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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210화 (210/233)

210화. 엇갈린 약속

“벌써 만져달라고? 와, 적극적인- 억!”

남자와 닿자마자 반지를 통해 튀어 나간 힘이 남자를 지졌다.

바깥에서 다른 사람이 보면 왜 쓰러졌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반지 소유자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기절시키기 위해 개발한 안전 물품의 용도인 듯하다고, 연습 때 이미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 방식이 상당한 단점으로 느껴졌다.

굳이 저 쓰레기를 손으로 만져야만 하지 않는가.

“뭐, 뭐야!? 야, 인마?”

조지 홀랜더는 깜짝 놀라 남자를 향해 외쳤다.

남자가 뻑,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조지 홀랜더 쪽으로 향하자, 그는 사이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외쳤다.

“씨발! 너- 지금 뭘 한 거냐!”

완전 바보는 아닌지 그녀가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호기로운 외침에도 개의치 않고 사이나가 계속해서 다가가자, 그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너 뭘 숨기고 있는 거지!? 황성에 무기를 소지하다니! 넌 곧 죽은 목숨이다!”

좋은 빌미를 잡았다는 듯 열심히 협박을 내던졌음에도 사이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계속 그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이를, 이를 알리고-!”

결국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부축하고 있던 여자를 사이나 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줄행랑쳤다.

“-크헉!”

이내 유리에게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지만 말이다.

-기절쯤은 나도 얼마든지 가능하거덩?

“하. 정말 실망을 시키질 않네.”

저 살겠다고 여자를 방패처럼 내던지는 인성이라니.

저 쓰레기의 바닥은 사이나가 가늠한 것보다 언제나 더 깊고 깊었다. 매번 기록을 갱신한달까.

사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여성의 몸을 잘 부축해서 우선 한쪽에 앉혀 두었다.

-이 새끼들을 어떻게 조리해야 속이 시원할까.

곧 저지르려던 범죄를 막았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오늘의 피해자만 막은 것일 뿐, 잠재적 범죄자의 존재가 그대로 있는 한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흠.”

그녀라고 여기서 조지 홀랜더 등의 범죄 직전 행각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렇다 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뭔가를 하려고 했던 자들끼리 같이 나락으로 보내주는 게 좋겠지.”

엘리자베스의 계획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뭔가 계략을 꾸미기는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계략은 보나 마나 깔끔한 종류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것과 묶어서 한 번에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완전 매장을 시켜버려야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테니.

-그럼 우선 잠깐 가둬 놓도록 하자.

“응.”

두 남자가 중간에 깨어나지 않도록 몇 가지 더 조치를 취한 후에 창고 같은 방에 가둬두었다.

여자는 유리가 안고 내려와 여성 휴게실에 뉘였다.

신체 반응을 보니 반의식, 반무의식 상태처럼 보였다. 정신을 어지럽게 하거나 의식을 잃는 종류의 약을 먹은 것 같았다.

사이나가 정화를 한 번 걸어주었으니 머지않아 깨어날 것이다.

“깨어나면 바로 집으로 가도록 해요, 영애님. 야회는 위험한 곳이랍니다.”

꿈결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스며들도록 사이나는 속삭였다. 깨어나면 그 경고대로 따르기를 바라며 말이다.

재차 경고의 말을 남긴 사이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누굴 부르지 않아도 괜찮을까?”

-응. 정화를 걸었으니 얼마 안 가 깨어날 거야.

“하, 완전 늦었다.”

여러 사건을 거치고 나서야 둘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미리 정해둔 시간보다 꽤 지나버려서 어쩌나 싶었는데, 약속 장소엔 아무도 없었다.

“…플로리아?”

-주변에 아무도 없다.

슬쩍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다고 한다.

늦어서 엇갈린 것일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네가 한 말 안 믿은 거 아니야? 아님, 오늘 아예 안 왔든가.

“안 올 거였으면 미리 말을 했을 텐데.”

만나기로 한 사람은 바로 플로리아.

약속을 해놓고 말없이 펑크를 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뭐야. 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그것도 마찬가지로 아닐 듯했다. 늦은 것은 이쪽이니까.

아무래도…….

“뭔가 일에 휘말린 것인지도 모르겠어.”

-이런. 그럼 곤란한데.

곤란을 넘어서 큰일이다.

플로리아가 사이나의 언질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오히려 여기엔 플로리아가 있었을 것이다.

되레, 사이나가 말한 것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기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감히 제게 해를 끼칠 사람이 있다는 것에 분노했을 것이다.

‘어디 한번 수작을 부려보렴!’ 이런 태도로 어떤 낯짝인지 보고 말 테다, 하며 맞서려 했을 것이다.

하, 이래서 미리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던 건데.

“확인을 해봐야겠어.”

갑자기 사이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다급하게 걸음을 옮겨 연회홀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거의 다 도착했는데 때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앗!”

부딪힌 반동으로 후드가 벗겨졌다.

“-죄송…. 어? 사이나?”

후드가 벗겨진 것도 당황스러운데 상대방이 대번에 사이나를 알아보고 말아서 더 당황했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고였다.

괜히 휘말려봤자 증언을 설 증인이나 만드는 꼴이기도 하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같은 상황에선 증인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처리가 더 많을 것 같은 밤이니 말이다.

“…카이언?”

그러나 다행이랄까.

부딪힌 사람은 들켜도 괜찮을 사람이었다.

가면을 쓰기는 했어도 특별한 분장을 하지 않은 차림이라 그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어, 어……. 오랜만이다.”

약간 어색해하는 그의 태도에 마지막으로 카이언을 만났던 상황이 갑자기 떠올랐다.

덩달아 어색해지려던 때에 갑자기 그가 대뜸 물었다.

“근데 너 오는 길에 혹시 플로리아 봤어?”

“……응?”

그렇지 않아도 사이나가 찾고 있던 사람을 카이언이 언급하다니.

“아니.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연회홀 안쪽에서 플로리아로 추정되는 사람을 봤는데, 아까 급하게 밖으로 나가더라고.”

“그랬어?!”

역시 연회홀로 찾아들었었나 보다.

“어딘가 좀 안 좋아 보여서 따라 나온 건데, 순식간에 사라졌네.”

“아…….”

안 좋아 보였다니, 그건 또 무슨 일일까.

사이나는 불안해졌다.

“플로리아가 확실해?”

“아마 맞을걸. 분홍 머리에…….”

인상착의를 들으니 사이나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갔는데?”

다급하게 묻는 사이나가 이상하다 추궁하지 않고 카이언은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우선 지금 이쪽으로 나갔어. 그래서 내가 따라 나온 참인데….”

앗, 그럼 나와 부딪히며 행방을 놓친 건가?

“걱정되면 같이 찾아볼래?”

“응.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카이언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따라 나왔다고 할 정도면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난 이쪽으로 가볼 테니 넌 저쪽으로 가볼래?”

“알았어.”

둘은 방향을 나누어 헤어지면서 혹시 플로리아를 발견하거든 후원 분수대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사이나가 막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유리가 그녀를 잡고는 기둥 뒤로 숨겼다.

딸칵.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나왔다.

누구지? 혹시 플로리아?

사이나는 기둥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 나는 쪽을 살폈다.

-내가 볼게.

사이나가 끄덕였다. 괜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들키면 안 되니까.

-복장이… 황실 시종이다.

음? 이곳은 여성 휴게실이 있는 복도인데 시녀도 아닌 시종이라? 게다가 휴게실에서 나왔다고?

누가 봐도 수상한 자였다.

그런데 이후 더 수상한 행동을 했다.

자신이 나온 휴게실 말고 그 옆 휴게실로 다가가더니 문고리를 돌려두었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회장 방향으로 사라졌다.

-수상하기 짝이 없네.

둘은 시종이 나왔던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보니 여긴 문고리가 그대로였다. ‘빈 휴게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옆, 시종이 문고리를 돌렸던 휴게실.

굳이 문고리를 돌려놓고 간 이유는 뭘까. 사람이 있으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저 안에 있는 듯해.

아, 문고리를 돌릴 정신도 없이 들어간 누군가를 외부와 격리시키기 위해 이렇게 한 것이구나.

사이나는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흐윽.”

희미한 신음 소리.

안쪽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엎드려 몸을 떨고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사이나는 그녀를 안아 부축하며 가면을 벗겼다.

플로리아가 맞았다.

“하… 다행이야, 플로리아.”

“사, 사야…….”

플로리아는 눈이 풀린 상태였으나 사이나를 알아보기는 했다.

“괜찮은 거야?”

“모, 몸이……. 흑.”

왜 물었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떠는 것이 누가 봐도 괜찮지 않아 보이는 것을.

플로리아는 뭔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유리를 발견하더니 손을 뻗었다.

유리가 냉큼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허공을 붙잡은 플로리아는 울음을 터트렸다.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인 듯했다.

-약에 당한 것 같다.

‘정화?’

사이나는 입 모양으로 물었다.

-응. 정화를 하면 좀 나아질 거야.

“플로리아. 조금만 기다려. 편하게 해줄게.”

사이나는 앞쪽 탁자에 놓여 있던 물을 잔에 따랐다.

‘이거 괜찮지?’

마찬가지로 입 모양으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마시자. 곧 괜찮아질 거야.”

그녀는 플로리아의 입가에 물잔을 대주며 유리를 향해 눈짓했다.

맑은 정신이 아니어서 어차피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르지만, 혹시 몰라 부리는 꼼수였다.

아직 사이나가 맹약자임을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플로리아가 물을 마시는 동안 유리가 뒤쪽에서 정화의 기운을 사용했다.

파르르 떨리던 몸이 풀썩, 쓰러져버리는 바람에 사이나가 반사적으로 그 몸을 받아냈다.

쨍캉.

덕분에 들고 있던 물잔을 놓쳤다. 가차 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잔이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히는데 유리가 말했다.

-누군가 밖에 있다.

“…뭐?”

그는 말을 하자마자 수호령의 힘을 이용해 휴게실의 문을 잠갔다.

철컥, 하며 문이 잠기기가 무섭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누군가 문을 열기 위해 당겨본 것이다.

“…….”

갑작스러운 침입의 기미에 몸이 굳었다.

카이언일까?

작은 목소리로 물으면서도 사실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분수대에서 보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한 명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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