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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214화 (214/233)

214화. 문제의 그 밤 이후

‘황녀 전하… 몰랐…….’

황녀 전하에 관한 일은 아무래도 이 시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모양이다.

‘헤베타, 님이…… 안내를…… 지시가…….’

그러나 그건 황녀에 관련한 것뿐, 다른 쪽으로는 분명 연관성이 있었다.

루카스는 다른 쪽으로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웅얼거리며 늘어놓는 말들을 조합하니 배후가 헤베타 엘리자베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그 여자가 무슨 배짱으로 그를 이쪽으로 유인을 한 것도 모자라 황녀 전하께까지 손을 대었을까?

황녀에겐 24시간을 밀착 호위하는 기사가 붙어있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중에… 오실 것…….’

시종은 헤베타가 올 때까지 다른 사람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

‘…애버딘, 공녀도… 감시, 대상…….’

‘뭐라?!’

계속해서 정보를 캐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듣게 된 루카스가 분노했다. 쥐 잡듯 시종을 추궁했다. 더 이상 털어도 나올 게 없을 때까지.

계속되는 신경 자극에 시종은 눈을 까뒤집고 침을 질질 흘리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하, 헤베타. 네가 무얼 믿고?’

그리하여 그는 기다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엘리자베스가 들어올 때까지. 어둠 속에서 묵묵하게 말이다.

“……그래서 지금 저 여잘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

루카스의 설명을 들은 콘스탄틴이 물었다.

에렌혼의 돌격과 함께 쳐들어오며 방의 문이 부서졌는데, 그 부서진 문 너머 복도에 여자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루카스에게 붙잡힌 엘리자베스 역시 시종과 같은 꼴을 당하며 제 계획을 줄줄 불어야 했다.

그 결과 루카스가 이 별채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냥 놔뒀다 도망이라도 가면 안 되니까.”

“황녀 전하는? 설마 그 방에 그대로 두고 온 건 아니겠지?”

“미쳤냐?”

“그럼 어디 계시는데?”

“플로리아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루카스는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덧붙였다.

“내 사령 보고 철저히 지키라고 했어! 아직 문제없다구!”

“하. 지금 헤베타는 챙겨와 놓고, 황녀 전하는 두고 왔다고?”

“사령이 지키고 있다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콘스탄틴이 미간을 찌푸리며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네 아내가 위험하다고 들으면 너라고 안 그럴 것 같으냐?”

루카스는 발끈해서 외쳤다.

“…….”

그리고 그 말을 듣자 콘스탄틴의 미간이 바로 펴졌다. 루카스의 심정에 바로 공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루카스에게 황녀가 있는 방의 위치를 자세히 묻고는 모레프를 보냈다.

두 공작의 사령이 동시에 지키는 방이라면 그들이 그 방에 갈 때까지 누구도 드나들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셋은 각자가 겪은 상황과 알아낸 상황들을 공유했다. 그리하여 헤베타와 황자가 그린 그림을 완전히 알아낼 수 있었다.

“하… 이딴 황자를 위해 애버딘가가 여태 피를 흘렸단 말이야?”

그는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황자를 한 번 더 들이받고 싶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제 여동생에게 하려고 했던 짓을 떠올리자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황족. 황족이라는 게 문제였다.

“크레이머야, 보아하니 네겐 이 문제가 꽤나 고질적이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도 있는 거겠지? 설명을 좀 해줄 테냐?”

하나 황족이라 할지라도 이번 일은 절대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황가 외에 현존하는 5대 맹약자 중 셋의 분노를 샀다. 이는 황제라고 할지라도 몸을 사릴 일이건만, 황자만 그 사실을 몰랐다.

셋은 이 일을 어찌 처리할지에 대해 열심히 의견을 나누었다.

* * *

“꺄아아아아악-!”

열정적이었던 밤이 끝나고 다음 날 아침.

가면무도회가 열렸던 연회홀의 숙박 층에 새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인이야!”

첫 비명에 깨어난 사람들이 숙취로 머리를 부여잡고 망설였다면, 두 번째로 울린 고함 소리에는 벌떡 일어났다.

살인? 살인이라니?!

누군가와 밤을 보내느라 이곳으로 찾아들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고 복도로 뛰쳐나갈 정도로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느 방 앞이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며 웅성이고 있었다.

“저, 정말 살인인가?”

“이불이 시뻘건데. 그럼 저게 다 피야?”

“셋 다 죽은 거래?”

하얀 시트가 검붉은 얼룩으로 가득했고, 그 위에 세 명의 인형이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바닥에도 핏물 같은 것이 흥건했다.

황실 주관 연회에서 살인 사건이라니.

이 초유의 사태에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고 웅성거렸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제정신이 돌아온 자들이 차례차례 슬며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잘못해서 재수 없어지면 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멈추십시오!”

“아무도 나가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다.

어느새 황실 기사단이 나타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벗어둔 옷을 찾아 입느라 시간을 지체한 자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조금만 더 일찍 떴어야 하는 건데!

이런저런 사람들로 난장판이 되어가는 장내를 기사들이 제어하며 동시에 뒤쪽을 열었다.

“부단장님.”

그 사이로 냉랭한 얼굴을 한 헤비아탄 부단장이 등장했다.

“단장님은?”

“아직, 출근 전이십니다.”

“황자 전하는? 찾았나?”

“아직입니다.”

설마 황자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엄청나게 심각한 사안이 될 텐데.

사색이 된 자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전 아니에요!”

“저 방에서 방금 나왔습니다! 전 전혀 상관없어요!”

“맞습니다! 이 사람은 저와 여태 함께 있었어요. 제가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함께 밤을 보낸 사람의 알리바이로 나서기까지 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발을 쾅! 구르며 외치는 말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신고가 들어온 바, 절차에 따라 조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쪽 기사의 안내에 따라 이동해 주십시오.”

조사라는 말에 또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울음을 터트리는 영애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외쳤다.

“어엇! 시, 시체가 깨어났다!”

“뭐? 어어- 안 죽었나 본데?!”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피칠갑이 된 침대 중간에서 누군가 몸을 부스스 일으키는 것이 목격된 것이다.

기사 한 명이 서둘러 그 방으로 들어갔다.

“헤, 헤베타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자는, 분명 살아 있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 눈가를 찡그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기는 했지만.

“헤, 헤베타라고?”

“그럼 헤베타님이 죽인 거야?”

기사는 헤베타 양옆에 있던 남자들의 맥을 짚어보고는 크게 외쳤다.

“남자들도 살아있습니다!”

“살았다고?”

“아니, 그럼 저 피는 뭔데?”

기사가 이번에는 침구 위 핏자국과 바닥의 액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는 외쳤다.

“피가 아니라 와인 같습니다!”

“와인? 그럼 그냥 술 취해서 놀다가 잠든 거야?”

“아, 괜히 놀랐네.”

누가 죽은 줄 알고 허둥지둥했던 사람들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보시오! 일어들 나십시오.”

그러나 헤베타 양옆의 남자들을 깨우는 기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내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니, 잠깐. 헤베타님 옆에 남자가 왜 근데 둘이래?”

“헐, 설마…….”

“심지어 저 중에 황자 전하가 안 계시는 것 같은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을 따라 헤베타의 정신도 드디어 현실로 돌아왔는지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헐벗은 몸을 가리려 시트를 움켜쥔 채로 엘리자베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 비명 소리에 양옆에 있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 부스스 깨어났다.

멍한 눈으로 방 바깥에 드글거리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낯짝의 주인공은 조지 홀랜더. 시간차를 두고 다른 쪽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는 조지 홀랜더의 범죄 친구였다.

이번엔 사이나가 아니라 엘리자베스를 사이에 두고 깨어나게 된 것이다.

“뭐야! 너 이 새끼! 나에게 뭔 짓을 한 거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악을 쓰며 조지 홀랜더의 등짝을 치는 엘리자베스의 손바닥의 마찰에 깜짝 놀란 그가 덩달아 외쳤다.

“뭐, 뭐야! 엘리자베스? 아야! 아퍼! 이것아!”

“네가! 아니, 내가 왜! 네가 날 강간했구나!”

“미쳤어?! 나한테 약 좀 달라고 할 땐 언제고!”

둘의 대화에 사람들은 본래 그들이 아는 사이인 데다 수상한 정황까지 보인다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약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요.”

“약에다 와인에다가 남자 둘까지. 아주 광란의 밤을 보낸 모양이네요.”

“아니, 헤베타의 몸으로…….”

수군거리며 퍼져나가는 목소리들은 이미 수습 불가의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황녀 전하!”

갑작스러운 호명에 또다시 강제적인 침묵이 내려앉았다.

“살인 사건이라고?”

“오셨습니까.”

부단장이 나와 황녀를 맞이했다.

“어찌 되었나.”

“방 안에 흥건한 와인 자국을 피로 착각해서 벌어진 소동이었습니다. 죽은 자는 없습니다만…….”

하필 헤베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버렸으니, 이 역시 큰일이었다.

“하아, 이런 일이.”

헤비아탄 부단장의 설명에 황녀가 입을 떡 벌렸다.

“오라버니는?”

“황자궁엔 안 계셨기에, 지금 찾고 있습니다.”

그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한 기사가 달려왔다.

“부, 부단장님! 황자 전하를 찾았습니다!”

“어디 계시는가!”

“근데… 그게…….”

“어디 계시냐고! 전하께선 괜찮으신가?!”

기사는 우물쭈물하며 헤베타가 발견된 옆방을 가리켰다.

부단장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방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찌나 취해 잠들었던 것인지 이런 소동에도 깨어나질 않는 작자들이 대다수라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다.

“…여기 황자 전하가 계시다고?”

“저쪽에… 계십니다.”

“어디…, 아…….”

헤비아탄 부단장의 표정이 잠시 망연해졌다.

대체 이 방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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