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다시 황도로
“코, 콘스탄틴?”
사이나는 욜리가 신경 쓰여 눈동자를 굴렸다. 그런데 어느 틈에 이미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다.
“유모에겐 내일, 나와 같이 가도록 합시다.”
“같이요?”
“예. 이제… 본성으로 돌아와 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아, 좋네요. 이젠 상관없으니까…….”
“다 그대 덕분이지요.”
그는 그녀를 품 안으로 당겨 안으며 이마에 입술을 묻었다.
“그러니…….”
그의 입술이 그녀의 콧날을 따라 내려오더니 둘의 이마가 맞닿았다.
“침대 위에서가 아니면 울지 말아요.”
“…….”
“내가 주는 눈물 외엔, 어떤 눈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감동적인 말인데, 잠깐. 결국 침대 위에서 울리는 것은 그래도 포기 못 하겠다는 뜻이잖아?
사이나는 어이가 없어서 팩 웃어버렸다.
“침대 위에서도 안 울게 해주지 않고요?”
“그건… 자신이 별로 없군요.”
그는 너무 당연한 말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대는 너무 좋으면 우니까.”
“오늘은 안 울 거예요.”
그 말에 콘스탄틴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타고 올랐다.
“자신 있습니까?”
“네.”
“그럼 나는 열심히 그댈 울릴 수 있게 노력해봐야겠군요.”
둥글게 미소를 그린 두 입술이 맞닿았다.
각자의 승리를 다짐하며 서로의 숨결이 얽혔다.
그렇게 긴 밤 동안, 때론 승자가 패자가 되고, 때로는 패자가 승자가 되었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둘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채비를 하고 황도로 갈 준비를 마쳤다.
황실에서 명한 일정의 최대치를 채웠다.
전국령으로 선포한 포고인만큼, 중앙령의 귀족들은 매의 눈으로 황도 상황을 주시했고, 제국민들 역시 새로운 맹약자의 정체를 발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들이 워프 게이트의 존재를 모르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근처에서 진을 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리 되고 보니 워프 게이트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와, 성공했어요.”
황성의 워프 게이트를 통과한 사이나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콘스탄틴의 손을 놓았다.
‘아… 내 수호령, 유리…….’
맹약자라는 존재.
수호령의 힘.
이렇게 힘을 쓸 때마다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너무 신기했다. 얼굴 가득 그려지는 미소가 만개한 꽃처럼 피어났다.
그 미소를 보며 콘스탄틴은 떨어지려던 손을 다시금 붙잡았다.
“…혼자 막 이동해서 다니면 안 됩니다.”
“네?”
“워프 게이트 간의 이동 말입니다.”
지금 둘은 사이나의 힘으로 연 워프 게이트를 통해 이동한 참이다.
“각 게이트의 건물 입구는 다 경비병이 지키고 있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으니…….”
그런데 콘스탄틴이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안전 수칙을 열심히 설파했다.
“제가 혼자 크림성에 갈 일이 있겠어요?”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 사이나가 웃었다.
“크림성뿐만 아니라…….”
“네?”
“…애버딘령이라든지…….”
“…….”
지금 애버딘령에 혼자 막 가버리지 말라고 하는 건가?
“제가 거길 말도 없이 왜 가겠어요?”
“가긴 갈 겁니까…?”
“…….”
이거 설마 그건가?
“혹시… 질투하시는 거예요?”
“…….”
“그땐 그냥, 친우 만나러 간 건데?”
“……애버딘 공작과도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분께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데요?”
“…하지만 에렌혼도 그렇고…….”
약간 시선을 비끼며 말하는 것이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호령은 에렌혼이거든요.’
혹시 전에 그녀가 했던 말 때문인가?
‘질투 맞는 거 같은데?’
그의 행동이게 웃기면서도 귀여워서 사이나는 푸흡, 웃어버리고 말았다.
“전…….”
사이나의 나른하면서도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음악처럼 흘렀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걸요.”
잡혀 있던 손의 각도를 돌려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손을 등 뒤로 당기며 제 허리를 잡게 했다.
사이나 역시 그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고개를 젖혀 그를 올려다보았다.
파란 동공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으나, 그녀의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마주친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사이나가 입을 열었다.
“다른 남자에겐 관심 없어요.”
“…….”
“그 남자로 충분해서.”
하. 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드러난 귓가가 벌겠다.
빨개진 귀 끝을 보며 사이나가 배시시 웃는데 갑자기 그에게 잡힌 허리가 수욱 당겨졌다.
삽시간에 그가 그녀를 벽과 자신의 사이에 가두더니 입술을 삼켜왔다.
다급하게 그녀의 잇새를 벌리며 침입해오는 모양새가 참을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잠… 깐, 여긴… 읏.”
아무리 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공공장소였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는 해도 언제든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읏, 기다리잖아요.”
“조금만, 조금만 더요….”
허리의 잘록한 부분을 단단하게 쥐어오는 손길에서 조급함이 느껴졌고, 거기서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손이 약간 움찔하는 것에서 또한 겨우 참으려 애쓰는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한껏 그녀의 입술을 열고 깊게 침입한 그가 그녀의 숨결을 욕심껏 잔뜩 훔쳐낸 다음에야 겨우 떨어져 나갔다.
하아, 하아. 숨이 터져 나왔다. 옥죄듯 껴안고 있던 몸을 그가 풀어주었다.
“정말…….”
사이나는 그를 흘기며 작게 투정했다.
“그러니 밖에선 좀 자제해 주십시오.”
“…네? 그건 제가 할 말 아니에요?”
적반하장 같은 말에 사이나가 어이없다는 듯 반발했다.
“자꾸 그렇게 예쁜 말을 해대니, 장소 분간도 못 하고 제가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는 그녀의 옷매무새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뻔뻔하게 덧붙였다.
“흠. 그럼 앞으론 하지 말까요?”
“…….”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며 그가 그녀의 치마에 생긴 주름을 펴는 데에 집중하는 척했다.
“알았어요. 앞으로는- 읏-”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먹혔다.
그가 제 몸을 슬쩍 밀착시키자 사이나는 다시금 벽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작게 바르작거리던 몸짓이 순식간에 통제되며 한껏 입술이 빨렸다.
“으, 응…….”
비겁한데 또 귀여워서 사이나는 한껏 또 입술을 내주고 말았다.
* * *
“제가 먼저 이들을 옮겨놓고 다시 올 테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알았어요.”
둘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다시 크레이머령으로 넘어갔다.
사이나가 워프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미리 연습해보느라 먼저 넘어갔던 것이지, 둘만 황도로 갈 생각은 없었다.
사이나더러 황궁 쪽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되지만 혹시 모를 상황까지 차단하기 위해 콘스탄틴은 다시 크레이머령 쪽으로 넘어와 그녀를 안전한 곳에 두고 나머지 인원들을 모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각자 역할과 포지션을 잘 상기하도록.”
“예!”
웨슬리 단장을 비롯해 기사단 핵심 멤버만 해도 열다섯. 황도에서 사이나의 호위와 안전을 담당할 이들이었다.
그뿐 아니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외양을 가린 자들이 다섯 더.
정보 교란을 위해 세웠던 두 번째 계책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손을 맞잡아라.”
미리 훈련을 하고 위치를 다 짜두었던 것인지 기사들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 호위 대상을 중간에 끼고 자리를 잡았다.
콘스탄틴은 두 무리씩 짝을 지어 워프 게이트를 통과시켰다.
몇 번의 반복 후 다시 돌아온 그가 사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은 인원은 둘. 사이나와 루퍼트 경이었다.
“갑시다.”
“네.”
콘스탄틴 쪽으로 사이나가 이동하는데 루퍼트가 다급하게 사이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그 짐승은요?”
“응?”
“욜린가 그 짐승은 안 데려가십니까?”
사이나가 욜리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보았던지라 루퍼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루퍼트는 사이나가 맹약자라는 것을 아는 상태였지만, 욜리가 수호령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사이나는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데리고 가는 거야.”
“…예?”
“나중에 말해줄게. 우선 이동해.”
“알겠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으나 사이나의 얼굴이 밝은 것으로 보아 걱정할 것은 없어 보인 루퍼트는 생각을 접었다.
묘한 감각과 함께 셋은 워프 게이트를 지났다.
이미 이동시켜 둔 인원은 미리 올라가라고 지시해 둔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하 공간이 그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각하.”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지하 공간을 울렸다. 기사 한 명이 급히 내려와 콘스탄틴에게 다가왔다.
목소리는 묵직했으나, 묘하게 조급한 기색이었다.
“무슨 일이지?”
기사가 콘스탄틴의 귓가에 작게 무언가를 보고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대번에 미간이 구겨지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닐 성싶었다.
그 모습에 루퍼트는 자동으로 경계 자세를 취했으나 제 허리춤을 더듬고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 내 검.”
워프 게이트가 황성 내에 있는 바람에 무기 소지가 가능하지 않아서 루퍼트는 게이트 통과 때마다 비무장 상태로 이동해야 했다. 본래 쓰던 검은 델본에 있고, 크레이머령에 있는 동안 쓰라고 공작이 하사했던 검은 크림성에 두고 왔다.
“황성인데 검이 필요할 일이 있으면 너무 막장이 아닐까?”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으니까 괜히 불안한데요.”
둘은 콘스탄틴의 뒤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갔다.
“꺄아악-!”
“막아!”
그러나 막장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보다. 예상과 다르게 지상의 상황은 이미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들이라고 해도 죄다 무기가 없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는지 많은 수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솔직히 워프 게이트를 넘자마자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나 싶어 사이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레이머 기사단과 대척점에 있는 기사들의 복장을 보니… 황실의 마크가 보였다.
‘…황실 근위대?’
황실 근위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란 사이나가 즉각 콘스탄틴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