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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74화 (174/233)

174화. 그래, 이건… 사랑

단순히 칼리고를 괴롭힐 목적으로 여기에 빛 속성 온천이 있는 것은 아닐 것 아닌가.

그저 단순한 우연인가?

“그럼 당신은 괜찮아요?”

“저, 말입니까?”

“여기 들어온 거요. 당신에겐 영향이 없나요?”

“머리가 아파지긴 하죠.”

“네? 아파요?”

사이나는 깜짝 놀라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물 밖으로 나가도록 다급하게 그를 재촉했다.

“아프면 얼른 말했어야죠!”

“아니, 보통은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떠밀리듯 기슭 쪽으로 한 칸 올라섰다.

“지금은 그대와 닿아 있…….”

그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말뿐 아니라 몸 전체가 정지돼버린 듯 보였다.

“……그….”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그의 표정.

접촉을 깨달은 듯, 사이나가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이 급속도로 경직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미, 미안합니다. 경황이 없어…….”

서둘러 그가 떨어져나갔다. 그 움직임을 따라 물결이 요동쳤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접촉은 줄었지만 시각적 자극은 배로 늘어나버린 것이다.

거의 기슭 근처라 물은 허벅지 근처에서 찰랑였다. 그것은 잔뜩 젖은 몸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는 뜻.

그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아…….”

온천이 화산이 되어 끓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 콘스탄틴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완연하게 젖어 반짝거리는 피부, 겨우 가릴 곳만 가린 속옷 차림, 그나마도 젖은 천이 착 달라붙어 윤곽을 다 드러낸 상태.

젖은 머리 타래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몸의 곡선을 타고 은밀한 틈새와 계곡 사이로 스며드는 정경까지.

황급히 돌아선 그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당장 멀어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칠 것 같아서.

“콘스탄틴? 괜찮은 거예요?”

“괜찮… 습니다.”

“머리 많이 아파요? 막, 어지럽고 그래요? 비틀거리시는데…….”

“물이, 물이 좀 뜨거워서 그렇습니다.”

누가 들어도 변명 같은 변명을 하며 그가 샘을 나갔다.

아까부터 불안하게 비척거리던 그는 결국, 나가다가 근처의 바위를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바위 위에 사이나가 올려두었던 짐 가방이 그의 허우적거림의 반동으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가방이 샘 안으로 퐁 빠져버린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 어? 어!”

사이나는 깜짝 놀라 바위 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방수가 되는 주머니 형태의 가방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문제는 아까 번역본을 꺼내 읽느라 입구를 열어둔 채였다는 거다.

가방 안에는 번역본 종이들 뿐 아니라 벗어둔 옷과 갈아입을 속옷,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랙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키홀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콘스탄틴에게 말도 안 하고 몰래 챙겨왔던 것이다.

사이나는 가라앉은 가방을 궤적을 따라 허둥지둥 물 아래를 뒤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종이는 젖어 흐물거렸고, 옷은 죄다 젖어버렸다.

“어떻게 해…….”

게다가 블랙 다이아몬드는 어째선지 보이지도 않았다.

“사이나?”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크레이머 공작가의 가보(?)가 사라졌다.

아니, 가보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대대로 내려오는 중요한 물건!

사이나는 젖은 가방을 대충 근처에 던져두고는 얼른 다시 잠수했다. 샘 기슭 근처 바닥을 미친 듯이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빠졌다면 이 근처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체 어디 간 거야?

가뜩이나 이 샘 안은 가시거리가 짧아 멀리는 확인이 불가했지만, 그래도 블랙 다이아몬드라 색이 선명하게 차이가 남에도 보이지 않아서 매우 불안해졌다.

허둥지둥 열심히 뒤졌으나 검은색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

다급하게 바닥을 쓸고 있던 그녀의 허리를 누군가가 채어 물 위로 끌어 올렸다.

콘스탄틴밖에 그럴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그이겠지만.

“쿨럭!”

“사이나!”

잠수 중에 깜짝 놀라는 바람에 물을 마시고 만 사이나가 잔기침을 하며 콘스탄틴을 흘겨보았다.

“놀랐잖아요. 왜 이래요?”

“내가, 더 놀랐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 다이아몬드요!”

금세 사이나의 잘못이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 해요! 얼른 공작님도 같이 찾아봐요.”

“설명부터 필요할 것 같군요.”

“그게…….”

사이나는 지금까지의 블랙 다이아몬드의 번역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그것을 혹시 몰라 들고 왔다고 말했다.

수도에 있을 때야 수요일마다 콘스탄틴이 흑목 상자의 잠금을 풀고 매번 건네주었지만, 크림성에서는 아예 사이나의 손에 맡겨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리게 생겼으니.

“……키홀을 정말, 찾은 것 같다고요?”

하지만 콘스탄틴은 블랙 다이아몬드의 분실 여부보다 다른 것이 더 걸리는 듯했다.

표정이 묘하다 못해 기이했다.

“네. 왜요…?”

“아니, 그게…….”

진짜였어? 이래도 되는 건가? 중얼거리듯 나온 말에 혼란함이 묻어 있었다.

정말? 정말 된다고? 해석이? 지금?

물음표 가득한 말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자 사이나도 함께 혼란해지는 기분이었다.

‘해석을 바라고 넘긴 게 아니었어? 대체 뭔데?’

사이나로서는 그가 왜 저런 반응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 그…….”

콘스탄틴은 마른세수를 몇 번 하더니, 말했다.

“실은 그게 내 당대에 해석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수백 년간 가주의 의무로 내려오기는 했으나…….”

“아…….”

그럴 만도 하네.

하긴 사이나도 벨류아 고서적점에서 마지막으로 산 그 책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거의 해낸 것 같은걸요? 키홀에 다이아몬드를 끼워봐야 완전히 확정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앞뒤가 맞으면 그게 맞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요…….”

하지만 콘스탄틴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말투였다.

“물속에 빠진 건 확실하니까 전 다시 뒤져볼게요. 공작님은 나가 계세요.”

그와 맞지 않는 속성의 물에 들어가 함께 찾아달라는 부탁은 못 하겠다. 대신 이번엔 방해 말라는 뜻으로 말을 하고는 다시 잠수했다.

하지만 가방이 빠진 근처를 다 뒤져도 블랙 다이아몬드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 간 거야? 설마 물에 녹아버린 건 아니겠지?’

다이아몬드가 물에 녹다니. 말도 안 되는 가정임에도 꼼짝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니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게다가 물에 녹는 소재면 키홀이 물속에 있을 리도 없지 않겠는가.

‘내가 뭔가 번역을 잘못한 걸까?’

다시 해석을 해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더 찾아보기나 하자.’

사이나는 혹시 몰라 아까 키홀로 예상한 위치로 다시 잠수했다.

‘…어?!’

뭐야. 열쇠가 알아서 여기까지 굴러온 건가?

얼핏 거뭇한 무언가가 보였다.

사이나가 느끼기에 온천의 바닥은 편평했기에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경사가 있는 편이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깊게 잠수를 한 그녀가 거뭇한 부분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

검은 형체가 갑자기 길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키홀을 중심으로 바닥이 쩌억 갈라지며 그 틈새가 검은 길을 내기 시작했다.

순간 놀란 사이나가 행동을 멈췄다. 놀란 눈으로 틈새를 보고 있자니, 이번엔 그 사이로 강렬한 빛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읏!’

사이나는 뜬 눈으로 그 빛을 감당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도 모자라 피부를 타고 물의 흐름이 느껴졌다. 본래 그저 고요하기만 했던 샘이건만.

‘…설마 키홀에 열쇠가……?’

꽂지도 않았는데? 개방된 거야?

그렇다면 그냥 다이아몬드를 물에 넣기만 하면 알아서 키홀을 찾아가 꽂히는 건가? 말이 돼?

하지만 이런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아까와 달리 물의 흐름이 점점 격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피부를 타고 웅웅거림도 느껴졌다.

바닥 저 아래 어딘가로부터 올라오는 울림 같았다.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점차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물살이 격해지는 것이 느껴져 사이나는 바닥을 박찼다. 반동으로 멀리 가기 위해.

‘……?!!’

하지만 웬걸.

발을 디뎠던 바닥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붙어버린 것처럼.

‘으읍!’

점차 숨이 가빠져 오는데, 발을 떼어내려고 더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니 더 공기가 빨리 달아버렸다.

‘어떠, 어떻게 해……!’

겨우 발이 떨어졌다.

이때다 싶어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려는 그녀의 몸을, 이번에는 물속 회오리가 붙들었다.

‘샘은 되게 작았는데, 이 회오리는 왜 이렇게 큰 거 같지….’

급류에 휘말려 빙빙 돌아가는 몸을 느끼며 사이나는 그렇게 약간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설마, 나… 이렇게 죽는 건가?’

저번 생엔 병사로 요절했는데, 이번엔 익사로 요절이라고?

뭘 해도 요절로 끝날 삶이라면 대체 왜 돌아오게 된 걸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억울했다.

그래서 사이나는 다시 발버둥 쳤다.

어떻게든……! 제발!

그녀의 발버둥은 일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급류가 좀 약해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약해진 물살을 타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데 성공한 그녀가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콘스탄틴……!’

모레프와 칼리고로 보이는 검은 기운이 급류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그 틈새를 타고 그녀가 수면 밖으로 잠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이나! 손을-!”

급박한 그의 외침을 따라 사이나가 손을 뻗었다. 모레프와 칼리고는 급류를 막아내기에도 바쁜 듯, 콘스탄틴이 직접 다가왔다. 필사적으로 뻗어낸 두 손이 맞닿기 위해 바들바들 떨렸다.

그렇게 둘의 손이 닿기 직전.

“……!”

파아앗! 회오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안 돼-!”

물의 방벽이 둘을 다시 갈라놓으며 사이나는 다시금 물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수면 아래로 잠기기 직전, 찰나에 본 그의 표정이 그녀의 뇌리에 박혀 들었다.

비통. 절망. 경악.

그 표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극심한 비탄. 최악의 절망. 혹은 세상에 다시 없을 충격.

단순히 눈앞에서 사람을 놓친 것에 대한 실망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그걸 훌쩍 넘어선, 깊디깊은…….

‘그는…… 나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를…….’

그렇기에 그 표정이 그녀의 가슴을 이렇게 무너뜨리는 것일 테지.

‘미안해요…….’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만 것이 지독히도 미안했다.

아, 더 잘해 줄걸.

심술부리지 말걸.

‘…사랑한다고…… 말해 줄걸.’

그래. 이건… 사랑.

사랑이었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하지만 그런 그녀의 깨달음까지도, 이내 삼켜졌다.

어둠 속으로 스며든 물살을 따라, 그녀의 의식 역시 까무룩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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