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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83화 (183/233)

183화. 저돌적 변화

마찬가지로 역시 거짓말은 아니었다.

황족 모독은 될 수 있겠지만.

“괜찮을까요? 황가인데…….”

황족모독죄는 공작도 피해갈 수 없는 죄목이다. 그러다 보니 웨슬리 단장은 한 번 더 물었다.

“그러니 더 조심히 진행해야지.”

“알겠습니다.”

“출처를 찾아내기 힘들게 이쪽과 황도 쪽에서 동시에 퍼트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가 봐.”

당분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정보의 진위 여부를 따지느라 바쁠 것이다.

그동안 그가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며 콘스탄틴은 웨슬리 단장을 물렸다.

* * *

다시 아침.

그녀는 단단한 몸이 자신을 휘감고 있는 감촉을 느끼며 깨어났다.

‘아…….’

그리웠다.

새삼스럽게 이 감촉을 느껴보니 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콘스탄틴의 품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이다.

단순히 부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매일 해주던 포옹이 그리웠었다.

살며시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손길이, 관자놀이나 이마에 틈만 나면 입술을 찍기 바쁘던 자잘한 스킨십들이 그리웠었다.

커다란 그의 품에 갇히듯 안겨 잠들던 밤과 그의 팔베개에서 깨어나던 아침이 그리웠었다.

바로 이런 아침 말이다.

안온하고, 든든한 품 안에서 깨어난 사이나는 만족스러움이 뜨끈하게 가슴 안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기꺼워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꼭 안으며 너른 품 안에 포옥 안겨들었다.

입가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배어났다.

“…이러면 오늘도 못 나갈 텐데요.”

“콘스탄틴? 깼어요?”

대답대신 그가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으음…….”

짧지만 깊게 그녀의 입술을 맛보고선 떨어져 나간 그가 길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야.”

“네. 좋은 아침이요.”

사야.

그녀의 투정에 그는 다시 그녀의 애칭을 부르기 시작했다.

‘실은 내게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간 그녀를 사야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그대에게 가깝게 굴 자격도, 그대에게 어떤 권리를 주장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약간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녀로서도 그가 멀게 느껴질 땐 이름대신 공작님이라고 부르고는 했으니 어떤 마음으로 저랬는지 알 것 같았다.

‘이해해요. 대신 앞으로는 사야라고 불러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그대가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싫을 리가 있나요. 사랑하는 남편인데.’

‘사랑… 남편…….’

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또다시 그녀의 몸을 타고 오르는 그를 마주 안으며 또 뜨거운 시간을 보냈더랬다.

‘…하지만 오늘은 일어나야지.’

사이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지끈거리는 허리를 짚으며 신음을 삼켰다.

“읏.”

참았던 날들을 한 번에 다 풀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건지, 어제 역시 고삐가 풀린 말처럼 달려드는 그로 인해 상당히 기나긴 밤을 보내야 했다.

아무리 그녀가 자극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몸 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질 정도라 슬며시 눈을 감는데, 허리께에 단단한 손길이 느껴졌다.

“…허리, 많이 아픕니까?”

그가 그녀의 허리 쪽 근육과 척추를 마사지하듯 누르며 면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 달려드실 땐 언제고, 지금은 좀 미안하세요?”

약간 발개진 귀를 하고 그가 눈을 내리깐 채 그녀의 허리를 주물렀다.

“하지만 뭐, 좋았어요.”

그의 손이 멈칫했다.

“하아……. 그런 그대의 말이 문제라는 걸 모르겠습니까?”

“네?”

“자꾸 자극하지 말아요.”

“좋은 걸 좋다고 하지 뭐라고 해요?”

사이나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

그녀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맞는데…. 맞는 말인데…….

문제는 사이나가 저럴 때마다 그의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처럼 쿵쾅대고, 하반신은 제어에서 벗어나 지나친 자기주장을 한다는 거랄까.

“제 마음을 깨달았을 때, 전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후회했어요.”

사이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물에 빨려 들어가던 때 말입니까?”

“네. 그래서 앞으로는 후회하기 싫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거, 좋아하는 마음, 벅찬 감정. 다 말할 거예요. 다 표현하고 싶어요.”

사이나가 그의 양쪽 귀를 두 손으로 감싸더니 쪽, 짧게 키스했다.

“사랑해요.”

고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그녀를 꽉 안았다.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세차게 말이다.

“그대는… 그대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말로 차마 표현해내지 못한 감정을 숨결로 쏟아냈다.

그녀의 호흡을 진득하고도 집요하게 탐하고 또 삼켜댔다.

“으… 으응…….”

또다시 그는 그녀의 가장 깊은 안쪽에 제 흔적을 새겨 넣느라 구슬땀을 흘렸고, 그녀는 그가 짓쳐들어오는 대로 활짝 몸을 열며 그를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훌쩍 오전이 지나갔다.

그날 오후.

마침내 그들은 침실을 벗어났다.

“엘리자베스라고 했던가요.”

맨살로 서로의 살결을 덮어주던 침실을 벗어난 둘은 함께 오찬을 든 후, 그의 집무실에 딸린 응접실에 같이 자리했다.

밀린 밤만큼이나 밀린 낮도 길어, 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다.

“네?”

“한때 그대의 지인 말입니다.”

“아, 맞아요, 엘리자베스. 그런데 왜요?”

“헤베타가 되었다는군요.”

“아…….”

결국 확정이 되어 발표가 났나 보네.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은데, 혹시 이미 알고 있었습니까?”

“네. 실은 저번에 수도에서 받은 편지에 아마도 그럴 것 같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흠. 그대의 친우들이 꽤 소식에 밝군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황도 소식은 굳이 수집하지 않았는데, 이젠 좀 더 신경 써야겠습니다.”

“…네? 왜요?”

“그대에게 무능하게 보이고 싶지 않거든요.”

농담 같은 진담인지, 진담 같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이나는 피식 웃었다.

공작들이 영지 기반으로 주로 활동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충분히 유능하시고, 충분히 바쁘신 거 아니까 더 일거리 늘이지 마시고 그 시간 저한테나 주세요.”

그는 침음을 삼키더니 제 눈가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가렸다.

“적응이 안 되는군요….”

미치겠습니다. 그가 웅얼거렸다.

“음? 왜 그러세요?”

“그대가…….”

너무 달콤하게 구니까.

그는 뒷말을 삼켰고, 사이나는 자신이 전과 좀 다르게 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나붓하게 예쁜 미소를 그리는 그녀의 얼굴에 사랑이 가득했다.

과연 이게 적응이 될까? 괜찮아질만하면 훅훅 치고 들어오는 자극적인 발언에 몸도 마음도 널을 뛰었다.

터질듯 뛰기 시작한 심장의 박동이, 그리고 제멋대로 치솟기 시작한 하반신의 반응 역시, 요동치며 그를 자극했다.

그리고 몸의 반응과 별개로 지나치게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이 마음이…….

‘행복…. 행복이라…….’

사전적 의미로만 알았던 단어가 가슴으로 들어와 실존임을 상기시켰다. 그런데도 그 존재감을 자꾸 의심하며 그는 현실을 가늠했다.

지나치게 달콤하고 꿈만 같아서.

“이건, 뭐예요?”

콘스탄틴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그녀의 질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사이나는 테이블 위에 뒤집혀 놓인 종이 뭉치를 보고는 물었다.

“아, 조사 결과입니다.”

“무슨 조사요?”

“전에 욜리가 유독 공격적으로 구는 것이 이상해 조사를 몇 가지 명해둔 것이 있었습니다.”

“무슨……. 혹시 엘리자베스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 그리고 이번에 헤베타가 된 정황과 배경 등도 추가로 명했었고요.”

“아…….”

“읽어 보시겠습니까?”

“…….”

사이나는 종이 뭉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욜리는, 유리는 대체 그녀를 왜 그렇게 경계했던 걸까.’

이 안에 그 답이 있을까?

돈을 보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 이상으로 더 추악한 것이 있을까?

사이나는 천천히 종이 뭉치에 손을 뻗었다.

* * *

엘리자베스의 조사 결과를 보고 난 이후여서일까.

그날 밤.

사이나는 엘리자베스의 꿈을 꾸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당시의 엘리자베스의 기억에 관한 꿈을.

그것은 사이나가 각성 때 보았던 여러 조각들 중 하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느릿하고, 자세하게 꿈속에서 재현되었다.

자신의 장례식 장면을 어떻게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단순히 상상이나 만들어진 기억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시간의 기록. 아마도 유리의 힘 때문일 테지.

이미 연이 끊긴 사이에 엘리자베스가 그녀의 장례식을 찾아온 것을 보고 처음엔 의아했다.

의례적인 부의문이나마 보내는 것도 감지덕지인 관계였으니.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직접 문상을 왔고, 다른 조문객들처럼 하얀 꽃 한 송이를 목함 앞에 내려놓으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장례식엔 관이 없었고, 뼛가루를 담았을 작은 목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조지 홀랜더는 그녀를 화장해 버린 모양이었다.

『사이나. 안녕?』

까만 베일 아래로 하관만 노출된 얼굴에서 유독 붉은 입술이 눈에 뜨였다. 작게 벌어진 입술이 웅얼거렸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는 것일까?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보였다. 그저 죽은 자에게 작별의 말을 남기며 위문(慰問)의 예를 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이나도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게, 눈치 좀 챙기지 그랬어.』

하지만 어느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넌 곱게 자라서 그런지 눈치가 더럽게 없었지. 내가 얼마나 짜증 났는지 모를 거야.』

무음의 세계에서 갑자기 소리가 켜지 듯이 그렇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희한할 정도로 선명하게 사이나의 귀에 꽂혔다.

『아, 눈치 없는 것도 도움이 되긴 했어. 끝까지 병인지 독인지 구분 못 하더라, 너?』

위문의 예는커녕 조롱의 목소리.

그리고…… 충격적인 고백.

『잘 가렴.』

붉은 입술이 그리던 미미한 굴곡.

그건 분명 미소였다.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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