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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81화 (181/233)

181화. 그대라서 다행이다

이제 수호령이 되어서인지 욜리는 전처럼 ‘컁?’ 등의 짖음으로 화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개가 약간 갸우뚱 한 채로 사이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을 보니 여전히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녀석은 이제 그녀의 수호령이니까, 아마도 그녀에게만 들리는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칼리고의 기운이 나한테 침투하지 못한다는 걸 못 믿는 것 같은걸.”

사이나의 말에 욜리는 인상을 쓰며 꼬리를 탁탁거렸다.

짐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불쾌해하는 양태는 전과 비슷했다.

“칼리고한테 물어보래요. 아마 그 새… 흠. 그 수호령은 알면서도 말을 안 해줬을 거래요.”

“…뭐라고요?”

“음흉한 새… 수호령이니까, 성향이. 맞아요?”

음흉한 것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감각을 느끼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잠시.”

그녀를 제 배 위에서 들어 옆으로 내려주고는 몸을 물렸다. 그녀와 닿아 있으면 칼리고와 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리고.”

-……허억! 주인아! 너 저 여자랑 또! 대체 왜 이러냐! 이러면 안 되지!

숨어들었던 목소리가 돌아오자마자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너… 사이나한텐 네 기운이 안 통하는 거… 알고 있었나?”

-……뭐?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대체-

“내가 닿으면 안 된다고 고민하는 거,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인 거… 알고 있었냐고.”

-…….

“묻잖아, 이 새끼야!”

틈만 나면 지옥 같은 수다를 떨기 바쁜 칼리고 새끼가 침묵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이나 다름없기에 콘스탄틴은 지독한 분노에 휩싸였다.

“당장 대답 안 하면 바로 온천으로 갈 줄 알아.”

-알고 있었으면 뭐!

“…….”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주인아, 너는! 그 여자에게 환장해서 맨날 들러붙어 있기 바쁘지 않았냐!

“…….”

-주인이 안 물어봤으니 말 안 한 거지! 난 거짓말은 안 한다!

하루 종일 주절주절 말하는 게 사명인 것처럼 씨불여대면서, 정작 가장 필요한 말은 안 한다고?

그의 잇새에서 뿌득, 하는 소리가 났다.

-주인아! 네가 나쁘다! 난 아무런 잘못 없다아아아!

그간 그가 한 고민과 고뇌는 대체 무엇이었나.

닿을 수 없어 본의 아니게 사이나를 상처 입힌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럼에도 그녀는 그가 다칠 때마다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치료해 주고는 했다.

소중하게 대해 주겠다고 해놓고 외면해야 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신을 잃었을 때는 매번 그리 탐하다가 깨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해야 했던 순간이 말이다.

제 방에 찾아온 그녀를.

축제 때 제 손안에 볼을 기대며 눈을 감던 그녀를.

그는 어떻게든 벌리려 애쓰던 거리를 좁히려 애쓰던 그녀를.

이를 악물고 외면해야 했던 순간들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말 그대로 이 새끼를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

“콘스탄틴.”

터져버릴 듯 차오르던 분노를 순식간에 잠재운 것은 작은 터치였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확인, 했어요?”

슬며시 깍지 사이로 스며드는 보드라운 손가락의 감촉에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 말이 맞죠?”

“……예.”

붉은 입술이 싱긋이 호선을 그렸다.

“그럼….”

“…….”

“이제 우리 사이는 괜찮은 거죠?”

다시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타 양어깨 위로 팔을 얹어 목을 감으며 그녀가 물었다.

그의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이 놀라운 사실에 겨우 고정해둔 고삐가 풀리기 직전이건만, 왜 이렇게 자극적인 행동만 하는 것인지.

콘스탄틴이 어떻게든 제 몸의 제어를 잡아보려 할 때 그녀가 다시 말했다.

“사랑해요.”

누군가 북채로 그의 심장을 휘둘러 쳐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퍽, 하고 울리는 느낌에 그가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칼리고를 향한 분노는 물론 일말의 생각까지 한 번에 날아갔다.

“…콘스탄틴?”

“나는…….”

어째서인가.

그녀의 고백에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전에 그녀를 향한 마음을 자각했을 때처럼 심장이 덜덜 떨려왔다.

어떤 말도 하기 힘들었다.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렀다.

사이나는 의외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의 눈가로 손가락을 가져오더니 길게 쓸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흐르던 물기를 훔치고 그 물기가 지나간 자리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볼 위로, 눈두덩이로, 그리고 콧날을 타고 지나가는 입술의 감촉이 그를 헤집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가 손을 올렸다.

그녀의 목을 그러잡으며 덮치듯 삼켜버렸다.

어느새 둘의 시야가 뒤집혔다.

금세 정염이 가득 들어찬 파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자색 눈동자가 나붓하게 휘어졌다.

“사실…….”

“…….”

“전부터 이렇게 닿고 싶었어요.”

“…나도, 그랬습니다.”

그가 물기 어린 눈으로 웃으며 동조했다.

“항상.”

칼리고 새끼의 듣기 싫은 목소리는 또다시 깊이 숨어들었다.

당분간 절대 입을 나불댈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나름의 복수라면 복수가 되려나.

욜리 역시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그렇게 고대하던, 그녀와 둘만의 시간이 다시, 도래하였다.

* * *

“음…….”

하녀들이 커튼 치는 것을 잊었나.

지나치게 강렬한 빛에 사이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었다가 문득 깨달았다.

하녀들이 이 방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머리색 때문에 통제되기 시작한 침실층은, 어제부터 시작된 내밀하다 못해 과하게 농밀했던 부부간의 시간 때문에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아무도 깨우러 오지 않은 데다, 아침 식사 시간까지 훌쩍 넘긴 것이 해그림자로 추측 가능했다.

“……?”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틀자 파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콘스탄틴? 깨어 있었어요?”

“…저도 방금 일어났습니다.”

방금 일어났다고 하기엔 초점이 지나치게 또렷해 보인다.

“나 계속 보고 있었던 건 아니고요? 시선이 느껴졌는데?”

“…….”

약간 찔러본 건데,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나 자는 거 계속 본 거예요? 왜?”

침을 흘리거나 한 건 아니겠지?

사이나는 저도 모르게 입가를 쓸어보았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네?”

그가 눈가를 몇 번 떨더니 덧붙였다.

“그대가 이렇게, 내 품에 있는 게…….”

“…….”

“내가 그대를 이렇게 다시 안을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습윤했다.

“그리고 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

“제겐, 기적 같습니다.”

“…무슨 말이요?”

그는 천천히 손을 뻗더니 그녀의 볼을 감쌌다.

“사랑합니다.”

“…네?”

“사랑해요, 사이나.”

“아…….”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느꼈던 후회감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튀어나왔던 사랑 고백이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그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기는 했으나, 사실 그 마음을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고백을 되돌려 받으니…….

“그대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까 봐”

“…….”

“족쇄로 느껴질까 봐……”

사이나는 갑자기 가슴이 너무 벅차서 그에게 안겨들었다.

“…사이나?”

살면서 이토록 벅찬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사이나는 그의 목을 감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정말, 정말이죠?”

“당연히…….”

“아, 너무 좋아요!”

사이나는 그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외쳤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한다는 건…… 정말 끝내주는 거였다.

물살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보았던 그의 표정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그 역시 자신에게 꽤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 같다고.

하지만 예상을 한 것과 직접 그것을 확언처럼 듣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이 사랑을 더는 숨기지 않으리라.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한 고백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그 고백에 대한 화답이 긍정으로 되돌아오자 기쁨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났다.

“당신을 만나서 너무나 다행이에요.”

“…….”

“정말… 너무…….”

콘스탄틴은 울컥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마주 안아왔다.

으스러뜨릴 듯이 그녀를 꽉 안으며 한숨처럼 말했다.

“그댄… 내가 해야 할 말을 계속… 먼저, 하는군요.”

“…네?”

“나야말로 그렇습니다. 그대를, 그대를 만난 것이 얼마나 내게 큰 기쁨인지, 기적인지…….”

“…….”

“도무지 보답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을…….”

그녀의 볼을 감싸오는 그의 손에 떨림이 묻어 있었다.

지나친 감격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처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고작 ‘사랑’이라는 단어로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또한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또다시 뚝뚝, 울기 시작했다.

“……아.”

벌써 몇 번째인가.

그가 눈물짓는 모습을 보는 게.

하지만 그 광경은 남자답지 않다거나, 채신머리없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어여쁘게 느껴졌다.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아련하게 젖어 파르르 떨리는 백색의 속눈썹 위로, 사이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내렸다.

그녀가 입술로 내리누르는 압력에 또르르 새어 나온 눈물방울이 그녀의 혀를 적셨다.

눈가를 핥듯이 쓸며 눈물을 삼켜낸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러면…… 많이, 표현해주세요.”

촉촉하게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자신이 스며들도록 그녀가 마음을 담아 속삭였다.

“한 단어로 표현 못 할 마음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만개한 꽃처럼 웃음 지으며 그녀가 요구했다. 무슨 대단한 요구인 양, 그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표현해주세요.”

그가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울컥, 흐려진 눈동자가 다시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찰랑였으나, 눈물보다 입술이 더 빨랐다.

“…으응.”

다급하게 다가온 입술이 숨결을 헤치며 내부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호흡까지 삼켜버리고 싶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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