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그녀를 울게 한, 그녀를 살게 한
콘스탄틴은 투두둑, 다시 눈물을 떨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이나…. 제발… 내게 돌아와요…….”
토독토독, 떨어진 눈물방울이 그녀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자각도 못 한 사이 제게서 떨어진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 젖은 궤적은 마치 그녀가 우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눈물을 지워내려 그의 손이 나아가다가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상기된 탓이다.
장갑을 꼈음에도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떨리는 손끝과 눈매만이 조급한 그의 심정을 대변할 뿐이었다.
‘사이나…….’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심정을 삼켜내며 그가 그녀의 이름을 소망처럼 불렀다.
이런 무력함을 경험할 때마다 그는 말 그대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제발 깨어나기를.
그런 그의 눈물 어린 소망이 닿은 것일까.
갑자기 사이나가 눈을 번쩍 떴다.
전과 달리 은색의 속눈썹이 감싼 눈매는 묘하게 다른 인상을 선사했으나 다행이랄지, 눈동자는 여전히 제비꽃색 그대로였다.
“사이나!”
그가 다급하게 부르는 것이 들리지 않는지, 그를 보면서도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멍했다.
그를 보되 그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괜찮습니까?”
어딘가 묘한 기색에 그가 넌지시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나가 입술을 깨물며 숨을 들이켰다.
“……흡.”
“-사이나?”
“…흐…….”
그러더니 울기 시작했다.
“사, 사이나?”
“-으윽, 흐……, 어어어엉-!”
터진 울음은 곧 통곡이 되었다.
“왜! 왜 그랬어……!”
목 놓아 울며 원망하고, 한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콘스탄틴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미안, 미안합니다. 그대 곁을 지켰어야 하는 건데…….”
그녀의 젖은 몸을 보기 힘들어 도망쳤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당장 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아도 참고 그녀 곁을 지켰어야 했다.
“대체 왜……. 왜!”
그녀는 울며 주먹으로 본인의 가슴을 쾅쾅 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은 얼른 손을 붙들었다. 스스로를 때리지 못하도록 그의 가슴팍에 붙여 고정했다. 그러자 사이나는 발버둥을 치며 더 크게 울었다.
“잘못했어요. 사이나…….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는 발버둥 치다가 다치지 않게 더 강하게 잡아 그녀를 고정하며 그가 용서를 빌었다.
“내가 뭐라고…… 네가…….”
처절하다 못해 한이 서리기까지 한 울음소리에 콘스탄틴은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이나, 제발…….”
숨이 넘어갈 듯 울던 그녀의 고개가, 어느 순간 홱 젖혀졌다. 가느다란 몸이 추욱 쳐지는 것이 혼절한 듯했다.
“-사이나!”
반사적으로 붙잡은 가느다란 몸을 그가 황급하게 끌어안았다.
그는 저도모르게 다시금 그녀의 코 밑에 손을 대어 호흡을 확인하고, 가슴에 귀를 대어 심장이 뛰는지를 확인했다.
불안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정신을 다잡았다.
* * *
호수 주변은 상당히 북적거렸다.
하루 동안 꼬박 자리를 빛낸 빛기둥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들었다.
그저 빛기둥이 신기해서 구경을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나, 그중에는 맹약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각지에서 파견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포함한 구경꾼들은 빛기둥이 하필 호수 중앙에서 솟아올라 있어서 혼란에 빠졌다.
호수 안쪽에 섬이 있다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는 자가 없었기에, 사람도 없는 곳에서 올라온 빛기둥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 의견이 분분했다.
“아니, 이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야? 호수 한복판에서 계약을 했을 리는 없잖아?”
“이게 맹약 때문에 생긴 빛기둥이 아니었던 건가?”
“계약을 한 자리에서 빛기둥이 생기는 게 맞긴 한가?”
“마지막 계약자가 이미 수백 년 전인데 사실 어찌 알겠나.”
“아, 혹시 물과 관련한 수호령과 계약하면 물 위로 빛기둥이 생기는 거 아닐까?”
“오? 그럴싸한 이론이구만!”
콘스탄틴이 사이나를 수습해서 동혈을 빠져나왔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대였다.
그럼에도 호수 외곽은 이런 자들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 탓에 타고 왔던 말을 다시 타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와 의논을 하기 전에 사이나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녀가 찬성한다 하더라도 사실 반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이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한군데도 노출되지 않도록 콘스탄틴의 망토로 꽁꽁 싸매진 상태였다.
위태로운 그녀의 상태로 인해 당장 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리할 수 없는 바깥 상황에 구경꾼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기민하게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겨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을 타고 비밀스럽게 섬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크림성으로 옮겨진 사이나는 하루가 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의사로부터는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혼절인지, 수면인지, 또는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는 애를 태워야만 했다.
마치 심지가 타서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는 사이나의 곁을 지켰다.
그러던 중, 한밤에 불현듯 그녀가 깨어났다.
“…사이나?!”
잠도 자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키던 그는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들리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정신이 듭니까?”
“…….”
아직도 눈이 빨간 것을 보며 그가 나직하게 물었다.
“내가, 내가 미안합니다.”
“……콘스탄틴?”
차츰 초점이 맞기 시작한 그녀의 눈이 방향을 바꾸어 그를 보더니,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미안해요.”
“……뭘요? 왜 그래요?”
“내가, 내가 그대를 구하지 못해서…….”
파르르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사이나는 더 의아한 기색을 짓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여긴 제 방인데……. 당신이 데려와 준 거 아니에요?”
“그건 맞지만…….”
“근데 왜 그런 말을 하세요?”
그가 그녀를 꺼내오기는 했으나, 구했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 그 안에서 그녀가 무사하지 못했다면, 일은 이런 식으로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
그가 자괴감으로 다음 말을 잊지 못하고 있을 때, 사이나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욜리!”
그러더니 제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욜리를 찾았다.
그녀의 외침에 콘스탄틴도 불현 듯 녀석의 부재를 눈치챘다.
둘이 있을 때는 욜리 녀석이 항상 나가 있고는 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사이나가 이렇게 되어 왔는데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니.
그녀의 안위에 예민하기 짝이 없게 굴던 녀석 답지 않았다.
“욜리 보았어요?”
“미안합니다. 미처 신경을 못 썼군요. 당장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콘스탄틴은 당장 나가 집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돌아와 사이나를 살폈다. 또 저번처럼 울먹이며 욜리를 찾는다고 나가려고 하면 말려야 했다.
지금 전국이 새로운 각성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라, 사이나의 머리색이 변한 것을 외부에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밝혀지기는 할 테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그녀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무언가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직접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각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집사가 찾아왔다.
침실이 있는 현재 층은 극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만이 출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녀석은?”
“죄송합니다.”
“못 찾았나?”
“다리엘이 말하길, 이틀 전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얼른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두 분께서 모두 부재중이라 말씀을 못 드렸다고 합니다.”
전에 실종 사건이 있고 나서 다리엘은 욜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직접 챙겨왔다.
그렇다 보니 욜리가 사라진 것을 가장 빨리 알아챈 사람도 다리엘이었다.
다리엘은 욜리의 부재를 알아챈 즉시 하녀와 시종들에게 명령해 온 성을 다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또다시 욜리의 행방을 놓친 무능함에 다리엘은 엄청나게 자책하며 공작부인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으나, 현재 공작이 출입을 허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 집사가 말을 전해온 것이다.
“기사단을 투입할까요?”
“…….”
외부에서 보면 짐승 하나 찾자고 기사단을 투입하는 것은 좀 과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욜리를 얼마나 아끼는 줄 알고 있으니 반드시 찾아야 했다.
다만 그가 걱정인 것은 따로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상태가 미령한데, 만약 찾지 못하기라도 하면…….’
그것을 어찌 사이나에게 말할지…….
콘스탄틴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그리하-”
“아니요.”
그런데 사이나가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침실 밖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전이나 지금이나 가느다란 느낌은 비슷했으나, 나름 심지가 굳은 인상을 풍겼던 흑발일 때와 달리 은발의 그녀는 뭐랄까…….
아스라한 것이, 자꾸만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붙잡았다.
“몸… 도 안 좋은데 왜 나왔습니까.”
본래부터 부축이나 하려고 그랬던 것처럼.
“전 괜찮아요. 그리고 욜리 때문에 기사단까지 파견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어디 있는지, 알 것 같거든요.”
사이나는 창밖 너머 어딘가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 * *
사이나는 후드를 찾아 입었다.
“어딥니까, 거기가.”
사이나는 지나치게 길어진 머리타래가 성가셨으나 당장은 길이를 줄일 수도 없어 대강 묶어 후드 안으로 숨겼다.
“멀지 않아요.”
“같이 가겠습니다.”
사이나는 불안해 보이는 콘스탄틴의 눈빛을 보다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녀가 선뜻 허락할 줄 몰랐다는 듯, 되레 당황한 것은 콘스탄틴. 그러나 금방 정신을 차렸다.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뒤를 얼른 쫓았다.
“…….”
그리고 잠시 후, 콘스탄틴은 매우 기이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