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부부의 대화
사이나는 하복부의 묘한 압박감을 느끼며 깨어났다.
“음…….”
거의 해뜨기 시작할 때 잠들었던 것 같은데…….
티파티가 끝나고 이런 저런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침실에 들자, 일찌감치 콘스탄틴이 와 있었다.
‘밤이, 되었군요.’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 나른한 미소와 적극적인 손길에 순식간에 얽혀 침대로 끌려들어갔다.
이 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몰아치는 그에게 휘말려 사이나는 금세 온몸이 풀려버렸다.
숨이 차서 할딱거리는 그녀를 귀엽다는 듯 보며, 그가 속삭였다.
‘집중해야지요. 이 밤엔, 오롯하게 내게 집중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읏. 하지만 너무….’
아무래도 쉽게 봐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조금 더 벌려봐요, 응?’
‘아…!’
그렇게 또 한참을…….
‘아, 허리야.’
두 번만 기대했다가는 사람을 잡겠다.
커다란 창으로 들이치는 해그림자의 형태를 보니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작정한 것처럼 줄기차게 달려드는 그에게 밤새도록 탐해지다가 잠든 것을 따져보면, 꽤 일찍 깨어난 셈이다.
한데 그런 것치고는 몸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맹약자가 되면 몸도 더 건강해지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러나 너무 조금 잤다는 자각이 들자 몸 상태와 별개로 심리적인 부족함을 느꼈다.
‘…조금 더 잘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자는 것도 이상하여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이내 그것 역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이나는 지금 그의 품에 갇혀있다시피 했다.
뒤통수부터 엉덩이, 아니, 발끝까지 틈새 하나 없이 밀착된 상태였다.
콘스탄틴은 자신이 무슨 그녀의 등딱지라도 되는 것처럼 완전히 뒤쪽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냥 붙어있는 선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몸 안의 이물감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
아니, 스물스물 점차 커지고 있었다.
아랫배를 잠식하기 시작한 묘한 감각에 사이나는 무심코 하복부에 힘을 주었다. 어쩌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그것이 티가 나게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읏?”
길이감과 부피감을 동시에 늘리며 존재감을 자랑하기 시작한 그것은 그녀의 내부 깊은 곳의 예민한 부위에까지 닿아왔다.
아침부터 예민해지기 시작한 감각이 버거워 사이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뒤틀었다.
그에 따라 불현듯 터져 나온 낮은 침음이 뒤에서부터 그녀의 귓가를 울리기가 무섭게, 커다란 손바닥이 배꼽 아래 하복부를 감싸며 제 쪽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당김과 동시에 그가 허리를 쳐올렸다.
“아흑!”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눌린 뱃속 공간이 좁아지는 바람에, 밀고 들어온 것의 느낌이 더 선명하게 다리 사이를 압박했다.
“코, 콘스탄틴…….”
“하아, 사야…. 좋은, 아침… 입니다.”
그녀의 뒷목을 잘근잘근 씹어 핥으며 그가 웅얼웅얼 아침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은… 잘… 만났습니까?”
“읏, 네….”
일찍도 묻는다. 사이나도 먼저 이야기 할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아침부터 왜, 으응.”
“요즘 그대가 날 너무 버려두는 것 같으니….”
“으읏. 무, 무슨….”
“이렇게라도 내 존재감을 어필할 수밖에.”
이게 그저 변명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
어젯밤에도 넘치도록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사이나는 굳이 말리지 않고 그가 주는 감각을 받아들였다.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으니 가능한 거지만.
“으응. 읏.”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맞닥뜨린 황홀한 감촉과 달콤한 체향에 콘스탄틴은 내내 그녀 안에 자리해 있던 제 것을 보란 듯이 더 깊게 묻었다.
마치 제 위치를 찾아가듯 더 깊게 잠기며 또한 감겨오는 감각은,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고 또 현황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로 좋았다.
손바닥에 감겨오는 말랑하면서도 찰진 피부의 느낌 역시 너무 좋아 주물럭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여자, 내 부인. 내 것.
그녀와 닿아있는 세계는 잡음 하나 없이 오롯하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녀의 가느다란 신음 소리와, 그를 조이는 감각만이 그의 외부를 자극하며 깨워낼 뿐이다.
목울대를 울리는 찬탄 같은 신음을 삼키며 그는 그녀가 주는 감각에 빠져들었다.
* * *
아침부터 진한 시간을 보낸 부부는 오찬 때에야 식당으로 내려왔다.
사이나는 어제 도착한 초대장과 관련해 친우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요약해 그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어쨌든 참석은 해야 할 것 같기는 해요. 어떤 의상을 입을지 컨셉도 정해야 하고요.”
“작정하고 뭔가 사건을 벌이기 좋을 만한 배경이로군요.”
이번 일이 아니어도 가면무도회는 그 특성상 크고 작은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
복장 덕분에 익명성이 보장되어버리니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이쪽도 같은 조건이잖아요.”
저쪽이 정체를 숨길 수 있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다.
몰랐으면 모르되,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반대편에게 쉬운 답안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근데 그 뒤가 문제네…….’
일이 벌어진 후에…….
문득 엘리자베스가 ‘헤베타’라는 게 걸렸다.
전엔 별생각 없었던 그 지위가, 지금은 상당히 거슬리게 다가왔다.
황자도 ‘황자’라는 이유로 지금 대놓고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헤베타면…… 어느 정도의 권한과 지위를 보장받는지 혹시 아세요?”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혹시… 헤베타가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든지, 다른 귀족 영애의 명성을 해하려 한 정황을 발견하거나 하면, 어느 정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요.”
황족은 아니지만 황족의 보호하에 있는 지위이다 보니, 황실의 체면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의 권한을 보장받을 것이 분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 헤베타는 무슨 처벌을 받았나요?”
생각해보니 헤베타 일레인도 사이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그녀가 무슨 벌을 받았는지 알면 대강 범위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물었다.
“…충분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뭔가 시원찮았다.
“충분한 처벌이 뭔데요? 파혼당한 것까지는 아는데.”
파혼은 처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2년이 넘은 상태라 가만히 두어도 황자가 파혼을 추진했을 것이니.
“그대를 죽이려 했던 여잡니다. 응당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레인 반즈가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공식적인 처벌이었나요?”
황실의 권위 문제 때문에 공식적인 처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콘스탄틴이 슬쩍 시선을 내렸다.
“……개인적인 처벌에 더 가깝습니다.”
왠지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그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개인적인, 처벌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공식적으로 안건을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황자가 사사건건 그대를 물고 늘어졌을 겁니다.”
“아…….”
당시 황자는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근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셔도 황실에서 가만히 있던가요? 혹시 무슨 피해라도 보신 거 아니에요?”
“그런 일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가와 따로 거래를 하기라도 한 걸까?
그랬다고 해도 황자라면 걸고넘어졌을 것 같은데?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그녀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한숨을 쉬듯 말해주었다.
“…그림자 감옥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림자 감옥… 이요?”
“칼리고의 힘입니다. 그 안에서 하루면 수십 일간 갇힌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잠깐만 갇혀도 극한의 공포를 맛보게 할 수 있지요.”
“아…….”
당시 일레인 반즈가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다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실은 파혼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사이나는 크레이머가에서 칼리고 대신 모레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새삼 다시 알 것 같았다.
“…내가 너무한 것 같습니까?”
그녀의 반응이 어떻게 비친 건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 아니에요.”
괜한 일이나 사건을 만드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에게 큰 자비를 베풀 만한 성격도 아니다.
“제 대신 애써 주셨는데 감사하다는 말도 못 드렸네요.”
“감사받을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뿐.”
콘스탄틴은 파혼 후 황가에서 보상성으로 반즈가에 내린 상당량의 재산마저 다 날려 먹도록 추가 조치했다는 말은 굳이 더하지 않았다.
제 집요한 면을 구태여 그녀에게 어필할 필요는 없으니.
“그나저나… 그건 왜 물은 겁니까.”
“네?”
“혹시… 그 발데즈가의 헤베타가 그대에게 무슨 해를 끼치기라도 했습니까?”
욜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이나의 안위에 매우 민감한 콘스탄틴이다. 무슨 촉이라도 느낀 것일까.
“아니, 끼칠 예정으로 보입니까?”
바로 음산함을 풍기며 질문해 왔다.
“글쎄요…….”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을 알 뿐, 그 칼날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다 보니, 말하기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비는 차라리 넘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모자랐다가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보다는 말이다.
결국 사이나는 플로리아에게 있었던 일과 자신의 의심까지 콘스탄틴에게 털어놓았다.
의외로 그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들어주었고, 나름의 방책을 세울 수 있었다.
* * *
근래 가장 논란이었던 날이 결국 도래했다.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이 된 것이다.
황실이 저급해졌네, 격이 맞질 않네, 하던 자들도 결국은 죄다 참석한 모양인지, 황성 출입로는 대기 중인 수많은 마차들로 엄청나게 번잡했다.
황성에서 열리는 무도회다 보니 단순하게 초대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입성 절차에 따른 보안 점검을 같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연회가 열리는 홀 상층부에서는 중간보고를 위해 한 시종이 엘리자베스를 찾았다.
그녀가 이번 연회의 주최자이자 설계자이다 보니 보고 역시 그녀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황자가 엘리자베스를 찾아왔다가 함께 보고를 듣게 되었다.
“마차는 어찌 되었니?”
전반적인 보고가 끝나자 엘리자베스가 시종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