에게 이렇게 유능(?)한 분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도주에 이토록 일가견이 있었을 줄이야.

“비밀 통로가 있었다고 했죠?”

“예.”

북탑. 마지막으로 황자가 있었다가 사라진 곳이다.

당연히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본래 계승자에게만 내려오는 정보일까? 황자는(계승자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비밀 통로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듯했다.

애석하게도 황후는 이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비밀 통로는 단일 루트가 아니라 갈래길이 있는 형태였다.

하나는 황성의 후원, 하나는 황성의 별궁, 하나는 황성의 성문 근처까지 길게 이어진 식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지막 루트를 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문 검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을 이동 경로를 추적했으나 전혀 소득이 없었다.

며칠을 헤매고 나서야 그들은 황자가 혹시 황도 내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발밑이 어두운 법. 이렇게 허를 찌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그들은 이번엔 황도 내를 뒤졌다.

그러나 여전히 소득은 없었다.

“황성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부터는 황성 안을 뒤져볼 생각입니다.”

황성은 거의 천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황제와 황족의 거처로 사용되어 온 곳이다. 또한 같은 세월 동안 황도의 중심이자 중앙 정계의 축이 되어 온 장소인지라 사실 자세히 파고들면 말도 못 하게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넓기도 넓었다.

“이전 비밀 통로를 알고 있었듯이 다른 비밀 통로나 공간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별궁이나 어딘가에 몰래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요.”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 찾아내도 될까요?”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비밀 공간이나 통로가 있다면, 당연히 황족만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황가에서만 보관해온 비밀을 이렇게 밝혀내어도 괜찮은 걸까?

사이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황녀 역시 알고 있는 비밀 통로가 있기는 했으나, 실상 제가 알도록 허락된 것보다 더 많은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비밀 통로를 통해 갑자기 황자가 나타나 황태자를 공격하는 것이 더 불안 요소로 떠올랐다.

상황에 대한 이해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이나는 콘스탄틴을 살폈다.

며칠째 계속되는 수색 작업으로 잘 쉬지 못해서 그런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피곤해 보여요.”

콘스탄틴은 옅게 한숨을 내쉬며 좀 더 다가왔다.

피곤한 것이 맞으니, 안아달라는 듯이 팔을 벌렸다.

사이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 품 안에 안겨들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낮은 웃음이 그녀의 정수리 위에서 짧게 울렸다.

“몸은 괜찮습니다만…….”

“그럼요?”

“이런 불확실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

“뭔가 예감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황자의 추적의 실마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사이나 역시 미지근한 초조와 불안이 조금씩 더 진해지는 것 같아 그의 심경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더 있을까.

그러니 괜찮다는 듯, 그녀는 그의 허리께를 토닥였다.

당장은 서로의 온기가 서로에게 위안이며, 만족이었다.

‘이 온기를….’

꼭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콘스탄틴은 제 품 안의 작은 여체를 꽈악 안았다.

* * *

콘스탄틴의 예감은 의외의 곳에서 맞아떨어졌다.

영지에서 일이 터졌다.

마수가 영내에 나타났다며 급히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사이나와 콘스탄틴은 얼른 짐과 인원을 꾸려 크레이머 영지로 향했다.

급히 워프 게이트를 탄 일행은 서둘러 크림성으로 향했다.

“나디아!?”

크림성의 집사장인 나디아가 한쪽 다리에 부목을 대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서 사이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괜찮은 거예요?”

“괜찮습니다, 마님.”

“하지만 다쳤잖아요.”

“저는 약간 접질린 것뿐입니다. 다만….”

나디아의 안색이 매우 창백했다.

“저를 도피시키는 과정에서 기사가 크게 다쳤습니다.”

“누구인가.”

“2기사단의 수습 기사입니다.”

나디아의 얼굴은 괴로워 보였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기사 본연의 임무다.”

기사의 임무야 알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자신을 감싸다 다쳤다면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콘스탄틴은 당연하다는 투였다.

“또한 사망자 셋, 부상자가 열다섯입니다. 그중 기사가 둘, 나머지는 성내에서 일하던 고용인으로서…….”

하지만 나디아 역시 프로 집사였다.

금세 감정을 수습하며 보고를 시작했다.

“……또한 사망자와 유족에 관한 보상을 정리해서 서류로 올렸으니 보시고 결재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크레이머 중앙령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졌다.

이례적인 사건인 만큼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고, 덕분에 대처가 늦어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또한 이 일이 단발성이 아닐까 봐 성안 식구들과 영민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침입 경로는?”

외부 성벽부터 방어선만 해도 몇 겹인데 마수가 성내에 나타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콘스탄틴이 물었다.

“그게 문젭니다.”

“무슨 소리인가.”

“경로를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게 이상해서 기사단에 문의했는데 방어선과 당시 경비를 섰던 라인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근데 갑자기 한가운데가 뚫렸다고?”

이게 말이 되나?

“부단장을 불러와.”

웨슬리 단장이 함께 황도에 머무르는 동안 부단장이 영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콘스탄틴은 바로 그를 호출했다.

영주의 부름에 부단장이 당장 달려왔다.

하지만 보고에 차이는 없었다.

당시 경비를 섰던 자들 중에는 졸던 사람도 없었고, 방어선이 무너진 곳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콘스탄틴의 심기가 굉장히 나빠 보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마수가 한복판에 떡하니 나타났다는 거로군?”

지금 상황으로는 이런 결론밖에 나오질 않았다.

“…….”

다들 진상을 알고 싶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도 결국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내부에 마수가 솟아났다고 말이다.

“한 마리?”

“예.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종류는 뭐였지?”

“타그마… 였습니다. 땅굴을 파서 이동하는…….”

콘스탄틴이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타그마? 그 마수는 남서쪽이 주요 분포지가 아니던가?”

“예. 저희도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평소 이 지역에서 나타나던 마수가 아니어서, 피해가 더 큰 것도 있었다.

각 마수마다 신체 부위 중 가장 약한 공략 지점이 있다.

기사단은 그것을 공략하여 좀 더 쉽게 물리칠 수 있도록 합격술을 훈련해서 토벌에 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약점을 모르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마리뿐이었지만, 공략법을 모르는 데다가 땅굴을 파서 숨어 다니다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출몰하여 공격하는 방식 때문에 피해가 속출했다.

타그마라는 이름도 나중에 마수 백과를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흠…….”

콘스탄틴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이런저런 질문을 몇 가지 더 하더니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혹시 누군가가 그 마수를 숨겨서 데리고 들어왔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함께 보고를 듣던 웨슬리 단장이 콘스탄틴에게 질문했다.

“마수를 말인가?”

“잠시 잠재우거나 기절시킨 상태로 데리고 들어와서 영내에 풀었다든지, 혹은 땅굴을 파는 타그마의 특성을 이용해서 외부에서 안쪽으로 끌어들였다든지, 그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둘 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자는 마수의 크기 때문에 그렇고, 후자는 암석 지반 때문에. 북동령은 암석이 유독 많은 지역이지. 그건 땅속도 마찬가지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수만은 없으니 알아보는 것이 좋겠군.”

“아, 탐문을 해볼까요?”

“근래 외지인, 외부인을 본 적 있는지 탐문하고, 또한 근래 성내로 들어왔던 모든 자들을 교차 탐색하도록. 일반 영지민부터 상인, 일꾼, 고용인, 배달업자 등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다 살펴봐.”

“예!”

“그리고 나는 현장을 한번 살펴봐야겠다.”

“현장이요? 모시겠습니다.”

웨슬리 단장이 탐문 작업을 지휘하러 가고 콘스탄틴은 부단장의 안내를 따라 마수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타나 토벌된 지점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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