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너도 할 수 있어?
양파 같은 남자.
비밀. 비밀. 비밀들.
하나가 지워지면 또 하나가 드러나던 그 비밀들이, 결국 모두 드러난 듯하다.
‘…이걸 바랐던가?’
이런 결과를?
‘후련해?’
그건 아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를 도울 수도 없다는 것만 드러났을 뿐이니.
참담했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쩌면 이기적인 발상일지는 몰라도, 왜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를 때보다는 분명 나았다.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도를 모르겠는 것은 매한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 걸까.”
한숨처럼 자책이 새어 나왔다.
“컁?”
“괴로울 텐데, 힘들 텐데……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
이미 달이 중천에 걸린 밤.
사이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욜리에게 한탄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힘든 일을 욜리 네게라도 털어놓고 한탄을 하는데… 과연 그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까?”
칼리고라는 그 수호령에게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고 말이지.
“캬앗.”
하지만 욜리는 어쩐지 짜증 난다는 기색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뭔 상관이냐는 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걸.”
욜리의 꼬리가 신경질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그는 의지할 곳이 유독 없는 사람이라서, 더 걱정돼.”
“……큐.”
그리고 결국 한숨을 쉬는 것 같은 묘한 탄식을 하더니 욜리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걷더니 연결문 앞에서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사람의 손에 비해 현저히 기능이 떨어져 보이는 그 곰발로 잠금 버튼을 잘도 누르고, 문고리를 더 잘도 돌리고는 문을 열어냈다.
“요, 욜리?!”
욜리의 예고 없는 행태에 더 놀란 것은 당연하게도 사이나였다.
그녀가 한탄을 좀 했기로서니 그렇다고 문을 저렇게 열어젖히면 어쩌란 말인가.
사이나는 다급하게 욜리를 말리기 위해 뒤를 쫓았다.
“야, 야야! 어디 가!”
다급하게 속삭이듯 외치며 사이나가 헐레벌떡 욜리의 뒤꽁무니를 따랐다.
하지만 녀석은 어느새 콘스탄틴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려서 사이나를 더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이미 열린 문.
욜리는 따라오라는 듯 들어갔다.
‘…들어가 봐도 괜찮은 걸까?’
고민은 짧았다.
욜리는 이유 없이 행동한 적이 없으니, 이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이나는 짧게 숨을 내뱉은 뒤, 발걸음을 떼었다.
‘으…?!’
침대를 대여섯 걸음 남겨놓았을 때 사이나를 덮친 것은 강렬한 술 냄새였다.
저번처럼 독주의 향기.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진한 연초의 향이 함께 풍겨왔다.
욜리는 몸을 세워 앞발로 침대를 짚은 채 콘스탄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는 이미 잠에 들어 있었다.
불면을 이기기 위해 외부적 요인(독주와 성분 불명의 연초)의 힘을 많이 빌린 듯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으윽, 크… 윽.”
하지만 그 와중에도 콘스탄틴의 수면의 질은 상당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강하게 찌푸려지는 미간의 주름이나, 숨이 막힌 듯 간헐적으로 헉헉대는 벅찬 호흡만 보아도 그는 악몽을 꾸는 중이 분명했다.
수면 자체도 쉽지 않은데 악몽이라니.
어릴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꿈으로 꾸는 걸까?
전에도 악몽을 꾸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연을 알고 나니 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사이나는 그의 이마를 쓸어주고 싶었다.
미간의 주름을 살살 매만져 펴주고 싶었다.
그를 괴롭게 하는 칼리고인지 뭔지에게 아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자고 있으니 잘 모를 거고…….’
욜리도 그런 뜻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나름의 추리를 마친 사이나가 콘스탄틴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그의 표정이 편해지는 것만 보고 다시 나가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캿!”
하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욜리였다.
그녀의 손이 콘스탄틴에게 닿기 전에 욜리가 먼저 곰발로 쳐냈다.
“…욜리?”
“컁!”
이게 아니라는 듯, 외치더니 욜리는 훌쩍 점프해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카아….”
그의 앞쪽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몸을 웅크리더니 어쩐지 한숨이 나온다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내고 나서 그의 미간 위로 곰발을 툭 올렸다.
그리고는 다른 앞발로 사이나를 향해 휘휘, 저었다.
마치 이만 가라는 것처럼.
“……나, 이만 가라고?”
“컁.”
“…….”
추측이 맞자 왜 더 당황스러운 걸까.
“왜?”
욜리는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앞발을 휘휘 저을 뿐이다.
“너도 그를 편하게 해줄 수 있어?”
“컁.”
그렇다는 듯하다.
하긴 콘스탄틴이 말하길, 수호의 기운이 비슷하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근데 내가 그를 만지면 수명이 짧아진다는데, 그런 거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니, 짐승은 인간보다 평균 수명이 짧으니까 더 문제였다.
그런데 욜리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컁.”
“뭐가 아니라는 건데? 넌 괜찮다는 거야?”
“컁.”
“넌, 영향 안 받는다고?”
“컁.”
“수호의 기운이 같댔는데 그럼 나도 괜찮은 거 아니야?”
“…….”
이번에는 욜리가 어쩐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아까처럼 앞발을 휘휘 저어댔다.
“아니, 나는 안 된다고?”
“…….”
욜리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수호의 기운이 같다면서 왜 욜리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지?
“너는 동물이라서? 그래서 영향을 안 받는 거야?”
“…컁.”
어쩐지 성의 없는 동의를 표한 욜리가 다시 앞발을 휘휘 저었다.
대체… 이건 뭔지.
욜리 녀석과 단답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를 진심으로 나누고 싶어졌다.
계속해서 사이나를 향해 앞발을 휘휘 젓기나 하는 욜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사이나가 물었다.
“난 이만 가라고?”
“컁.”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전혀 상관없는 자에게 떠넘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욜리는 제발 가버리라는 듯, 계속해서 앞발을 저어댔다.
점차 표정이 험악해지고 있는 것이 당장 나가라는 듯했다.
“…….”
뭔가 불만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표정이 아까에 비하면 한결 아니, 엄청나게 나아진 콘스탄틴의 얼굴을 보자 아무렴 어떠랴 싶어졌다.
아마 욜리도 콘스탄틴을 평온하게 재울 수 있는 듯하니……, 그래 이건 참 잘된 일이 아닌가.
그녀로서는 당장 해결책이 없지만, 욜리의 존재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다행이지 싶었다.
“……알았어. 이만 갈 테니까…….”
“큐.”
“콘스탄틴 잘 부탁해.”
“……큥.”
“푹 재워주고…….”
“캭.”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런 느낌으로 욜리가 반응하고 나서는 앞발을 더 거세게 저었다.
거의 얼른 꺼져버리라는 듯,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알았어……. 난 그럼 먼저 갈게.”
“컁.”
그렇게 사이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 * *
돌아와 자신의 방 침대에 누운 사이나의 머릿속으로 갖가지 상념들이 잠식해 들어왔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새벽이건만, 여전히 잠이 오질 않았다.
‘욜리랑 나랑 수호의 기운이 같다고 했지.’
콘스탄틴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럼…… 욜리가 혹시 수호령인가? 나의?’
범상치 않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수호령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데.
‘게다가 난 맹약을 맺은 적도 없고…….’
맹약 비슷한 것도 기억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욜리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특별한 힘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맹약자들에 비해 어떤 힘이 있어 그것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건 대체 뭐라고 해야 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니 궁금해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으.’
열심히 이것저것 가설을 세워보았으나 도무지 모르겠다.
결국 어떤 결론도 도출되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욜리의 특이함.
일반적인 짐승은 확실히 아니고, 사이나에게는 더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존재라는 점이다.
‘콘스탄틴을 재우는 능력까지 있으니, 뭐.’
막상 욜리의 표정은 아주 짜증 난다는 표정이었지만, 콘스탄틴이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숙면에 들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사이나로서도 나름의 안심이 가슴 깊이 퍼져나갔으므로.
* * *
다음 날.
“욜리? 왔어?”
콘스탄틴을 재우느라 그의 곁에 있었던 욜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캬악.”
“뭔 일이기에 그럴까…?”
“크에.”
“공작님은 잘 주무신 것 같고?”
“캭!”
기분이 나빠 보이는 대답이다.
본인이 재우러 가놓고 왜 저러는 거람?
그렇다고 아니라는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콘스탄틴이 잘 잔 게 기분이 나쁘다는 건가?
거의 단답만 가능한 욜리를 상대로 복잡한 심리 상태를 알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수고했어, 욜리. 고마워.”
“크엥.”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했다는 표정을 보이며 욜리가 사이나의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가 욜리의 콧잔등부터 이마까지 털을 쓸어주자, 그 손바닥에 제 얼굴을 비비며 자리를 잡고 웅크렸다.
“크하암.”
그리고 큰 하품을 하고서는 잠에 들었다.
여태 콘스탄틴 옆에서 자다가 온 게 아닌가?
또 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며 사이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욜리가 잠을 자는 것은 보통 필요해서 자는 거니까.
사이나는 잘 자라고 욜리의 콧잔등을 톡톡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침실을 나섰다.
방을 나선 사이나는 유모를 방문하기 위해 걸음을 뗐다.
그의 상태, 넘치는 의문.
그것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유모일 것이다.
유모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누구세요? 어, 마님? 마님을 뵙습니다.”
현관을 노크하자 전과 달리 하녀가 나와 인사를 했다.
“유모님을 뵈러 왔는데.”
“네!”
“오늘 몸 상태가 좀 어떠시니?”
부디 컨디션이 좀 좋으시길 바랐다. 유모를 통해 꼭 확인받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