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노려지는 기분
“시끄러.”
하지만 콘스탄틴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컁?”
‘내가 뭘?’ 이런 표정의 욜리가 아까보다 더 못마땅하다는 듯 내뱉었다.
“너 말고.”
“캬웅.”
신경질적으로 제가 누울 자리를 탁탁 두들긴 늑대 새끼가 몸을 동그마니 말고 엎드렸다.
그리고 콘스탄틴이 눕자 슬금슬금 약간 멀어지더니 그의 손 위에 곰발을 슬쩍 얹었다.
-아, 주인아아! 자꾸 이러기…….
손바닥 부분의 젤리 이상은 그와 닿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사실 전에는 욜리가 곰발을 그의 이마에 턱 얹거나 대충 근처에 닿는 아무 맨살 부위에 손을 얹고는 했는데, 전에 그가 실수한 뒤부터 저러는 것이다.
‘하, 나도 짐승 새끼랑 맞닿고 자긴 싫거든?!’
비몽사몽 간에 뜨끈한 몸체가 근처에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품에 안은 거지, 알고 그랬겠나.
저 새끼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했을 거란 말이지.
심지어 입술까지 묻었었다.
‘캬악!’
덕분에 날뛰는 욜리 새끼의 곰발 따귀와 함께 괴성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날 짐승 새끼의 곰발로 거하게 따귀를 얻어맞은 것은,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묘하게, 매우, 더러웠다.
그렇다고 짐승 새끼한테 진심으로 화를 낼 수도 없어서, 그는 미간이나 구기며 눈을 감고 화를 삭여야 했다.
그때부터 저 짐승은 그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이렇게 손가락 끝이나 겨우 닿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약간 역병 환자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칼리고 새끼의 목소리가 잦아드니 한결 편안했다.
얼른 물먹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재워야 할 텐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고요했으나, 묘하게 사이나가 선사하는 것과는 달랐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큐?”
그러던 중에 그가 잠들기를 기다리던 욜리가 귀를 쫑긋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콘스탄틴도 덩달아 눈을 떴다.
‘뭐지?’
-그래! 잘 생각했다! 이 짐승 새끼! 꺼져버려랏! 주인아, 얼른 내보내버려! 응?!
욜리가 떨어지자마자 대번에 칼리고의 목소리가 스며든다.
‘아, 차이를 알 것 같군.’
사이나와 닿을 때면 칼리고는 정말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 몸에 더 이상 칼리고가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그런데 욜리 녀석이 닿으면, 단순하게 음소거만 일어나는 느낌이다.
칼리고의 소란스러움도, 존재감도, 사람 진을 빼먹는 집요한 수다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단순하게 그게 내 귀에 들리지만 않는 것 같은 기분.
‘…시끄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건가?’
묘하게 달랐다.
조용해지기만 하면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컁?”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볼 겨를은 없었다.
욜리 녀석이 어째서인지 침대 아래로 내려가 연결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지?”
“컁!”
그것도 모자라 앞발을 들어 문을 쿵쿵 두들겨댔다.
‘…무슨 일이 있나?’
이 짐승 새끼는 딴 건 몰라도 사이나의 안위에 대해서만큼은 엄청나게 예민한 녀석이라, 바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비켜봐라.”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수호령의 힘을 일으켜 연결문 바깥의 잠금쇠를 풀었다.
“캬앙!”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들어간 공작부인의 방에는…….
“사이나?”
없었다. 그녀가.
“캬아아앙!”
침대 위는 누운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 * *
벌컥! 노크도 없이 집무실 문이 열렸다.
“사이나!?”
콘스탄틴이 어쩐지 다급한 기색으로 들어와서는 사이나를 확인하고 대놓고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처럼.
“캬앙!”
욜리도 같이 들이닥쳤다.
‘또 이런 공부벌레 짓이냐!’ 같은 표정을 지으며 욜리가 한 번 더 울부짖더니 사이나를 노려보았다.
“…둘이 어쩐 일이에요?”
‘유레카!’를 외치며 환희에 잠겨 있던 참에 뜬금없는 방문을 받은 터라 사이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 사이나. 지금 몇 시인 줄 압니까?”
“캬아앙? (아냐고오?)”
“갑자기 욜리 녀석이 그대가 방에 없는 것을 발견해서…….”
“캬아악! (그래!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사이나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그게, 갑자기 너무 대단한 걸 발견하는 바람에…….”
사실 찾아온 이들 때문에 몰입이 깨져 방해받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래도 잠까지 거르며 이러면 안 되지요. 당신 수발드는 자들을 혼내야겠군요.”
“어, 아니에요! 침실까지 갔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있어서 제가 나온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공작님께서도 들어보시면 알걸요?! 마침 잘 오셨네요!”
사이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저 눈빛…. 언젠가 본 것 같은데…….’
콘스탄틴은 사이나의 지나치게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며 어쩐지 기시감을 느꼈다.
“당장!”
그래, 그 때.
“옷 좀 벗어봐 주실래요?!”
저번에도 저런 눈빛을 지으며 그의 옷을 벗기려(?) 들었었다.
“캬하앙?”
“…….”
욜리의 어이없다는 물음과 당황 어린 콘스탄틴의 침묵을 개의치 않고 사이나는 밀어붙였다.
“반드시 확인해야 한단 말이에요! 이건! 정말 대- 발견이 틀림없어요!”
당황해 머뭇거리는 콘스탄틴에게 후다닥 다가온 사이나는 당장에라도 직접 그의 셔츠를 열어젖힐 기세였다.
“……지금, 꼭 그래야겠습니까?”
어쩐지 귓가가 벌게진 콘스탄틴이 입가를 가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캬아앙?(그러게?)”
왜 자꾸 욜리 목소리가 해석되어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사이나는 당장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럼요! 블랙 다이아몬드가 해석될 아주 큰 단서를 찾았단 말이에요!”
“……?!”
“…캬아아앙?”
호기에 찬 사이나의 선언에 둘의 반응이 의외였다.
경악에 가까울 정도로 놀란 콘스탄틴의 표정은 그렇다 치고, 욜리는 대체 왜 놀라는 거지?
뭘 안다고?
하지만 사이나는 당장의 놀라운 성과에 매몰되어 그 끝을 보고 확인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라 미처 그것에 대해 더 파고들 겨를이 없었다.
당장 그를 벗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른요, 얼른!”
“사, 사이나….”
“여긴 싫어요?”
아니,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콘스탄틴은 난감하게 중얼거렸다.
사이나는 아주 저돌적이었다.
연구 결과에 얽히면 원래 이런가?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뭔가를 찾는 듯했다.
대체 뭘 찾으려고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한참 동안 성공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아!’ 하고 탄성을 내더니 자신의 가운 끈을 풀기 시작했다.
“…사, 사이나?”
벗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나?
왜 갑자기 그녀가 제 옷가지를 풀기 시작하는지 몰라 콘스탄틴은 당황했다.
“캬우아앙?”
욜리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하나 풀어낸 가운 끈을 사이나가 그에게 내밀었으니, 더 그 의도를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잡아요, 이거.”
그래서인가. 내밀어진 가운 끈을 그가 얼결에 잡고 말았다.
그가 그 가운 끈을 잡자마자 사이나는 반대쪽을 잡고 있던 제 쪽으로 당기더니 성큼 걷기 시작했다.
“얼른 따라와요!”
“…….”
“…컁?”
* * *
사이나는 매의 눈으로 그를(정확히는 그의 등짝을) 노려보고 있었다.
“…….”
집요하게 노려지는(?) 눈빛 하에서 셔츠를 벗는 콘스탄틴의 기분은 매우 이상했다.
아무래도 긴장은 콘스탄틴 혼자만의 몫인 듯, 그녀는 그의 등에 새겨진 아를어를 파내어가기라도 할 듯 집요하게 살피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음. 맞아…. 역시나…… 이 형태가…….”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으로 모자라 그의 등에 새겨진 형태를 따라 그리기라도 하는지 스르륵, 무언가로 피부를 훑는 느낌이 났다.
“흡.”
쭈뼛한 감각에 콘스탄틴이 일순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해요. 손을 대면 안 되어서 도구로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깃펜의 깃 부분으로 선을 그리며 무언가를 가늠한 모양이다.
“…….”
“많이 간지러웠어요?”
“예. 좀…….”
“알았어요. 안 닿게 할게요.”
실은 간지러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터치가 일어나면 참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 마퀴즈. 맞네……. 이 선을 따라 대칭이……. 그렇다면…….”
“…….”
하지만 터치가 없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시 깨달았다.
얼마나 문양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인지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 새에서 새어 나오는 숨결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녀의 방. 사이나의 체향이 가득한 방에서 그녀의 집요한 시선을 받고 있자니, 전처럼 아주 난감한 상황이 자꾸만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제 몸이 자꾸만 자신의 제어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아……. 돌겠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욜리 녀석은 이미 중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 이제 돌아 앉아 주세요!”
지금이 한밤중이라는 자각은 있는 것일까?
게다가 욜리가 그를 재우러 왔을 만큼 그가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중이라는 건?
하지만 퀭하게 다크 서클이 내려올 정도임에도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저 열정 어린 태도를 보니 말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만성 불면. 하루쯤 더 못 잔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오! 맞았어! 두 구조가 병합된…!”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의 등짝을 거울에 비추며 그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이나가 또다시 감탄하며 뭐라고 웅얼거렸다.
작은 손안에서 깃펜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초롱초롱한 눈에는(지나치게 초롱초롱했다) 일말의 졸음도 묻어 있지 않았다.
“……솟는…… 열쇠…….”
새삼 아까의 충격이 다시 되새겨진다.
“깊은 곳으로……. 와, 되잖아? 아니, 이게 되네?”
그리고 그는 불안해졌다.
‘이게 내 당대에 해석이 되어도 되는 건가?’
정말로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도 보여서 콘스탄틴은 아연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