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금기가 금기인 이유
“아, 요즘 상당히 좋으세요. 아마 모시라 하실 거예요.”
“그래도 한 번 물어봐 주겠니?”
“네!”
대충만 보아도 성격이 발랄한 하녀였다. 유모가 말 상대하기 좋은 아이로 잘 골라서 보낸 모양이다.
“들어오세요, 마님!”
유모는 허락을 넘어 직접 사이나를 맞으러 나왔다.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예! 마님의 배려로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 유모의 안색은 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넘쳐흐르는 활기도 그렇고.
“다행이에요. 건강해 보이셔서.”
이런 유모의 모습에서 사이나는 콘스탄틴의 가정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다시금 품을 수 있었다.
유모는 또 구식 화로를 이용해 아주 맛있는 차를 우려 주었다.
그것을 마시며 가볍게 서로 안부 수준의 이야기로 대화의 포문을 띄웠다.
그러다 사이나는 하녀를 불러 본관 심부름을 보냈다.
가주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나 듣게 할 수는 없으니.
“유모님. 콘스탄틴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대번에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유모의 표정도 그랬다.
마치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 예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금세 침통하게 가라앉았다.
“콘스탄틴은, 유모님의 병이 자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예?”
“이렇게 아프신 게 본인과 많이 접촉했기 때문이라고요.”
유모는 어쩐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금세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요. 전 제 병이 각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콘스탄틴의 확신만큼이나 유모도 단호해 보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각하가 원인이라시면 공작가 대대로 선대 공작부인들께도 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은 없는걸요. 소문도 없고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해보았던 걸까? 하긴 유서 깊은 가신 가문 출신이라고 했으니, 크레이머가의 정보도 함께 대대로 내려올 수도 있겠네.
하지만 사이나는 유모의 말에서 금세 맹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런 게 소문났다면… 아무리 공작가라도 누가 시집을 오겠어.’
아마도 이건 가문 차원에서 대대로 쉬쉬하며 단속해온 비밀일지도 몰랐다. 칼리고를 숨기고 모레프를 얼굴 마담으로 세우는 것만 봐도, 가문 차원의 비밀 아니던가.
그러니 비밀이 더 있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보였다.
“선대 공작부인도 일찍이 돌아가신 것으로 아는데요. 연관이 없었나요?”
“선대 공작부인께서는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병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셨는걸요.”
그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몰랐었다.
근데 사고라니…….
“사고라 함은…….”
“마수 때문에요. 선대 공작 각하와 한날한시에 돌아가셨답니다.”
“아…….”
“그게 콘스탄틴이 몇 살 때인가요?”
“도련님이 성인이 되기 전이셨으니 아마 열여덟이나 열아홉, 그쯤일 겁니다.”
그럼 그는… 맹약의 의무를 지는 것도 모자라 그 어린 나이에 가주의 의무까지 수행해야 했단 말인가.
얼마나 그 과정이 힘들고 지난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럼 선대 공작부인께는 전혀 유모님 같은 증상이 없었다는 건가요?”
“예. 이 지역의 겨울을 좀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그건 남부 출신이시라 출산 전부터 그랬는걸요.”
“흠.”
“게다가 선선대 공작부인께서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시는 것만 봐도…….”
유모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설파했다.
“선선대 공작부인께서 아직 살아 계세요?”
그러니까 콘스탄틴의 할머니?
“예. 간헐적인 소식이기는 하지만 아직 정정하시다 들었습니다.”
“그분은 어디 계시는데요?”
“아들, 그니까 선대 공작께서 가주직을 승계하시자마자 지방 영지로 떠나서 계속 거기 사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럼 그동안 크레이머령에 한 번도 안 오셨단 뜻인가요?”
“…아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상황 같지는 않은데요.”
“저도 그게 궁금하기는 했으나, 듣기로는 부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들과의 사이도 썩 좋지 않았고.”
잘은 모르지만 콘스탄틴도 부모와의 사이가 나빴던 것 같던데, 그 전대에도 그랬다고?
엄격한 가풍을 따르는 고위 가문일수록 화목함이 따라오기는 힘든 구조라 이해는 간다만, 어쩐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대대로 내려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감이 한기 때문이라면…?’
콘스탄틴이 말하길 그 ‘한기’는 심리적인 영향을 동반한다고 했지.
귀족 여성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직접 안아 키우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스킨십이 많지 않은데 만졌을 때 소름이 끼친다면 굳이 친자식이라도 만지려 하겠는가?
점차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친부모 자식 간이라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열다섯 이전에 승계를 시작하는 것은 본래 금기.’
그러면 몸에 한기가 어리는 것은 아마도 열다섯 이후부터일 것이다.
살가운 부모라도 어릴 때나 안아주지, 열다섯 정도면 귀족은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서로의 영역을 잘 침범하지 않는다.
그 정도면 독립체로 여기니까.
하지만 콘스탄틴은 선대 공작이 금기를 어긴 탓에 여덟 살이란 어린 나이에 강제로 승계를 받아야만 했던 특이 케이스.
아직 누군가의 품이 필요할 나이였다.
금기가 왜 금기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타인이 그를 만졌을 때 소름이 끼쳐 한다고, 그리들 말했다고 하던데, 유모님께서도 그러셨나요?”
“예? 아니요! 전혀요!”
“한기는요? 한기도 못 느끼셨어요?”
“피부는 좀 차가우셨죠……. 달달 떨며 온기를 찾아 파고드는 것이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럴수록 제가 더 많이 안아드렸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의 흠을 찾아 되도록 피하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를 안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
유모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가 덧붙였다.
“사실…… 계속 어린 도련님을 안은 상태로 있다 보면 이따금 너무 춥게 느껴질 때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소름이 끼쳤던 적은 정말 없었어요. 언제나 제게 도련님은 조금이라도 더 보듬어드리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그 안타까움을 차마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죠. 유모가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도련님과 닿으면 흠칫 놀라고는 했어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는 건, 아마도 콘스탄틴의 말 역시 사실이라는 뜻일 거다.
‘결국… 콘스탄틴의 유모가 병이 걸린 것도 어쩌면 선대 공작이 금기를 범했기 때문인 거네…….’
이미 죽고 없는 사람임에도 어째서인지 선대 크레이머 공작에게 상당한 원망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마님. 하지만 전 정말로 제 병이 각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모는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듯,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진심을 어필했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모는 어린 콘스탄틴을 너무 사랑했기에 감정적인 소름 끼침을 느꼈더라도 아마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기를 느꼈더라도, 그만큼 더 불쌍하게 느껴졌겠지. 그렇기에 그만큼 더 안아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럼 난 뭐지?’
나도 유모처럼 심리적인 소름 끼침을 부러 외면하고 있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데?’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던 시절부터 그런 것은 느낀 적 없으니까.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일까.
뭐가 다른 거지?
“그 한기는 처음엔 약했나요? 처음엔 그저 약간 서늘한 것 같다가 점차 심해진 건가요?”
“음…. 도련님이 처음으로 문양을 새긴 것이 여덟 살 때였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선대 공작은 너무했다.
“문양을 새긴 첫해가 가장 얼음장 같았습니다. 그해의 도련님은 정말 거의 매일 우셨죠. 한 접시 가득 쌓인 초코봉봉과 슈로도 그분을 웃게 할 수 없었으니…….”
원래 가장 좋아하시던 디저트였는데…….
유모가 그때를 떠올리며 글썽했다.
“해가 지나 문양의 영역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덜 차가워졌으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칼리고의 한기가, 여러모로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구나.
칼리고를 제어하기 위해 문양이 필요한 거고.
‘한기라…….’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심한 한기를 느낀 적이 없다. 칼리고의 기운이 소름 끼치게 다가온 적도 없다. 오래 안고 있다고 해서 더 차가워진 적도 없다.
그나마 그의 피부가 가장 차갑게 느껴졌을 때는 그가 부상을 당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건 사이나가 문제라기보다는 부상으로 제어력이 약해지면서 생긴, 뭐 그런 현상인 듯했다.
그래도 뭔가 영향이 있었나?
필사적으로 더 떠올려보려 했으나,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아마, 난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아….’
뭔가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근데 직감이 그렇다고 하며 그를 설득할 수는 없잖아.’
아휴. 강제로 그냥 그를 만질(?)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어설프게 행동해봐야 그가 자책이나 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더욱더 애나 쓰겠지.
“마님…….”
상념에 잠긴 사이나를 보는 유모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분을 붙들고 너무 무거운 화제를 오래 나누었나?’
사이나는 이 정도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각하를 이대로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마님께서 도와주세요. 불쌍한 분을…….”
“유모님, 그는.”
아무리 유모라도 그가 강인하게 버텨온 세월들을 불쌍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유모님이 정말 콘스탄틴이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본성으로 들어와 사시는 건 어떠신가요?”
“…….”
“정말로 이 집이 좋아서 여기에 사시는 것이 아니면 말이에요.”
“…….”
“그리고 더 건강해지세요. 오래 사시려고 노력하시고요.”
이렇게 외곽에서 숨어 하는 주장은 사이나가 보기에도 약해 보였다. 결국 유모의 주장보다는 콘스탄틴의 것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는 것이다.
“저로서도 정말 그걸 원합니다.”
“…….”
무겁기 짝이 없는 의무에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 값까지 얹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지독하게 불공평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