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84화 (184/233)

184화. 죽음, 그 전말

“……!”

사이나는 소름 끼치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사이나?”

반동처럼 벌떡 일으킨 몸 때문인지 콘스탄틴이 덩달아 잠에서 깨어났다.

파르르 몸을 떠는 그녀를 품에 당겨 안으며 콘스탄틴이 물었다.

“왜 그래요. 악몽이라도 꿨습니까?”

“…악몽…….”

글쎄. 악몽인가? 악몽도 꿈인데, 그럼 이게 꿈이라고?

설마 자신이 그려낸 상상이나 망상은 아니겠지?

‘…아니.’

그저 악몽이거나 망상이라면 털어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그런 것 같지 않으니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게, 모든 이미지들이 생생하기 짝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 기억은 진실이라고.

지나간 시간대에 분명히 있었던 일이라고.

‘독살이었다니.’

그 고통스러웠던 죽음으로의 과정이 그저 병이 아니었다고? 고의에 의한 거였다고?

‘대체 왜?’

둘의 사이가 딱히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니, 좋지 않은 선을 넘어 몰래 자신을 증오해왔다고 해도, 사람을 죽일 정도라고? 그것도 모자라 그 죽음을 축하하며 미소를 지을 정도란 말인가?

미소라니. 그건 분명 만족스러움을 띠고 있었다.

‘내가 뭘 어쨌기에?’

충격적인 진실을 목도하게 된 여파는 작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힘껏 움켜쥐고 있던 주먹 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이런, 피가 나지 않습니까.”

파고든 손톱에 손바닥이 파여 있었다. 그 느낌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나는 극심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이나.”

그가 약을 가져다 그녀의 손바닥에 발라주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자 사이나는 조금이나마 안정이 되었다.

“콘스탄틴.”

“예.”

헤베타가 된 엘리자베스.

자기 전 읽었던 보고서의 내용.

그리고 새로이 알게 된 전생의 사인(死因)까지.

“황도로 갈 때가 된 것 같아요.”

대면을 부르고 있었다.

지나간 악연을 해결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 * *

“욜리.”

사이나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충격이 가라앉자 분노가 찾아왔다.

각성 때 장례식 장면을 보았을 때는 그저 멀리서 남의 기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관조하듯 지나갔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나니 미칠 듯한 분노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음? 사야? 야밤에 무슨 일이야?

그녀의 부름에 욜리가(수호령의 형태로 나타날 땐 여전히 늑대의 모습이라 유리보다는 욜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타났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이 넘쳐서 어딘가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콘스탄틴이 매우 걱정했으나, 그에게 말하기엔 화제가 좋지 않았다.

‘아마도 전생에 제가 독살을 당한 것 같아요. 그래서 화가 미친 듯이 나요.’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이나는 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것을 보면서도 잠시 생각할 것이 있다며 서재로 나왔다.

등 뒤로 그의 시선이 진득하게 느껴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나 전에 왜 죽었는지 알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욜리의 몸이 화악 커지며 맹렬한 노기를 표했다.

그리고 그건 긍정을 의미했다.

『널, 내게서 빼앗아 간 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게.』

문득 전에 꾸었던 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할게, 사야. 반드시…….』

당시에도 ‘대가’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땐 그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유리가 슬퍼하는 것에 감정이 매몰되어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제야 왜 그가 저런 말을 하며 격노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나 죽인 거, 알고 있었던 거야?”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계집애를 가까이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속이 터졌는 줄 알아!?

그러게.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이나도 이젠 과거의 자신이 답답하니 말이다.

이제 둘은 맹약자와 수호령의 관계로 서로 소통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몸으로 제 기분을 표현하던 버릇은 여전히 남았는지 욜리가 꼬리를 휙휙거리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하…. 넌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시체도 안 남아 있어서 증거도 없었을 텐데.

‘…음? 잠깐…….’

장례식엔 관이 없었지. 그러고 보니 조지 홀랜더는 왜 그녀를 화장했을까.

죽을 당시 그녀의 몰골이 그다지 사람 꼴이 아니었던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관 뚜껑을 닫은 채 장례식을 치르지, 화장을 하지는 않는다.

귀족에게 화장은 전염병에 걸려 죽었을 경우에나 행하는 장례법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병이 전염병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보다 했는데 이리되고 보니 조지 홀랜더도 수상했다.

‘독살은 보통 흔적이 남지…….’

드보프가의 식구들이 혹시 시체를 보자고 한다거나 하는 만약의 상황을 아예 차단해버리기 위해 서둘러 화장을 해버린 게 아닐까?

‘아니, 애초에… 독살 자체도 그의 도움이 없다면…….’

엘리자베스가 독살을 계획했더라도, 입덧을 목격했던 연회 이후로 사이나는 엘리자베스를 만난 적이 아예 없었다. 그녀가 준 무언가를 먹은 적이 없다.

그렇다는 얘기는 집안 내부에 협조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럴 사람은 뻔했다.

‘조지 홀랜더….’

애초에 둘은 불륜 관계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도 협력을 할 수 있는 관계겠지.

그녀가 병이 걸린 이후 조지 홀랜더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혹시… 조지 홀랜더도 한패였어?”

-당연한 소리! 그 연놈들을 생각하면-!

욜리의 등 뒤로 거친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들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기세였다

‘하…. 나 정말 멍청했구나…….’

사실 둘이 그런 사이인 것을 목격했을 때 충격이기는 했지만, 이후로도 사이나는 엘리자베스를 미워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그랬다.

‘조지 홀랜더가 나쁜 놈인 줄 알았지.’

사이나가 조지 홀랜더라는 마수에 얽혀 결혼을 해야 했듯이, 엘리자베스도 어떤 이유로 인해 그에게 약점을 잡혔거나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콘스탄틴 같은 남편을 놔두고 조지 홀랜더 같은 놈이랑 만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이나는 엘리자베스가 자신과 같은, 일종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돌아온 후에도 굳이 그녀를 배척하지 않았다.

여러 거리끼는 요인이 많았음에도, 나름의 관대함을 가지고 그녀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실상 그녀가 주도자였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어…….’

사이나는 스스로가 타인에게 그 정도의 악의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살의는 더 그랬다.

그렇다고 살면서 크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산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할 거란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

후려쳐진 뒤통수가 얼얼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서… 하, 넌 어떻게 알게 된 건데? 말 안 했어, 아직.”

화장까지 했는데 유리는 무슨 수로 사이나가 살해당했는지 알아냈을까.

-그건…….

그런데 욜리가 어쩐지 대답을 망설였다.

“왜? 뭐기에 그래?”

-크레이머 공작이… 알려줬다.

“뭐?”

콘스탄틴이 알려줬다고?

당시 크레이머 공작이면…….

“남편이었잖아?”

-제 부인이 독약을 산 정황을 발견해서 조사하다가 알게 된 모양이야.

“……근데 그걸 너한테 알려줬다고?”

대체 왜? 그로서는 오히려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닌가? 부인인데?

그의 부인이라는 단어가 미묘하게 불쾌함을 자극해서 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나도 처음엔 의심을 좀 했는데, 정상적인 부부 사이는 아니었던 거 같아.

“임신까지 했던데 정상적인 부부 사이가 아니라고?”

그럼 대체 뭐가 정상적인 부부란 말인가. 분명 자신이 입덧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콘스탄틴이 제 애를 밴 여자를 가차 없이 끊어낼 만큼 냉혹한 남자였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이나는 망연한 눈으로 욜리를 보았다.

-제 애가 아니라던데?

“…뭐? 그가 남의 애라고 했어?”

-응.

묘한 안도감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콘스탄틴이 그렇게 냉혹한 남자는 아니라서 그런 건지, 엘리자베스가 그의 애를 가진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남의 애라니.’

엘리자베스와 휴게실에서 마주쳤을 때 엄청 놀란 것 같던 게 그래서 그런 거였나?

‘하지만 공작부인이었는데?’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그 지위를 즐기고, 자랑스러워했는지 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위태하게 할 짓을 했다고?

그럴 리가. 아마, 실수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이치에 맞는 것 같았다.

‘설마… 조지 홀랜더의 애?’

그래서 조지 홀랜더의 부인인 자신을 죽인 걸까? 방해가 되어서?

‘방해라니 뭐가 방해가 된단 말이지?’

엘리자베스가 공작부인의 자리를 두고 조지 홀랜더의 부인 자리를 더 원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둘이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이였을 리도 없다.

사이나의 머릿속에 해결되지 않을 질문과 가정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여전히 자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의 마지막 만남에 무언가 힌트가 있을까?

『공작부인께서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귀한 분의 씨를 잉태하신 모양인데,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답지 않게 부렸던 자신의 오지랖이 무언가를 촉발했던 걸까?

‘아! 혹시… 남편이었던 공작에게 이를까 봐……?’

그래서 그랬나?

이게 그나마 가장 그럴싸한 이유처럼 보였다.

사이나가 딱히 그런 일을 사서 할 성격은 아니지만, 엘리자베스가 사람을 믿을 만한 성향이었다면 애초에 그녀를 죽이지도 않았겠지.

“이유는 알아?”

-무슨 이유?

“걔가 나한테 왜 그랬는지.”

-미친년한테 이유가 어디 있냐. 그냥 그러고 싶었다던데. 처음부터 그랬대.

“…….”

-사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상태가 아니었어. 내가 걜 만났을 땐 이미 반쯤 미쳐있었거든.

“무슨…….”

-공작이 뭔 짓을 한 것 같던데?

“…….”

-크레이머 공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하고 다정한 남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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