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탐색
“…….”
하나 이런 사이나의 표정은 그의 예상 범주에 없었다.
놀라움도 신기함도 없이 담담한, 그리고 아주 익숙한 것을 보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라니.
그녀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후였다. 갑자기 뭔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아를-프로메사의 마지막 미발굴 유적지입니다. 크레이머령에 있는 것 중에서 알려진 바로는 말이죠…….”
“아, 그렇… 겠죠.”
사이나는 관자놀이를 짧게 긁으며 코를 찡끗했다.
여태껏 그가 관찰한 바로 저렇게 콧잔등을 찡끗하며 말하는 것은, 뭔가 곤란한 내용을 언급할 때의 습관이다. 대체 왜?
“…실은, 공작님.”
“…….”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사이나가 아무리 신비로운 존재라고 한들,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는 말인가?
“여긴… 결계가 있습니다. 수호령의 힘으로 입구를 열지 않으면 다리가 안 생기는 것은 물론, 입장 자체가 불가한데요.”
“…에? 그래요?”
설명을 듣자 더 의아한 것은 사이나였다.
“욜리가 절 데리고 와서…….”
사이나는 여태 이곳에 드나든 것과, 그 과정을 그에게 다 이야기했다.
“허, 수영이요?”
“네.”
“그럼 혹시 저번에 잔뜩 젖어서 복귀한 날도 여기 왔던 겁니까?”
“네…? 아, 네. 맞아요.”
그가 토벌을 갔다가 귀환한 날, 밖에서 마주쳤을 때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젖은 채로, 호위기사와 함께 복귀한 겁니까?”
“네? 아뇨…? 젖은 옷은 갈아입었는데요?”
“갈아입었다고요? 어디서요?”
“호수 밖으로 나와서…….”
“그냥 바깥에서 말입니까?”
어쩐지 점점 그의 목소리가 음산해지고 있었다.
아니, 대화의 방향이 왜 이래?
여기 왔던 것을 털어놓으면 유적지에 대해서나, 뭘 발견했는지에 대해서나 물어볼 줄 알았지, 그녀가 옷을 어디서 갈아입었는지가 뭐가 중요하다고…….
“아니, 천은 둘렀어요. 커다란……. 루퍼트 경이 망도 봐주었고.”
“시선은 돌리고 있었어도 소리는 다 들렸을 텐데요? 기사들이 청력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
점차 추궁에 가까워지는 그의 목소리에 사이나가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그는 제 실태를 깨달았는지 잠시 멈칫했다.
“하, 미안… 합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는 이마 위로 결 좋은 백색 머리카락이 넘어갔다.
“앞으로는…… 여기 오고 싶을 때 내게 요청해 주십시오. 그럼 젖지 않아도 되니까….”
“…아, 네.”
토벌이니 업무니, 거의 항상 바쁜 사람이다.
과연 매번 그게 가능할까 싶기는 했지만, 굳이 상황을 따지고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얌전히 대답했다.
둘은 이내 익숙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콘스탄틴에게도, 사이나에게 나름 익숙한 곳. 바로 온천이 있는 곳이다.
적당한 곳에 멈춘 뒤, 말에서 내렸다.
“여기 엄청 좋던데, 공작님은 원래 알고 계셨던 거죠?”
“…온천욕을 해 보았습니까?”
“그럼요! 뭔가 피로감이 싸악- 사라지는 것 같고, 힘도 솟는 것 같고. 되게 좋아요.”
콘스탄틴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음을 이었다.
“그럼, 오늘도 온천… 을 하고 싶습니까?”
“음.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들어가 보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단서를 알아낸 게 있는데 이 온천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확인이 필요해요.”
“흠.”
콘스탄틴은 뭔가 의아한 기색을 보였으나, 그보다도 그녀가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자체에 더 난감한 것 같았다.
하긴, 벗어야 하니까.
사이나로서도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홀딱 벗고 들어갈 건 아님에도 그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럼 이 근처… 순찰을 좀 돌다가 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수가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가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네?!”
“아니, 그냥 혹시나 하고…….”
정말 마수가 드물게나마라도 나타났다면 그녀가 그간 이곳에 드나들었다고 했을 때 반응이 아까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냥 핑계가 필요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또 왜 저러는지도 알 것 같아서 사이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콘스탄틴이 충분히 멀어지는 것을 본 뒤에 사이나는 승마복을 벗었다.
그에게서 다시 받아온 짐가방에 벗은 옷을 잘 갈무리한 뒤, 안쪽에서 번역본을 꺼내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전에 뜨거운 열쇠라고 번역했던 부분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어.”
대칭 문법 때문에 해석 순서가 약간 달라졌다. 새로운 구조를 적용하자, 비슷하면서도 다른 해석이 나왔다.
“뜨거운 흐름이 열쇠의 자리를 감싸고…….”
뜨거운 흐름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물을 보통 흐른다고 표현하니까…….
사실 완전 뜨거운 온도의 물은 아니지만, 여기가 아니라면 딱히 다른 곳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 확인이나 한번 해볼까 싶은 것이다.
매번 몸을 담갔어도 잠수를 해본 적은 없으니, 수면 아래에 자연스럽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제발……. 뭐라도 있어라.”
속옷 차림으로 샘 안에 발을 디디며 사이나는 소망을 읊조렸다.
잘은 몰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무언가도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직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뜻한 물이 피부를 감싸는 느낌이 선명했다.
어느 정도 몸을 담그고 적응의 시간을 거친 다음, 사이나는 크게 들숨을 쉬고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투명한 듯하면서도 불투명한 요상한 수질의 샘이기도 하고, 찬물이 아니라 뜨뜻한 물이라 안에서 눈을 떠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가시거리가 멀지는 않았으나 눈이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희소식이다. 부분 부분 살피며 수색을 넓혀 가면 되니까 충분히 할 만했다.
‘구조가 좀… 희한하네?’
그런데 막상 물 아래 형태를 살피니 일반적인 샘이라고 하기에는 구조가 좀 묘했다. 전에 몸만 담글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샘의 외곽 쪽 얕은 부분은 바닥이 큼지막한 계단 형태로 되어 있어 엉덩이를 걸치고 몸을 담그기 딱 좋은 형태였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온천용으로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줄 알았는데, 정작 전체 형태를 살피자 약간 느낌이 달랐다.
계단이 아니라 뭐랄까……. 땅 전체를 그릇 형태로 파낸 다음 거기에 물을 부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자연적인 샘의 구조는 절대로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수영장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럼 키홀이 있을 확률이 더 큰 거 아닌가?!’
기대감이 더 샘솟았다.
특별히 패이거나 튀어나온 곳 없이 매끈한 바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가설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하나 거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각이 변했다.
키홀이라면 모름지기 눈에 딱 뜨이는 형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눈에 뜨이는 게 없었다. 샘의 바닥은 지나치게 반드러웠으며, 색도 일관적이었다.
이 안에 키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었던 걸까?
‘아니야, 그래도 꼼꼼하게 살펴보자.’
사이나는 수면 위로 올라가 새로 공기를 마신 뒤 다시 잠수했다.
샘 위에서 나름의 구획을 그렸다. 샘이 그다지 크지 않기에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었다.
그 구획을 따라 잠수한 뒤, 이번에는 손으로 바닥의 표면을 더듬거리며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막상 바닥을 더듬기 시작하자 바닥에 깔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옅은 흙먼지 같은 것이 표면 위로 떠올라 시야를 탁하게 했다.
색이 밝은 것이 흙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러했다.
얼마나 그 과정을 반복했을까.
사이나는 숨이 달아서 수면 위로 올라오다가 기포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기포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샘의 바닥 어딘가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기포는 전에 콜도라 온천에서 화아악 폭발하듯 올라오던 것과 달리 퐁, 퐁 하며 작게 두어 방울 올라오다가 수면에 닿기 전에 녹아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수를 해야만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미약한 기포인 것이다.
‘어디서 올라오는 거지?’
미약할망정 기포가 꾸준히 올라온다는 것은 뭔가 틈새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사이나는 그 틈새를 보고 싶어 기포를 목격한 근처에서 다시 잠수했다.
바닥을 매만지는데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보기엔 평평해 보였던 바닥에 손가락이 수욱 들어갔다.
손을 넣어 헤집자 파인 곳에 쌓여 있던 흙먼지가 일제히 일어나 시야를 어지럽혔다.
사이나는 차라리 눈을 감으며 틈새를 손끝으로 느꼈다.
‘…형태가 뭔가… 익숙한데.’
한쪽은 둥글고 양 끝은 뾰족한 것이 아몬드처럼…….
설마 마퀴즈 커팅 형태인가.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여기가 그럼 혹시… 키홀?!’
갑작스러운 흥분 때문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숨이 엄청 가빠왔다.
사이나는 다시 바닥을 디디며 수면 위로 올라갔다.
“악!?”
그러다 누군가가 허리를 낚아채는 감각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격한 몸짓에 물방울이 마구 사방으로 튀었다.
“빌어먹을! 사야!”
갑작스럽게 샘 안에 나타난 콘스탄틴이 그녀를 끌어안고는 사이나의 이름을 반복해 되뇌었다.
“코, 콘스탄틴?!”
갑자기 그가 왜 이런단 말인가.
심지어 그는 미친 듯이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왜, 왜 이래요?”
“멀리서 보는데… 그대가 보이질 않아서…….”
“아…….”
“한참이나…….”
잠수를 그렇게 오래했었나. 아무래도 그는 그녀가 물에 빠졌다고 착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잠수 중이었어요.”
다짜고짜 잠수 중이었다고 하니,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사실이니까.
“많이 놀라셨어요?”
입장 바꿔 생각하면 사이나도 놀랐을 것 같기는 하다.
온천을 하겠다고 했던 사람이 보이지 않고, 주변 다른 곳에서도 보이지 않으면 말이다.
하지만 이 온천은 빠져 죽기에도 사실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여기 걱정하실 만큼 깊지 않은데.”
작은 샘인 만큼, 깊이도 그다지 깊지 않았다.
“보세요.”
샘은 사이나의 어깨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콘스탄틴을 기준으로 하면 가슴팍에나 오는 수심이었다.
“그… 렇군요.”
“여태 여기 한 번도 안 들어와 보셨어요?”
그라면 당연히 알았을 텐데, 싶어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의외다.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직접… 이요?”
그럼 간접적으로는 들어가 본 적이 있다는 말인가? 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칼리고를 처박… 아니, 넣어본 적은 있습니다.”
“……네? 대체 왜요?”
“그 새, 아니, 칼리고가 매우 싫어해서.”
“…….”
자꾸만 욕설 비슷한 것이 나오다 마는 게, 수호령과의 사이가 상당이 나쁜 것처럼 보였다.
싫어하다 못해 지긋지긋해하는 것 같달까.
“칼리고가… 왜 싫어하는데요?”
“이 샘엔 빛 속성 입자가 포함되어 있어서, 상극이거든요.”
“아…….”
이 반짝거리는 수질이 빛 속성 입자 때문이었어?
뭔가 신기했다.
근데 어둠의 수호령을 부리는 크레이머령에 왜 빛 속성 온천이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