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욜리의 능력
여러 형태의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발찌, 반지 등은 그 형태만큼이나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사이나는 그가 하는 설명을 매우 귀 기울여 들었다.
“아무래도 손가락에 끼는 것이 사용하기에 편할 것 같군요. 특히 이 반지는 꽤 유용해 보입니다.”
그가 가리키는 것은 상대방을 기절시킬 수 있는 기능이 담겼다는 반지였다.
그 외에도 상대방의 눈을 멀게 한다거나, 칼바람을 터트리는 등 여러 기능이 있었으나, 콘스탄틴은 고심해서 선별 작업을 거쳤다.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은 사이나가 사용을 꺼릴 것 같았나 보다.
“이 정도라면, 네.”
사이나로서도 기절 정도면 부담스럽지 않게(?) 사람에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에게나 쓸 텐데 기절 정도면 양호하지.
그 외에도 여러 장신구들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치 어디선가 설명서를 외워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물품의 차례가 되었다. 그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는 수호령의 속성을 그 자체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흠, 이건 힘을 터트리는 종류가 아니라 저장하는 종류입니다. 왜 이쪽에 같이 넣어둔 것인지, 공격용 물품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것 같군요.”
하지만 사이나는 약간 감이 왔다.
“만약 수호령의 능력 중에 치유력이 있다거나 향기를 나게 하는 등의 힘이 있으면 이 반지가 쓸모가 있을 거 같은데요.”
“흠…. 하긴, 예전에는 수호령들의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4대 공작가의 수호령들은 죄다 전쟁 및 공격 특화용인 것 같지만.
“근데 설마… 혹시 치유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텐데요. 그가 중얼거렸다.
“네? 아니에요. 예를 든 것뿐이에요.”
“그럼 다행입니다만…….”
치유력이라면 엄청 좋은 능력 아닌가?
“치유력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요. 쓸데없는 간섭이나 쟁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긴 의사도 아닌데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어 누구를 혹은 어디를 고쳐달라고 하려나.
특히 지금처럼 황제가 몸져누운 상황이라면, 황실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그대의 수호령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콘스탄틴은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욜리요?”
“아니, 녀석의 힘을 공격형으로 쓸 수 있는지만 알려주십시오. 수호령이라고 해서 힘이 균일한 게 아니라서…….”
그리고는 첨언했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절대 대답해주면 안됩니다.”
“…네?”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부적절한 것입니다. 본래는 나 역시도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남편인데도요?”
“보통은 정략으로 결혼하는 데다가, 부부라는 요소와 각자가 맹약자라는 요소는 별개일 수 있으니까요.”
“흠. 하지만…… 당신은 괜찮을 것 같아요.”
약간 생각 없어 보이는 대답일 수는 있지만, 진심이었다.
“콘스탄틴, 당신을 안 믿으면 누굴 믿을 수 있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남편인 것을 떠나 사랑하는 남자를 말이다.
“…또.”
그가 마른세수를 하더니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러면 곤란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막힌 공간이라 자제가 힘들거든요.”
화해(?)한 뒤로 콘스탄틴의 자극점이 몹시 낮아진 듯했다.
“앗, 여긴 좀 그래요.”
“여긴 좀 그렇다는 건… 다른 데선 괜찮다는 뜻입니까?”
“…비약 금지예요.”
집무실인 것은 그렇다 치고 아직 날이 훤했다.
사이나의 단호한 표정에 콘스탄틴은 피식 웃고는 다시 대화를 이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수호령의 진짜 능력은 맹약자 본인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황실에도 모든 능력을 다 알릴 필요는 없어요.”
“…그래요? 근데 현재 5대 수호령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4대 공작가와 황가의 특성들은 워낙에 긴 시간 동안 계승이 되다 보니 일부나마 바깥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 대표적인 것만 바깥에 내보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아, 칼리고 대신 모레프처럼요?”
“예.”
수호령의 능력이라…….
“근데 욜리가 무슨 힘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현 맹약자들이야 수년에 거쳐 계승을 하며 선대로부터 많은 기록과 사례를 함께 물려받으니까요. 그대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기록과 사례뿐만 아니라 선대의 경험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4대 공작가의 후계 수업은 영지 운영이나 정치적 영역보다 맹약의 계승에 관한 영역이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이나는 초대 맹약자나 다름없는 상황. 당연히 정보가 없었다.
“욜리와의 대화와 훈련을 통해 하나씩 익숙해져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힘을 계속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녀석의 속성을 익히게 될 겁니다.”
“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녀석을 소환하는 것보다 이 보석들이 유용할 수도 있으니 따로 연습을 해두는 편이 필요합니다.”
“네. 알았어요.”
이론 수업(?)이 끝나고 둘은 바깥으로 나갔다.
이런 류의 훈련을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기에 공작 전용 연무장으로 향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웨슬리 단장에게 주변을 엄호하게끔 지시했다.
종류별로 여러 가지 보석들을 실제로 써보니 대강 사용법이 감이 왔다.
“다시 충전하는 것도 직접 해보십시오. 힘의 흐름과 세기를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네요. 팍팍 터트리는 게 오히려 쉬운 것 같아요.”
“본인이 사용 가능한 힘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모르니 많이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기절 반지만 해도 너무 약하면 성인 남성이나 기사 같은 경우에는 금방 깨버릴 수도 있거든요.”
“아.”
콘스탄틴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칼리고를 숨긴 채 모레프를 통한 이중 제어가 일상이어서인지 의외로 세심한 컨트롤의 능력자였다.
맹약자가 되자마자 본능처럼 힘을 쓸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세세한 컨트롤은 또 다른 문제였기에 많이 연습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 * *
준비 기간 동안 사이나는 매일 장신구를 이용해 공격과 재충전을 연습했다.
자기 전 보석함을 열고 충전을 하는 게 근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충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기(?)를 사용할 때의 강도나 횟수도 미묘하게 달라질 때가 있어서 사이나는 욜리에게 이것저것을 물을 때가 많았다.
-대충 해. 사실 이딴 거 필요 없어.
“응?”
-그냥 내가 죽여 버리면 되지, 뭘.
“어, 너 공격력이 있어?”
-딱히 공격력이 없어도 수호령의 현신을 이길 만한 인간이 있을 것 같냐? 지금은 아를-프로메사 시절이 아니야. 실체화 상태에서 못 이기는 인간은 맹약자밖에 없어. 그리고 맹약자라면 어차피 이 도구들로도 못 죽여.
말을 들어보니 그러네. 그럼 내가 여태 뭘 하고 있는 거람?
-힘 컨트롤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기는 하니까 뭐 연습하라고 놔둔 거긴 한데….
욜리가 보석함을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건 흠, 쓸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는 곰발로 목걸이 하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전에 콘스탄틴이 마지막으로 설명했던 심플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얄따란 줄에 물방울 모양의 보석 하나만 달린 심플한 디자인의 목걸이.
“이거? 어떻게?”
-한번 충전해 봐.
여태 이건 사용한 적이 없어서 구석 칸에 계속 놓여있었다.
사이나는 그것을 꺼내들고 보석의 중심에 손가락을 얹었다. 집중하려고 하니 욜리가 덩달아 앞발을 올려왔다.
이미 욜리의 힘을 끌어다 쓰는 건데도 전과는 다른 결이 느껴졌다. 미묘하게 다른 두 가지 힘이 섞이며 보석 안으로 뭉쳐드는 것 같은 느낌에 사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뭐야?”
-혹시나 했는데 되네.
“뭐가 된 건데?”
-이거 그 유모 갖다 줘. 항상 지니고 있으라고 해.
“유모님?”
-응. 꽤 도움이 될 거야.
“어, 정말이야?”
-응. 칼리곤가 뭔가 그 새끼 기운 중화하면 전보다는 오래 사실 수 있을걸. 영구적인 건 아니라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충전이 필요하긴 해.
“와! 진짜? 다행이다!”
욜리의 힘이 유모의 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정말 좋은 소식이 아닌가.
“이거 내가 콘스탄틴과 닿아도 괜찮은 거랑 연관 있는 거지?”
“응.”
“이게 무슨 속성이 있어서 그런 건데?”
“음. ‘정화’라고 해야 하나? 대충 그런 능력.”
“정화?”
“응. 이제 네 인생에 독살은 없어. 내가 정화할 수 있거든.”
“…….”
욜리가 하고 많은 힘 중에 저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어쩐지 그렇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기분이 짠하면서도 울컥해졌다.
사이나는 욜리의 커다란 몸을 대뜸 안았다. 욜리의 몸집이 작았을 때와 달리 지금은 사이나가 먼저 안았어도 어쩐지 안겨드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음?
“너 전에 잠들었던 거… 그것도 정화 능력 썼던 거지?”
-뭐……. 완전히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썼더니 좀 무리해서 그래. 근데 유모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태였거든.
“착해.”
바보같이 착해.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리는 착해빠진 녀석이었다.
-야, 내가 얼마나 시크하고 냉정한 남잔데.
“착해 빠졌어.”
그러니 이런 나를 위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사이나는 벌떡 일어났다.
“당장 이거 유모님께 전해드리러 가야겠어!”
“어딜 갑니까?”
그런데 그 타이밍에 콘스탄틴이 들어왔다.
“아, 이걸…….”
사이나는 목걸이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내일 가도록 해요.”
“어… 그게 나을까요?”
“그래요. 하루 만에 큰일이 있지는 않을 테니. 그보다…….”
콘스탄틴이 사이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다가왔다.
“왜 울었습니까.”
“…네?”
“무슨 일이에요.”
“안 울었는데…….”
울 뻔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콘스탄틴은 거짓말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앗?!”
그녀를 내려놓고는 그가 바로 침대 위로 따라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