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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72화 (172/233)

172화. 유적이 열리면

‘제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유적이 열릴 거라며?’

이 다이아몬드는 그 유적의 열쇠다. 근데 지금 이게 해석이 된다는 건, 제국이 위험하다는 뜻 아닌가?

그간 안일하게 사느라 감지를 못했을 뿐, 사실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는 안일하게 산 적이 없었다. 매 분기마다 마수를 잡느라 다른 쪽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기는 했으나…….

‘그럼 뭐지? 야만족이 곧 쳐들어오려나? 남부 왕국 연합?’

대체 내가 무슨 징조를 놓쳤을까…….

“……틴?”

콘스탄틴도 혼란함이 극에 달했다.

이번에 황도에 내려가면 황실과 황자 근처의 내부 사정, 그리고 다른 공작령의 국경 상황은 어떠한지 자세히 조사를 좀 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졌다.

4대 공작들을 모두 불러 연합회의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콘스탄틴!”

“……?”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그녀가 그를 불렀던 모양이다.

“아, 무슨…….”

콘스탄틴은 정신을 다잡으며 사이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안 되는 거예요?”

“예…? 뭐가…….”

“…….”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잡생각에라도 빠져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반신의 지나친 주장으로 또다시 방을 뛰쳐나갈 뻔했으니.

하지만 그간 사이나가 뭔가 말을 걸고 있었던 모양인지, 묘하게 서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주겠습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사이나가 잠시 입술을 말았다가 놓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다이아몬드가 열쇠라고 하셨잖아요.”

“예…. 그랬지요.”

“유적지를 여는 열쇠요.”

어쩐지 그의 시야가 느려진 기분이다.

“예…….”

사이나의 잇새로 바알간 혀가 보였다가 말았다가 하는 장면이 느릿느릿하게 흐르며 선명하게 시야에 박혔다.

“……그래서 그 유적지를 한번 가보고 싶은데요.”

“……예.”

“…괜찮으세요?”

“……예, 에?”

“…….”

“아, 그… 유적지요.”

콘스탄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눈 안에 남은 잔상을 떨구려고 노력했다.

“…키홀의 위치는 나도 모릅니다. 전에 말했다시피 다이아몬드에 새겨진 내용이 키홀의 위치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알려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네, 그건 기억해요. 다만…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정말…… 해석을 해버린 거면…….

다시금 콘스탄틴은 눈을 끔벅거렸다.

당황스럽다.

‘아니야, 정말 찾아낸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당장 무얼 판단하기보다는, 결과를 보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그대를 데려가 준다 해놓고 그럴 기회가 없었군요.”

‘설사 정말 해석을 해버렸다고 해도… 그럼 그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그녀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해질 제국 상황에서 그녀를 지켜낼 준비를 하는 것이 더 맞았다.

“가 보도록 합시다, 내일 바로.”

“감사해요.”

이제는 제가 선사하지 못할 이따금의 저 미소를 위해서라도.

* * *

날이 좋았다.

전날의 광몰입(?) 때문에 느지막이 잠든 탓에, 중천으로 넘어간 햇살을 느끼며 사이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엣취!”

더 정확하게는 코를 간지럽히는 욜리의 터럭 때문에 간지러워서 일어난 거지만.

‘아, 오늘 유적지 가기로 했지.’

지난 새벽 너무 늦게 잠든 탓에 늦잠을 잤지만, 콘스탄틴은 분명 벌써 일어났을 것이다.

얼른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동안 사이나는 콘스탄틴에게 시종을 보냈다. 그는 시종을 통해 식사 마치고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는 말을 전달했다.

그녀는 승마복을 챙겨 입고 포치로 내려갔다.

“사이나.”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녀를 매번 사이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야’가 아니라.

‘왜?’

하지만 금세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졌다. 그녀 또한 그에게 거리감을 느낄 때면 이름 대신 공작님이라고 부르게 되곤 했으니까.

그리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반동으로.

“…콘스탄틴.”

그녀의 입에서 그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약간은 반발처럼, 그렇게. 공작님 대신 그의 이름을.

“짐이 있군요. 이리 주십시오.”

그는 기민하게 그녀를 살피더니 제일 먼저 그리 말했다.

사이나는 만약을 대비해 몇 가지 짐을 챙겼다. 거기엔 블랙 다이아몬드를 해석해서 정리한 내용의 번역지 몇 장이 포함이었다.

사이나는 순순히 그에게 짐을 넘겼다.

“자주 승마를 했다지요? 같은 말을 준비하라 했습니다.”

포치 앞에는 둘이 탈 말 두 마리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

콘스탄틴은 아까 받아든 짐을 자신의 말안장에 잘 고정하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승을 돕기 위한 에스코트용 매너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이조차도 기대한 바가 없어서인지, 선뜻 내밀어진 손이 의외로 느껴졌다.

장갑 낀 손이기는 해도 말이다.

“탑시다.”

“…네.”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말에 오른 그녀가 바르게 자세를 잡고 고삐를 쥐는 것까지 모두 확인을 한 콘스탄틴은 그제야 자신의 말에 올랐다.

그의 덩치가 워낙에 커서인가. 그의 말도 그녀의 것에 비하면 엄청 컸다.

보통 그는 모레프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말을 타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보아하니 공작의 전용 말인 것처럼 보이는 고가의 혈통마였다.

‘그리고 보니, 왜 모레프를 안 타고?’

아무리 고가의 혈통마라고 해도 모레프의 속도는 못 따라 갈 텐데?

하지만 금세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날 안고 타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말을 꺼내온 거구나.’

둘이 있을 때 모레프를 타는 경우는 항상 같이 탔었으니 말이다.

이유를 알게 되자, 갑자기 조금 전 그의 조심스러운 에스코트조차 어째서인지 좀 짜증 났다.

그의 태도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것같이 느껴졌음으로.

‘하, 나 진짜 욕구불만인가?’

그리고 조금 지나자 이젠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닿지 못한다고 이렇게 안달복달, 짜증을 부릴 일이냔 말이다.

그에게 화가 나고, 그에게 화가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그래서 또 그에게 화가 나고.

거지 같은 악순환에 사이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이럇!”

그리고는 그를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말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당장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사이나?!”

당황한 그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으나, 외면하고 속력을 더더욱 높였다.

무심코 평소대로 북문을 넘어서고 나서도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이쪽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는 어디에 있지?’

하지만 콘스탄틴은 별 어려움 없이 그녀의 속도를 맞춰오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가 속도를 살짝 늦추자마자 곁으로 자신의 말을 붙여왔다. 그리고 말했다.

“죽 달리면 됩니다.”

다행히 방향이 틀리지 않았나 보다.

이후는 혼자서만 단독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 속도를 맞춰 달렸다.

그리고 점점 더 달릴수록 내심 전에 했었던 가정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목도했다.

‘그 유적지가 그 유적인가 보네.’

욜리와 갔던 섬. 그 위의 유적지.

그게 아마 콘스탄틴이 말했던 유적지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으니 말이다.

멀리 시야로 호수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보이자 가정은 확신으로 변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기슭의 위치랄까.

전에 욜리와 함께 와서 헤엄쳐 건너던 곳이 아니라 다른 쪽의 기슭이었다.

그 증거로 기슭에 전에 본 적 없던 표지석 하나가 깊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내 뒤쪽으로 바짝 붙어 달려오도록 해요.”

호수로 점차 가까워지는데 콘스탄틴은 말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뭔가 좀 의아했지만 그가 시킨 대로 따를 무렵, 그는 칼리고의 기운을 뽑아냈다.

“……?!”

그의 등에서 주욱 뽑혀 나온 칼리고의 기운이 이내 표지석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호수의 수면 위로 그대로 내달렸다.

“어, 어디 가요?!”

깜짝 놀라 몸이 반사적으로 굳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질 뻔했으나, 사이나는 가까스로 다시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속력이 줄며 그와의 사이가 꽤 벌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이나?”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 기색을 느꼈는지, 그가 말을 세우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어떻게 한 거예요?”

그의 말은 물 위에 서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본 콘스탄틴이 짧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와 봐요. 안 빠질 겁니다.”

“어…….”

사이나는 머뭇머뭇 말을 이동시켰다.

호숫가 초반만 해도 말의 발이 훅 아래로 빠져드는 것이 느껴져서 멈칫했다. 말조차 움찔하는 것이 허벅지 근육을 통해 느껴졌다.

“더요. 조금만 더 앞으로.”

“…….”

그의 말을 믿고 조금 더 앞으로 말을 이동시키자 오히려 위로 올라서는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지반을 밟는 느낌.

“어, 어?”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수면 아래로 지반 같은 것이 있었다.

세상에. 비밀 지반이 있었던 건가?

‘…이걸 알았으면 매번 홀딱 젖지 않아도 되었던 건데!’

갑자기 그간 섬에 다다를 때까지 수영을 해서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째서인지 억울해졌다.

“너비가 넓지는 않으니 내 뒤로 잘 따라 들어오십시오.”

“네.”

아무래도 섬까지 놓인 다리 같은 형태인가 보다.

“이 다리, 항상 여기 놓여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수호령의 힘으로 그때그때 구현하는 겁니다.”

“아….”

그럼 이쪽으로 와도 결국 수영행이구나.

아까 칼리고의 힘을 표지석에 주입하는 과정이 아무래도 다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말을 잘 타는군요. 본래 승마를 즐기는 편입니까?”

“음, 아뇨. 그다지 즐기지는 않았는데… 근래는 좀 많이 탔어요.”

요즘 자주 타다 보니 능숙해진 면이 없잖아 있었다. 콘스탄틴은 그 모습을 본 거고.

“이 유적지, 먼저 보여주겠다고 해놓고 그대가 요청하게 만들었군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그렇게 따지면 이미 왔다 간 건 어쩌고? 말을 해야… 겠지?

사이나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둘은 결계를 넘어섰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호수 안에 숨겨진 섬.

섬 위에 남은 고대 문명의 흔적.

누가 봐도 지극히 신기하고, 말도 안 되는 광경이다.

처음 본 자라면 눈이 동그래져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그리고 아를-프로메사의 광팬인 사이나라면 더더욱, 극렬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누구나 예측이 가능했다.

콘스탄틴도 예외는 아니라 이 순간에 고개를 돌려 사이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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